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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야 할 믿음생활 형태 (로마서 1장 16-17절) <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

by 【고동엽】 2022. 12. 22.

피해야 할 믿음생활 형태 (로마서 1장 16-17절) <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

 왜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려고 힘썼습니까? 은혜에 대한 빚진 자 의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런 빚진 자 의식을 가지십시오. 자신에게 사랑받을 만한 면이 많아서 하나님이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사랑받을 만한 면이 없었어도 하나님이 사랑하고 구원하셨기에 늘 빚진 자 의식을 가지고 살면서 때로 시련을 주셔도 감사하고 최선을 다해 헌신하며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한 간호사는 평생 남동생 뒷바라지를 하며 독신으로 지냈습니다. 동생은 누나의 결혼을 독촉했고 지인들도 너무 지나치다고 했지만 그녀는 동생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어느 날,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왜 자신이 그렇게 동생을 위해 헌신하며 살았는지 비로소 이유를 밝혔습니다.

 그녀가 사춘기 때, 갑자기 수혈을 받게 되었습니다. 피를 급히 구하기 어려웠을 때 어린 남동생의 자원으로 수혈을 받았습니다. 수혈 후, 남동생이 입원실에서 의사선생님께 뜻밖의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언제 죽어요?” 알고 보니까 어린 남동생은 누나를 위해 피를 뽑아주면 자신은 죽는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 말을 전해 듣고 그녀는 평생 동생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자기를 위해 수혈해준 동생에게 평생 빚진 자 의식을 가지고 살면서 동생을 위해 헌신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의 은혜에 대해 평생 빚진 자 의식을 가지고 살았기에 복음을 힘써 전하면서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처럼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생각하고 복음 전파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고 인생 최대의 사명으로 아십시오. 복음 전파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가 사랑으로 행동하는 것도 무언의 복음전파입니다. 사실상 후자 형태의 복음 전파가 더 중요합니다.

< 피해야 할 믿음생활 형태 >

 구원은 믿음으로 받기에 어떤 경우에도 믿음이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17절).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피해야 할 믿음 생활의 형태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 지나치게 비약하는 믿음을 피하십시오.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 기도 중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성경 말씀을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말씀으로 여기고 명문대 의대에 지원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잘못된 비약은 오히려 믿음의 가치를 떨어뜨립니다.

 둘째, 말씀을 개인 경험에 맞춰 재단하지 마십시오. 부흥회나 특별집회 등에서 들은 누군가의 종교적 체험을 절대화시키면 기복적인 복권 신앙, 피상적인 성공 추구, 흥미 본위의 집회 선호, 사람의 영광과 자리 추구, 사이비 종교단체 등에 영혼이 매일 수 있습니다. 한 이단 교주는 말합니다. “8천 번의 임상실험을 한 결과 귀신은 불신자들의 사후 영입니다.” 그러나 8억 번의 임상 경험이 있어도 성경이 진리라고 말하지 않으면 진리가 아닙니다.

 셋째, 마술적 도구로서의 믿음은 피하십시오. 믿음은 삶에 편리와 유익과 해결을 주는 마술적 도구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해결을 믿으면 해결이 없을 때 하나님을 떠나게 되는 허탈한 믿음이 됩니다. 남녀가 이성교제를 할 때 돈을 목적으로 사귀다가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해서 떠난다면 상대가 얼마나 배반감이 들겠습니까? 하나님을 그렇게 믿는다면 하나님의 진국 은혜를 맛보지 못할 것입니다.

 넷째, 조작해 만드는 믿음을 피하십시오. “하면 된다.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참된 믿음이 아니라 세상적인 신념입니다. 좋은 신념도 때로는 필요하지만 그것이 기독교적인 믿음은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씀은 “하나님 안에서 어떤 장벽과 고난도 극복하거나 초월하거 승화시킬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섯째, 행함이 없는 말만의 믿음은 피하십시오. “믿습니다! 아멘!” 이라고 했으면서 실천을 하지 않는 것은 복된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의 말보다 믿음의 행위가 더욱 중요합니다. 그런 원리를 전한다고 해서 “행위로 천국에 갑니까?”라고 따지지 마십시오. 믿음의 행위가 중요하다는 것은 믿음의 말만 번듯하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왜 믿음이 연약해지고 변질됩니까? 믿음으로 시작했다가 감정이나 경험이나 행위를 앞세우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시작했으면 끝까지 믿음을 고수하며 오직 믿음으로 사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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