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손을 붙잡고 가소서! (열왕기상 19장 1-8절) < 하나님께 항복하면 됩니다 >
요새 경제가 어려워서 많은 사람들이 낙심해 있습니다. 낙심이 심해지면 우울증이 생깁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일에 집중을 못하고, 마음이 불안하고, 잘 맡기지 못하는 것은 우울증의 징후들입니다. 한 통계를 보면 현대인의 3분의 2가 우울증에 노출되어 있다고 합니다. 우울증에 빠지면 자신은 가치도 없고 희망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거짓된 생각에 속지 마십시오. 사람의 가능성은 생각 이상으로 큽니다. 아직 최상의 날은 오지 않았습니다.
특히 하나님 안에 있으면 사람의 가치는 거의 무한대가 됩니다. 하나님은 신실한 한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자기를 위해 전체를 희생시키는 군주나 독불장군을 찾지 않고 전체를 위해 자기를 희생시키는 한 사람을 찾습니다. 개인적으로 안 좋아도 전체를 위한 것이라면 따라주십시오. 또한 개인적으로는 이쪽 의견을 선호해도 정당한 절차를 통해 저쪽 의견이 선택되면 그 선택된 것을 최상의 작품으로 만들려는 사람이 진짜 의인입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주역’보다 ‘한 사람의 의인’을 쓰십니다. 주역은 되지 못해도 의인은 되십시오. 인간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죄와 불의의 역사는 집요하고 광범위하게 펼쳐져왔습니다. 그런 거대한 죄와 불의의 역사를 초라한 한 사람이 어떻게 되돌립니까? 혼자서는 안 되지만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됩니다. 두 손을 들고 하나님께 항복하고 그때 하나님이 그 손을 붙들어주시면 얼마든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찬란한 꿈과 비전을 가지고 나아갈 때 많이 기도하고 준비해도 시험과 환난은 계속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비전 성취의 기간이 한없이 늦어지기도 합니다. 그때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마십시오. 두 손을 들고 끈질기게 기도하며 나가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손을 붙잡아주실 것입니다. 그 붙잡아주시는 힘으로 어려운 상황을 딛고 일어서면 환난과 낙심의 때는 사라지고 축복과 성숙의 때가 찾아올 것입니다.
< 낙심을 이겨내는 방법 >
본문을 보면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거짓 선지자들과 대결해 승리한 후 낙심에 빠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천사의 손길에 힘입어 다시 일어나 40일간을 걸어 새롭게 사명을 받는 장소인 호렙산에 이르렀습니다. 본문이 가르쳐주는 낙심을 이겨내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1.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왜 엘리야가 광야로 도망쳤습니까? 두려움 때문입니다. 두려움은 사탄이 사용하는 가장 효과적인 영혼 파멸 도구입니다.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습니다(벧전 5:8). ‘우는 사자’는 대개 ‘이빨 빠진 늙은 사자’입니다. 힘이 없으니까 우는 소리를 크게 내어 위협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이빨 빠진 사자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마귀나 문제보다 훨씬 크신 분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믿음의 훈련을 통해 두려움을 이겨내면 가능성 이상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저의 두 딸은 원래 겁이 많아서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예전부터 사려 깊은 조치를 많이 취했습니다. 예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입관 때 아이들이 할아버지의 시신을 가까이에서 보게 했습니다. 아이들이 무서워할 수 있으니까 다시 생각해보라고 주위에서 말렸지만 사랑하는 가족의 마지막 시신을 보면서 사랑과 용기와 좋은 추억을 심어주는 교육 기회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잘 얘기해 할아버지의 시신을 바로 앞에서 지켜보게 하면서 무서움이 없도록 미리 마음의 준비를 시켰습니다.
미리 마음의 준비를 시켰기에 겁 많은 아이들이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가까이에서 할아버지의 시신 입관 장면을 끝까지 지켜보았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한 리조트에서 개최된 인체의 신비 전에 갔습니다. 전시장에는 진짜 시신 수십 구가 전시되어 있었고 만질 수도 있었습니다. 첫째 섹션에는 가이드도 있었고 20-30명의 사람이 있었지만 둘째 섹션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알코올 냄새도 심했고 분위기도 으슥했습니다.
둘째 섹션으로 갈 때 둘째 딸이 그냥 나가자고 했지만 평소에 겁이 많았던 첫째 딸이 말했습니다. “왜 그냥 나가! 돈 아깝잖아!” 그때 거기서 진짜 시신과 뼈를 보면서도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끝까지 다 관람했습니다. 두려움을 극복한 경험이 있으면 그 다음에는 두려움을 더욱 잘 극복합니다. 그래서 매일 시신을 만지는 장의사는 시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친근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사람은 생각 이상으로 담대하게 될 수 있습니다.
문제를 너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문제는 선한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이 있도록 허용하신 것입니다. 문제를 두려워하면 문제는 더 커집니다. 엘리야가 두려움에 젖어 도망치자 자기 통제 능력을 잃고 죽을 생각까지 한 것입니다. 엘리야는 자기연민에 빠져서 자신이 승리자(victor)가 아닌 피해자(victim)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놀라운 갈멜산의 승리를 잊고 “나는 무가치한 존재다!”라고 생각하는 ‘피해자 증후군’에 빠진 것입니다.
엘리야가 낙심에 젖은 것은 처음부터 두려움을 막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점점 하나님보다 문제를 크게 본 것입니다. 살면서 어떤 일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귀신이나 문제는 성도를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크게 보고 하나님의 약속과 사랑을 크게 보십시오. 실패하면 사람은 대개 떠나지만 하나님은 그때 오히려 찾아오십니다. 그때 하나님을 꼭 붙들면 준비된 하나님의 사람도 만나게 되고 꿈과 같은 축복의 기회도 생길 것입니다.
2. 안식을 누리십시오
왜 엘리야가 죽고 싶다고 했을까요? 너무 지쳤기 때문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누워 자던 그를 깨워 “힘들다고 왜 그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느냐?”라고 질책하지 않고 누워 자는 그에게 천사를 보내어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을 예비하시고 2번이나 연속해서 그를 어루만지며 일어나서 먹으라고 했습니다(5-7절). 그렇게 먹고 마심으로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해 40일 동안 걸어서 새롭게 사명을 받은 땅인 호렙산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쉬는 것과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지 마십시오. 때로는 삶의 페이스를 늦출 필요도 있습니다. 여행과 수면도 시간낭비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람은 기도할 때 가장 창의적이 됩니다. 저는 기도할 때 앞날의 비전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여행할 때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많이 받습니다. 사람은 일만 하면 창조성을 잃기에 성공적으로 살려면 안식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가끔 말씀 묵상이 잘 안 됩니다. 늘 신선한 영적인 밥상을 차려 성도들을 잘 대접하고 싶지만 심신이 지쳐 말씀 준비가 잘 안 되면 그때는 그냥 잡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말씀을 묵상하면 새로운 말씀이 떠오릅니다. 그때 잠의 신비함에 감탄하면서 고백합니다. “잠을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잠은 많은 신비한 효능이 있는 보약입니다.
저는 휴가 때 잠을 많이 자면 허리가 아픕니다. 평소와는 달리 7-8시간을 내리 자니까 척추가 놀란 것입니다. 그 아픔 후에는 다시 온몸에 생기가 임하는 것을 느낍니다. 핸드폰 약이 다 소모되면 다시 충전하듯이 잠은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시키는 시간입니다. 잠을 줄여야 성공하지 않고 잠은 적절히 자고 자투리 시간을 줄여야 성공합니다.
시편 127편 2절을 보면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잠은 하나님의 사랑의 증표입니다. 잠을 자지 못하면 생각이 복잡해지고 생각이 복잡한 사람을 통해 세상도 복잡해집니다. 반면에 잠을 잘 자고 열심히 일하면 다시 잠도 잘 오고 생각은 단순해지고 일의 열정은 커집니다. 그런 사람을 통해 세상도 맑아지고 환해집니다. 주일성수를 기본으로 한 상태에서 잘 먹고 잘 쉬고 잘 자는 안식의 삶은 낙심을 이기게 하고 재충전과 창조적인 삶을 위해 꼭 필요합니다.
3. 서로 격려하십시오
엘리야는 브엘세바까지 도망친 후 다시 사환까지 놔두고 홀로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사람이 낙심에 빠지면 사람을 멀리하고 혼자 있고 싶습니다. 사람 만나는 것이 싫을 때는 크게 낙심했을 때입니다. 그때 진실한 친구가 옆에 있어주고 격려해주면 큰 힘이 됩니다. 본문에서 낙심한 엘리야를 일으킨 것은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였습니다. 힘들어 낙심될 때 누군가 자신을 붙잡아 주는 손길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낙심했을 때 누군가의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지만 사실상 그때는 위로자가 더 없습니다. 그런 현실이 사람을 더 낙담시킵니다. 사람은 성공하고 잘되면 찾아와서 친구하자고 하고 동업하자고 합니다. 그때는 은행에서 돈도 빌려가라고 합니다. 반면에 힘이 없고 실패하면 그때는 위로와 격려 대신에 핀잔과 비판과 외면의 고통이 더 심해집니다.
교회도 성장할 때는 충성하겠다는 사람들로 넘치지만 침체될 때는 여러 이유를 대면서 떠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처럼 어려울 때 누군가의 격려가 없어도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오. 자신은 그렇게 살지 않으면 됩니다. 부족하고 연약하고 실패했어도 누군가를 힘써 격려해주면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와 격려가 자신에게도 넘치게 됩니다. 결국 남을 격려하는 것은 자신을 격려하는 것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2가지 큰 사역 비전을 가지고 꾸준히 준비해왔습니다. 하나는 ‘문서선교 사역’과 또 하나는 ‘네트영어 사역’입니다. 두 사역 모두 접해본 사람들은 대부분 감동과 감탄을 했지만 눈에 보이는 열매가 단기간에는 크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찬란한 비전은 희미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도 끊임없이 마음속에 위로의 음성을 주셨습니다. “이 목사야! 계속 기도하고 준비하라. 반드시 네 때가 온다.” 몇몇 후원자들은 동역자처럼 후원해주었습니다. 잊지 못할 소중한 후원자들입니다.
한 노 목사님은 이렇게 위로해주었습니다. “이 목사님! 보이는 열매가 작아도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물은 90도나 95도가 되어도 끓지 않다가 마침내 100도가 되면 끓습니다.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그 말이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그때 다짐했습니다. “그래! 90도나 95도의 시점에 포기하지 말고 100도가 될 때까지 인내하자!” 마침내 때가 되어 <온새기(온라인 새벽기도)> 사역이 시작되었고 그 사역이 <월새기(월간 새벽기도)> 사역으로 발전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새로운 동역후원자를 붙여주시면 <월새기 영어판> 사역도 시작될 수 있을 줄 믿습니다.
환경이 힘들 때 더욱 서로 위로하고 격려해주어야 사명을 이룰 힘을 얻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위로가 없어도 너무 실망하지 마십시오. 가장 든든한 위로자이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우리로부터 하나님의 선한 손길을 철수시킨 적이 없습니다. 그 하나님의 도움을 의지하고 힘들 때마다 기도하십시오. “주님! 제 손을 붙잡고 가소서!” 지금 상황이 비참해도 하나님께 붙들리면 반드시 최상의 때가 찾아올 것입니다.
< 제 손을 붙잡고 가소서! >
1700년대 영국이 심히 타락했을 때 옥스퍼드 대학 기숙사에 키가 160센티도 안 되는 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새벽 4시에 일어나 따로 조용한 곳에서 말씀을 보고 기도했습니다. 매일 그렇게 하자 그 숫자가 점차 늘면서 그 모임은 ‘홀리 클럽(The Holy Club, 거룩한 공동체)’이라고 불렸습니다.
그 모임이 몇 년 동안 끊임없이 계속되자 사람들은 그 모임을 처음 시작하고 이끌었던 그 작은 청년을 향해 메쏘디스트(Methodist)란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직역하면 ‘방법주의자’란 뜻이고 자연스럽게 표현하면 ‘원칙주의자’란 뜻입니다. 그 청년은 하나님 앞에서 좋은 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을 준수하며 살았습니다. 그가 감리교단의 창시자 요한 웨슬레입니다. 요한 웨슬레는 당시의 조롱 섞인 메쏘디스트(감리교인)란 명칭을 지금처럼 명예로운 명칭으로 바꿔버렸습니다. 그것이 인물 한 사람의 힘입니다.
어느 날, 웨슬레가 찬란한 선교 비전을 가지고 미국의 인디안 선교를 떠났습니다. 그러나 3년 동안 거의 열매도 없이 귀향했습니다. 원칙만 가지고는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패잔병처럼 지내다가 어느 날, 모라비안 교도의 한 집회에 참석했다가 성령충만의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한번 했다 하면 꾸준히 밀어붙이는 원칙주의자가 성령충만하게 되자 그는 불같은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결국 그를 통해 놀라운 회개의 바람이 불어 술집과 매춘부가 사라지고 영국이 변화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면서 지금의 감리교단이 생겼습니다.
배움이 부족하거나 물질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고 죄를 멀리하고 성결하게 살려고 하고 사명을 포기하지 않으면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또한 큰 어려움 속에서도 오히려 큰 능력을 얻을 수 있고 큰 고난 중에도 오히려 큰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도에게 가장 큰 문제는 가난의 문제나 질병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떠나 성령 충만한 삶을 잃어버린 문제입니다. 시련 중에도 “주님! 제 손을 붙잡고 가소서!”라고 기도하며 포기하지 않고 나아감으로 크게 쓰임 받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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