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목사님 고백입니다. 어렸을 때, 그분이 살던 동네에 가끔 미친 여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러면 동네 꼬마들이 다 몰려나와 그 미친 여자에게 돌을 던지거나 치마를 들쳤습니다. 어느 날, 그분도 같이 그 여자를 놀리다가 집으로 들어와 엄마에게 외쳤습니다. “엄마, 우리 동네에 미친 여자가 왔어요.”
그때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얘야, 오늘 이모가 오기로 했는데 지금 왔나보다. 가서 데리고 와라.” 이모가 있다는 말은 처음 듣는 말이었고, 그 미친 여자를 이모라고 하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너무 근엄하게 말했습니다. 할 수 없이 그는 그 여자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저기요. 엄마가 빨리 집으로 오래요!”
그 이모라는 여자가 집에 오자 어머니는 물을 데워 목욕을 시키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힌 후에 따뜻한 밥을 지어 먹였습니다. 그는 그 여자가 진짜 이모가 아님을 알았지만 그 이후에는 어머니 때문에 그 여자가 다시 동네에 나타나도 감히 놀려대지 못했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보며 자신도 사랑과 섬김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절대 진리’의 기준으로 볼 때, 모든 사람은 정상이 아닙니다. 다 치우쳤고, 다 미쳤고, 다 시궁창 냄새가 납니다. 그런 치우친 존재가 ‘절대 사랑’ 안에서 똑바른 존재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그 절대 사랑을 아는 사람은 어떤 사람도 비천하거나 열등하게 보지 않고, 연약한 사람을 오히려 ‘나의 이모’로 생각하며 섬겨줍니다. 약한 사람에게 베푸는 따뜻한 차 한 잔의 친절은 행복의 제일 요소이고 절대 요소입니다.
강자에게 잘 보이려고 하면 ‘외강내유’한 사람이 되지만 약자에게 잘 보이려고 하면 ‘외유내강’한 사람이 됩니다. 강자의 눈에 들면 ‘권력과 재리’가 다가오지만 약자의 눈에 들면 ‘심력과 진리’가 다가옵니다. 강자를 살피면 ‘눈치’가 늘어나고, 눈치는 ‘눈총’을 부릅니다. 반면에 약자를 살피면 ‘염치’가 늘어나고, 염치는 ‘은총’을 부릅니다.
작은 성공은 강자와 약자의 구별을 즐기는 삶이고, 큰 성공은 강자와 약자의 구별을 철폐하는 삶입니다. 소자를 실족시키는 것은 실족으로 가는 길이고, 소자를 만족시키는 것은 만족으로 가는 길입니다. 세상에서 크려면 강자에게 아부해야 하지만 영적으로 크려면 약자에게 친절해야 합니다. 능력을 키우기보다 먼저 마음을 키우십시오. 능력이 커지면 성공하게 되지만 마음이 커지면 행복하게 됩니다.
제자들이 “누가 크냐?”고 다툴 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다.” 약자를 영접하는 마음은 하나님을 영접하는 마음입니다. 없는 사람을 무시할수록 행복은 그만큼 깎이고, 없는 사람을 섬겨줄수록 행복은 그만큼 쌓입니다. “약자를 어떤 마음으로 대하느냐?”는 것은 마음의 크기와 앞날의 행복을 가늠하는 천국 바로미터입니다. (061201)
ⓒ 글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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