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모험입니다. 요단강 물이 넘칠 때 요단강을 걸어서 건넌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단강에 들어서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의 발이 강물에 닿자마자 요단강은 갈라졌습니다(수 3장). 믿음의 모험이 필요합니다. 삶의 감동을 위해, 어려운 이웃을 위해, 더 가치 있는 일을 위해 내 것을 포기할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내 것을 포기하면 조금 더 불편할 것 같고, 조금 더 불안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기주의 껍질을 깨는 삶이 잘못되는 법은 한번도 없습니다. 내가 내 것을 포기할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더 좋은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왜 우리는 선교해야 합니까? 이기주의의 껍질을 깨는 시금석이 되기 때문입니다. 왜 교회가 선교에 힘써야 합니까? 교회가 성도들에게 이기주의의 껍질을 깨라고 하면서 교회 자신은 이기주의의 껍질을 깨지 못해 혼자만 배를 불린다면 그것은 심각한 모순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교회는 성전 이전을 하면서 돈이 많이 드니까 아예 몇 년간 선교를 포기합니다. 그 정도로 허덕이는 비참한 모습을 보인다면 그런 상황에서의 성전 이전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닐 것입니다. 자기 교회의 필요에는 혹시 둔감할지라도 선교사들의 필요에는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건축헌금은 못해도 선교헌금은 꼭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선교에는 '자기'라는 틀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교인들은 '자기'라는 이기주의의 틀도 깨야 하지만 '자기 교회'라는 이기주의의 틀도 깰 수 있어야 합니다. 그 틀을 깨지 않는 교회와 성도는 결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내 소유를 펼 줄 알아야 합니다. 쥐는 삶보다 펴는 삶이 복된 삶입니다. 우리는 모두 선교지로 가라고 부름 받지는 않았지만 선교하라고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선교와 구제를 위해서 힘써 내 믿음의 손길을 펼 때 하나님은 반드시 신기한 방법으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실 것입니다. 믿음은 '불확실한 것'을 위해 '확실한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거룩한 하늘의 가치'를 위해 '내 손에 쥐고 있는 보이는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의문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 의문이 있어도 기쁨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 글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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