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0년 전 인천에서 목회할 때, J라는 여자 집사님이 주일저녁예배에 처음 참석했습니다. 다리가 불편한 그분의 모습에서 그분의 정신적 상처를 느낄 수 있었는데, 대화를 해 보니 그분의 진정한 상처는 ‘다리를 저는 것으로 인한 상처’가 아니라‘교회에서 받은 상처’였습니다. 얼마 후 그분은 교회에 등록했고, 나는 그분의 상처를 싸매려고 노력했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교회로부터 받은 상처로 인해‘교회를 사랑하고 싶은 허전한 마음’과 ‘교회사랑을 기피하는 알레르기 반응’이 그분의 마음에 상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그분은 안정을 되찾고 저녁예배의 피아노 반주까지 맡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부터 이 집사님이 예배를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후 그분은 이런 말을 남기고 교회를 떠났습니다. “목사님! 죄송합니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 어쩔 수 없이 교회를 떠나야 합니다.” 왜 떠나는지 궁금했는데, 얼마 후 한분을 통해 그 사유를 들었습니다. 교회를 떠나기 얼마 전, 그 전에 다니던 교회의 전도사가 이런 얘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J 집사! 다시 우리 교회로 오라! 이제 두고 봐! 다시 우리 교회로 돌아오지 않으면 5년 이내에 남편이나 아이에게 큰 일이 생길거야!” 그 얘기를 듣고 불안에 떨다가 조명가게를 하는 남편이 운전을 하다가 조그만 접촉사고를 내자, 그 전도사의 말을 상기하며 더욱 불안에 시달렸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 집사님은 이전에 다니던 교회로 되돌아갔는데, 그 교회에서 또 상처받아 6개월 만에 교회를 옮길 목적으로 멀리 이사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 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약 2:19) 여기서 ‘잘하는 도다’라는 말은 칭찬이 아닙니다. 믿는다 하면서 믿음의 행동이 없는 사람의 어리석음을 질책하는 말입니다. 믿으면 담대함이 생겨야지, 믿는다고 하면서 왜 귀신처럼 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에 대해 어떤 목회자는 ‘참 믿음’이 아니라는 의미에서‘귀신믿음’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귀신믿음’을 가진 사람은 조그만 문제조차 ‘자기정죄’의 도구로 사용합니다. 그래서 어려움을 만나면 항상 이런 연상을 합니다. “내가 그때 이렇게 행동해 하나님을 섭섭하게 해서 그래!” 솔직히 얘기하면 사람이 하나님을 섭섭하게 한 것이 ‘그때 그것 뿐’일까요? 만약 하나님께서 섭섭한 대로 사람을 다스린다면 한분도 성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귀신믿음을 버려야 합니다. 귀신믿음은 우리를 겁나게 만들고, 결국 우리를 속박에 빠뜨립니다. 귀신믿음은 사이비 종교인들이 사람을 얽어매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불행한 사건을 ‘과거의 그 행동’과 연관시키는 습성을 버리십시오. 대신에 선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가슴으로 받아들이십시오. ⓒ 이한규목사(분당 샛별교회)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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