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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곽선희 목사 설교

곽선희 설교중에 쓰인예화 모음 74편

by 【고동엽】 2022.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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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선희 목사 설교중에 쓰인 예화 모음 74편



  ▶사람은 대개 다 소원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사실 소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소원이 있는 사람과 소원이 없는 사람은 얼굴부터, 눈동자부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소원이 있는 사람은 기도도 열심히 합니다.
  어떤 사람은 '건강'이 소원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마음의 평강'이 소원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행복한 가정'이 소원일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좋은 직장'이 소원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친구'를 갖는 것이 소원일 수 있고, 또한 '풍부한 물질', '열심 있는 신앙', '명예'를 가지는 것이 소원인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큰 믿음'을 달라는 소원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소원인줄 믿습니다. 시37:4절에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할/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소원이 막연한 소원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소원을 가지되 우리는 불타는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무에서 유를 만들고, 남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내고, 불가능에 도전하는 창조적인 믿음을 가지고 소원을 성취해 나가야 합니다.
  세종대왕도 불타는 소원이 있었습니다. 백성들이 배울 만한 우리 글이 없는 것을 보시고 쉬운 우리 글을 만들어야겠다는 간절한 소원을 가지셨습니다. 그래서 만드신 것이 바로 한글입니다.
  백범 김구 선생도 불타는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일제의 침략 앞에 날로 기울어지는 조국의 비운을 보고 어떻게 해서든지 나라의 독립을 쟁취하고 말겠다는 간절한 소원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 간절한 소원이 그로 하여금 위대한 애국자가 되게 했습니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도 불타는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19세의 소년이었을 때, 노예시장에서 쇠사슬에 묶여 마치 짐승처럼 이리 팔리고 저리 팔리는 흑인들을 보고 노예제도를 쳐부수고야 말겠다는 간절한 소원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훗날 법을 공부하고 대통령이 되어, 당시로서는 불가능해 보였던 노예해방의 역사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 미국 '데이튼'에 목사 아들 둘이 있었습니다. 라이트 형제는 자전거포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바쁠 때에는 같이 일하였지만 한가할 때에는 앞에 잔디 언덕에 누워 쉬곤 하였습니다. 그 때 독수리가 날라 가고, 새들이 날라 갔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사람도 공중을 날라 갈 수가 없을까? 하늘을 날고 싶다' 이런 소원이 생겼습니다.
  형제는 하늘을 날고 싶다는 소원을 소명으로 받아 드렸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소원을 주신 것은 '비행기를 만들라는 소명이다'라고 스스로 선포했습니다. 그래서 둘은 결혼도 포기하고 드디어 비행기를 만들었습니다.
  최초 비행기는 1903년 25초 날다가 떨어졌습니다. 비행기를 만들 때 사람들은 비난만 했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하늘을 날 수 있냐?'는 비난입니다. 그러나 막상 비행기가 날자 그들이 축하 파티를 열어 주면서 사회자가 말하기를 '이 분은 인류 역사에 쾌거를 이룬 주인공입니다. 연설을 부탁합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으면서 많은 사람 앞에 선 라이트는 얼굴이 빨게 지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새 중에서 제일 수다스러운 앵무새는 날라 다니는 재주가 없습니다. 그런데 잘 날라 다니는 새는 말하는 재주가 없지요. 나는 날라 다니는 비행기 만드는 데는 세계 최고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말하는 재주는 없습니다. 이것으로 제 연설을 마칩니다.'
 
 
 
 

  ▶재봉틀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싱이라고 하는 소년이 자기 어머니가 바느질하느라고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어머니로 하여금 바느질을 편리하게 할 수 있게 하여드릴까? 어머니 바느질을 돕고 싶은 소원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미싱은 '그 소원을 자기에게 바느질하는 기계를 만들라고 하는 소명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연구에 몰두하다가 드디어 완성했습니다. 그의 이름을 따서 미싱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소원은 소명이 되어야 합니다.



 
 
 



  ▶소원을 소명으로 받아 드리고 감당하려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소명을 이룰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십니다. '내가 목표를 정하면 목표는 나를 끌어 준다.' 성공 동기 연구원(SMI) '폴 제이 마이어'의 말입니다.
  '무하마트 간디'가 대영제국과 대결하여 승리한 비결은 무엇인가? 대영 제국은 막대한 돈이 있었으나 간디는 무일푼이었습니다. 대영제국은 막강한 무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간디는 총 한 자루 없었습니다. 대영제국은 철저한 군사 조직을 가지고 있었지만 간디는 군대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간디가 이겼습니다.
  그 이유가 하나있습니다. 강렬한 소원입니다. 대영제국을 이겨야 한다는 소원이 가장 큰 무기였습니다. 후에 간디가 말했습니다. '목표의 힘은 군사력의 힘보다 강한 것입니다. 조직적인 정신력은 조적적인 군사력보다 위대한 것입니다' 
 
 
 

  ▶까마귀는 호도를 잘 먹는 새입니다. 다른 새들은 호두 먹기를 포기한 새들입니다. 딱딱한 호두는 사람도 까기가 힘듭니다. 까마귀는 호두를 따서 입에 물고 바위 높은 곳으로 올라가 떨어뜨립니다. 호두가 깨어지면 호도 알맹이를 먹기만 하면 됩니다. 만일 안 까지면 다시 하늘로 치솟습니다. 그리고 다시 떨어뜨립니다. 깨질 때까지 그렇게 합니다. 아주 간단한 아이디어입니다. 다른 새들은 소원이 없기 때문에 이런 방법을 생각해 내지 못 했지만, 그러나 까마귀는 호두를 먹고 싶은 소원 때문에 이런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할/
  소원은 능력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잘 지어 하나님께 봉헌하여 드리겠다는 소원은 그를 가장 지혜 있는 왕, 성전을 건축할 수 있는 능력의 왕으로 하나님이 축복하셨습니다.


 
 
 

  ▶어느 등산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산이 좋았더니 어느 날 산 정상에 내가 있었다.' 그렇습니다. 강렬하게 소원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꿈꾸고 있으면 현실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그 길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궁중에서 40년을 살았습니다. 아들 낳으면 다 죽여야 할 때 모세 혼자 은총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살아서 종살이하는 운명이 아니라 궁중에 들어가서 사는 축복 중에 축복, 은총 중에 은총을 받았습니다. 금상첨화였습니다.
  그러나 40살이 되었을 때 갑자기 소원이 생겼습니다. 궁중보다 자기 백성들과 함께 고난 받으면서 종살이하고 싶다는 소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민족을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하여야겠다는 소원이었습니다. 행7:23절에 그 당시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이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 
  모세는 궁중을 뛰쳐나갔습니다. 그리고 소원을 따라 살기 시작했습니다. 소원을 소명을 받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살려 주시고 궁중에서 40년 살게 하신 섭리를 깨달았습니다. 소원이 소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같이 해 주셨습니다. 언제나 모세를 지켜 주시고 수많은 기적으로 함께 하시고 놀라운 은총을 주셨습니다.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였습니다. 소원을 붙잡은 지 80년 만에 소원을 성취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느보산 꼭대기에서 가나안을 드디어 바라보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소원은 소명이 됩니다. 소원은 능력이 됩니다. 소원은 성취가 됩니다.



  
 
 

  ▶불의의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자른 사람에게 찾아가서 손을 붙들고 '그만하면 다행이라고' 위로했더니 '너도 다리 한번 짤라 볼래' 그르더랍니다. 그러나 두 다리 없는 사람이 찾아와서 위로했더니 함께 손을 붙들며 눈물을 흘리면서 위로를 받더랍니다.
  그렇습니다. 고통을 겪어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고통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눈물의 밥을 먹어 보지 못한 사람은 가난이 얼마나 뼈저린지를 모릅니다.



  

 
 

  ▶가치 있는 일에 열심을 내자
  한 영국 귀족이 부모로부터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 그 귀족은 그 돈을 가지고 무엇이든지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많은 돈을 점박이 쥐를 만드는 일에 투자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점박이 쥐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어느 면에서 보더라도 무익한 일이었습니다. 귀족은 수많은 돈과 시간과 노력과 재능을 점박이 쥐를 위해 바쳤지만 점박이 쥐는 귀족이나 인류에게 아무런 유익도 가져다 주지 않았습니다. 우리들도 자신의 만족만을 위해 일하다 보면 귀족과 같은 어리석음을 범할 때가 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을 내고 있습니까? 당신이 열심히 내고 계신 일은 진정 가치 있는 일입니까?


 
 



  ▶칭찬은 사람을 변화 시킨다.
  어느 택시 회사에 성미가 무척 까다로워서 직장 전체의 분위기를 우울하게 만드는 한 수리공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사 과장이 그 사람의 해고 문제를 사장에게 정식으로 건의했습니다.
  그러나 사장은 그 사람이 얼마나 완벽하게 일을 해내고 있는지에 대해 칭찬하면서 그 일을 없었던 것으로 하자고 말했습니다. 사장의 그 이야기는 머지 않아 수리공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사람은 유능하고 유머 있는 사람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칭찬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친절은 가장 큰 무기이다.
  어느 내무반에 한 믿음 좋은 병사가 있었는데 그 병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늘 놀림을 당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한 상사가 병사의 오른 뺨을 군화로 힘껏 후려치고는 '너희 기독교에서는 오른 뺨을 때리면 왼쪽 뺨도 내민다면서'라고 조롱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다음날 아침, 상사는 자신의 군화가 반들반들하게 닦여져 있는 걸 보았습니다. 상사는 누가 그랬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의 주변에도 우리를 괴롭히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 쓸데없는 감정 소비를 하기보다는 친절을 베푸십시오. 친절 이상으로 힘있는 무기는 없습니다.

 

 
 

  ▶부지런하자
  어느 부잣집에 머슴이 필요하다는 소문을 듣고 어떤 사람이 자기를 써 달라고 부탁하러 왔습니다. 그때 주인은 '너는 무얼 가장 잘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잠자는 걸 가장 잘한다고 대답했습니다.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마땅한 사람도 없고 해서 주인은 그 사람을 머슴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습니다. 그 날은 유달리 천둥과 번개가 심한 밤이었습니다.
  심란해진 주인은 집안 구석구석 비가 새는 데는 없나 살피다가 머슴이 자기 방에서 코를 골며 자는 것을 보았습니다. 천둥 번개가 요란했지만 머슴은 낮 동안 힘을 다해 모든 일을 해 놓았기 때문에 피곤해서 깊이 잠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제야 주인은 잠자는 걸 제일 잘한다고 한 머슴의 말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솝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개와 당나귀가 한 집에 살고 있었는데, 유독 주인은 개만 좋아했습니다. 당나귀는 생각하기를, '왜 주인은 개만 좋아할까?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렇게 곰곰이 생각하던 차에, 어느 날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개는 주인이 밖에서 돌아오면, 꼬리를 치고 마구 뛰면서 주인을 반기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저거로구나' 당나귀는 이렇게 생각하고 다음날 주인이 밖에서 돌아오자, 우리를 뛰어넘어서 주인 앞에서 팔짝팔짝 뛰면서 소리를 지르고 주인의 주변을 뱅뱅 돌면서 재 깐에 재롱을 떨고 있었습니다.
  그 장면을 본 주인은, 당나귀를 칭찬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당나귀에게 화를 벌컥 내면서 기둥으로 끌고 가더니, 밧줄로 꽁꽁 묶어 놓고 회초리로 마구 때렸다는 이야깁니다.
  이 이솝우화는,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고 있습니까? 자신의 본분을 바로 깨닫지 못하면, 어리석은 당나귀와 같다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당나귀는 자신의 본문을 망각하고 주인 앞에서 날뛰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지켜야 할 본분이 있습니다. 자신이 어떠한 위치에 놓여 있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바로 깨닫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때, 그 직분을 맡겨준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엉뚱한 일에 정신이 팔려서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는 자는, 마치 이솝우화에 나오는 당나귀와도 같이, 칭찬은커녕 도리어 화를 당하게 됩니다.

 

  ▶맹사성은 19살에 장원 급제하여 20살에 파주 군수가 되었습니다. 당당하고 자만심이 하늘을 찌를 것 같았습니다. 어느 날 그는 도를 닦는 도인을 찾아가서 도도하게 물었습니다.
  '내가 파주를 다스릴 때 가져야 할 마음을 가르쳐 주십시오'
  도인은 조용히 말했습니다. '선행을 많이 베푸십시오. 그러면 사람들이 존경할 것입니다.'
  맹사성이 말했습니다. '그런 평범한 이야기를 들으려고 이렇게 먼 길을 온 것은 아닌 데요' 도인이 말했습니다. '그것 하나뿐입니다.' 맹사성이 일어나려고 하자 도인이 말했습니다.
  '차나 한 잔 하시고 가시지요' 그리고 잔을 맹사성 앞에 놓고 도인은 차를 부었습니다. 그런데 넘쳐도 자꾸만 부었습니다.
  '왜 잔이 넘치는 데도 자꾸만 부십니까?'
  도인은 대꾸도 하지 않고 자꾸만 부었습니다. 차고 넘쳐서 방바닥이 흥건하게 되었습니다. 도인은 한 주전자를 다 붓고 나서 말했습니다.
  '넘치면 문제입니다.'
  맹사성이 일어나서 가려고 하다가 문지방에 머리를 부딪쳤습니다. 도인이 말했습니다.
  '고개를 숙이면 안 부딪칩니다.' 그리고 또 말했습니다. '선행을 많이 하십시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보면 모두 괴짜들입니다.
  천국과 지옥을 보지 않고 믿고 있습니다.
  천사와 악마를 보지 않고 알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확실하게 믿고 온 생애를 다 하여 믿고 있습니다. 2천년 전에 이스라엘에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알고 생명을 바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 우리는 괴짜 믿음입니다. 보지 않고 다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가면 J. Penny 백화점이 여기 저기 눈에 뜨입니다. 이 백화점을 만든 분이 바로 제이 페니입니다. 사업을 하였습니다. 있는 힘을 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4천 만 불 그러니까 450억 원 가량 부도를 내고 파산하였습니다. 그는 심각한 고민을 하였습니다.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나? 나는 이제 실패의 인생 길을 걸어가게 된 것인가?'
  기도 중에 깨달음이 왔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하나님 없이 살아 왔다. 내 힘만 믿고 살아 왔다. 이제는 내 힘으로 안 되는 것을 알았으니 하나님을 의지하자'
  그리고 남은 재산을 모두 정리하였습니다. 플로리다 휴양지에 은퇴하시는 목사님들 주택 2천 채를 지어 바쳤습니다. 원로 목사님들이 와서 살면서 페니를 위하여 매일 기도하여 주었습니다. 그 후 놀라운 축복이 임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미국 전역에 4천군데 백화점을 지었습니다. 놀라운 축복입니다.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 한국인 교포 권사님 이야기입니다. 아들이 한국에서 최전방 부대장이었습니다. 6.25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권사님 아들 부대가 북한으로 진군하였습니다. 북한군과 중공군에 완전 포위되었습니다. 전멸 당할 위기였습니다. 식량도 떨어지고 보급품도 중단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끝장이었습니다. 캄캄한 밤이 되었습니다.
  부대장과 군사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적군에게 포로로 잡혀가기 보다 자폭하자고 하는 군사가 있었습니다. 모두가 난감하였습니다. 이 때 권사님의 아들 부대장이 앞으로 나와서 심각하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제 마지막 방법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십시다.'
  그리고 앞에서 부대장이 기도하였습니다. '어머니의 하나님! 우리 모두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죽음의 골짜기에 있는 우리를 살려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는 데 앞에 어머니가 나타나서 말했습니다.
  '아들아! 나를 따라 오너라'
  부대장은 병사들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하고 어머니를 따나 갔습니다. 한참을 가는 데 먼 동이 트고 있었습니다. 완전히 포위망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모두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동안 앞서 가던 어머니 모습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 시간이 바로 어머니가 하나님께 피눈물나는 기도를 하는 중이었습니다.
 
 
 


  ▶어느 조그만 교회에서 일어난 작은 사건입니다. 찬양대원들이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찬양대원들이 찬양 연습을 하다가 잠깐 쉬고 있었습니다. 어린아이가 와서 지휘자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저도 찬양대에 넣어 주세요'
  지휘자는 어이가 없어서 타이르며 말했습니다.
  '얘야! 찬양대는 어른만 하는 것이란다. 어린아이는 받아 드릴 수 없어. 커서 어른이 되면 오너라'
  그러나 어린아이가 말했습니다. '지휘자 님! 주님이 저를 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왔어요'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왔다는 말에 지휘자는 감동이 되어서 찬양대에서 찬양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꼬마 하나가 어린들 틈에 섞여서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이 어린아이가 커서 종교 개혁을 일으켰습니다. 마르틴 루터 이야기입니다.
 
 
 


  ▶좋은 곳은 경쟁이 심하지만 낮은 곳에는 경쟁자가 없습니다.
  좋은 대학, 좋은 과일수록 경쟁률이 높습니다. 서울대 공대, 상대, 법대, 의대 경쟁률은 바늘구멍입니다.
  요즈음 공무원 시험도 수백 대 일입니다.
  심지어 미화원 경쟁률도 200대 1 정도로 올랐다고 합니다. 좋은 곳일수록, 돈을 많이 받는 곳일수록 경쟁률이 천정부지입니다. 그러나 낮은 곳에는 경쟁자가 없습니다.
 
 
 


  ▶뉴욕 아스토리아 교회에서 부흥회를 할 때 만난 인상깊은 장로님이 한 분 있습니다.
  장로님은 72살에 결심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 데 하나님 앞에 가서 무슨 말씀을 드리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가를 곰곰이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생각난 것이 교회 화장실 청소였습니다. 장로님은 매 주 월요일이면 교회에 나와 화장실 청소를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갈 때까지 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지금 80세입니다. 만 8년을 한 주도 결석하지 않고 꾸준히 한다는 것입니다. 그 시간이 일주일 모든 시간 중에 가장 즐거운 시간이란 고백하였습니다. 청소하는 일에는 경쟁자가 없습니다. 낮은 곳에는 경쟁이 없습니다.
 
 
 


  ▶미국에서 이런 사람이 표창을 받아 화제거리입니다.
  맨해튼 플라자호텔에서 수위로 53년을 일한 조셉 조렌티니가 그 주인공입니다. 그는 호텔 수위로 일하면서 드나드는 사람들의 짐을 들어 주고 안내하여 주고 청소하는 일에 53년을 바쳤습니다. 은퇴할 때 기자들이 몰려 와서 물었습니다.
  '그토록 단조롭고 추한 일을 그렇게 53년 동안 즐겁게 한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가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지겹다니요? 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람을 만날 때마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처럼 즐겁게 만났지요. 그러면 신나고 즐거웠어요'
  그의 별명은 '닉슨 친구'입니다. 미국에서 '닉슨 친구'라고 하면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닉슨이 대통령 시절 이 호텔에서 며칠 머문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닉슨 대통령은 이 수위를 너무나 좋아하면서 어깨동무를 하고 끼어 안고 인사하고 좋아하였기 때문입니다.
  낮은 곳에는 경쟁이 없습니다.
 
 
 


  ▶헨리 나우웬(Henri Jozef Machiel Nouwen. 1932-1996) 교수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그는 예일 대학교에서 신학적 심리학을 가르친 교수입니다. 1980년에는 하버드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남미 선교를 하였습니다. 1990년에 들어서면서 그는 캐나다 라르쉬 공동체 데이브레이크에 들어가서 장애인들을 돌보면서 살았습니다.
  헨리 나우웬 교수님은 그 좋은 교수 자리를 버리고 장애인들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보람을 느끼며 살았습니다. 그 때 장애인 아담 아네트(Adam Arnett)를 무척 사랑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장애인이 1996년 2월 34살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헨리 나우웬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때 책을 한 권 저술하였습니다. '아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라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을 탈고한 후 그 해 9월 할 일을 다 하였다는 듯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친구들이 나우웬에게 말했습니다.
  '자네는 지금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대학에서 수많은 학생들에게 영감을 주면 큰 일을 할 수 있는 데 왜 이런 곳에 있는가?'
  이 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다. 더 체계적으로 일할 수 있다. 더 큰 섬김으로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과연 주님께 어떻게 살아 드려야 할 것인가 고민하였다.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 주님의 원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였다.'
  대학교수가 되는 길은 경쟁이 심한 길입니다. 그러나 대학 교수를 버리고 장애인을 도우러 가는 길은 경쟁자가 한 명도 없는 길이었습니다.
 
 
 


  ▶이 순신 장군 일대기를 기록한 책이 있습니다. '이순신, 신(臣)은 이미 준비를 마쳤나이다'라는 책입니다.
  일본이 우리를 쳐들어 왔습니다. 원 균 장군의 모함으로 이순신은 감옥에 갔습니다. 이순신이 감옥에 있는 동안 일본과 전투만 하면 대패하여 겨우 12 척 배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 군은 전멸하였습니다. 이순신이 5년 간 양성한 수군이 모두 죽고, 거북선은 바다 속으로 침몰되고 말았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이순신은 8월 18일 일기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통곡함을 참지 못했다.'
  나라가 바람 앞에 등불처럼 꺼져 가고 있었습니다. 이 지경이 되자 순조 왕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이순신을 고문하고 사형시키려던 계획을 포기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순신 장군에게 수군 지휘권을 다시 부여하였습니다. 이 순신 장군은 단 한마디의 불평 없이 바다로 나갔습니다. 나라를 살리겠다는 마음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배가 없으니까 순조는 이렇게 작전 명령을 내렸습니다.
  '바다에서 싸우지 말고 육지에서 싸우라'
  이 때 이 순신 장군이 한 마디 한 것은 역사에 남는 말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신(臣)에게는 12척의 전선(戰船)이 있습니다. 죽을힘을 다해 막아 싸우면 아직도 할 수 있습니다. 전선이야 비록 적지만 신이 죽지 않았으니 적이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바다로 나갔습니다. 바다에서 승리하였습니다. 모세가 가지고 있던 지팡이 하나로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였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있던 배 12척으로 생명을 걸고 싸워 결국 승리하였습니다. 생명을 걸고 나가는 희생의 길에는 경쟁자가 없었습니다.
 
 
 


  ▶지난 주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곽선희 목사님과 함께 식사를 하였습니다. 내 바로 옆에 앉아 게신 곽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대통령과 자주 만나시나요?'
  '청와대 한번도 들어간 적이 없지' '왜요?'
  '내가 청와대 한번 들어가 봐. 나를 만나려고 사람들이 줄을 설 텐데 어떻게 감당하나? 그래서 단 한번도 청와대에 들어간 적이 없지. 다만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로 들어갈 때 한번 이 곳에서 같이 식사하면서 말해주었지?'
  '무슨 말씀을 해 드렸나요?'
  '세 가지를 부탁하였지. 첫 째는 당신과 나는 자수성가하여 고집이 있으나 고집부리지 마시라고 그랬지. 두 번째로는 사람을 자꾸만 갈아치우지 말라고 그랬지. 레이건은 장관들을 한번도 바꾼 적이 없어. 한번 시키고 믿어주면서 격려하였지. 등을 가끔 두드려 주면서 소신껏 하라고 하면서 실수하면 자기가 책임지겠다면 자신감만 주었지. 우리나라 장관은 너무 자주 바뀌어서 일을 할 수가 없어. 셋째로는 기념비를 세우지 말라고 그랬어. 기념비, 업적을 남기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야. 자기를 드러내려는 것이지'
  그렇습니다. 좋은 일에는 경쟁자가 많지만 낮은 곳에는 경쟁자가 없습니다. 낮은 곳, 경쟁자가 없는 곳으로 가서 일하면 하나님은 알아주시고 사랑하여 주십니다. 이런 사람이 진정한 이웃이 됩니다.
 
 
 


  ▶오래 전 유럽 사람들이 아프리카를 여행할 때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원주민들이 해변에서 조개를 캐면서 무엇을 바다에 자꾸 던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것이 무엇일까 하고 가까이 가서 보았더니, 그것은 영롱한 빛을 발하는 진주였습니다.
  진주 양식이 되지 않던 그때에 진주는 최고의 보물이었습니다. 진주의 가치를 알지 못한 미개한 아프리카인들은 그 귀한 보석을 바다에 버렸던 것입니다.
  이 광경을 지켜본 유럽 여행객들이 아이들 장난감이나 인형을 보여주면서 그것을 버리지 말고 모아서 준다면 이 인형이나 장난감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인형이나 장난감 하나로 진주 한 바가지와 바꾸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유럽 여행객들 가운데 거부가 된 사람이 많았다고 합니다.
  훗날 아프리카 학생들이 영국에서 유학을 하면서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분노했다고 합니다. 진주의 가치를 알고 있는 유럽 사람들은 여행 중 우연히 만난 행운이었고, 진주를 알지 못한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그들 눈앞에 있는 고귀한 보물들을 스스로 버렸습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가치를 깨닫는 것과 깨닫지 못함의 차이가 이렇습니다. 오늘날 첨단 과학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면서 진주보다 더 고귀한 것을 깨닫지 못하고 놓쳐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잠3:15-18절에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 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이 지혜의 가치는, 진주에 비길 바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사모하는 그 어떤 것보다도 귀하다고 하셨습니다. 장수가 있고, 부귀가 있으며, 평강과 생명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지혜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깨닫고 섬기는 것을 가리킵니다.

 
 
 

  ▶夫婦關係의 回復
  유대인 어머니들은 결혼을 앞둔 딸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꼭 보낸다.
  '사랑하는 딸아, 네가 남편을 왕처럼 섬긴다면 너는 여왕이 될 것이다. 만약 남편을 돈이나 벌어오는 하인으로 여긴다면 너도 하녀가 될 뿐이다.
  네가 지나친 자존심과 고집으로 남편을 무시하면 그는 폭력으로 너를 다스릴 것이다.
  만일 남편의 친구나 가족이 방문하거든 밝은 표정으로 정성껏 대접하라. 그러면 남편이 너를 소중한 보석으로 여길 것이다.
  항상 가정에 마음을 두고 남편을 공경하라. 그러면 그가 네 머리에 영광의 관(冠)을 씌워 줄 것이다.
  가정을 집으로 비유한다면 가장 기초는 두 사람의 세계관이다. 가정의 기둥은 부부(夫婦)다.
  다음으로 대화와 이해라는 두 개의 창문이 있어야 세상을 바라볼 수가 있다.
  또 보호(保護)라는 울타리와 봉사(奉仕)라는 대문을 잘 사용해야 한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행복하기 위해 많은 수고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행복한 부부는 서로를 격려하지만 불행한 부부는 서로를 공격하고 무시한다.
  이기심과 무관심이 가정의 행복을 앗아간다.
  나이가 들수록 일과 수입은 적지만 노는 일과 소비는 클 것이다.
  자식들을 출가시킨 후 부부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는데 서로를 배려하지 않고는 결단코 행복(幸福)한 인생이 될 수가 없다.
  노년이 되어도 다투는 문제는 대부분 상대가 절실하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데 기인하고 있다.
  사람은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꿈이 있다. 이제 그 소망은 함께 이루어가야 할 인생 목표이기도 하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서로 역할분담을 나누며 협력해 나갈 때 내일은 절망(絶望)이 아닌 날마다 새로운 소망을 안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옮겨온 글-
 
 
 


  ▶예로부터 '부자(富者)'는 실제로는 부러움을 받으면서도 겉으로는 경멸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흥부와 놀부'의 이야기입니다.
  저도 어릴 때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른 사람들도 다 그랬듯이, 흥부의 착한 마음에 감동을 받고 놀부의 못된 심보에 분노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 어느 역사 선생님께서 이 흥부전을 전혀 색다른 각도로 비평을 해 주셨습니다.
  그 이야기에서 흥부가 마음씨 좋은 것은 물론 인정하고 또 본받아야 할 일임에 아무 이의가 있을 수 없지만, 경제적 능력도 없으면서 자식들만 주렁주렁 많이 낳아서 가계를 더 어렵게 만든 것은 가장으로서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고 그 선생님께서 지적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놀부로 말하자면, 이 또한 그 나쁜 성격은 당연히 지탄받아 마땅하지만, 그렇게 능력 없고 게으른 동생이 매일같이 구걸하러 오면 세상의 그 어떤 형이 끝없이 도와줄 수 있겠으며, 같은 의미에서 볼 때 놀부의 아내가 그런 못난 서방님 정신 좀 차리라고 밥주걱으로 뺨 한 대 친 것도 몽둥이로 엉덩이를 두들겨 패는 것보다는 오히려 인간적인 것 아니냐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저는 흥부전에 대한 그 선생님의 '현대적이고도 실용적인 해석'에 꽤 충격을 받았고, '가난한 사람은 착하고 부자는 나쁜 사람'이라는 옛날이야기들의 기본공식에 잠재되어 있는 선입견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었습니다.
  그처럼 '부자는 무조건 나쁘다'라는 선입견은 자본주의와 자유경제체제에 익숙해진 오늘날 사회에서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으며, 그래서 공산주의자들은 바로 이런 일반적인 심리를 부채질하여 대중을 선동함으로써 권력 장악을 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40대가 되면 미모의 평준화가 이루어지고, 50대 되면 지식의 평준화가, 60대가 되면 건강의 평준화가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70대가 되면 재물의 평준화가, 80대가 되면 죽음의 평준화가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늙고 병들고 죽는 이 몸을 가지고는 인생의 행복이나 자랑도 한계가 있습니다. 과연 이렇게 덧없고 헛된 몸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무슨 소망을 주시겠습니까?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아시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 몸을 주셨습니다.
  눅20:34절 이하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새 몸을 입으면 죽을 수도 없는 영원한 몸이 되고, 장가나 시집도 안 가게 됩니다. 그런 영광스러운 몸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좌절할 때마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
  캘리포니아 말리브에 있는 페퍼다 대학교의 졸업식 날이었습니다. 그 날 1백 명의 학생들이 학사학위를 받았는데 대학 졸업자의 평균연령이 40세 가까웠습니다.
  고령의 졸업자 가운데 67세의 할머니가 있었는데 그는 10명의 자녀와 27명의 손자 손녀를
가진 할머니였습니다. 그 할머니가 학사 학위를 받으려고 단상에 올라가자 한 백발의 노인과 여러 사람들이 앉았던 자리에서 환호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 드디어 해내셨군요. 할머니, 잘하셨어요. 드디어 성공하셨어요.'
  졸업식이 끝나고 그 할머니는 자기 목사님을 만나 격정에 못 이겨 눈물을 흘리면서 목사님의 손을 꼭 붙잡고 말했습니다.
  '목사님, 나에게 만약 믿음을 심어 주지 않았더라면, 나의 하나님이 내가 좌절할 때마다 나에게 새 힘을 주시지 않았더라면, 나는 시작하자마자 포기했을 것입니다.'
 
 
 


  ▶인간의 이상형
  신학자 리처드 니버는 인간의 이상형으로 예수를 본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누구 나가 닮고 따라야 할 인생의 정도가 곧 예수라는 것입니다.
  또 그분의 전생에 속에서 두 가지를 본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신을 향한 절대 신앙이며, 또 하나는 인간을 향한 절대 사랑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인간을 사랑하면서 사는 길이 정도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겸허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
  믿음은 靜이 아닌 動입니다. 퇴보가 아닌 전진입니다. 바라는 실상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산 믿음인 것입니다. 믿음은 철저한 자기 부정입니다. 자신을 철저하게 부정하지 않은 이상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자기를 죽이고 자기 부족을 인정하고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을 때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거룩하심이 시인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신뢰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의심 없이 믿는 것입니다.
 
 
 
 


  ▶1952년 7월 4일 아침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해안은 앞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짙은 안개가 덮여 있었습니다. 캘리포니아 해안에서 21마일 떨어진 곳에 '카타리나'라고 하는 작은 섬이 있습니다.
  이 곳은 작은 휴양지입니다. 이 섬에서 34세 된 한 여인이 힘차게 물 속으로 뛰어들어 수영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21마일 밖에 있는 해안을 향해서 헤엄쳐 갔습니다. '플로렌스 채드 윅'이라고 하는 이 여자는 수영선수로서 세계적인 기록을 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21마일 앞에 있는 육지를 향해서 수영을 시작한 것입니다.
  수백만 명이 같은 시간에 이 장면을 흥분된 모습으로 텔레비전을 통해 지켜보았습니다. 가끔 총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것은 모여드는 상어 떼를 쫓기 위해서 총을 쏘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험을 위해서 그녀는 전심전력을 다했지만 가장 어려웠던 것은 뼛속까지 스며드는 차디찬 바닷물이었습니다.
  15시간이 지났습니다. 추위로 인해서 다리가 마비되어서 가끔 경련이 일어나곤 했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결국 포기하겠다는 신호를 뒤따라오는 배에게 보냈습니다. 그러나 배에 타고 있는 어머니와 그를 가르치는 코치는 '힘을 내라, 육지가 앞에 있다, 힘을 내라! 힘을 내라!'라고 외치며 포기하지 말 것을 권유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며 15시간 55분만에 수영을 포기했습니다. 포기하고 나서 보았더니 바로 앞에 육지가 있었습니다. 20마일 반을 헤엄치고 단지 반 마일을 앞에 놓고 포기한 결과가 되었습니다.
  너무나도 애석했습니다. 실패의 원인은 간단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눈앞에 캘리포니아 해변이 전개되고 있는데 안개로 인해 보이지 않자 그만 지쳐서 포기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생각에는 이것이 문제이고 저것이 문제인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눈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요, 약속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요, 약속에 대한 확증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게 됩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데, 충분히 이길 수 있었던 것인데, 충분히 해낼 수 있었을 것인데' 하는 아쉬움이 우리 마음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의사요 심리학자인 폴 투르니에의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고독으로부터의 도피'(Escape from Loneliness)라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현대인의 공통된 시대적인 병이 있다. 그것은 고독이다.'
  옛날 사람보다 우리가 고독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발에 밟힐 만큼 많은데 고독합니다. 여러분, 고독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 자신에 대해서 실망하기 때문입니다. 또 그 다음에는 자기 자신을 누군가에게 주면서 살아야 되는데 아무에게도 나를 줄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내 이야기를 할 수도 없고 내 사정을 말 할만한 사람도 없으며 내가 만날 사람도 없고 내가 마음대로 전화를 걸 만한 그런 대상도 없을 때 이걸 고독이라고 합니다.
  '폴 투르니'에는 현대인의 이러한 고독의 원인은 지나친 경쟁과 비교의식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여러분, 혼자선 고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고독합니다. 거기서 자기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삶이 혼자만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고 합니다. 사람은 세상에 태어날 때 혼자 태어난 것 아닙니다. 혼자서 살아온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혼자라는 극단적 개인주의에 빠져서 고독해 합니다.
  저는(곽선희목사) 결혼주례를 많이 합니다. 1년에 200번 정도 하니까 정말 많이 하는 편입니다. 결혼 주례할 때마다 제가 꼭 강조하는 말 한마디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세상은 너희 둘만 사는 게 아니다. 이걸 잊지 마라'입니다.
  어떻게 신랑신부 둘 뿐입니까? 둘이 행복하면 부모님에게 효도가 됩니다. 또 더 중요한 것은 지금은 신랑신부지만 머지않아 아빠 엄마가 됩니다. 그 다음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됩니다. 이제 나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이 불행할 수도 있고 나로 인해서 저들이 행복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나라고 하는 존재가 어디 나 혼자 일수 있습니까? 결혼과 함께 나의 의미가 얼마나 크게 평가되어야 하는지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 혼자라고 생각하는데 문제가 있는 겁니다. 혼자서 존재하는 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또한 지나친 탐욕이 문제입니다. 분에 넘치는 지배욕, 탐욕, 편협, 소유욕 이런 것들이 지나쳐서 문제가 됩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가진 것을 만족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가진 것에 대해서 만족하질 못합니다. 현재 처지에 대해서 만족해지지 못할 때 고독해지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반항과 비판과 질투입니다. 이러한 것에 자기 자신을 빼앗기면서 인생이 고통스러워 지는 것입니다.
 
 
 

 
  ▶빅터 프랭클린은 '죽음의 수용소'라는 책에서 인간의 가치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가치결정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첫째, 창조적 가치입니다. 뭔가 새로운 것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새로운 것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구태의연하게 살아가는 것은 죽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속해서 창조적 삶을 사는 것, 거기에 삶의 의미가 있습니다.
  둘째, 경험적 가치입니다. 우리는 경험을 넓혀갑니다. 이런 경험도 하고 저런 경험도 하고, 이런 사람도 만나고 저런 사람도 만납니다. 그럴 때마다 성숙해가고 공부하고 배워 가는 것입니다. 경험, 아주 중요합니다. 젊었을 때부터 우리는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을 받으며 경험하고 있습니다.
  셋째, 태도적 가치입니다. 여기서 프랭클린은 이 셋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태도적 가치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어떤 사건을 만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떤 태도로 임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결과가 오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것을 소화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태도적 가치, 이걸 생각해야 합니다.
 
 
 

 
  ▶'타임 히스토리'(Time History)라는 책에 재미있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 고민 없는 사람은 없다. 만일에 고민 없는 사람이 있다면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이미 죽은 사람이고 나머지 하나는 아직도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다.'
  사람은 고민이 있고 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고민과의 대결에서 어떤 태도와 자세로 임하느냐, 얼마나 적극적으로 얼마나 긍정적으로 얼마나 신앙적으로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앤드류 마티스'의 명언이 있습니다.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좋아하는 일만 하는 것이다. 먹고 싶은 것만 먹고 즐기는 일만 하는 것이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하지 마라.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라. 언제나 하고 싶은 일만 해라. 둘째, 네가 하고 있는 일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이라고 생각해라. 오늘 만나는 사람이 제일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라'
  그래서 제가 결혼주례하면서 말했습니다. 바로 이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과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고 싶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혼은 이제부터 두 번째 단계다. 지금까지는 결혼하고 싶은 사람하고 결혼하는 것이지만 항상 이 마음은 아니다. 이제부터는 지금 내 옆에 있는 이 사람이 가장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두 번째 단계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확실히 그렇습니다.
 
 
 


  ▶요새 신문을 보면서 마음이 아플 겁니다. 자살자가 너무 많습니다. 저는 그 타이틀에 놀랐습니다. 자살증가율이 세계 제일이라고 합니다. OECD나라 가운데 말입니다. 물론 자살하는 사람이 우리나라보다 많은 나라가 있습니다.
  헝가리가 10만 명당 24.3명, 일본이 20명, 핀란드가 20명, 그리고 한국이 18명입니다. 그러나 자살증가율로 볼 때는 세계 제일입니다. 이대로 나가면 머지않아 정말 세계 제일의 자살국가가 될 것 같습니다.
  왜 이러는 것입니까? 자기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자살을 사치라고 합니다. 가장 이기적이고 가장 사치하고 가장 멍청하고 가장 큰 죄가 자살입니다.
  여러분, 잃어버린 과거가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는 잃어버린 과거는 없습니다. 실패한 사건이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는 버려진 실패가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룹니다. 단 조용하게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정한 말에는 꽃이 핀다.
  '잘했다, 고맙다, 예쁘구나, 아름답다, 좋아한다, 사랑한다, 보고 싶다, 기다린다. 믿는다, 기대한다, 반갑구나, 건강해라.'
  내 인생에 도움이 될 말은 의외로 소박합니다.
  너무 흔해서 인사치레가 되기 쉽지만 진심을 담은 말은 가슴으로 느껴지는 법입니다.
  '괜찮다, 잘될 거야, 힘내, 다시 꽃핀다. 걱정 마라,'
  위로의 말은 칭찬 받는 아이처럼 금새 가지를 치고 조그맣게 잎새를 틔웁니다.
  그런 말, 희망의 말, 초록의 말을 건 내세요.
  누군가의 가슴속에 하루 종일 꽃이 피어납니다.
  당신은 그의 기분 좋은 정원사가 되는 것입니다. -좋은 글 중에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종 차별로 악명 높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인종 차별이 심했기 때문에 흑인과 백인이 함께 예배를 드리지 않고 별도로 예배를 드립니다.
  '성시온교회'(Holy Church of Zion)라는 흑인교회에서는 고난주간의 성만찬을 행하기에 앞서 세족 식을 베풀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었듯이 서로 발을 씻어 주며 예수의 겸손을 배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세족 식을 행하는 흑인교회에 '올리브'라고 하는 백인 대법원장이 이곳을 혼자 방문했습니다. 세족식 시간이 되자, 그는 마르다라는 흑인 여성을 불러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정성을 다해서 발을 씻어 주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라 숨을 죽이고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백인인 대법원장이 흑인의 발을 씻어 준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상하기도 어려운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발을 다 씻어 준 올리브 대법원장이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 사람은 내 집에 노예로 있는 사람입니다. 한평생 우리 집 아이들의 발을 수백 번도 더 씻어 주었습니다. 그걸 보는 내 마음은 늘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오늘 내가 우리 집 아이들의 발을 씻어 준 바로 이 사람의 발을 씻어 주어야 내 마음이 편안할 것 같아 이렇게 한 것뿐입니다. 뭐 대단한 일을 행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이상하게 여길 것 없습니다.'
  올리브 대법원장은 이 일 때문에 대법원장 직에서 파면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이제야말로 참으로 하나님께 찬양할 자유로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기뻐하며 감사했다고 합니다.
 
 
 


  ▶미국 LA의 UCLA대학 교수 '로저 골드' 박사 는 성인의 심리 발달을 7단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성인이란 16세 이후의 나이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子분해서 발달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16세에서 17세는 '도망 기'라고 하는 시기로, 부모의 통제로부터 혹은 선생님의 간섭으로부터 어떻게든 도망해보려고 하는 반항적인 시기라는 것입니다.
  18세부터 22세는 '탑색 기'라고 합니다. 이 때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놓고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 또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나름대로 탐색하게 됩니다
  23세로부터 28세까지는 '투쟁의 시기'로서 생존을 위하여, 혹은 경쟁자와 무서운 싸움에서이기고 때로는 살아남기 위해서 피나는 싸움을 벌여야 하는 시기라고 말했습니다.
  또 29세로부터 34세는 '회의의 시기'라 고 합니다, 열심히 뛰면서 이제 깊이 생각 을 하게 됩니다. '도대체 어떻게 될 것인가, 내 운명이 어떻게 되나,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자기가 하는 있는 일에 대해서, 자기 미래에 대해서, 주어졌던 가능성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35세로부터 43세까지는 '불안의 시기'라고 합니다. 이 때는 허탈에 빠지고 무언가 초조해지기 시작합니다. '이대로 끝나는 것 아닌가?' 더 발전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보면서 가능성의 제한을 느끼고 위기를 느끼고 허탈에 빠지고 초조해진다는 것입니다.
  44세로부터 50세까지는 '회고의 시기' 라고 합니다. 지난날을 생각해 봅니다.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나,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이렇게 했어야 되는데, 저렇게 했어야 되는데 하고 지난 일을 회고하며 후회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50대를 넘으면서 성숙의 시기'가온 다고 말합니다. 이제 비로소 정착이 되는 시기로 접어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로저 골드' 박사는 사람이란 50대에야 철이 난다고 했습니다. 이제 생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무엇이 중요했던가?' 재산이 아니요 역시 사람이 중요하고, 출세가 아니요 내 진실이 중요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나 생각해보면 마지막에 남는 것은 가족이고 또 가까운 친구일 뿐입니다. 정말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유감스럽게도 그 때부터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소설 가운데 모리스 웨스트라의 '악마의 옹호자'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그 소설의 내용은 한창 일할 나이에 암에 걸린 한 신부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병원에서 불치의 병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의사가 그의 생명은 수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  젊은 신부는 병원에서 나와 공원을 거닐었습니다. 그가 공원에서 지저귀는 아름다운 새소리 아름다운 꽃들, 그리고 장난치는 어린이들의 모습과 벤치에 앉아서 속삭이는 연인들과 지팡이를 집고 휴식을 취하는 노인들을 돌아보고는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나는 죽을 준비가 되어있는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고 공포에 떨게 되었습니다. 그 신부는 시편 23편을 찾아서 읽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명을 선한 목자 되시는 우리 주님께 맡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순간에 그의 마음에 안정과 평화를 되찾게 되었다는 것이 이 소설의 내용입니다.
 
 
 


  ▶미국의 시카고에 사는 한 청년이 만족하는 삶을 살고 싶어서 정신과 의사에게 찾아가서 상담을 했습니다.
  정신과 의사는 '당신은 소위 프로이드에 의하면 superego, ego 등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다 초월해서 도덕적 윤리와 억압된 성적 욕구를 다 벗어나서 마음껏 쾌락을 누리면서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건강해 질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청년은 의사의 말을 듣고 도덕적 계율과 울타리를 벗어나 자신의 원대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청년은 얼마 후에 그 정신과 의사를 다시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자신에게 마음대로 살아보라고 말한 그 의사는 한 주일 전에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중국의 중학생들이 백두산에 등산을 갔다가 한 학생이 실종되었습니다. 실종된 학생을 찾다가 저녁까지 찾지 못하자 학생들은 하산을 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실종된 학생을 찾기 위해 군대가 동원되었지만 그 학생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중학생은 놀랍게도 살아서 집에 가 있었습니다.
  길을 잃은 그 중학생은 물이 흐르는 곳을 따라가면 사람이 살고있는 곳에 이른다는 사실을 알고는 물을 따라 내려왔던 것입니다.
  이 중학생은 물줄기만을 따라서 일주일 동안을 산을 내려오다 사람 사는 동네를 발견하였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이 중학생은 방황하지 않고 물줄기를 따라갔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생명의 샘터, 흐르는 생명의 물줄기를 찾아갈 때에만 방황하지 않고 풍요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희곡 작가 '토마스 울프'가 안개가 뽀얗게 낀 어느 날 아침 산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유 배달을 막 마친 마부가 마차를 세워 놓고 말 배에다가 자기 어깨를 턱 기대고는 말 목을 끌어안고 쓸어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뿌연 안개 속에서 보니까 그 광경 은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었습니다. 아주 아름답다 생각하고 '저 우유배달부에게 무슨 사연이 있을 텐데' 하다가 그냥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자기 비서에게 '오늘 아침에 난 참 아름다운 광경을 보았네. 우유 배달부가 자기 말에 기대앉아 말을 쓰다듬고 있는 모습이 참 아름답더군, 무슨 사연이 있을 것 같은데'라고 얘기했더니 그 비서가 '선생님, 그러면 무슨 사연이 있느냐고 좀 물어보시지 왜 그냥 오셨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희곡 작가는 역시 작가다운 대답을 했습니다, '한 토막의 노동 끝에 고독을 즐기고 있는 그 무게 있는 순간을 어찌 유치한 질문으로 파괴할 수 있겠나?'
  얼마가 멋진 대답입니까? 아침 우유 배달을 다 끝내고 편안한 마음으로 혼자서 고독을 즐기고 있는데 시시한 질문을 해 가지고 남의 마음을 어지럽혀서야되겠습니까?
 
 
 


  ▶저는(곽선희목사) 어느 장로님의 임종을 지켜본 일이 있습니다. 이 장로님은 연세가 많으신 데 상처 한 후 뒤늦게 결혼을 해서 52세에 첫아들을 낳았습니다 이 장로님이 교회를 위해서 수고를 많이 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심장에 탈이 나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됩니다. 눕지도 못하고 앉아서 숨을 몰아쉬며 아주 괴로워합니다. 제가 찾아갔을 때에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던 사업을 내가 떠나면 어떻게 하지요. 하나도 정리된 것이 없고 후계자도 없는데 내가 죽으면 이 많은 사업, 그렇게 아끼던 사업, 이 걸 어떻게 합니까?'
  저는 한참 기다려서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장로님, 지금 그런 것 걱정할 때가 아닙니다.' 그랬더니 그 다음에는 자녀들 걱정을 합니다. '아직 다 어린데, 시집 장가 하나도 못 보냈는데, 내가 가면 다 뭐 먹고사나' 하고 또 한참 걱정을 합니다.
  그래 또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지금 그런 걱정 할 때가 아닙니다.' 그러자 마지막으로 그는 '목사님, 저를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 드려주세요. 지금 세상을 떠나면 내가 주님을 반가운 얼굴로 대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헌금해야 될 줄도 알고 봉사해야 될 줄도 알고 예 배당 짓는데 듬뿍 헌금을 해야 될 줄도 알면서 그저 자식들 걱정해서, 저것들 위해서 좀더 벌어야지 하며 요래조래 미루어왔습니다. 마땅히 해야 될 일을 안하고 미루어 왔는데 이제 내가 이대로 부름을 받으면 하나님 앞에 부끄러워 설 수가 없습니다.'라고 아주 간절하게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의 부름을 받을 때 마지막으로 가져야 될 관심이 무엇이겠습니까? 홀로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 때는 다른 아무 것도 쓸데가 없습니다.
  인도에 옛날부터 전해지는 이런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어떤 제자가 스승에게 '어떻게 하면 신을 만날 수 있을까요?'하고 물었더니, 이 스승은 다짜고짜로 이 제자를 데리고 나가 강물에다 집어 처넣었습니다. 죽겠다고 하는 것을 꾹 누르고 있다가 죽기 직전에 끌어냈습니다. 숨이 차서 버둥거리니까 그 때에야 스승이 말하기를 '죽기 직전 심정을 가지면 신을 만날 것이니라'라고 했답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인 찰스 스펄젼 목사님이 한 번은 시골에 있는 어떤 농가를 방문했습니다.
  농가의 마당 한쪽 편에 큰 풍향계가 서 있었고 그 풍향계 끝에는 바람의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촉이 바람 부는 대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스펄젼 목사님이 자세히 보니 흔들리는 화살촉 밑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쓰여진 표가 매달려있었습니다. 의아스럽게 생각되어 그 집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설마 하나님의 사랑이 바람 부는 대로 바뀐다는 뜻은 아니겠지요?' 그러자 주인은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물론입니다. 정반대이지요. 바람이야 어떠한 방향으로 불던지 간에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는 뜻으로 거기에 그 말씀을 적어놓은 것입니다.'
 
 
 
 

  ▶노르웨이의 탐험가 난센이 한번은 북극 근처의 바다 깊이를 재려고 긴 동아줄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그 끝이 바다 밑바닥인 해저에 닿지 못했습니다. 그는 '바다가 이 동아줄보다 더 깊음'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다음날 더 긴 줄을 가져다가 깊이를 재 보았으나 역시 해저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같은 작업을 며칠 계속하였지만 북극의 깊은 바다의 깊이를 잴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난센은 그의 일기에 이런 메모를 남겼습니다. '이 근방 바다는 하나님의 사랑과 같다. 끝없이 깊은 바다이다.'
  옳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감히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이해가 부족하여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따라서 세월이 가고 신앙의 연륜이 깊어질수록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도 한없이 깊어짐을 우리는 살아가며 깨닫게 됩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대학교의 바우어 교수는 교통사고로 한쪽 팔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히틀러가 대학에 다니는 모든 교수와 지성인들을 강제 징집을 하여 전쟁에 투입했습니다.
  전쟁에 나간 대부분의 지성인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그러나 팔이 없는 바우어교수는 전쟁에 징집 당하지 아니했습니다. 사실 바우어 교수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 팔을 잃어버리고 나서 엄청난 좌절감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팔을 가져가신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참한 전쟁 속에서 자신을 지켜주시고, 전쟁이 끝난 후에 유럽 신학을 위하여 헌신하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보호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님의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절벽 가까이로 나를 부르셔서 다가갔습니다. 절벽 끝에 더 가까이 오라고 하셔서 더 다가갔습니다. 그랬더니, 절벽에 겨우 발을 붙이고 서 있는 나를 절벽 아래로 밀어버리시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나는 절벽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 때까지 내가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삶 속에 역사 하시는 오묘한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절벽 벼랑 끝으로 몰아가시는 뜻을 다 깨닫지 못합니다. 그 절벽으로 내 몰리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쳐보기도 하고, 벼랑 끝으로 몰리지 않게 해 주시기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절벽 아래로 떨어지면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쏟아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그 순간 나를 위하여 예비해 놓으신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게 됩니다.
 
 
 


  ▶미국의 철학자인 클레이플 교수는 어느 날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그 친구의 여동생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여동생이 두 팔과 두 다리가 없는 기형아였기 때문입니다.
  더욱 놀란 것은 이 소녀는 예술에 대한 정서가 발달하여 음악과 미술에 관한 조예가 대단히 깊었을 뿐만 아니라 이 소녀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처럼 밝고 기쁨이 넘쳤으며 조금도 슬프거나 어두운 모습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클레이플 교수는 이 소녀에게 '내가 너의 처지였다면 아마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무엇이 너의 얼굴을 밝게 바꾸어놓았는가?'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녀가 두 눈을 반짝이며 대답하기를 '내가 가진 것은 너무나 많아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고 명작을 읽을 수 있는 눈이 있어요. 가족과 친구들의 사랑도 있고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은 내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나에게 이렇게 많은 보물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내가 슬퍼해야 하나요?'
  클레이플 교수는 이 소녀의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 소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본 후에 신앙의 위대한 능력을 깨닫고 이를 계기로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불타오르는 소원은 온 세계를 녹일 수 있습니다.
  '존 템플턴'이 저술한 '열정'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여인이 무시무시하고 큰 괴물에게 쫓기는 꿈을 꾸었습니다. 식은 이 온 몸을 적시고 드디어 옷까지 척척하게 하였습니다. 괴물은 계속 괴성을 지르며 따라 오는 꿈이었습니다. 여인은 계곡으로 도망하다가 막다른 곳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었습니다. 괴물이 코앞에 섰습니다. 여인은 벌벌 떨면서 괴물에게 물었습니다.
  '야, 괴물아. 도대체 나한테 뭘 어쩌려는 거야?' 괴물이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너한테 달렸지. 지금은 꿈이니까'
  그렇습니다. 여인이 깨면 끝입니다. 그러나 막다른 골목에서 계속 벌벌 떨고 있으면 꿈을 깰 때까지 공포 속에 살아야 합니다. 우리 앞에 당하고 있는 일들 모두 헤치고 나갈 수 있습니다. 깨어 일어나면 다 사라집니다.
  잠에서 깨듯이 지금 주님이 주시는 새로운 꿈으로 덮어 버리십시오.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새 역사가 펼쳐 질 것입니다.
 
 
 

 
  ▶중국 무술의 고향은 소림사 입성정(立雪亭)이라고 합니다. 그 곳에 이런 빨간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단비구법입설인(斷臂求法立雪人)'
  이 글의 유래가 전해내려 오고 있습니다.
  눈이 펑펑 내리는 어느 날이었습니다. 혜가(慧可)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혜가는 소림사에 스승이 그렇게 유능하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싶은 소원이 불타 올랐습니다. 그래서 소림사를 찾았습니다. 스승을 만나서 제자로 삼아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스승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혜가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동안 그 자리에 꼼짝 하지 않고 서있었습니다. 며칠만에 스승이 펑펑 쏟아지는 눈을 맞고 서있는 혜가에게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서있는가?' '마음이 불편해서 그렇습니다.' '무엇이?' '선생님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 붉은 눈이 내리면 너를 제자로 삼아 주겠다.'
  이 말을 듣자 말자 혜가는 칼을 빼어 자기 왼 팔을 잘랐습니다. 붉은 피가 쏟아져 내려 눈을 적셨습니다.
  '붉은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팔을 잘라 붉은 눈이 내리게 하였다'라는 글이 쓰여져 있다는 것입니다.
 
 
 


  ▶큰 일을 한 사람들을 보면 4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⑴강렬한 소원이 있습니다.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소원입니다.
  ⑵모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큰 일을 한 사람은 위험하게 살았습니다. 아슬아슬하게 살았습니다. 토인비는 도전을 이겨낸 민족만이 찬란한 역사를 이루어 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⑶성령의 능력에 의지하였습니다. 자기 힘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⑷승리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소원은 능력입니다. 소원은 소리 없는 소리입니다. 큰 소리입니다.
 
 
 


  ▶한 원숭이가 두 마리 새끼를 길렀습니다. 그런데 그중 한 마리는 늘 품에 안고 다니며 먹이를 먹였지만 또 한 마리 새끼원숭이는 본체도 안하고 소홀히 다루었습니다.
  그래서 그 새끼 원숭이는 매일 혼자서 돌아다니며 먹이를 구하느라 나무를 오르락내리락 거렸습니다.
  어느 날 다른 지역의 원숭이가 습격해 왔습니다. 어미 원숭이는 사랑하는 새끼 원숭이를 안고 이 나무 저 나무를 정신 없이 옮겨 다니며 도망 다녔습니다. 그런데 미움 받던 새끼 원숭이는 혼자서 뛰어다니며 도망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싸움이 끝났습니다. 싸움이 끝난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품에 안고 있던 사랑하는 새끼 원숭이는 그만 숨이 막혀서 죽어 있었고 그때 미움 받던 원숭이 새끼는 저 높은 나무 위에 올아 앉아 열심히 열매를 따먹고 있었습니다. 그 원숭이는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에 아주 자신 있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때로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무지하고 무감각해서 나오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이 눈에 보이도록 나타나시고 움직이신다면 그것이 무슨 하나님입니까? 하나님은 보이게 나타나시는 분이 아니고 시간이 다 지나고 난 후에 나타나고 느껴지는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를 향하신 섭리를 보려고 하면 나의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나의 인생의 지난날들을 되돌아보면 어두운 면이 있고 밝은 면이 있을 것입니다. 어두운 면은 한때 실패와 어려움과 병들었을 때입니다. 그 어려웠던 때를 자세히 회상해 보면 그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셨던 때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생애에서 밝았던 때는 성공했던 때이고 행운이 주어졌던 때입니다. 사람들은 그때 우연히 재수 좋았다고 생각을 하지만 그런데 조금 깊이 생각을 해 보면 그때 그 일들은 결코 우연도 아니고 재수가 좋았던 것도 아니고 그것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나에게 섭리하셨던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걸어온 지난날을 되돌아보면서 이해하고 하나님의 섭리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루터가 '나는 나의 인생을 되돌아보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고백하였습니다.
 
 
 


  ▶프랑스 북쪽에 칼레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1347년 백년전쟁이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칼레는 영국군에 포위되었습니다. 다른 도시는 다 점령되었는 데 칼레만 점령되지 못 한 상황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프랑스군은 영국군에서 생명을 걸고 저항하였습니다. 영국군에게 가장 골치 아픈 곳이었습니다. 영국군을 가장 괴롭힌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영국군에 의하여 완전 포위되었습니다. 1년 정도 지났습니다.
  이제 음식이 떨어졌습니다. 더 이상 공급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칼레는 이제 굶어 죽든지 항복하든지 둘 중에 하나 길을 선택하여야 하는 기로에 섰습니다. 먹을 것이 없는 것은 며칠 버티기 힘든 최악 상황입니다. 결국 백기를 걸었습니다.
  영국 왕 에드워드 3세가 말했습니다.
  '칼레의 시민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죽이겠다!'
  칼레 시는 영국 왕에게 사절을 보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다 할 테니 생명만은 헤치지 말아 달라고 애걸하였습니다. 영국 왕이 말했습니다.
  '좋다. 그러면 시민들의 목숨은 보장하마. 그러나 그 동안 우리를 괴롭힌 대가는 받아라. 칼레 시만 대표 6명을 보내라. 그들을 처형하는 것으로 벌은 끝낸다.'
  시민들은 기뻐할 수도 슬퍼할 수도 없었습니다. 6명이 시민들을 대신해 죽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 때 칼레에서 가장 부자였던 위스타슈 생 피에르가 제일 먼저 죽겠다고 나섰습니다.
  '칼레의 시민들이여, 5명만 더 나오라. 용기를 가지고'
  이 때 시장도 나섰습니다. 칼레의 핵심 인물, 귀족들이 한 명 한 명 앞으로 나왔습니다. 7명이 나왔습니다. 한 명을 빼야 합니다. 서로 안 빠지겠다고 하였습니다. 제비를 뽑아서 한 명을 빼기로 하였습니다. 한 명이 뽑혔습니다. 그 사람은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영국으로 갔습니다.
  '나를 제일 먼저 죽이십시오'
  에드워드 3세 영국 왕은 이런 모습을 보고 모두를 살려 주었습니다.
  나 대신 죽어 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소리 없이 가장 큰 소리로 외치고 있습니다.
 
 
 

 
  ▶감리교 원로 목사님 가운데 벽해라는 호를 가지신 분의 글을 읽었습니다. 이름은 밝히지 않고 호만 밝혔습니다. 그래서 누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일어났던 일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실명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매일 안과로 치료를 받으러 다녔습니다. 사실 치료가 불가능한 병이었습니다. 그래서 한 달 다녔습니다. 하루에 한번 병원에 갈 때마다 치료비를 아버지가 주었습니다.
  한 달 지났습니다. 병원에서 집으로 한달 치료비 계산서가 날라 왔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불러 말했습니다.
  '그 날 그 날 치료비를 가지고 병원에 갔지?' '네' '그런데 이 계산서가 웬 말이냐?'
  아들이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매일 치료받으로 가는 길가에 맹인 한 분이 앉아서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나도 저렇게 될지 모른다는 불쌍한 생각이 나서 가지고 가던 돈을 매일 그 분에게 드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며칠 후 아들의 눈이 완전하게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 은혜 체험이 놀라와 목사가 되어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십자가는 사랑입니다.
 
 
 


  ▶주전 14세기 중국은 은(殷)나라 시대였습니다. 탕 왕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중국 역사상 가장 큰 가뭄이 오래 계속 되었습니다. 온 대지가 다 말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온 국민이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탕 왕은 국민들 앞에서 이렇게 선언하였습니다.
  '내 책임입니다. 내가 하늘의 신 앞에 깊이 통회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손톱, 발톱을 정결하게 깎았습니다. 수염도 잘 깎았습니다. 목욕을 말끔히 하였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나는 꽁꽁 묶어라. 그리고 산 제물로 드려라'
  왕의 명령이라 할 수 없이 꽁꽁 묶었습니다. 그리고 제단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피를 하늘에 바치려고 한 것입니다. 왕을 죽이기 전에 왕은 고천문(告天門)을 들고 하늘에 고하는 회개를 시작하였습니다.
  <가뭄은 하늘의 신에게 내가 잘못한 연고입니다.
  첫째 정치에 절제하지 못 한 것이 있으면 회개합니다.
  둘째 실직자가 늘어났으면 회개합니다.
  셋째 궁궐이 사치하였으면 회개합니다.
  넷째 치맛바람이 거세었으면 회개합니다.
  다섯째 뇌물이 성행하였으면 회개합니다.
  여섯째 무고한 자를 사형시킨 것이 있으면 회개합니다.>
  가슴은 가슴을 치며 회개하였습니다. 이 순간 천지가 갑자기 어두워졌습니다. 수 천리에 먹구름이 덮였습니다. 단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 중국에서는 이를 육사지책(六事自責)이라고 합니다. 순자(荀子)가 쓴 책 <大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불확실한 세대를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절대 필요요건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곽선희목사). 이건 심리학자들의 공통적인 의견입니다. 'Three Needs' 라고 흔히들 말합니다.
  첫째가 'Need of Significance' 입니다. 중요성의 필요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의미의 문제요, 삶의 뜻의 문제요, 존재의식의 문제요, 보람의 문제요, 삶의 질의 문제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과거보다 확실히 물질적으로는 여유가 있습니다. 뭐니뭐니해도, 이것은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그 옛날만큼 행복하지를 못합니다. 행복지수는 바닥으로 헤맵니다. 모두가 죽고싶다고만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보람을 잃어버렸습니다. 의미를 잃어버렸어요.
  '내가 정말 살아야 하나? 내가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또 주위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얼마나 의미가 있나?' 얘들이 조금 크기 시작하면 억지를 쓰고 울 때가 있지요. 일부러 사고도 내고. 왜요? '이 가정에 내가 얼만한 존재인가?' 의미를 확인하기 위해서 그래요.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그걸 알고 싶은 거예요. 사람은 밥을 먹고사는 게 아니고 보람을 먹고사는 것입니다. 보람이 없으면, 못사는 겁니다. 살았으나 산 것이 아니고 숨을 쉰다고 살아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올시다.
  그러면, 나의 존재의 의미. 그것을 알고 깨닫고 그것을 확대 확장하고 그것을 높일 수 있을 때, 나라는 존재는 그만큼 의미가 커지고 삶의 가치가 높아지는 거예요. 그럴 때 거기에 행복이 있고, 또 살아갈 수 있는 힘도 있는 것이올시다.
  나이가 많다는 것이 왜 비참합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필요가 없는 것 같거든요. 이 사람에게도, 저 사람에게도 난 귀찮은 존재 같아요. 벌써 정신적으로 그는 갔어요. 나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여러 사람에게 불편만 끼치고 있다. 자, 이거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게 산 것입니까? 죽은 것입니까?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되면, 어떤 경우에는, 어떤 조건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를 믿는다'란 무엇입니까? 단적으로 말해서 '십자가 안에서 자기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을 말합니다.
  온 세상 사람이 다 나를 버려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나를 위해 독생자를 주셨고 그가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의 죽으심 속에 내게 향한 사랑이 있고 나의 삶의 의미가 있고 내 삶의 가치가 있습니다.
  사도바울의 유명한 윤리학적 명제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를 식물로 망하게 하지 말라.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나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이웃이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셨다고 하는 거기에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실만한 가치가 있다는 거예요. 엄청난 가치가. 거기에 나의 삶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을 깨닫고 이것을 확인하며 살아갑니다. 그것이 '예수를 믿는다,' 하는 뜻이올시다.
  또 하나는 'Need of Security'입니다. '안정성의 필요'입니다. 불안을 싫어합니다. 위험을 싫어합니다. 위기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평안을 촉구합니다. 의식주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정신적 안정입니다. 이것을 찾지 못해서 술을 마시고, 도박을 하고, 오락을 하고, 몸부림을 칩니다. 밤마다 댄스홀에서 발광하고… 왜들 이러는 겁니까? 마음의 안정을 얻지 못했어요. 근심과 걱정과 불안으로부터 벗어날 길이 없어요. 이 자유의식을 찾아서 저렇게 발광을 합니다 만은 점점 더 무서운 함정으로 빠질 뿐이고 마음의 평안은 없습니다.
  마음의 평안을 찾아 술을 마신들, 술을 깰 때 가서는 더 비참합니다. 더욱더 비참합니다. 중요한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평안을 찾아 마음의 평안을 찾아 안정을 찾아 헤매는 이 모든 노력이 바로 이것과 같은 거예요. 다 부질없는 노력입니다.
  그러면, 참 안정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내가 하나님을 발견할 때까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발견할 때까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있는 내 존재를 발견할 때까지는 절대로 Security 라는 것은 없습니다. 거기만이 진정한 평안히 있습니다.
  셋째는 'Need of Belong'입니다. '소속의 필요'입니다. 고독은 죄입니다. 고독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고독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고독의 엄습되어 헤어날 길이 없어요. 소속을 잃어버렸어요. 내가 누구에게 속한 것입니까? 그래서 가정이다, 친구다, 공동체다, 그룹이다… 하는 모든 문제가 바로 여기에 걸리는 겁니다.
  소속감을 찾기 위해서. 소속의 확인을 위해서. 그런데 '내가 속한 그곳이 나의 삶의 의미를 찾아주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또한 부질없는 짓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소유되었다고 하는 것, 하나님의 큰 가정에 한 식구가 되었다고 하는 것, 그것 외에 참된 소속은 없습니다. 애당초 세상에 날 때부터 시작해서 그의 은혜 가운데 살았고, 그의 은혜에 예속되어 있습니다. 그의 거룩한 사역에 예속되어 있습니다. 그 소속을, 본질적 소속을 분명히 하는 순간, 삶의 보람을 찾게 되는 것이올시다.
 
 
 


  ▶한 아주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장을 보러 나왔습니다. 그날따라 이것저것 살 것이 많았습니다. 양손 가득 값비싼 물건을 잔뜩 들었습니다. 물건 고르고 흥정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가만히 보니 아이가 없어졌습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아이가 보이질 않습니다. 갑자기 정신이 아찔해 집니다.
  어머니는 실성한 사람처럼 시장 구석구석을 헤매기 시작합니다. 물론 두 손에 들었던 물건들은 땅 바닥에 놓고 말입니다. 온 통 아이 생각에 물건은 안 중에도 없습니다. 이 가게 저 가게 뛰어다닙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붙들고 물어봅니다.
  한 참 뒤에 어렵게 아이를 찾았습니다. 정신이 돌아와 물건을 찾아보니 사람들이 밟고 지나갔습니다. 몇 개는 사람들이 집어갔습니다. 그래도 감사합니다. 그래도 기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이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엄마에게 아이가 귀합니다. 엄마에게 아이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무한한 가치를 가집니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자기 목숨까지 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잃어버리는 순간 물건은 안 중에도 없습니다. 그 동안 한 푼이라도 깎고 흥정하던 그 생각은 정지되는 것입니다. 그 무한 가치 앞에서 유한 가치는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여기서 계산 따위는 설자리가 없습니다.
  눅15장의 목자는 한 마리 양을 잃어버리는 순간 정신이 아찔했습니다. 정상적인 사고가 흔들립니다. 이것저것 계산이 안 됩니다. 바보가 됩니다. 그래서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향해 정신 없이 달려간 것입니다.
 
 
 


  ▶옛날 중국에 '백리해'라는 사람은 초년에 매우 가난했습니다만, 고난을 참고 굶주림 속에서도 공부를 계속해서 끝내는 과거에 급제하여 어사가 되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살림이 매우 궁색하니까 견디다 못해 남편 버리고 재가를 했는데, 그 쪽 집 형편도 그리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이 어사가 고향으로 어떤 국사를 맡아 하향하는 길에 한 주막에서 잠시 쉬는 일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우연히 그 아내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손을 잡아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면서도 감히 직접 나서지 못하고 밖에서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문빗장 깎아 씨암탉 삶아주던 그 옛날 그 수고를 그대는 잊었는가? 손잡고 영화의 길 함께 가고 싶어라'
  노래를 다 들은 '백리해'는 '담 넘어 노래하는 여인을 불러 오라'고 하여 그 여인에게 물 한 동이를 길러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물을 땅에 부으라고 합니다. 붓자 다시 물을 동이에 담으라 했습니다. 여인은 어리둥절했습니다. 어사가 말하기를 '너와 나 사이는 엎질러진 물이로다'하고 백리해는 떠나 버렸습니다.
  여인은 슬피 울며 통곡했습니다. 그러나 백리해가 아내를 버린 것이 아닙니다. 살기 어렵다고 자신이 먼저 남편을 버리고 개가해서 산 것이라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어사보다도 더 영광스러운 심판장으로 이 땅에 오실 것입니다. 그때까지 참고 기다렸다가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하는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만두 장사가 제일로 싫어하는 말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속 터진다'는 말입니다. 왜 속이 터집니까? 만두피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왜 신앙의 속이 터집니까? 신앙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속이 터지면 그 속에서 나오는 것이 뻔합니다. 교만과 원망, 불평, 부정적인 언어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속이 꽉 차 있으면 '그리스도인의 참 맛'을 들어내게 되어 있습니다.
 
 
 


  ▶옛날 초나라의 예왕 때에 '변화'라는 사람이 높은 산에 올라갔다가 옥돌을 발견하고 그 옥돌을 왕에게 바쳤습니다. 왕은 전문가를 불러 감정을 시키더니 그것은 옥이 아니고 돌이라고 했습니다.
  왕은 노하여 국법에 따라 왕을 속인 죄로 변화의 왼쪽 다리를 잘라 버렸답니다. 그러나 변화는 억울하지만 그 참 옥을 알아 줄 날이 오겠지 하고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예왕이 죽고 무왕이 왕이 되었습니다. 변화는 이번에는 알아주겠지 하고 새 왕에게 옥돌을 바쳤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번에는 오른쪽 다리마저 잘려졌습니다. 또 무왕이 죽고 문왕이 왕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변화는 새 왕에게 옥돌을 바치려고 3일 3야를 옥돌을 붙잡고 통곡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그를 비웃으며 '저 사람 그 돌 때문에 두 다리가 잘리고 병신이 되었으면 그만이지 무슨 욕심으로 상을 타려고 저러지'
  이 소식을 들은 문왕이 사람을 보내어 변화를 불러 그 옥을 감정한 결과 곁을 보니 영락없이 돌이였는데 겉을 깎아 내어 속을 보았더니 수정같이 투명하고 맑은 옥이 나타나는데 밤에는 빛이 환하게 밝히고 찬란한 빛을 발하는 것이었습니다.
  왕은 크게 감탄하여 변화에게 큰 벼슬을 주고 평생 동안 먹고 살 수 있도록 부상을 주었답니다.
  여러분! 이렇게 두 다리를 잃을 때까지 그 옥들을 지켰던 변화가 때가 되어 큰복을 받은 것처럼, 우리의 보화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잘 간직해서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조선실록에 보면 3대 왕조 태종 왕 이방원에게 네 아들이 있었는데, 첫째가 안녕, 둘째로는 효녕, 셋째는 충녕, 넷째가 성녕대군입니다.
  그런데 이 네 아들 중 맏아들 양녕을 왕세자로 책봉할 수밖에 없어서 세자로 책봉했는데, 왕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셋째 충녕이가 제일 나았습니다. 이리 뜯어보고 저리 훑어보아도 셋째를 왕으로 세워야겠는데 그럴 수는 없고, 임금에게는 큰 근심 걱정거리가 되었습니다.
  양녕은 자기가 이제 임금이 될 것을 알고 열심히 공부하고 왕도를 수업하다가, 아버지의 안색을 보고 아버지 심사(뜻)를 헤아려보니, 아무래도 셋째 아들인 충녕을 왕으로 세웠으면 하는 뜻을 아버지가 갖고 있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래서 그 날부터 아버지 뜻을 잘 받들어서, 어떻게 하면 왕위를 그 동생에게 부작용 없이 물려줄 수 있을까 생각하고, 그 날 밤부터 거짓으로 미친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전에 안 하던 술버릇이 나오고, 기방에만 출입하고 왕자가 못할 짓만 골라서 다하고 다니니까 그의 아버지 태종이 왕세자로 봉했던 것을 취소해 버렸습니다.
  이때 둘째 효녕대군이 생각할 때 다음 차례는 자기로 착각하고 그 전에 놀고 먹던 그가 이제 열심히 왕 노릇 할 준비 공부를 하는데, 큰아들 양녕의 생각에 이 동생도 아버지 의중의 인물이 아님을 알고, 한밤중 동생 효녕을 찾아가서 정색을 하고 하는 얘기가 '내가 진짜 미친 것이 아니고 아버지의 의도와 뜻이 이러니 동생 잘 알아서 하게'하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때 효녕은 눈치가 빠른지라 판단을 빨리 하고 '형님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제가 미처 몰랐습니다'라고 말하고는 그 날 밤, 머리를 깎고 산에 들어가 중이 되었습니다.
  결국 셋째 충녕에게 자리가 돌아갔습니다. 충녕이 왕이 되어서 나라를 잘 다스렸는데 이 왕이 세종대왕입니다.
  후에 역사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 이 양녕대군은 왕위가 동생에게 돌아간 것을 한탄해서 폐인이 되고, 술 먹고 타락해 버렸다지만 그것은 겉모습만 보고 쓴 것이고 실상인즉 양녕의 속마음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멀리서 끝까지 미친 척하고, 동생이 나라를 잘 다스리는 것을 보고 기뻐하였고, 절에서 목탁을 두드리지만 둘째도 동생을 보고 기뻐하였으니, 가문이 견고해지고 나라가 태평 세월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형제가 우애하고 서로 도와 아버지의 뜻을 잘 받드는 가정이 잘되고 나라가 잘되는 것입니다.
  효도는 큰 것이 아닙니다. 뭐니뭐니 해도 부모의 뜻을 잘 받드는 것이 제일가는 효도입니다.
 
 
 


  ▶영국 런던의 '테임즈' 강변에 재판소가 있는데 그 재판소의 뜰에 포도나무 한 그루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포도나무에서 열리는 포도는 영국에서 가장 맛이 좋다고 합니다.
  그래서 식물학자들이 이 맛 좋은 포도나무를 번식시켜 널리 보급하기 위하여 조사를 해 보니 다른 포도나무와 조금도 다른 점이 없었습니다. 학자들이 어떻게 하여 이 포도나무가 다른 포도나무보다 맛있는 열매를 맺는지 자세히 연구를 하였더니 이 포도나무의 뿌리가 강 밑바닥에까지 뻗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뿌리가 강 밑바닥에 뻗어 있으니 웬만한 가뭄에도 충분한 수분을 빨아들일 수 있었고 다른 곳보다 더 많은 영양을 섭취할 수 있어 영국에서 가장 맛있는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복 있는 사람이 되면 겉보기에는 여느 사람과 다름이 없지만 그 사상과 삶의 철학과 신앙의 뿌리가 하늘 보좌에까지 뻗어 있으므로 온갖 기근과 세상의 문제가 다가온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므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충남 부여에서 한 교회 장로님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축복을 간증했습니다. 그는 포도 농사를 지었는데 그 포도나무들 중에서 한 나무를 정해 놓고 '이 포도나무는 하나님 것입니다. 여기서 열리는 포도는 교회에 바쳐서 성찬식을 하겠습니다. 이 포도나무는 성찬식 하는 포도나무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드릴 포도나무를 정해놓고 포도농사를 시작했는데 얼마나 포도농사가 잘 되는지 풍작일 뿐 아니라, 질도 좋아서 포도농사로 아주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TV에 출연하게 되고, 일본연수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린다고 정해놓았던 그 포도나무 한 그루 때문에 온 포도원이 다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그는 수박농사도 짓는데, 한번은 교회 가기 전에 수박밭을 돌아보니 수박 꽃이 만발했습니다. 이때 인공수정을 시켜야 하는데 교회는 가야 되겠고 갈등이 생길 때, 집사 시절에 '나는 꼭 주일성수 하겠다.'고 소원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장로가 되었으니 '성도들에게, 제직들에게 더욱 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수박농사를 망친다 하더라도 먼저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내 사명을 감당하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하고, 수박은 하나님께 맡기고 교회로 갔습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부랴부랴 수박밭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수박밭에 웬 개미떼가 그렇게 많은지 사방이 다 개미떼였습니다. 동태를 가만히 살펴보니 개미가 수박 꽃에 붙어서 수정을 시켜주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먼저 예배드렸더니, 하나님께서 개미를 통해서 수정시켜주시고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하셨습니다. 수박농사, 포도농사가 모두 다 잘 되니 여기저기서 강의 요청이 오고, TV, 라디오에도 출연하고, 300개 교회에 다니면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간증하게 되었답니다.
 
 
 



  ▶'패니 크로스비'는 부흥 집회에 참석해서 간증을 많이 하곤 했는데 어느 부흥 집회에서 어느 목사님이 패니 크로스비를 동정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그렇게도 많은 선물들을 주셨는데 세상을 볼 수 있는 시각을 선물로 주시지 않은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패니는 즉시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목사님, 제가 태어날 때 하나님께 기도를 할 수 있었다면 저는 맹인으로 태어나게 해 달라는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목사님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면서 '왜 그렇습니까?' 라고 패니에게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천국에 이르렀을 때 내 눈이 제일 먼저 보고 좋아할 수 있는 얼굴이 나의 주님의 얼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분명히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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