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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료 18,185편 ◑/곽선희목사 설교 1,910편

받는 복과 주는 복! (행 20:29-35)

by 【고동엽】 2022.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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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는 복과 주는 복! (행 20:29-35)

 

옛날 희랍에 전제국가의 한 왕이 있었습니다. 그는 태평성대를 누 리면서 24시간 호색과 주
지육림(酒 池肉林)에 탐닉하면서 자기를 더 즐겁게 하기 위하여 쾌락度와 행복 度를 더 높
이는 수단과 방법을 큰 상금을 걸고 천하에 널리 구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하고 싶은 일 다
해 보았습니다. 가지고 싶은 것 다 가져 보았습니다. 그러나 만족치 않습니다. 그래서 더 높
은 행복, 더 높은 즐거움은 없을까해 서 높은 즐거움을 추구하기 위해서 방법을 간구 했습
니다. 별별 기발 한 아이디어가 다 나왔습니다. 그 러나 불만과 갈증은 날로 더 가중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아 이디어를 가지고 왔다고 해서 만나 봅니다. 왕은 실망하게 됩니
다. 그럴 때는 자기를 실망 시켰다고 해서 그 아이디어를 가져온 사람을 사형에 처해 버렸
습니다. 그까짓 아이디어를 가져 왔냐고…… 이래 가며 끝없이 향락과 기쁨을 추구했 으나
별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러 던 중에 어떤 소녀 하나가 자기가 왕께 나아가서 기뻐할 수 있
고, 행 복할 수 있는 비결을 말하겠다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궁금하게 여겼습니다. 이 소
녀가 왕 앞에 나타나서 당돌하게, 막 꾸짖는 얼 굴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왕은 절대로 행복할 수 없습니 다."
참 놀라운 얘기였습니다.
"기쁨을 단념하십시오. 남을 행복 하게 하거나 기쁘게 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행복
을 원하신 다면 다른 사람을 먼저 행복하게 하십시오. 그리고서야 왕이 행복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이 말에 왕은 숙연해 지고 한참 생각 끝에
"딸아! 그대의 말이 옳도다."
그 리고 그에게 많은 상을 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행복이라는 것은 나 혼자서 행복
하고 싶다고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에 젊은이들 가운데 부르는 가요 가운데 이런 가사가 있다고 합니다. '행복하고 싶어라.
행복 하고 싶어라. 그러나 그대를 행복 하게 해 주지를 못하면 나는 영영 행복할 수 없네.'
유행가 가사에도 가끔 진리가 있습니다. 상대방을 행복하게 해 주지 않고는 나는 행 복할
수 없다. 사람들은 이 사실 을 모르고 있습니다.
오연호라고 하는 기자요 작가가 있습니다. 요 근자에 나오는 책으 로써 '한국이 미국에게
당할 수밖 에 없는 이유'라는 이상한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이 오연호씨는
대학생 때부터 철저 하게 반미주의자 입니다. 항상 대 모 앞에 서요. 대모 주동자였습니 다.
그는 미국사람들이 한국에 와 서 잘못한 거, 그저 주로 그것만 돌아가면서 끄집어 내가지고
발표 하는 일이 자기 사명이라고 생각했 어요. 그래서 미국사람들이 한국 에 와서 잘못한
것들 이런 것만 전 부 취재해서 책을 4권이나 썼습니 다. 그러다가 어느 때 그는 좀 더 미
국을 알아야겠다고 생각을 해서 미국 유학을 하게됩니다. 거기서 그는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됩니다. 소련도 망하고 사회주의도 망하고, 구라파도 엉망이고 일본도 저렇게 시들어 가는데
도대체 미국은 왜 8 년 동안 계속 호황을 이루냐. 내 가 이것을 좀 알아야겠다. 그래서 열심
히 연구합니다. 그 결과로 쓴 책이 이겁니다. 이 책에서 그는 이렇게 결론을 맺습니다. '미
국은 발론티어 정신이 있기 때문에 망하 지 않는다.' 그랬습니다. 자원봉 사자입니다. 적어
도 미국사람이라 면 일주일에 몇 시간, 한 달의 며 칠은 자원봉사 해야 되는 줄 압니 다. 이
것을 못하면 사람 구실을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는 교회마 다 가면은 거기 큰 게시판이 있
고 거기다가 라인업(Line-up)을 합니 다. 어디 가서 언제언제 봉사할 수 있겠다고. 그래서
거기의 지시 를 받아 가지고 바로 정한 시간에 가서, 심지어는 어떤 때는 봉사하 기 위해서
훈련을 받아 가지고 가 서 합니다. 적어도 내 생애 중에 어렵거나 뭐 가난하거나 상관없습
니다. 적어도 몇 시간은. 그리고 며칠 동안은 꼭 자원봉사 해야만 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년
에 4천 만 명이 자원봉사에 나섭니다.
생각해 보세요. 자원봉사와 자 원봉사 정신! 그래서 어렸을 때부 터 이 훈련을 받습니다.
중·고등 학교 다닐 때 자원봉사 성적이 없 으면 대학에 못 갑니다. 공부 잘 했다고 가는
게 아닙니다. 자원봉 사를 한 훌륭한 성적을 가지고야 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훈련을 쌓아
서 공부를 해도 연구를 해도 무얼 해도 봉사하는 마음이 그 밑 에 깔려 있다는 것입니다.
이래서 미국은 망하지 않는다. 그분이 미 국에서 신앙을 얻었습니다. 그리 고 이 책을 쓰게
됩니다. 이걸 알 아야 합니다. 행복이 무엇인지 행 복의 길이 무엇인지를 모르기에 그 는 영
원히 불행할 수밖에 없어요.

죤 F. 케네디가 저격될 때에 시 해될 때에 제가 미국에 있었습니 다. 텔레비젼에 나오는 장
면을 자 세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쟈클 린, 죤 F. 케네디의 부인이 그 망 극한 시간을 당
해서 기자회견을 할 때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 다.
"검을 쓰는 자는 검으로 망한 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언제나 알까?"
그렇습니다.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합니다. 폭력을 휘두 르는 자는 폭력으로 망합니다. 악
한 방법으로 선한 일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왜 세상 사람들은 이것 을 모를까! 그렇게 개
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공산주의 사회, 사회주의 사회를 돌아보면 절대로 없는 말이 둘이 있습니다. 하나가 사랑이
라는 말 이요, 하나가 감사하다는 말입니다. 감사와 사랑이라는 단어가 없습니 다. 오로지
있는 것은 혁명과 타 도!―그것뿐입니다. 거기에는 행 복도 없고, 번영도 자유도 없습니 다.
행복이라는 말을 기쁨이라는 말로 바꾸어 보십시다. 어디에 기 쁨이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 나타난 말씀 '주는 자와 받는 자' 딱 대조했습니다. 여러분 어느 쪽이 복됩니
까? 여러 분 어느 쪽을 기뻐합니까? 여러분 어디에 행복이 있다고 생각하십니 까? 스스로
물어 보시기 바랍니 다. 그저 받는 것만 복이 있고, 더 가지는 것만 복이 있는 줄 아는데 예
수님 말씀은 그렇지 않아요. 특 별히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바울이 인용한 예수님의 말씀에
유일한 요 절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친 제 자가 아니었기에 살아 생전 예수님 하신 말씀
을 들은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을 직접 인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로지 한 절,
'주는 것이 받는 자 보다 복이 있 다.' 이 한마디를 인용하고 있습니 다. 어디에 불행이 있
고 어디에 행복이 있다고 여러분은 믿고 있습 니까? 세상에서는 흔히 복(福)이 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복은 받는 것만을 복이라고 생각들 합니다. 또 하나는 빼앗는 것만을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빼앗는 것! 전쟁에서 빼앗고 사업을
해서 빼앗 고 남 망하게 하고 내가 잘 얻 고…… 여러분
"살로메"라고 하는 소설을 보면은 헤롯왕이 세례요한 을 붙잡아다 놓고 한 쪽에다가 꿇 어
앉혀 놓고 바로 그 자리 앞에서 거기서 잔치를 합니다. 세례요한 은 며칠 굶겨 놓고 잔치를
하면서 즐깁니다. 그리고
"먹고 싶으냐?"
하고 비웃습니다. 이런, 이런 즐거 움! 굶주리는 사람을 보면서 즐기 고, 죽어 가는 사람을
보면서 내가 즐기는 이런 악랄한 행복 관이 세 상을 어지럽히는 겁니다. 오늘도 빼앗는 것
을 즐기는 전리품을 즐기 는 그러한 그릇된, 잘못된 철학을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여기에
불 행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주는 행복이 있습니 다. 주는 것을 기쁨으로 삼는 행 복입니다. 여러분 보셨겠습
니다마 는 지난 8월 14일자 조선일보 제 1 면에 크게 나와 있습니다. 참 감 동적이고 저는
목사로서 얼마나 행 복했는지 모릅니다. 그 기록을 보 면서 접수 창구를 숙연하게 한 '이
웃사랑 5천 만원' 그런 기록입니다. 수재의연금을 접수하는 창구에 할 머니 하나가 왔습니
다. 조용히 앉 아서 3분 동안 기도를 했습니다. 손을 모으고. 그리고 5천 만원을 내 놓습니
다. 이름과 주소를 대라 고 하니까
"아니오. 좋은 일에 쓰 면 되는 겁니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많은 돈을"

"저와 제 아들 이 여러 해 동안 모은 겁니다. 좋 은 일에 바로 쓰면 됩니다."
그리 고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많은 사 람의 마음을 감동케 했습니다. 저 마다 자기 이름 석
자를 내 놓고 자 랑하는데 이렇게 내 놓고 조용히 사라진 이 할머니!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
다. 이렇게 돌아서는 바로 이분의 마음속에 있는 행복은 누구 도 빼앗지 못합니다. 왜 우리
는 그 행복을 모르고 사느냐 이 말입 니다. 별것도 아닌 일 가지고 그 저 자기자랑하고 이
게 뭡니까? 그 래서 텔레비전에 자기 얼굴 내어놓 느라고 바쁘고 말이에요. 왜 이 정도의
수준에서 살아가는 겁니까? 참으로 불행한 일이올시다. 주는 행복이 얼마나 큰 것인데……
불 행이 있다면 여기에 있습니다. 그 것은 주는 것을 불행으로 여기는 것이 불행입니다. 주
는 것이 행복 한 것인데 왜 이걸 모르고 살까!
또 하나는 빼앗기는 마음에서 사 는 것이 불행한 것입니다. 줄 때 마다 좋은 마음으로 주지
못하고 꼭 빼앗기는 거예요. 체면 때문에 무엇 때문에 할 수 없이. 자식에 게 주는 것까지도
강도 만나는 마 음으로 주어요. 한 평생 빼앗기는 마음으로…… 심각한 말씀 하나 드릴까
요? 한 평생 남편하고 살면 서 계속 강간당하는 마음으로 살았 다고 고백하는 여인이 있더
라고요. 이 비참한 여자를 보세요. 왜 이 렇게 살아야 합니까? 한번도 남을 기쁘게 할 줄 모
르는 사람. 먼저 자기가 불행한 거예요. 자기가 비 참해 지는 걸 왜 모르냐 말입니까? 그렇
게 살아가고 있더란 말입니다. 빼앗기는 마음으로 한 평생 사는, 이 얼마나 신세가 가련합니
까! 그 하나 생각을 바꾸지 못해서 말입니 다. 그런가 하면 받지 못하고 빼 앗지 못하는 불
행, 더 가지고 싶은 데 빼앗고 싶은데 못 빼앗아서 몸 부림치는 그런 정도의 인간도 많더
란 말이에요. 이게 불행이에요.
그러면 행복의 기본이란 어디에 있습니까? 성경은 분명하게 말합 니다. '진리와 함께 기뻐
하고……' 그랬어요. 진리 안에 기쁨이 있어 요. 의로움에 기쁨이 있어요. 불 의와 죄악 중
에 기쁨은 없습니다. 그런고로 진리와 함께 행복이 있 고, 또한 행복은 더불어 가지는 것 이
요. 그래서 이기주의자는 절대 로 행복할 수가 없어요. 나만 행 복할 수는 없어요. 바로 앞
에 어 려운 사람이 있는데 내가 행복할 수 있나요. 굶주리는 사람을 보면 서 내 입맛이 동
하던가요? 사랑하 는 사람이 죽어 가는 것을 보면서 내가 편안할 수 있던가요? 사람은 반
드시 더불어 행복하게 되어 있어 요. 가끔 제게 상당히 많은 액수 의 헌금을 북한 고아들에
게 전해달 라고 가져오는 분이 계세요. 생활 도 어려운데 어떻게 이렇게 이런 것을…… 열
번 같이 이렇게들 말 씀하십니다.
"저들이 굶어 죽는다 는 이야기를 들을 때에 남은 절대 로 편안할 수가 없습니다. 밥을 먹
을 때마다 걸리고, 잠 잘 때도 걸리고 그래서 적지만은 이것을 내 놓고야 내가 평안할 수
있기에 가 져 왔습니다."
그래요. 그게 사람 다운 것이지요. 수 없는 사람이 굶어 죽는다는 것을 보면서도 태연 하게.
이거야 어떻게 인간이겠어 요. 어찌 그가 행복하겠어요. 어 찌 그 행복이 이뤄 질 수 있겠어
요. 행복은 더불어 행복한 것이고 요, 또 이것은 주고받는 관계 속에 있는 것이고요, 반드시
주는 자에 게 있는 것이에요.
그러면 이 '준다'는 말이 무엇이 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주는 자가 된 것을 기뻐하는 것이
에요. 여러 분, '받는 자와 주는 자' 어느 쪽이 되고 싶습니까? 어느 쪽이 돼야겠 습니까?
어차피 우리는 주고받고 사는데 예? '주는 자와 받는 자' 여러분은 항상 '받는 자' 편에서
살 겠습니까? 아니지요. 복되다면 주는 자 이지요. 저는 북한에 갈 때마다 얼마나 행복한 것
을 느끼는 지 모릅니다. 다소(多少)라도 주는 자 편에 섰다는 것이 너무너무 행 복한 것이에
요.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그 '받는 자'의 마음에서 돌이켜서 '주는 자' 된 것을 기뻐하
는 그 마음이 중요합니다. 또 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입 니까! 대체로 보면 기회
를 다 잃 어버리고 뒤에 후회합니다마는 오 늘도 다소라도 남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아요. 위로 받기보 다는 위로 할 수 있는 입장에 있다 는 게 얼마나 좋습니까! 여러분 병
원에 가서 환자를 방문할 때도 내가 방문 받는 자와 방문하는 자 가 있는데 방문하는 자 편
에 있고 오늘도 이런 기회가 있다는 게 얼 마나 좋습니까. 편안하고 건강하 고 잘 뛰는 사
람 내가 그 앞에 가 서 하루종일 사랑을 고백해도 만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줄 수 있 다
는 거 줄 수 있는 기회가 우리에 게 주어 졌다는 거예요. 그것이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또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 하라 했습니다. 그런고로 내가 남 에게 무엇을 줄 때 그 받
는 자의 기쁨에 내가 동참하는 거예요. 함 께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교감이 있는 거예요.
여러분 그거 느끼지 않습니까? 이게 인생을 사는 기본 철학입니다. 아이들을 보세요. 어 머
니들은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 에 자기가 먹고 싶은 것도 아이들 에게 주고, 아이들이 먹
으면서 좋 아할 때에 내 입에 들어 간 것은 없지만 내가 더 좋은 거예요. 이 게 사랑의 기
본이에요. 어려움 당 한 사람을 내가 돌보면서 주면서 그가 기뻐하는 마음에 내가 같은 교
감을 가지는 거예요. 거기에 내 기쁨이 있는 거예요. 이 기쁨이 기쁨의 극치올시다. 우리는
이것 을 잊어버리고 있단 말이에요. 그 러니 어디 가서 행복을 찾겠습니 까?
또한 준다는 것은 자유함을 말합 니다. 여러분 받으면 마음이 무겁 습니다. 사랑 받는다는
건 사실 한편으로는 좋지만은 괴로운 겁니 다. 주는 자 만이 언제나 자유 할 수 있기 때문
이에요. 김대주씨라 하는 사람이 '사랑과 인생, 아포리 즘 999'라고 하는 이상한 이름의 책
을 썼어요. 그 책 중에 '사랑의 십계명'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 의 십계명, 어디 한 번 들
어보세요. '사랑할 때는 첫째, 계산하지 말 것. 둘째, 후회하지 말 것. 셋째, 되돌려 받으려
하지 말 것. 넷째, 조건을 달지 말 것. 다섯째, 다짐 하지 말 것. 여섯째, 기대하지 말 것. 일
곱 번째, 의심하지 말 것. 여덟 번째, 비교하지 말 것. 아홉 번째, 확인하지 말 것―내가 사
랑 한 것이 어떻게 됐나 그거 확인하 려고 들지 말 것. 열 번째는 상황 에 온전히 맡길 것.'
하나님께 깨 끗이 맡겨 버리라 이거예요. 그걸 놓고 어떻게 됐나 뭐 결과가 어떻 게 됐나
뭐 이 쓸데없는 생각하니 까 사랑이 피곤해 지는 거예요.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십니다. '오른손이 하는 거 왼손이 모르게 하라.' 또 '하늘에 쌓아 두
라. 냉 수 한 그릇을 네 이름으로 줄 때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네 이웃에게 향한 것
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니라.' 이것이 사랑의 계명이 요 원리올시다. 예수님이 친히 말 씀하십
니다. '나는 섬기러 왔노라.' 마태복음 20장에서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 했다.
대속물 로 주려고 왔노라.' 예수님의 아주 본래적 의식입니다. 우리 예수 믿 는 사람들, 섬
기고 주고 봉사하는 것이 그대로가 목적이요, 동기요, 체질이요, 성품이 되어 버려야 돼 요.
언제든지 상대방을 기쁘게 하 려고 어쩌든지 주려는 마음으로 가 득 차 있어야 한단 말입니
다. 이 것이 그리스도인이요, 이것이 행복 할 수 있는 비결이요. 오늘 성경 에 보면 '본을
보였노라.' 그런 말 씀이 있어요. 누군가가 본을 보여 그 다음에 파급 효과가 이어지는 것입
니다.
어느 주유소에 기름을 따르고 있 는 총각 하나가 있었습니다. 좋은 자동차가 하나 들어 왔
습니다. 기 름을 따르면서 얘가 너무 부러워서
"아저씨! 이 차 참 좋으네요. 이 거 비싼 거지요?"하고 물었어요. 그러니까 그 주인이 하는
말이
"그 럼, 이거 비싼 거다. 그런데 내가 산 게 아니고 값은 모르겠다마는 내 형님이 나를 사랑
해서 내게 사 준거다."

"그래요!"
너무 부러워 하는 것 같아서 그 차주가 말하기 를
"이런 차 가지고 싶으냐? 부럽 냐?"
그러니까
"예."

"이런 거 타 고 싶어서?"

"아네요. 나도 내 동생에게 이런 차를 사 줄 수 있는 형님이 되고 싶어요. 제 동생을 절 름
발이거든요."
동생에게 저런 자 동차를 사주는 형님이 되고 싶다. 이것이 사랑이라는 거예요. 이것 이 행
복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들어보십시다. '주는 자가 복이 있 다.' 여러분, 얼마까지 받
으려고 하는 겁니까? 얼마를 더 받아야 하겠습니까? 전 우리 식사 기도 같은 거 할 때에
너무 식사 기도가 길어지는 거 저 못마땅해해요. 식 사 기도 할 때에는 '하나님, 이렇게 맛
있는 음식, 좋은 음식 주셔서 감 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하는 마음 으로 먹겠습니다. 아멘'
했으면 딱 좋겠는데 거기다가 줄을 다는데 '이 음식 먹고 건강하여……, …하 여 …하여 주
십시오.' 그만큼 주셨 으면 됐지 무얼 또 달라는 겁니까. 잘 준거 먹으면서 또 달란 얘기뿐
입니까. 그 욕심은 끝도 없는 겁 니다. 이렇게 왜 달란 얘기가 많 은지, 거지 보따리를 차고
사는지 왜 이 모양이요.
여러분, 이제는 제발 정말 내 동 생에게 자동  하나를 사주는 형이 되고 싶습니다. 왜 이
같은 마음 은 없던가. 하나님이여 남에게 주 는 사람되게 해주세요. 줄 수 있 게 해주세요.
좀 더 후하게 줄 수 있게 해주세요. 언제 우리는 이 수준을 도달하겠습니까! 의를 주 고 생
명을 주고 음식을 주고, 받는 자가 아니라 주는 자가 복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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