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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18,185편 ◑/곽선희목사 1,910편

성령이 증거하시는 바! (롬 8:12-17)

by 【고동엽】 2022.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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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증거하시는 바! (롬 8:12-17)

 

어떤 날 호랑이 새끼가 어미 호 랑이와 놀고 싶어서 등에 업히기도 하고 목을 끌어안기도
하고 여러 모 양으로 장난을 치고 있었답니다. 어미 호랑이가 이것을 귀찮게 여겨 서 물리
치려고 해도 끝내 말을 듣지 않습니다. 마지막에 크게 으르렁대 면서 목덜미를 물려고 하니
까 이때 에 새끼호랑이가 겁이 나서 물러서 면서 하는 말이
"나 호랑이 새끼 맞 아?"
그랬답니다. 어미가 말하기 를
"그럼 내가 낳았지. 그러니까 너 는 호랑이다."
또 물어 보았습니다.
"나 어미 호랑이의 새끼 맞아?"
자 꾸 물어 보니까 귀찮아서 끝에 가서 하는 말이
"야, 이 개새끼야"
그랬 답니다. 졸지에 그만 호랑이가 개 가 되고 말고요 어미 호랑이는 또 역시 개가 되고
말았어요. 작은 새 끼는 강아지가 되고 말았단 말입니 다.
여러분 정체감에 문제가 있습니 다. 내가 누굽니까? 여러분은 스 스로를 누구라고 생각하십
니까? 많 은 사람들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 습니다. 그것은 나 됨의 정체, 사람 됨의 정체,
하나님의 자녀 됨의 정 체를 잃어버릴 때 문제가 되는 것이 올시다. George H. Bush 라고
하 는 미국 전 대통령을 아실 것입니 다. 그가 대통령 현직으로 있을 때 에 한적한 시골의
초등학교를 방문 하게 되는데, 거기서 큰 곤혹을 치 렀다고 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한 꼬마,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앤소 니 핸드슨이라고 하는 이 꼬마가 부 시 대통령에게 말하기를
"할아버지, 할아버지 대통령 맞습니까? 증명해 보세요."
아 이거 부시가 난처하게 됐습니다. 대통령 증명서는 없거든 요. 그래서 기껏 하는 것이
Driver's License, 미국 사람들은 그 게 제일 큰 증명서거든요. 운전면 허증을 떡 내 놓으니

"여기에 대 통령이라고 써 있지 않잖아요."
크 래디트 카드를 보여도
"여기에도 대 통령이라고 써 있는 게 없잖아요."
대통령 맞느냐고, 어린아이의 말에 뭐라고 대답 할 길이 없네요. 쩔쩔 매고 있다가 밖으로
나가니까, 운동 장에 나섰더니 거기에 까만 썬그라 스를 낀 아주 우람하게 생긴 대통령 호
위하는 분들이 쫙 모여들고, 커다 란 리무진 자동차가 거기에 있어서 거기에 올라타는 걸보
고 그때에 이 꼬마가 하는 말이
"와 진짜다."
그 랬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 된 증거 가 뭡니까? 도대체 뭘 보고 인정하 라는 겁니까? 머리를
보나 팔을 보 나 행동을 보나 생각하는 걸 보나 하나도 하나님 닮은 데가 없어요. 하는 짓
들이 믿음이란 조금도 없어 요. 이러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 고요? 만일에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다면 당신들이 살아 있기 어려 워요. 이렇게 행동하고도 하나님의 자녀라고? 염치
도 없습니다. 도대 체 내가 하나님의 자녀됨이 뭐냐 하 는 겁니다. 스스로 자기가 자기를 증
거하지는 못합니다. 증거가 있어 야 됩니다. 누군가가 증거해줘야 됩니다. 무엇을 통해서 내
가 하나 님의 자녀라고 실적을, 성과를, 열매 를 보여야 됩니다.
오늘 성경말씀에는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 니라고, 8장 9절에 명백
하게 말합니 다. 또 그리스도의 영으로 인도함 을 받는 그들이 곧 하나님의 아들이 라고 이
두 가지, 확실하게 말씀합 니다. 미국에 유학을 가 있는 젊은 목사, 이름을 대지 않겠습니다.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이 같이 지내면서 가만히 보니깐 좀 시원치 않아서
"당신 예수 믿어요?"
하고 물었어요. 대답하기를
"우리 아버 지가 신학대학 총장인데."
저 쪽에 서 다시 물어 봅니다.
"당신 아버 지, 신학대학 총장과 당신하고 무슨 상관이요."
또 심각한 말을 했습니 다.
"나 목사"
라고. 그러니까
"당 신 목사라는 직업하고 당신 예수 믿 는 거하고 무슨 상관이요?"
대단히 심각한 얘기입니다. 여러분이 받은 직분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요? 그 리스도의 영
으로 인도함을 받을 때 그리스도 인이요, 그리스도의 영이 그 속에 있을 때 비로소 하나님
의 자녀인 것이에요. 철학자 루소는 인간을 이같이 개탄하며 탄식 조로 설명한 일이 있습니
다. 인간들이 보통 인간들이 십대는 과자에 움직 이고, 이십대는 연인에 움직이고, 삼 십대
는 쾌락에 움직이고, 사십대는 야심에 움직이고, 오십대는 탐욕에 움직인다. 이 오십대가 넘
어서기 시작하면 이 명예에 욕심을 가지는 거예요. 때때로 보면은 면 위원으 로 나오겠다고
재산 다 털어넣는 사 람이 있어요. 도위원 한번 하겠다 가 재산 망쳐버리는 사람도 있잖아
요. 이 명예, 하찮은 명예, 여기에 다 목숨을 걸어요. 하찮은 일에. 정말 시원치 않은 일에
목숨을 걸고 인생 다 망쳐버리는 불쌍한 사람들 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왜 이 러는 것입
니까? 왜 인간은 고작 요 거 밖에 않되느냐 그 말이요. 이것 이 루소가 개탄한 부분입니다.
그 렇다면 여러분 그리스도인이란 성령 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요. 그리 스도의 마음으로
가득한 사람이요. 남이야 뭐라고 말하든 그 얼굴은 그 리스도의 영광으로 충만한 사람이 요.
그리스도의 영이 있어서 그리 스도인이요.
로마서 7장 23절 이하에 보면 사 도바울은 많이 고민합니다.
"원하 는 선은 행할 수 없고 원치 않는 죄 만 짓는다. 죄가 나를 사로잡아 오 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 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자기 자 신을 객관시하고 자기 정체를 똑바 로 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그는
이 문제에 대해서 결론을 내립니다. '오직 성령이 나를 자유 케 하시는 거다.' 그리스도의
영이 모든 죄와 율법으로부터 나를 자유 케 합니다. 이것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요, 이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닙 니다. 영적인 문제입니다. 신비롭 게 영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 래
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을 때, 그 로 인해서 성령 안에서 자기 정체감 을 확인하게 될 때 이
것이 그리스도 인이란 말입니다.
저희 교회에서 장로로 시무하다 가 세상을 떠난 어느 장로님, 임종 직전에 제가 만났을 때,
그는 무릎 을 꿇고 회개의 기도를 하고 있었습 니다.
"뭘 하고 있는 겁니까?",
"회 개하고 있습니다. 일생 동안 지은 죄를 다 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 데 여기에 고민이
있습니다.",
"왜 요?",
"회개의 기도를 못하겠습니다. 회개하려고 '아무 때, 아무 때 그 내 잘못입니다. 내가 잘못
한 것이었습 니다' 라고 회개하자마자 옆에서 음 성이 들려옵니다. '그 때도 내가 너 를 사
랑했다.' 그래서 회개하려고 하면 또 '사랑…….' 나는 감사의 기도 외에 아무 말도 할 말이
없습 니다."
그래 제가 그랬어요.
"장로 님 참 예수 잘 믿습니다."
여러분 회개하고 뉘우치고 가슴을 치고 이 것 때문에 우울증에 걸려 죽어가도 그런 회개가
아니에요.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가운데 있어서 나는 죄인 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
됨 을 확인하고 내가 잘못한 것이 분명 한데도 그 위에 더 크고 놀라운 하 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셨음을 깨달 으면서
"주여 감사합니다."
그리스 도의 영에 끌려가고 있을 때, 그 인 도함을 받을 때 바로 이것이 그리스 도 인이에
요. 이건 율법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래서 내 몸은 밝은 이 성의 지배를 받고 내 이성은 영
의 지배를 받고 내 영혼은 그리스도의 영에 인도함을 받을 때, 그가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존 번연이 지은 유명한
"천로 역 정"
이라고 하는 그런 책이 있지요. 어떤 사람은 이것을 극찬해서 이걸 성경 다음으로 가는 책
이라고까지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름지 기 우리 모두가 다 이 책을 한 번쯤 은 다
읽은 줄 압니다. 그런데 그 거기에 보면 그리스도인이 순례의 길을 떠납니다. 하늘 나라를
향해 서 멀리 여행을 떠나는데, 그 어느 곳에 가서 한 방에 들어가 보았더니 그 방에서 누
가 청소를 하는데 그저 비로다가 먼지를 열심히열심히 쓰니 까 그 먼지가 일어 나가지고 눈
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뽀얗게……. 쓸려고 하면 할수록 더더 방이 어지 러워지고 더러워지
는 것을 보았어 요. 이제 인도자에게 묻습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저것이 율 법이니라. 바르게 해보려고 애쓰고 또 애쓰고 노력하면 할수록 점점 더 죄가 많
아지고 점점 더 어지러워지 느니라."
바로 옆방을 들어가 보니 까 그 옆방에는 먼지가 똑같이 많은 데 쫙 다 물을 뿌리고 그리고
청소 를 하니까 깨끗하게 청소가 되요.
"이건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 성 령이니라. 이건 은혜의 역사니라."
여러분 내 노력으로 바로 해 보려 고, 뭐 큰 일 해보려고 몸부림치고 애써보세요. 볼수록볼
수록 점점 더 먼지만 나요. 점점 더 형편없는 인 간이 되어 가는 것을 여러분이 체험 할 것
입니다. 오직 은혜, 오직 성 령, 역사 안에서만 깨끗하게 모든 율법과 죄와 허무함과 불의함
으로부 터 자유할 수 있는 것이에요.
또 한 가지는 오늘 성경은 분명 히 말합니다. 양자의 영이라고 했 습니다. 이건 본 아들이
아니에요. 잘못된 자녀지만은 이제 양자가 되 었다. 그래서 두려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했
고, 양자의 영을 받았느 니라. 우리 마음속에 양자의 영이 있다는 거지요. 양자됨이 이루어
졌 다는 거죠. 그건 자유의 영이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선택 속에서 이루어지는 겁니다.
양자라고 하면 은 전에 내가 속했던 그 가정의 모 든 문제와 내가 무관합니다. 신분 과도
무관합니다. 옛날에 내가 종 의 노예 생활을 했다 하더라도 이제 오늘 내가 귀족에게 양자
되면 귀족 입니다. 그 날부터 귀족입니다. 이 것이 양자라는 것이에요. 또한 옛 집에 모든
책임과 또 그 부채로부터 무관합니다. 옛날에는 부채는 꼭 갚아야 되요. 요새 보니까 뭐 감
옥 에 가서 몇 달 살다 나오면 다 끝난 다고 합디다만은 옛날엔 그렇질 못 했어요. 한 번
빚을 졌으면 갚아야 되요. 죽을 때까지 갚아야 되요. 못 갚으면 자식이 갚아야 되요. 자 식
이 노예로 팔려가요, 돈이 없으면. 그리고 또 몸으로 팔려가서 마누라 도 팔려 가는 거예요.
이렇게 빚이 무서웠어요. 그런데 이제 문제는 내 본 집이 지금 엄청난 빚더미에 앉아서 나
는 꼭 노예로 팔려 갈 수 밖에 없는 존재예요. 그러나 그 누 군가가 와서 이 사람을 다른
집으로 양자로 데려 가면은 그 모든 책임으 로부터 벗어납니다. 이게 기가 막 힌 거예요. 그
래서 오늘 성경 말씀 에 '우리는 다 같이 빚진 자' 라고 하는 말이 여기서 나온 거예요. 우
리는 그래서 모든 옛 빚으로부터, 죄의 빚으로부터 자유했다 하는 말 씀이고요.
또 하나는 이제 양자 된 이 집의 모든 신분을 내가 그대로 일시에 물 려받는 겁니다. 유산
도 물려받고 신분도 물려받아서 역사에 보면은 클리우디우스라고 하는 황제, 로마 황제의
아들 네로가 있습니다. 그 네로는 원래 노예의 자식입니다. 노예의 자식인데 클라우디우스
황제 의 양자가 되어서 대 로마 제국의 왕이 됩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 니다. 그래서 양
자가 되면 바로 그 순간 이 집의 모든 권리를 내가 물 려받고 뿐만 아니라 그 신분까지 그
명예까지 다 물려받는 것이요. 이 양자올시다. 참 문제가 좀 있습니 다. 외국에는 양자 법이
많아요. 중국에도 그렇고 서양엔 더더욱 그 런데 우리는 참 이 문제의 문제가 많아요. 그래
서 이 아이들을 외국 까지 팔아먹고 말야 이렇게 돼서 부 끄러움을 사고 있지 않습니까? 우
리의 자녀들을 우리가 양자 해야 되 겠는데 이게 잘 안돼요. 보세요. 이 이게 핏줄기의 고정
관념 때문에 문제요. 그래서 양자를 해서 외국 가서 그 핏덩이를 데려다가 잘 키워 가지고
노니까 또 친부모를 찾겠다 고 한국까지 옵니다. 이게 망조라 는 거예요. 얼마나 슬픈 얘기
입니 까? 양부모가 좋아서 알선해 줍디 다만은 왜 이러해야 되느냐 하는거 에요. 낳자마자
단 한 번도 젖 한 번 먹여보지 않은 어머니를 왜 어머 니라 불러야 됩니까? 이게 유교적 고
정관념이에요. 양자 되었으면 이 제는 그 집, 엄연히 그 집 아들이요 그 집 자녀입니다. 그
도리를 다 해야지 뭘 이제 그걸 뭐 20년 30년 전 핏줄기를 찾겠다고 몸부림치고 만났다고
울고……. 이거는 세계 사람들이 보면서 참 웃긴다고 그럽 니다 이게. 부끄러운 일이올시다.
양자 됐으면 잊어버려. 그리고 오 늘 내 신분만이 이것이 내게 주어진 신분이에요. 이걸 알
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합 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적 선 택권에서 이루어지는 거
예요. 자 양자할 때, 양자 해놓고 키워가다가 쓸만하면 호적에 올리는 겁니까? 그게 아니에
요. 그저 핏덩이든 몇 살이든 일단 먼저 딱 호적에 올려놓 고 양자를 만든 다음에 그 다음
에 양자로 키워가는 거죠. 이것이 양 자예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되 었다는 것은 우리의
자녀나, 우리의 수준이나 우리의 어떤 도덕적 수준 묻지 않아요. 먼저 양자 하시고 그 다음
에 하나님의 자녀로 자라도록 키우시는 거예요. 양육하시는 것이 란 말입니다.
저는 이 얘기를 할 때마다 늘 마 음에 생각나는 얘기가 하나 있어요. 제가 인천에서 목회할
때의 일입니 다. 장로님에게 아들이 없어서 늦 게, 그냥 괜찮다괜찮다 하다가 나이 많아져서
는 생각이 달라졌어요. 이 것도 또 우리 고유한 문화지요. 그 래가지고 하나 양자를 했어요.
아 주 어린 걸 했으면 차라리 좋을 걸 한 네 살인가 그렇게 되는 아이를 하나 양자를 했어
요. 걔 생일날이 됐어요. 제가 갔었는데 걔 생일날 음식을 다 차려놓고 감사기도를 했 어요.
감사기도 하고 나니까 여기 에 놨던 맛있는 과자 몇 개가 없어 졌어요. 기도하는 동안에 애
가 갔 다 감춘 거예요. 장로님이 이걸 놓 고 눈물을 흘리는 걸 보았어요. 이 거 내 아들인데
내가 네게 다 주었 는데, 오늘도 죽으면 이 재산이, 큰 빌딩이 네 건데 왜 너는 그렇게 과
자를 갖다가 감추느냐 이거예요. 이건 고아원에 있을 때 버릇이거든 요. 이 집의 양자가 됐
지만은 아직 도 그 버릇이 좀 남아 있어서 이걸 고치기가 어려워요. 많은 시간이 걸리더만
요.
오늘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 되기는 했지만은, 그저 어떤 사람은 무당 끼가 좀 있어서
어떤 사람은 점보는 끼가 좀 있고 어떤 사람은 그저 그 못된 끼들이 아직도 남아있 었어요.
가끔 보면은 한심한 짓을 좀 해요. 그러나 양자됨은 분명해 요. 이 사실은 의심할 필요가 없
어 요. 그래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 라. 하나님을 아버
지라고 부르는 거 이게 보통 특권이 아닙니다. 예 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하나 님은,
심지어는 하나님이란 말씀도 없어요. 주기도문 가운데 보면 '하 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
러고 끝 났어요. 감히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러요. 누가 날더러 아버지라고 부를 겁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요새 이 교회에 못 나옵디다만은 가 끔 몸이 아파서 못 나온다는데, 대
전에 있어요 그 청년이. 그런데 가 금 교회에 나와 가지고는 내가 예배 마치고 나가기만 하
면 붙들고
"아버 님, 아버님"
자꾸 그래서 아주 힘들 어요. 그래
"내가 어떻게 니 아버 지냐?"
그러니까
"아버지고 말고 요."
요새도 가끔 내가 운동을 하다 보면은 전화가 왔다고 그래요. 그 래 누군가 받으면은
"아버님 안녕하 세요."
그래요. 글쎄올시다. 진짜 내 아들이 날더러 아버지라고 부르 면 나를 기쁜 게 하는 것이지
만 자 이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청년이 날 더러 아버님이라고 부르는 건 나를 힘들게 하는
거예요. 누가 나를 아 버지라고 부를 것입니까? 마찬가지 로 감히 하나님을 누가 아버지라
고 부를 것입니까? 하나님을 아버지라 고 불러서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자,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자, 바로 그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 이에요. 성령 안에서 아바 아버지 라고
부릅니다. 아빠라고 하는 말 은 이건 아람어입니다. 아람어나 한국어나 만국 통일어요. 아주
어 렸을 때는 아빠 아빠 그러지 않습니 까? 그래서 '아빠 아버지' 하고 번 역을 한 겁니다.
너무너무 귀한 말 씀이에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바로 거기에 내 정체가 있 습
니다.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는 후 사라고 했습니다. 후사, 이거 또한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후사 가 되었습니다. 이 물에는 수압이 라는 게 있습니다. 그래서 우린 물 속에 깊이
들어가면 파열돼서 죽습 니다. 사람이 살지 못합니다. 그래 서 물 속 깊이 탐색하기 위해서
아 주 강철로 굉장히 튼튼한 강철로 배 를 만들었어요.
"프레시 호"
라고 하는 배를 만들어 가지고 바다 깊이 들어갔는데 이건 강철이니까 틀림없 을 거라 생각
했는데 파열이 됐어요. 그런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바다 깊은 속에 물
고기는 삽니다. 그 깊은, 수압이 높 은 그 속에도 물고기는 살아요. 어 떻게 살아갈 수 있느
냐 이거예요. 중요한 건 이것입니다. 그 물의 수 압과 물고기의 자기 몸 안에 있는 압력이
같기 때문이에요. 그래야 살아 남을 수 있는 거예요.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 시기 때문에 그가 우리의 후견인이 됨으로서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자녀 임을 확정해 주
실 때, 비로소 우리 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 갈 수 있 는 것이올시다.
'레 미제라블' 이라고 하는 소설 여러분이 잘 알 겁니다. 레 미제라 블에 그 보면은 이 빅토
르 위고의 책 가운데 고아소녀 코제트라고 하 는 소녀가 나옵니다. 불쌍한 고아 입니다. 지
금은 양부모가 돌아보아 주기는 하지만은 여러 가지로 어렵 습니다. 밖에 나가서도 업신을
받 고 가정 안에서도 그렇고 집안에서 나 밖에서나 정말로 겨우겨우 어렵 게 살아가는 모든
고통을 겪고 있는 어린아이입니다. 불쌍한 아이입니 다. 그러나 그 뒤에 장발장이라고 하는
엄청난 부자가 저의 후견인이 됩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할 때 애는 그 때부터 신바람이 납니 다. 거침없이 활발하게 명랑하게 살아가는 걸 볼 수가
있습니다. 하 나님이 내 후견인이요, 그리스도가 내 후견인이요, 성령이 이것을 증거 해 주
실 때 신바람 나게 살아 갈 수 있는 것이에요.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 이 나의 나 됨을 증거 하십니다. 그런고로 율법과 죄로부터
자유합니 다. 오직 그 안에 사랑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의 자녀된 사랑이 나와 함께
하심을 확증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고난을 당해도 문제 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건 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되는 일입니다. 병들었습니까? 그 건 하나님의 사랑
이요, 실패했습니 까? 그 속에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 이 있음을 성령이 증거해 주십니다. 예
수님을 보세요. 눈 앞에 십자가 가 있을 때, 요한복음 18장에
"아버 지께서 내게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
사랑하는 아버지가 사랑 하는 아들에게 주는 십자가로 그렇 게 믿기에 십자가를 질 수 있었
던 거예요. 그런고로 우리는 오늘도 그 크신 성령의 역사 안에서 하나님 의 자녀임을 확증
받을 수 있을 때 모든 사건에서 모든 환경에서 계속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며 살아가게 되
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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