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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경기자의 윤리! (고전 9:22-27)

by 【고동엽】 2022.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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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경기자의 윤리! (고전 9:22-27)
 

독일에서 출간된 지 2주일만에 7만 부나 팔렸다고 하는 베스트셀러 한 권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번역되고 많은 사람들이 즐겨 읽고 감동을 받은 책입니다. '요쉬카 피셔'라고 하
는 분이 쓴 "나는 달린다" 라고 하는 아주 평범한 책입니다. 저자는 (전문)작가가 아닙니다.
현재 독일에 연방 공화국에 외무부 장관이면서 동시에 부총리이기도 한 분입니다. 얼마 전
에도 우리 나라에도 다녀간 일이 있는 그 분입니다. 물론 이 책은 이분이 정치인으로써 정
치 평론을 한 그런 책은 아닙니다. 다만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한 경기자 인생을 묘사한 하
나의 간증서입니다. 자기가 경험한 인생, 자기가 산 생을 아주 진솔하게 이렇게 간증함으로
써 많은 사람에게 깊은 감명을 주고 있습니다. 이 피셔 장관은 그 이력이 남다릅니다. 푸주
간집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삶의 밑바닥을 헤매는, 그리고 방랑하는 많
은 시간들을 보내고 택시운전기사 일까지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35세 때에 연방 의회에
진출합니다. 그리고 헤센주 환경장관이 되면서부터 일약 정치가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는 어
려서부터 스포츠를 즐겼고 181센티미터라고 하는 훤칠한 키에 75kg의 몸무게를 가진 아주
당당한 그러한 청년이었습니다만은 그가 정치 성공을 위하여 열심히 뛰는 가운데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면서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마다 먹고 마시고 그렇게 했더랍니다. 이제 그 결
과로 몸무게가 112kg가 나가는 그런 거구가 되어 버렸습니다. 1996년에 마침 그의 아내는
별거를 선언하고 이혼을 하기까지 됩니다. 이유는 너무 뚱뚱하다는 겁니다. 이제 그는 그것
을 계기로 해서 자신을 위한 중요한 계획을 세웁니다. '이럴 수 없다.' 그래서 그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75kg으로. 방법은 달리기. 그리고 원칙은 과감한 결단, 끈기 있는 지속, 철저한
현실에서 출발하는 생활, 그리고 꾸준한 인내. 이렇게 해서 75kg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오
늘에 정치인이 되었는데 그가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내 몸 하나도 내가 조정하지 못한
다면 내가 무슨 일을 하겠느냐?" 내 몸 하나도 내 마음대로 못하는데 내가 무슨 일을 하겠
느냐. 간단한 말이지만 위대한 선언입니다. 다시 한 번 들어보세요. 내 몸 하나도 내 마음대
로 못하는 인간이 무얼 하겠다는 거냐?
오늘 본문에 보면 인생을 한 경기자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 운동선수의 모습으로 사람을
비유해서 말합니다. 여기 몇 가지 운동하는 사람에게 주어진 철학이 있습니다. 운동경기장에
나선 사람, 첫째는 향방을 정해야 합니다. 목적과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목적이라는 것은
추상적인 겁니다. Purpose. 목표는 Goal 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구체적인 겁니다. 여러분, 때
때로 보면은 구체적인 목표는 있는데 추상적 목적이 없어요. 추상적 목적은 있는데 구체적
인 목표가 없어요. 이 둘 다 잘못하고 있는 거예요. 목적은 언제나 추상적인 것이요. 높은
것이어야 합니다. 목표는 그에 따르는 구체적인, 내 앞에 있는 현실이어야 합니다. 운동하는
사람은 목적의식이 분명하고 동시에 목표가 분명해야합니다.
제가 젊었을 때 인천에서 15년 동안을 목회했습니다. 목회하면서 동시에 신학대학에 교수로
나가고 여러 대학에 강사로 나가고 그러면서 일주일에 4일을 서울로 출근을 했습니다. 출근
하는 길은 지금같이 무슨 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늘 기차로 다녔습니다. 그러니까
뭐 새벽부터 밤까지 어지간히 바쁜 세월을 살았는데 그저 기차 안에서 그 시간을 낭비할 수
가 없어서 책을 읽기 시작을 했어요. 그 기차 안에서 책을 많이 읽었어요. 서울역에 나가서
인천 가기 위하여 기차표를 사 가지고 기차를 타고, 전과같이 습관에 따라서 책을 펴 들고
아무리 시끄러워도 나는 집중적으로 책을 보고 있는데 한참 보다가 차창을 내다보니까 바깥
경치가 틀려요. 보던 경치가 아니더라구요. '아 이거 웬일인가' 하고 알아보았더니 제가 기
차를 잘못 탔어요. 아 인천으로 가야 할 사람이 안양으로 가고 있더라구요. 그런데 그날 따
라 수요일 저녁입니다 이게. 이게 빨리 돌아가서 설교를 해야되겠는데 아이고, 안양에서 내
려서 버스를 타고 가는데 이 버스가 얼마나 느린지 좌우간 간신간신히 예배 시간에 도착을
했어요. 저녁도 먹지 못하고 제가 저녁 설교를 한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이 경험과 함께 제
가 중요한 진리를 하나 깨달았습니다. 아주 평범한 거예요. 아무리 바빠도 기차는 바로 타
라. 바쁘다고 기차를 바꿔 타서야 되겠습니까? 목적을 분명히 하라 이 말이에요. 목적은 분
명히 하라. 요새 우리는 가끔 보면은 노하우(Know-how)라는 말을 많이 들어요. 노하우, 노
하우, 노하우. 노하우는 있는데 노와이(Know-why)가 없어요. 이 결정적인 약점입니다. 여기
헛점이 있는 겁니다. 어떻게 하느냐에 대해서는 도사까지 된 거 같은데 기술자도 있고 지식
인도 있는데 노와이가 없어요. 목적을 잃었어요. 여러분, 무슨 일을 하던지 D-day를 생각해
야 합니다. 이 시간이 이대로 머물러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저 마지막 종착을 생각해야
지요. 최종 목적을 생각해야지요.
가끔 제가 가르친 제자들이나 혹은 후배들 찾아와서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하고 지금 어떻게
하고……" 이런 이야기를 의논할 때가 많이 있어요. 저는 언제나 하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십년 후에 당신이 어떤 사람으로 나타나 있을 것 같으냐? 십년 후에 내가 어떤 사
람이 될 것이냐, 그걸 정하고 오늘을 결정하라. 오늘 이 한 사건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십
년 후에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냐? 그 때를 생각하고 오늘 문제를 해결할 것입니
다" 라고 얘기합니다. 좀더 하고 싶은 말이 하나 있습니다. 내가 죽을 때에는 어떤 모양으로
죽을 것이냐? 그리고 오늘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Final goal, Ultimate concern, 마지막 문
제 D-day의 문제, 그걸 잊어서는 안돼요. 그것부터 미리 생각해 놓고 거기에 따라서 오늘
하루하루를 결정해 나가야 한다 그말이요. 운동선수는 골인 장소를 먼저 생각합니다. 마지막
승부를 생각하고 그날을 위하여 오늘을 사는 거 아니겠습니까? 어찌 그 현장에 나가서 뛰는
것만 있겠습니까? 그 일생 전부가 마지막 하나의 그 순간을 위하여 거기에 집중적으로 투자
해 나가는 것이죠.
그리고 오늘 본문에 보면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고 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의미의
문제입니다. 허공을 친다. 현재 철학의 가장 무서운 과제가 Nihilism 입니다. 허무라고 하는
겁니다. 의미를 잃어버렸다는 거죠. 무슨 일을 해도 그것에 담긴 아주 무거운, 확실한 의미
가 있어야 하는데 의미 창조에 구멍이 났어요. 거기에 문제가 있는 것이에요. 요새 젊은이들
을 상대로 해서 전문 연구 기관에서 한번 통계를 내 보았답니다. "결혼은 꼭 해야되느냐?"
하고 물었더니요 통계가요 '17%만이 결혼을 해야한다'고 생각했대요. 40%이상이 '그거 꼭
해야할 이유가 없다' 그런답니다. 물론 자기 마음대로 하겠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50, 60
이 되면은 땅을 치며 후회할 것입니다. 지금 편리한 생활 이거 하나 때문에 미래를 잃어버
리고 있는 거예요. 삶의 의미마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에요.
전 맥아더 장군의 기도문을 종종 외어봅니다. 너무 좋은 기도문이기 때문에요. 영어로 읽어
나가다 보면 맨 마지막에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여,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헛된
생을 살지 아니하였다 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 내용이 뭐냐. 나에게 이런 아들
을 주시옵소서. 내 아들이 이렇게 살아가길 바랍니다. 쭉 말하고 나서 끝에 가서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헛된 생을 살지 아니하였다 하게 하옵소서." 이것이 가정입니다. 가정에서 삐꺽
하면은 인생은 완전히 헛된 생이 돼버리고 맙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남는 게 뭐겠습니
까? 뭘 남긴다는 겁니까? 무엇으로 이어지는 것입니까? 순간의 일만 생각하고 의미없는 헛
된 영광을 추구하는 그 군상이 바로 오늘의 현실이란 말입니다.
목회상담학자인 하워드 클라인벨이라고 하는 분이 쓴 Well Being 이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
다. 거기에서 Empowering your mind 라고 하는 그런 부분에서 "사람의 마음에 힘을 주는
일이라는 게 어디서 오느냐?" 이렇게 말합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가치를 지니
고 태어난 존재라고 하는 자기 존재 의식, 다시 말해서 자존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의미있게 태어난 것이요. 내가 알건 모르건 간에 내가 세상에 태어난 것은 하나님이 내게
꼭 어떤 의미를 담아서 나로 세상에 존재하게 했다. 그런고로 나는 소중하다. 자기 자존감이
있어야 하고, 둘째는 자신이 해야할 일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서 내가 기술과 지식을
습득해야한다. 즉 능력을 얻어야한다. 능력은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다. 그런고로 능력을 얻
어서 능력의 사람이 되어야된다. 셋째는 스스로를 이끄는 내적인 힘이 있어야한다. 자신감이
있어야되요. 내가 나를 못 믿는데 누가 나를 믿어줍니까? 내가 나를 못 믿는 주제에 누구를
믿어라 할 것입니까? 자신이 자기를 믿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 그러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라.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라" 이렇게 당부하고 있습니
다. 여러분, 의미가 없는 일처럼 피곤한 일은 없습니다. 의미창조.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
어진 가장 소중한 문제올시다.
또 한가지는 그러기 위해서 오늘 본문을 보면은 "내 몸을 쳐서 복종케 한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 몸을 쳐서 복종케 한다. 길게 설명했지마는 한 단어입니다. 둘라고고 그랬습니
다. '둘로스' 라는 말은 '노예' 라는 말이고 '아고르' 라는 말은 '인도한다' 는 뜻입니다. 노
예를 인도한다. 의역을 하면은 '노예를 길들인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내 몸을, 내 몸을 길
들여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그런 말이 있잖아요.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고. 이
몸을 내 마음, 내 몸을 내 마음대로 못해요. 가장 가까운 내 몸을 내 맘대로 못한 이것 가지
고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어요. 운동선수라는 건 바로 거기에 있는 거예요. 자기 몸을 강하
게 훈련해서 길들여 나가는 것입니다. 이거는 Self-discipline 입니다. 자기를 훈련시키는 겁
니다. 그러기 위해서 버리는 훈련이 있어야지요. 욕심을 버리고 시기를 버리고 헛된 생각을
버리고 게으름을 버리고, 버려야할 것을 과감하게 버리는 그 용기가 있어야 되요. 그 훈련.
또 얻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온유와 겸손과 진실, 좋은 습관을 길들여가야 합니다.
몸을 길들여야 됩니다. 우리 가운데는 새벽기도에 나오는 분들이 많습니다. 제가 아는 대로
는 '나도 새벽기도에 나오고 싶다' 하고 마음에는 원이로되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이
야기인 즉은 몇 일 나와 봤더니 하루종일 정신이 없더랍니다. 졸려 가지고. 그래 나보고 묻
기를 "아이고 목사님은 그렇게 한 평생하고 어떻게 삽니까?" "나 살아있지 않소. 당신보다
내가 건강한데." 여러분 생각에는 일찍 일어나면은 약해질 거 같죠. 나하고 내기합시다. 아
침 일찍 일어나야만 건강하게 돼있는 게 사람이에요. 자 그런데 이거 하나를 못하는 거예요.
빠지지 않고 3년을 해야 되는 거예요. 3년은 해야 몸이 길들여지는 거예요. 바이오 리듬이에
요. 몸은 하나의 리듬을 타는데 리듬이 삐뚤어진 것을 바로잡으려면은 무려 3년이 걸린다는
이 말이에요. 그것뿐입니까? 모든 일이 시간이 걸리죠. 내 몸, 내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는데
요만한 거 하나도 3년이 걸리는데요 그걸 하루아침의 결심으로 해결하려 그래요? 그렇지를
않아요. 더구나 우리 마음, 내 진실한 마음, 내 겸손한 마음, 내가 바라는 바람직한 마음을
가지려고 하는데 이거 하나 훈련하는데 이게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립니까?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겁니까? 많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뿐 아니라 오늘 성경에는 절제한다 했어요. 절제! 이 절제가 뭡니까? Self-control, 자기가
자기를 다스리는 거예요. 절제가 없는 운동선수는 바랄 것이 없어요. 오랜 전 얘기입니다만
은 실례가 되어서 제가 이름을 대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이 아는 권투 선수인데 세계타이틀
에 도전해서, 거 여러 번 여러 번 애써가지고 세계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1차 방어전을 일
본에서 하게되는데 일본 가서, 아니 그래 방어전을 몇 번 해야지 한 번 타이틀 얻어 가지고
그 다음에 1차 방어전에서 그대로 KO 가 됐어요. 그 신문에 해설 난 것을 보고 제가 한참
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패했느냐구요? 그래 일본 가서 권투 시합하기 전 날 술 마셨대요.
이 사람이 선수가 되겠느냐 이거예요. 뭘 더 기다려야 되요. 그거 하나 이기지 못하는데. 절
제가 없는 사람, 아무 일도 바랄 게 없어요. 자기가 자기를 긴 훈련 끝에 다스릴 수 있어야
돼요.
디모데후서 2장 5절에 보면 법대로 경기하지 못하면 상을 얻지 못한다. 법대로 경기하는 것
도 훈련이요. 긴 시간 훈련을 해야 법을 지키게 되어있는 것이지 하루아침에 이게 지켜지나
요? 아무리 거기다가 무서운 형벌을 가한다 하더라도 그거 가지고 되는 게 아니에요. 법 지
키는 준법도 오랜 기간 훈련을 해야된다 그 말이에요.
특별히 중요한 게 있습니다. 그것은 Time Managing 입니다. 시간을 조절할 줄 알아야 됩니
다. 운동선수에게서는 시간이 금입니다. 생명입니다. 자, 이제 2시간동안 뛰어야하는데 요 2
시간동안 힘을 안배해야 합니다. 그냥 마구 뛰다가 중간에 쓰러지면 안되니까요. 또 마지막
에 힘이 남아도 안되고요. 시간조정을 잘해야 됩니다. 여러분, 이 시간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유일한 자산입니다. 우리는 요만큼의 시간밖에 없어요. 이걸 가지고 우리가 어떻게 살
아가느냐가 중요한 거예요. 그렇지 않습니까?
제가 간혹 외국에 다니다 보면은 우리 한국에서 가서 공부하는 유학생들이 있습니다. 열심
히 공부하는 학생도 있지만은 어떤 학생은 좀 빈둥거려요. 그래 제가 좀 마음이 아파요. 이
얼마나 귀한 돈을 가지고 얼마나 귀한 기회에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데, 그래 이 시간을 이
렇게 보내도 되느냐구요. 이건 안되는 거죠. 큰 죄죠. 죄송하지만 제가 한 5년 유학을 했는
데, 전 여름방학을 방학으로 지내본 일이 없어요. 지금도 옛날에 알던 분들 만나면 "당신은
참 미련한 사람이요. 그래 여름방학 한 번도 놀지않고 밤낮 기숙사에 있더니 오늘의 곽목사
가 됐다" 고 그러더라구요. 글쎄올시다. 어떻게 놀 수가 있습니까? 아, 미국 사람은 놀아도
좋아요. 내가 어떻게 미국 가서 놀 수가 있냐구요. 이게 얼마나 금같은 시간인데. 일생에 딱
한 번 주어지는 기회인데 말이야.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누구에게나 시간은 소중한 거예요.
요것밖에 없어요. 이걸 우리가 어떻게 Manage 하느냐가 참 중요한 것이죠. 요새는 그것을 '
시테크' 라고 그러죠. Time Technology, 시간을 어떻게 기술적으로 사용하느냐가 이게 인
생의 운명, 세계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시간, 아주 소중한 것입니
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남에게 전파한 후에 내가 오히려 버림이 될까 두렵다. 버
림이 된다는 말은 실격자라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누구입니까? 지도자란 누구를 지도한다는
사람이 아니에요. 누구를 인도하겠다고 떠드는 사람이 아니에요. 문제는 자기 스스로 자기를
다스리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한 걸음 앞서가는 사람이에요. 그에게 감동을 받아서 모든 사
람이 그 뒤에 즐거운 마음으로 따라가게 되는 것이에요. 이것이 지도자예요. 자기를 구원하
지 못하고 남을 구원할 수가 없어요. 내가 남을 인도한다고 가르친다 뭘한다 뭘한다 해 놓
고 나는 실격자가 될까 두렵다, 사도바울의 간증입니다. 위대한 사도바울의 간증입니다. 내
가 나를 구원하는 일이 먼저입니다. 그리하고 남을 구원하게 될 것입니다. 한 사람의 경기자
의 모습을 보세요. 그 중에 내가 있습니다. 운동장에서 지금 뛰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어디
로 가고 있는 것입니까? 어디까지 왔습니까?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귀한 시간 주시고, 주의 전으로 불러 주심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경기를 돌아봅니다. 그리 착실한 사람으로 살지 못했습니다마는 하나님이여 우
리에게 은혜 주시사 우리의 남은 시간은 충실한 경기자로 목적을 향하여 바르게 전진하면서
나 자신을 구원하고 내 인격을 구원하고 내 성품을 구원하고 그리고 많은 사람 구원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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