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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료 18,185편 ◑/곽선희목사 설교 1,910편

온전히 충성된 사람! (고전 4:1-5)

by 【고동엽】 2022.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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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충성된 사람! (고전 4:1-5)

 

작년에 여러분께 소개한 책 중에 Jesus CEO, Chief Executive Officer라고 하는 책이 있었
습니다. 지금도 몇 년 동안 세계적으로 비소 설계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는 책 이고 경영
을 하시는 분들이라면은 한번 꼭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우 리말로
"최고 경영자 예수"
라고 하 는 책입니다. 저자 존스 여사는 광 고대행 마케팅 비즈니스 개발 회사 인 존스 그
룹의 창업자이면서 또 동 시에 신앙이 아주 좋은 그러한 사역 자입니다. 로리 베스 존스라
고 하 는 이 분은 자기 스스로 경험하면서 그가 간증하기를
"인류역사상 예수 만큼 완벽한 리더쉽을 보여준 사람 은 없다"라고 전제합니다. 예수님 이
모든 분 가운데 가장 위대한 지 도력을 발휘한 분이다, 라고 전제하 고 그러므로 우리는 그
리스도로부터 지도력을 배워야 한다고 역설합니 다. 예수로부터 배울 수 있는 그 리더쉽 기
법에 가장 기본적인 것이 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을 다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만은 이 점
에서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제가 이 책 을 읽으면서 제일 감동되었던 부분 이 바로 이 점
입니다. 예수님 자신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40일 동안 광야에 나가서 기도합니다. 금식합
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놓고 그리고 사 업을 시작합니다. 바
로 그 점이 가 장 위대한 것이라는 것이죠. 또 이 존스여사 자신도 사업을 위해서 먼 저 하
나님 앞에 나아가서 긴 기도의 시간을 갖고 그리고 일을 시작합니 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
는 깊이 생 각해야될 부분이 있습니다. 이렇게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 앞에 깊은 명
상과 기도의 시간을 가지고 생각하고 세워야 될 것이 있습니다. 첫째가 자신의 정체성 파악
입니다. 내가 누구냐는 겁니다. 자신이 무 엇이냐 하는 겁니다. 나의 존재에 대한 정체성이
확실해지고 이것이 크게 느껴지면은 그 다음에 하는 사 업이라는 것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닙
니다. 이것이 시원치 않기 때문에 별로 크지도 못한 사업을 하면서 휘 청거립니다. 사느니,
죽느니. 조금 뭘 됐다고 해서 교만했다가 좀 안 된다고 해서 자살한다고 야단이고, 이게 뭡
니까? 왜요? 정체성이 없 기 때문이에요. 하나님 앞에서
"내 가 누구냐"
하는 것이 아직도 확실 치 않기 때문이죠. 이것이 먼저예 요. 두 번째는 자신의 위치파악입
니다. 내가 어느 위치에 있느냐?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이웃 앞에, 모든 관계 속에서 내
위치가 어디냐 는 거죠. 이것을 바로 기도 중에 깨달아야하고. 세 번째는 사명파악 입니다.
내게 맡겨진 사명이 뭐냐 는 거죠. 하나님은 왜 세상에 나를 냈으며 내 일생을 통해서 무엇
을 이 루기를 원하시는가? 사명, 이 절대 적 사명, 그러면서도 특별히 개인적 인 사명, 이것
을 알고 여기에 내 충 성을 다하되 생명을 바칠만한, 목숨 을 바쳐도 아깝지 않은 그런 확
실한 사명의식을 가지고 출발해야한다 하 는 것이죠. 여러분 행복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저
는 세 가지를 늘 생 각합니다. 첫째는 하고싶은 일을 하는 사람. 이제는 좀 나이가 드니 까
가는 곳마다 종종 그런 질문을 받습니다.
"목사님 대단히 건강하 시네요. 비결이 뭡니까? 또 보니 까 여러 가지 일을 행하시는데 그
걸 다 감당해 낼 수 있는 그 능력의 비 결이 뭡니까?"
그때마다 저는 준비 된 대답을 합니다. 즐거운 마음으 로 하라고, 무슨 일이든지 기쁜 마 음
으로 하라고, 억지고 하는 일은 피곤해서 못쓴다고. 모든 능력을 다 소진시킨다. 자기 능력
을 극대 화 할 수 있는 길은 기쁨으로 감사 한 마음으로 하는 거다. 감사와 기 쁨, 그것이
건강과 능력의 근본이라 고 늘 그렇게 후배들에게 얘기합니 다. 두 번째는 해야할 일을 하
는 사람입니다. 해서는 아니 될 일을 즐겨서는 안됩니다. 해야할 일을 즐기는 겁니다. 마땅
히 내가 해야 할 일,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할 때에 후회가 없 습니다.
피곤도 없습니다. 유명한 임마누엘 칸트의 말을 저는 늘 생각 합니다.
"You can do it because you should do it.", 너는 그것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마땅히 해야 할 일 을 하게 되면 할 수 있게 됩니다. 그걸 알아야 합니
다. 또 한 가지는 마지막 일을 하는 자가 행복합니다. 준비하는 것도 많고 이제 앞으로 무
슨 일을 하게 될지 잘 모르겠죠. 그러나 이제는 확실히 정해졌습니 다. 이 일을 위해서 일하
다가 여기 서 끝낼 겁니다. 이 마지막 일, 이 종말론적인 일을 하면서 이제 마지 막 길을 밀
어 부치는 바로 그 일은 절대로 피곤하질 않습니다. 그가 행복합니다, 이제 후회가 없으니
까. 여기가지 달려왔습니다. 이제 마지 막 코스를 뛰고 있습니다. 그가 행 복한 거예요. 여러
분 잘 아시잖아 요. 마라톤 선수가 뛰다가 맨 마지 막이 저만큼 가까웠을 때, 저 골인 지점
이 가까웠을 때, 마지막으로 열 심히 뛰지 않습니까. 그때 그 시간 만은 아무 피곤도 없는
것이죠. 인 생을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행복 한 것이다, 라고 늘 생각합니다.
사도바울은 그의 편지 서두에서 늘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 다. 파울로스 아포스톨
로소 툴로스 예수 그리스도, 헬라 말입니다. 바 울, 사도, 종, 예수 그리스도. 이게 뭡니까?
사도라는 것은 높은 이름 입니다. 종, 낮은 이름입니다. 사 도는 영광된 이름입니다. 노예라
고 하는 것은 비참한 이름입니다. 이 두 이미지를 그대로 한 몸에 지니고 삽니다. 사도인 동
시에 노예요, 노 예인 동시에 사도란 말입니다. 이 것이 그의 정체성입니다. 여기에 이방인
의 사도로서의 사명이 있습니 다. 주님의 뜻만을 전적으로 순종 하는 노예 됨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 울은 자기의 정체에 대하여 두 가지 비사를 써서
우리에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일꾼 이요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 지어 다"
이게 정체성입니다. 자 이제
"일꾼"
이라는 말, 좀 생각해보겠습 니다. 마침 이 말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 말입니다. 슈페리티스
라고 하는 이 헬라 말의 뜻은
"노를 젓는 자다"
하는 뜻입니다. 그것도 밑에 서 노를 젓는 자 그런 뜻입니다. 여러분 거북선을 좀 생각해 보
시면 되겠어요. 그리고 영화에 나오는 거 같은 옛날에 2000년 전에 있었던 배, 그 배에는 2
층으로 3층으로 내 려가면서 노가 있습니다. 긴 노가 있어서 이걸 젓게되고 노 하나마다 한
사람이 붙들고 있습니다, 그 배 안에서. 그리고 선장이 명할 때 노 를 젓습니다. 일제히 젓
습니다. 빨 리 저으라면 빨리 젓고 멎으라면 멎 습니다. 노 젓는, 저 밑에서 노 젓 는 사람
은 이 배가 어디고 가는지를 모릅니다. 알 바도 없습니다. 다만 선장이 저어라, 젓고 빨리
저어라, 빨리 젓고 멎어라, 하면 멎습니다. 여기에는 아무 아무 질문도 없습니 다. 물론
"이 노를 저어서 내게 주 어진 보상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 을 권리도 없습니다. 노를 젓는 사 람, 상상해 보세요. 이 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
릅니다. 그리고 노를 젓습니다. 이것이 일꾼입니다. 이 것을 요새 현대적인 말로 말하면
Three Totality 라고 합니다. Total Acceptance 모든 지식과 판단을 다 그에게 바쳐버립니
다. 그가 하는 말은 다 옳습니다, 그가 하는 것을 의롭습니다, 그대로 수용합니다. 전 적인
수용. Total Discipline 그가 어디로 인도하든지 순종합니다. 그 속에 깊은 경륜과 뜻이 있는
줄 알 기에 무슨 커리큘럼으로 가르치던 지, 어떤 시련을 주시든지 아무 군 소리가 없습니
다. 믿고 그대로 순 종합니다. Total Commitment 전적 으로 위탁합니다. 생명도, 운명도, 명
예도 다 그에게 위탁해 버립니다. 이것이 Three Totality 입니다. 자 보세요. 노를 젓는 일
꾼, 이렇게 충 성하는 것이올시다. 또한 여기에 비밀을 맡은 자라 하는 말은, '오이 코노모
스'라는 말은 '오이코스'란 집 이라는 말이고, '오이코노모스'라는 것은 집을 맡은 사람, 옛
날 우리말 로 말하면 집사올시다. 자 이제 여 기서 생각하게 됩니다. 일꾼이라고 하게되면
타율적 충성을 필요로 하 는 사람입니다. 자기 의견은 전혀 고려돼지 않습니다. 무조건, 아
무 것도 모르고 그저 무조건 복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일꾼이요 또 집사 라고 하게 되면 자
율적 복종을 말합 니다. 자율적 충성. 그에게 권리도 있고, 능력도 주어지고 상당한 권한 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일 을 시키기도 하고, 자기가 일을 만 들면서 해야합니다. 자발
적으로 자 율적으로 그러나 주인은 주인입니 다. 오직 주인을 위하여 일할 것입 니다. 주님
이 주장하는 대로, 주님 의 뜻을 알아가면서 주의 뜻을 받들 어 충성을 다합니다. 이것이 집
사 의 할 일입니다. 그러나 항상 잊지 말 것은 나는 어디까지나 주인을 위 하여 일하는 사
람입니다. 자 충성 은 기본입니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기본 자세올시다. 깊이 생각해야겠죠. 어느 병원에, 아프리카 어느 병원에 입원한 아주 머니
가 있었는데 어느 날 창문 밖으 로 이렇게 내려다보니까 밀밭에, 그 보리를 밀을 발로 밟고
열심히 밟고 있는 노인이 있습니다. 그래 누군 가 자세히 보았더니, 그 병원 원장 입니다.
그는 슈바이처 박사입니다. 그는 철학자요, 신학자요, 음악가요, 또 목사요, 의사요. 아 이런
어른이 아침부터 계속 보리를 밟고 있는 겁 니다. 누가 물었습니다.
"왜 이런 일을 하십니까? 궂은일을?"

"내게 맡겨진 일이니까,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또 해야할 일이니까 하고 있을 뿐입
니다."
다른 사람이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왜 이 아프리 카에 오셔서, 이렇게 어려운 곳에 오셔서 의사가 되셨습니까?"
그는 아주 평이하게 쉽게 대답합니다.
"말로는 감동할 수가 없기 때문에, 말로는 누구도 감동시킬 수가 없기 때문에, 행동으로 그
리스도의 사랑 을 나타내고 있는 것뿐이다."
이게 충성입니다. 충성은 지식이 아니요, 말이 아닙니다. 행동이요, 생명 자 체라는 것을 잊
지 말아야 합니다.
충성의 평가 척도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 세 방면으로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먼
저는 다 른 사람에게 판단 받는 것이라고 하 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평판, 남들 이 나에게
뭐라고 하나 뭐 그런 거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신경 많이 쓰죠. 그래서 내가 불행해
서 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잘 살아서 내가 불행한 거예요. 이렇게 다른 사람에 대해서 많은
신경을 쓰는 타 율적인, 타인 주도적 체질이 있습니 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또 요
새 와서는 뭐 여론조사란 말이 있습니다. 나 그거 좀 못 마땅하게 여깁니다. 여론이라는 것
은 오히려 만들어 가는 것이고 현실의 말대로 말하면 2년 후에, 저 만큼 가서 평 가를 받아
야지, 오늘 당장 일도 하 기 전에
"어떻게 할까요?"
백성에게 물어가면서 할 것입니까. 난 이런 지도자를 싫어합니다. 지도자가 당 당한 철학과
주견을 가지고, 원칙을 가지고 밀고 나가면서 백성더러 따 라 오라고 그래야지 이걸 일일이
물 어가면서 다리 놓을까요 말까요? 자 이거 되겠습니까 이래가지고. 이것이 바로 여론이,
사람들의 평판. 이거 중요합니다. 여론이 중요하고 평가가 중요하지만은 여기에 신경을 쓰면
은 기회주의자가 됩니다, 자기 상실을 하게 됩니다, 마지막에는 위 선자가 됩니다. 남의 눈
치나 보고, 살다보면 이게 아무 것도 아닙니다. 원칙이 없는 정치, 원칙이 없는 행 정, 원칙
이 없는 삶이란 언제나 이 렇게 남의 여론에 휩쓸리는 거예요. 이게 문제지요. 그 옛날에 왜
초등 학교 교과서에 있던 말 여러분이 기 억하십니까? 아버지하고 아들하고 둘이서 나귀를
타고 가는데 아버지 가 타고 아들이 나귀 고삐를 잡고 가니까 동네사람들이
"아이고, 아니 어린아이를 저렇게 고삐를 잡게 하 고 자기가 떡 타고 가면 되나", '아 그런
가보다', 그 다음에는 또 애를 태우고 자기가 고삐를 잡았더니
"저 런 불효자가 있나, 제가 타고 아버 지를 저렇게 고삐를 잡게 하다니"했 어요. 그 다음에
는 할 수 없이 둘 이가 다 나귀를 탔더니
"저런 나쁜 놈들이 있나, 저 어린 나귀를 두 사 람이 타고 가다니"
할 수 없이 나귀 를 둘러메고 갔다잖아요. 남의 소 문에 놀면 이 꼴이 되는 거요. 안 그렇습
니까? 그런고로
"다른 사람 의 평판 중요하지만은 내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바울이 그렇게 말합 니다. 또 하나는
"내가 나를 판단 한다. 그러나 자책할 아무 것도 깨 닫지 못하노라"
대단한 사람입니다. 내가 가진 기준이 있다. 그러나 나 는 여기에 가책이 없다. 최선을 다
하고 있기 때문에. 자, 내가 나를 판단합니다. 그러나 자기 충실을 힘쓰고 있습니다만은 그
러나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왜요? 내 판단, 내 고집, 내 주견에 빠지는 순간 독선
에 빠지거든요. 내 판단 이 옳은 게 아니니까요. 여러분 최 선을 다했다고 해서 의가 된다고
생 각하지 마세요. 최선은 내 마음 뿐 이요. 나의 최선의 성격은 하나님 이 분석하실 거예
요. 자 그래서 하 는 말입니다.
"오직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하나님이 판단하시 는 대로 그것만이 옳다, 거기에 기 준을 두고 충성을 다한다고 사도바
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0장에 보면은 포도원 비유가 있지 요. 포도원에 일꾼들이
일하러 가 는데 새벽에 가고, 아홉시에 가고, 열두시에 가고, 세시에 가고, 다섯시 에 가고.
한 사람마다 한 데나리온 을 주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이제 저녁에 임금을 줄 때, 삯을 줄
때 다 한 데나리온씩 주는데 맨 마지막 에 와서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한 데
나리온을 주었습니 다. 아침에 온 사람들은 아마 내 차례가 오면 좀 더 주겠지, 했는데 역시
한 데나리온이에요. 그래서 불평이 있어요.
"하루종일 일했는 데 우리에게도 왜 한 데나리온을 주 는 겁니까?"
그때 주인의 말이 아 주 냉정합니다.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너와 약속한 게 한 데나리온 이 아니더냐. 다른 사람 더 주든 말든
네가 왜 신경을 쓰느냐."
여 러분 여기에서 충성을 생각해야 합 니다. 여러분 혹 남편에게 이런 남 편, 저런 남편 돼
달라고 부탁합니 까? 그럴 것 없어요. 당신만 좋은 아내가 되면 됩니다. 아내더러 이 래라
저래라 합니까? 지금 나이가 얼만데 고치게 됐습니까? 그냥 두 세요. 당신만 좋은 남편이
되세요. 자녀교육 문제 삼습니까? 문제될 거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당신만 똑 똑한 부모가 되
세요. 바른 신앙생 활 하세요. 아이들은 저절로 따라 갈 테니까요. 남의 일에 이래라 저 래
라, 뭐 마음에 든다 안 든다, 거 골치 아프게 생각부터 하지 마세요. 나만, 하나님과 나 사이
에 내가 해 야할 일만 내가 하는 거요. 그것이 충성이요. 또한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똑같은
맥락의 말씀이 있습니 다. 아시는 대로 베드로가 예수님 재판 받으실 때, 저 문밖에서 예수
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했지요. 그 런데 요한은 재판정 앞에 가 있었거 든요. 예수님 십자가
지실 때에도 베드로는 어디에 있었는데 성경에 없습니다, 어디 멀리 도망갔는지. 그러나 요
한은 십자가 밑에 딱 서서 예수님 돌아가시는 장면을 지켜봅니 다. 이제 예수님께서 다시
부활하 신 다음에 저들을 만나실 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베드로에게 묻고
"내 양을 먹이라. 너는 나를 위해서 앞으로 큰 고생을 많이 해야 겠다"하고 미리 말씀하십
니다. 이 때 베드로가 궁금하게 생각해요. '나는 예수를 모른다고 했으니까 고 생을 좀 해야
되는 거 같고, 저 요한 은 어떨까'해서 그거 참, 고 인간의 고 마음이 거기 나타나요.
"이 사 람은 어떻게 될까요?"하고 묻거든 요. 그 베드로가 이렇게 물을 때에 예수님 또 한
번 냉정합니다.
"내가 다시 올 때까지 머무르게 할 지라고 너와 무슨 상관이냐."
아 대단한 말씀, 너와 무슨 상관이냐 이겁니다.
"너는 나를 좇으라"
이것이 충성입 니다.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상이 주어지는지 벌이 주어지는, 다른 사 람이
어떻게 되는지 알 바 아니요. 당신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충성을 다할 것이요. 이건 직선적
인 것입 니다. 오직 주님 앞에.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복은 검소함 에서 생기고, 덕은 겸양함에서 생기 고, 지혜는 고요한 생각에서 생기고, 근심
은 애욕에서 생기고, 재앙은 물 욕에서 생기고, 허물은 경망한 행동 에서 생기고, 죄는 참지
못함에서 생기고, 절망은 불신앙에서 생긴다"
고. 옳은 말씀입니다. 미국에 유명 한 실업가이자 자선 사업가였던 록 펠러가 어느 날 시골
에 가서 작은 호텔에서 며칠을 유하게 됐습니다. 이런 큰 재벌이 호텔에 온다 하니까 호텔
에 비상이 걸렸어요. 친절하게 해야 되겠고, 깨끗하게 해야 되겠고, 불편 없이 해 드려야겠
다고. 해서 아주 잘 생긴 청년을 특별히 맡겨서
"네가 좀 잘 모셔라."
이 청년이 시간, 시간 불편 없이 록펠러에게 봉사를 했습니다. 이제 며칠이 지 난 다음에 호
텔에서 나갈 때 체크아 웃 하면서 정식으로 지불해야될 돈 을 지불하고 또 미국사람들이 흔
히 하는 정규적인 팁이 있죠. 그 팁은 10∼15% 정도 되는 팁을 또 주었습 니다, 수고한 사
람에게. 그리고 돌 아섰더니 이 청년이 그만, 그 분이 멀리 가지도 못했는데 뒤에서 불평 을
했습니다.
"아니 세계적인 재벌 이 쩨쩨하게 요게 뭐람."
팁이 적 다고 불평을 했습니다. 록펠러가 이것을 들었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청년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하는 말 이
"이 사람아, 네가 정당한 팁을 받으면 너는 당당한 호텔 직원이다. 내가 네게 팁을 더 많이
주면 너는 구제 받는 거지가 되는 거다. 나는 너를 거지로 대할 수 없었노라"
했 습니다. 그리고 한 마디 더 했습니 다.
"네가 하도 정직하고 진실해서 내가 회사에 가서 너를 특채해서 데 려올까 했는데 그만 두
노라"
그러고 말했대요. 이거 충성이라는 건요 아무 것도 바라는 마음이 없어야지 요. 잉나지우스
의 유명한 기도가 있습니다. 교부 잉나지우스의 기도 입니다.
"영원한 말씀이신 독생자 예수님이시여, 참 관대와 고결을 가 르쳐주옵소서. 당신에게 합당
하게 당신을 섬기도록 가르쳐주옵소서. 계산 없이 주는 것을 가르쳐주옵소 서. 상처 입는 일
에 구애됨이 없이 싸우는 것을 가르쳐주옵소서. 휴식 을 구하지 않고 일하는 것을 가르쳐
주옵소서. 대가를 구하지 않고 희 생하는 것을 가르쳐주옵소서. 그리 하여 충성하는 자에게
주시는 큰 기 쁨을 알게 하여주옵소서."
여러분 충성이 무엇입니까? 곧 믿음입니 다. 헬라 말에는 피스티스랑 같은 말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을 때 구원에 이르고, 하나님이 우리를 믿 을 때, 우리의 충성을 믿을 수 있을
때 그에게 복을 주시는 겁니다. 작 은 일에 충성했을 큰 일을 맡기십니 다. 순순한 마음으로
진실한 온전 한 충성을 다할 때 충성함에서 오는 큰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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