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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 (계 2:8-11)
이긴다 하는 것은 참으로 기분 좋은 말입니다. 이겼다 하는 말은 더욱 신나는 말입니다. 이긴다, 이겼다, 승리를 향한 환호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우리 마음에 큰 감격을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승자 뒤에는 패자가 있습니다. 패자 없는 승자가 없습니다. 승리자의 큰 기쁨이 있는가 하면 패자의 비참한 모습을 우리는 함께 보아야 합니다. 이겼다고 함성을 부르고 만세를 부르고 고함을 지르고 미친 듯이 환호합니다마는 패자의 슬픈 낯, 그리고 그 비참한 모습, 그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저는 이런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몇 년만의 승리라고. 48년이다 52년이다 뭐 그럽니다. 그러면 그 동안은 어떻게 살았다는 말입니까? 오늘이 없었다면 우리는 없는 것입니까? 그 한가지 사건에다가 그렇게 온 민족의 운명을 걸어야할 이유가 무엇이 있습니까?
몇 일 전에 폴란드의 축구팀과 우리 나라 축구팀의 경기가 있었는데 저는 미국에서 텔레비전으로 그것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2대 0으로 통쾌하게 이겼는데 잘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두 대통령이 나란히 앉아서 관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제 이긴 대통령, 우리 김대통령께서 일어나서 소리지르고 만세라도 부르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요. 폴란드 대통령은 당장 통곡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데 그럴 수도 없어요. 이 두 대통령이 표정관리 하느라고 부심하더만요. 이겼다고 마음대로 좋아할 수도 없고 졌다고 분해할 수도 없고 또 슬퍼할 수도 없고. 그 장면을 보면서 '인생무상' 그런 생각했습니다. 세상만사가 이러하거니, 하는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패자 없는 승리는 없을까요? 흔히 말하기를 Win-Win-Win이라고 그럽니다. 나도 이기고 너도 이기는 그런 승리래야 진짜 승리일텐데 그런 건 없을까요?
우리는 간혹 그런 경우를 봅니다. 여러분 혹 무슨 물건을 사는데 내가 잡지에서 보던가 소문에서 듣던가하고 꼭 필요한 것을 만났다고 합시다. '이건 참 귀한 것이다. 내가 오랫동안 찾았는데 어디 이런 게 있을까?' 그리고 연락을 하고 상점을 찾아갔습니다. 백화점에 가서 물건을 살 때 이건 몇 년 동안 내가 기다리던 거니까요 뭐 값을 물을 것도 없죠. 그대로 돈을 주고 사가지고 나올 때 이 귀한 물건을 손에 넣은 여러분은 한없이 좋습니다. 이건 정말 기분 좋은 일입니다. 그런가하면 이것을 판, 장사하는 사람도 아 이렇게 가격을 묻지도 않고 사가는 사람, 이 흥정하자고 하지도 않는, 물건을 깎자고도 안하고 그대로 좋은 마음으로 '고맙습니다' 하고 물건 가지고 가는 그 사람을 볼 때에 물건 판 사람도 되게 기분 좋은 거예요. 이게 바로 Win-Win 이올시다. 양쪽이 다 좋은 것이거든요. 제가 언젠가 한번 비행기 타고 가다가 타임지에서 이렇게 좀 한가한 시간에 보다 보니까 거기에 시계가 하나 소개가 되었어요. 듀얼타임이라고요. 이 외국에 여행하는 사람에게 너무 좋은 것이거든요. 이 한국시간과 미국시간을 동시에 둘 다 가질 수가 있는 거예요. 그리고 한국이 지금 낮인지 밤인지 그것도 다 말해주어요. 그런데 뭐 각 나라에 갈 때마다 시간 맞출 필요가 없어요. 한번씩 조금씩 손만 누르면 되게 돼있어요. 그런 시계가 나왔다 그런 선전이 났어요, 듀얼타임이라고. 아 이걸 제가 수첩에 딱 써가지고 가서 백화점마다 다 다니면서 물었어요. 그러니까 없어요. 그저 잡지에선 보았지만 아직 물건은 못 봤대요. 아마 새로 나온 물건인가 봐요. 한국에 돌아와서 한국 백화점에 가서 얘기를 했더니 자기도 이거 물건 본 일이 없데요. 그래서 이거 하나 구해주십시오. "그래 하나를 구해올 수 있는데 동시에 가격은 묻지 말아야 됩니다. 반드시 목사님 이걸 사셔야 됩니다. 이거 특수한 거 안 사면 우리 이거 망치는 겁니다." 알았다고 가져오라고 그래서 사서 지금도 제가 가지고 다니면서 자랑을 합니다. 듀얼타임이라고. 아주 참 기가 막히게 만든 특별한 시계예요. 그런데 바로 이런 경우에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둘 다 기분 좋은 거예요. 둘 다 이긴 거예요. 이 세상만사가 다 이러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거기 바로 Win-Win-Win 의 사회구조를 말하는 것이올시다.
오늘 본문말씀에 보면은 생명의 면류관이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영어로 크라운이라고 합니다마는 이 생명의 면류관이라는 말은 헬라어에서는 완전히 둘로 단어가 다릅니다. '디아데마' 라고 하는 말이 있는데 디아데마라고 하는 말은 Sign of Loyalty 이것은 왕권, 권력의 상징입니다. 왕이 쓰는 왕관, 왕이 쓰는 왕관을 가리켜서 크라운이라고 합니다. '디아데마' 그렇게 말합니다. 그 다음에 또 하나가 있습니다. 그건 '스테파노스' 입니다. 바로 이 말에서 스데반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스테파노스 그것은 하나의 Pride of Victory 입니다. 승리의 표상으로 상으로 주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스테파노스라고 하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오랫동안 수고하고 훈련하고 인내하고 절제한 그 절정에서 평가받는 면류관을 말하는 것이올시다. 그게 면류관으로 상징되는 것이올시다. 여러분 운동선수들이 나가서 잠깐 뜁니다. 뭐 불과 한시간, 두시간, 혹은 어떤 건 3분, 어떤 건 1분 하는 것도 있어요. 그러나 이 짧은 시간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수고를 했습니까? 얼마나 많은 훈련을 하고 인내하고 참고 젊은 사람들이 절제하고 그 많은 수고 끝에 오늘 이 절정에서 이같은 영광을 누리게 될 때 그에게 씌워주는 면류관, 이것을 우리가 면류관이다. 또 스테파노스라고 말하게 됩니다.
여러분, 요새 와서 쓰는 학자들이 쓰는 용어 가운데 새로운 용어가 많습니다. 하나가 뭐냐 하면은 '소프트 파워'라고 하는 말입니다. 아주 유명한 유행어입니다. 소프트라고 하면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부드럽고 관대하고 상냥하고 조용하고 온화한 뭐 그런 거 아닙니까? 그 파워 그러니깐 힘이올시다. 권력입니다. 그런데 부드러운 권력입니다. 부드러운 권력, 이거 특별한 말이 아니겠습니까? 강한 자가 이기는 것 같은데 아니요 온유한 자가 이깁니다. 성경에도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한다 그러지 않았습니까? 확실한 것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십니다. 이번 게임에도 보니깐 뭐 잘났다고 떠들다가 부끄러움을 당하더라고요. 그렇지 않습디까? 교만한 자를 낮추십니다. 강한 자가 패하고 오히려 부드러운 자, 온유한 자, 화평한 자가 이기는 거기에 놀라운 역사적 의미도 있고 심판적 의미도 있고 성서적 의미도 있습니다. 그래서 요새는 소프트 벨류(Soft Value), 하드 벨류(Hard Value)라는 말을 합니다. 가치를 말하는 건데 유형적 가치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물질이라던가 기술이라던가 지식이라던가 설비라던가 자본이라던가 뭐 이런 것, 이걸 하드웨어라고 하는 말처럼 이런 것이 하나의 그런 유형적 가치가 되겠습니다. 그런가하면 무형적 가치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지라던가 혹은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상업하는 사람들에게 생각하면, 말하자면, 고객 만족도라던가 또 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기쁨으로 일하는가, 얼마나 보람과 의미를 느끼며 일하는가 뭐 이런 것들이죠. 이런 것을 무형적 가치라고 하겠습니다. 이것을 소프트 벨류 라고 합니다. 그러면 소프트 파워라는 건 뭔가 하면은 소프트 벨류를 창출하는 정신적 에너지, 혹은 창의적 아이디어를 총칭하는 말입니다.
여러분 누가 이깁니까? 물력입니까 권력입니까 체력입니까 심력입니까 지력입니까? 많은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승리의 80%가 심력이요 마음의 힘이요. 그리고 20%가 체력입니다. 또는 지력이라는 것이에요. 사실은 그 체력마저도 심력에서 오는 거예요. 마음이 흐트러지면 다 무너지고 말아요. 여러분 얼마나 이것을 날마다 새롭게 느끼고 있습니까? 얼마나 확실하게 체험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건강이 밥으로 됩니까? 운동으로 됩니까 보약으로 됩니까? 아니에요. 80%가 마음이에요. 예수를 잘 믿어야돼요. 은혜를 받아야 됩니다. 예? 마음의 은혜가 없으면 보약은 독약이 됩니다. 독약, 보약 중독증으로 죽더라고요 보니깐. 운동하다가 고꾸라집니다. 아무 소용없어요. 결국은 심력이요 마음의 힘. 또 다른 말로 말하면 영력이요. 영적인 힘이 있어야돼요. 그것이 문제올시다. 우리가 지금 운동경기를 봅니다마는 그 운동 경기 속에서도 가만히 보면은 심력이 작용하고 있어요.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현대에 있어서 성공하려면 3M이라고 하는 말을 합니다. M자로 시작하는 석자를 말하라는데 미션, 민잉, 머니(Mission, Meaning, Money) 세가지가 균형적으로 작용을 해야한다 그래요. Mission, 사명이 있어야되고 사명의식이 투철해야 되고. Meaning, 의미가 있어야 되요. 보람과 의미가 없으면 아무 소용없어요. 그리고 경제적인 문제도 함께 따라가야 한다 하는 것이죠. 사명은 목적을 말합니다. 무슨 일을 하던지 목적이 높아야 됩니다. 언제나 동기를 물으세요. 내가 왜 이 일을 하느냐, 그 동기가 얼마나 고상하냐 이게 문제올시다. 낮은 처지에 있고 너절하고 형편없는 그러한 그것에 목적이 있다면 그 인간은 비참한 것이에요. 그 모든 일 전체가 다 망가지는 거예요. 높은 목적, 고상한 목적, 절대적인 그 높은 목적을 가지고 행해야 어떤 일을 하던지 힘이 있고 용기가 있고 또 지혜도 있는 것이고요 이게 사명의식 Mission 입니다. 그 다음에는 보람이 있어야돼요. 그러면 오늘 아침에도 부엌에서 일하면서 혹은 집안 일을 하면서도 보람을 느꼈습니까? 아니면 '어쩌다가 똑같은 일을 반복하며 사나' 짜증스럽게 생각했습니까? 순간순간 우리는 하는 일에 의미를 아주 충만한 의미를 만끽하면서 살아가야지요. 무슨 일을 하든지. 그것이 바로 힘이요. 성공이요. 그리고 경제적인 여건이 따르게 될 것입니다.
요새 유행하는 말 가운데 또 하나의 말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토텔릭(Autotelic)이라고 하는 말입니다. Auto 라고 하는 것은 헬라어로 아우토스, 헬라어로 아우토스란 마이셀프라고 하는 자기 자신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아우토스. 그 다음에는 텔로스라는 말은 이것은 목적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두 단어를 합쳐서 아우토텔로스인데 이것을 영어로는 Autotelic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그 말은 뭐냐하면 '자기 목적성' 입니다. 자신이 목적이 되고 현재가 목적이 되는 겁니다. 이건 이기주의적인 생각이 아닙니다. 오토텔릭이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이런 자기 목적성을 가질 때에 창의력도 있고 자율성도 있고 행복도 있고 지혜도 있다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 교인 가운데에 골프를 많이 치던데요. 저는 골프를 못 칩니다마는 자 이제 골프를 치는 사람들 정말 좋아하더만요. 골프 치러 가기로 미리 약속을 해놓으면은 일주일 전부터 기분이 좋데요. 그저 어디 가나 그 생각만 나고, 그저 밥그릇을 보아도 그 생각나고 다 그렇데요. 아주 그렇게 좋데요. 골프 치러 나가면 또 풀밭에서 좋긴 좋겠더라고요 보니까. 그렇게 좀 비싸긴 하지만 아주 행복하게들 즐긴다 그래요. 미치게 좋아해요. 매니아가 있어요. 아주 정신없이 좋아해요. 좋아요. 그것까지는 좋은데 어느 순간에 내기 골프를 시작해요. 그러면 목적이 망가지는 거예요. 돈벌기 대회. 또 내기하다 보니깐 지면 기분 나쁘고 이겨야 되겠는데 이걸 이기려고 하고 또 뭐 체면도 안돼는 거 같고 뭐 그러다가 죽잖아요. 얼마나 죽습니까? 일본에서 일년에 백삼십명이 죽어요. 뭐 한국에서도 백명은 죽을 겁니다 일년에. 그 왜 그러냐구요? 목적이 바뀌었어요. 골프 자체를 즐기는 게 아니라 골프를 통해서 그 무언가 다른 것을 얻으려고 그래요. 그러니깐 Autotelic이 변질이 된 거예요. 그래서 돈버는 마음으로 도박하는 마음으로 명예를 찾는 마음으로 허영심으로 여러 가지로 이 목적이 망가졌어요. 그래서 말입니다 여러분, 무슨 사업을 하든지 예를 들어서 공부를 한다고 합시다. 공부 자체가 즐거워야 돼요. 그 공부하는 게 재미가 나고 책 읽는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게 재미가 있어야 되는데 이 공부를 이 오토텔릭이 되질 못하고요 뒤바뀌면은 '이거 해야 돈벌지' 억지로 해야돼요. 공부 안하면 죽는다 공부 안하면 못산다 자, 이건 참 힘든 일입니다 이거요. 그런가 하면 결혼까지도요 결혼의 목적이 어디 있습니까? 돈벌라고 하는 겁니까 늙으막에 신세 좀 지려고 하는 겁니까? 이게 또 목적이 어디론가 가버렸다구요. 이 자기 목적성을 잃어버리면 무엇이든지 타락하는 것이에요. 자, 보세요. 승리가 뭡니까? 바로 이 목적성에 있는 거예요. 이 목적성, 그런 상태를 다른 말로 충성이라고 합니다. 충성이라는 건 이 피스티스 라는 말은 먼저는 신실하다는 뜻이요. Faithfulness 믿음이요 믿음. 내가 나를 믿고 내가 남을 믿고 남이 나를 믿고 신용도가 높아야돼요. Trustfulness 이게 바로 믿음이요. 그런가 하면 내가 지향하는 목적, 높은 목적에 합당한 그러한 목적에 대한 충성입니다. 내가 세운 목적에 대하여 신실한 목적에 대해서 충성, 얼마나 충성했느냐 그것에 따라서 내 생이 결정이 됩니다. 목적과 합당한 생을 산 것은 성공이요 거기서 이탈한 것은 어떤 일이든지 실패와 부끄러움으로 끝나게 될 것입니다. 목적의 의미, 그리고 거기에 내 전체를 Totally commitment, 온 정력을 다 기울이며 동시에 그 기울이는 일을 즐기는 거예요. 일을 해서 뭐 하느냐가 아니고 일 자체를 즐기는 거요. 섬길 때 섬기는 그 일 자체를 즐기는 거예요. 에리히 프롬은 말합니다. 사랑은 주는 것이라고. 그렇습니다. 분명히 주는 것이 사랑인데 세 가지가 있어요. 주어서 무얼 얻자고 하는 대가성의 주는 것. 뭘 뭔가를 바라고 주는 것이 있고요 또 한가지는 줄 수밖에 없어서 주는 것입니다. 빼앗기는 것이죠, 강도 만나는 것이죠. 안 줄 수 없어서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창조적으로 Creative Giving 이 있어요.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주는 것을 즐기는 것입니다. 베푸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이 자체가 너무 행복한 것입니다. 자, 얼마나 큰 차이가 있습니까?
오늘 성경은 말씀합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이 서머나교회는 일곱교회 중에 책망을 받지 아니한 가장 훌륭한 교회입니다. 서머나라고 하는 도시는 당시에 에베소 다음으로 큰 도시요 지금도 20만이 되는 도시입니다. 지금도 3분의 1이 그리스도인이요 2000년 동안 거룩한 신앙을 이어오는 도시, 아주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의 도시라고 합니다. 서머나, 그런데 거기에 있는 교회를 향하여 주신 메시지입니다. 특별히 서머나교회의 감독 폴리갑에 대한 것은 충성을 설명하면서 뺄 수가 없는 중요한 인물입니다. 서머나 교회의 감독 폴리갑이 유대교인들의 음모를 받아서 이제 결국은 로마 총독이 그를 죽일 수밖에 없게 됩니다. 화형을 처하기 위해서 장작더미를 쌓아놓고 거기에 올려 세워놓고 마지막 질문을 합니다. 총독이 볼 때에는 86세나 되는 나이 많고 존경받는 어른을 여기서 어떤 이유로 인해서 화형에 처한다는 것이 너무나 안쓰럽고 괴로워서 마지막으로 한마디합니다. "지금이라도 가이사 황제를 찬양하고 그리스도를 욕하라. 한번만 욕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를 놓아줄테니까 조용히 다른 곳에 가서 여생을 살라" 고 합니다. 그러나 폴리갑은 유명한 말을 합니다. "나는 86년 동안 그리스도를 섬겨왔노라. 주님은 나를 한번도 배신하지 않은 고로 오늘도 나는 주를 배반할 수가 없노라. 주를 위해 사는 것이 주를 위해 죽는 것이 나에게 최고의 영광이기에." 그리고 화형에 처함을 받았습니다. 불태워서 죽임을 당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충성입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충성했고 죽을지언정 충성했고 죽는 것 보다 충성을 더 높은 가치로 생각했습니다. 다 얻었더라도 충성을 잃어버리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진실을 잃어버리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정직함을 잃어버리면 낭패입니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 됩니다. 죽고 사는 것보다 진실함이 그 위에 있고요 충성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제물로 바칩니다. 그에 대한 책도 많고 소설도 많습니다만은 언제가 한번 연극을 보았습니다. 참 훌륭한 연극이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영화에도 그런 장면이 나옵니다만은 이제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단에다 올려놓으려고 할 때 자, 이제 스물일곱살된 아들을 체포할 수도 없잖아요. 아니라면 그만이죠. 그런데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두가지를 말합니다. "Do you know that I love you?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을 네가 아느냐?" "압니다." "How Much?" "당신 목숨보다 나를 더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됐어." 또 하나 묻습니다. "Do you believe the promise of God? 하나님의 약속을 믿느냐? 변함없는 약속, 반드시 이루시는 그 위대한 은혜로운 약속을 네가 믿고 있느냐?" "그렇습니다." "그러면 여기에 올라가라." 두 손을 내어놓고 아버지보고 묶으라고 그럽니다. 밧줄을 묶어놓고 그 다음에 아들을 제단에 누인 다음에 칼로 찌르려고 하는 그 장면을 연극으로 하지만은 가슴이 뜨겁고 얼마나 그 장면을 보면서 울었는지 모릅니다. 감격스러운 것입니다. 이런 충성이 어디 있습니까?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을 네가 아느냐? 참 사랑을 알면 충성은 아주 쉬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습니까? 영원한 약속을 믿습니까?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고 하신 약속을 믿습니까? 이것만 믿을 수 있다면 충성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죽은 다음에 면류관이 주어진다고 약속하십니다. 밀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어야 열매가 맺는다고 하십니다. 충성은 모든 것 보다 위에 있습니다. 살고 죽고 손해보고 부끄럽고 승리하고 그것이 문제가 안됩니다. 충성과 진실이 그 모든 것보다 우선합니다. 그에게 참 면류관을 주신다고. 죽도록 충성하라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 기도하십시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충성하지 못한 부끄러움을 가지고 사는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충성과 진실이 바로 삶의 길이요 승리의 길임을 늘 배우고 알면서도 그 길을 따라 살지 못함을 용서하옵소서. 주여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십자가로 보증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히 알게 하시며,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은혜로운 약속의 그 의미를 오늘 믿을 수 있게 해 주셔서 이 험악한 세상을 살지만 범사에 감사하고 범사에 충성을 다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다 함께 받을 수 있는 주의 사람들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영영 오로지 승리만이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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