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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새롭게! (사 6:1-8)

by 【고동엽】 2022.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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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선희목사/입을 새롭게! (사 6:1-8)


이스라엘 사람들의 지혜를 모았다고 하는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어떤 남편이 자기 아내에게 시장에 가서 맛있는 것을 사오라고 했습니다. 그 아내는 바구니를 준비해 가지고 나가서 소의 혀를 사왔습니다. 그 혀를 가지고 그날 요리를 해서 먹었습니다. 몇 일 후에 남편이 또 말하기를 오늘은 가장 싼 것을, 모든 음식 재료 중에 싼 것을 사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 아내는 또 가서 소 혀를 사왔습니다. 남편이 “어째서 가장 맛있는 것을 사오라고 했는데 혀를 사오고, 가장 싼 것을 사오라고 했는데 또 혀를 사왔느냐” 하고 물었는데 그 부인은 대답하기를 “가장 맛있는 것이 혀입니다. 친절한 말, 사랑스러운 말, 그 아름다운 말을 듣는다는 것, 이보다 더 맛있는 게 없습니다. 좋은 소리를 듣는 거 가장 맛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사왔습니다. 가장 싼 것, 가장 쉬운 것, 그저 아무 생각없이 쉽게 할 수 있는 싸구려 행동이 바로 말입니다. 너무 쉽게 할 수 있는. 그래서 혀를 사왔습니다.” 이렇게 지혜를 담아서 대답했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가장 귀한 것도 말이요 가장 잘못되기 쉬운 것도 말이요. 그래서 말에 허물이 없으면 온전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말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고 불행해 지기도 하고 그리고 망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유대나라 왕 웃시야라고 하는 왕이 죽었을 때에 선지자 이사야가 경험한 영적경험이 나타나있는 말씀이올시다. 웃시야왕은 유대나라 왕으로서 52년 동안을 나라를 잘 다스렸습니다. 특별히 우상을 멸하고 하나님을 공경하며 하나님 앞에 성실히 행해서 왕과 백성은 태평세월을 52년 동안 누렸습니다. 그러한 좋은 세월이 이제 갔습니다. 그 왕이 죽었습니다. 이사야라고 하는 선지자는 모든 선지자중에 유독 정치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방백 중 하나입니다. 그는 웃시야왕의 친척입니다. 그래서 웃시야왕을 의지하고 그 왕궁에서 일하는 그러한 관료 중에 한사람이었는데 그가 의지하던 웃시야왕이 죽었습니다. ‘이 나라는 어떻게 될까. 그리고 나의 장차 운명은 어떻게 되는가’ 하는 걱정이 있는 바로 그런 순간에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갔다가 소명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서 그는 오늘 본문의 세가지 체험을 합니다. 요약해 말씀을 드리면 첫째,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하늘과 그 영광으로 충만한 땅을 보게됩니다. 하나님의 성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큰 감격을 얻게 되고 동시에 그는 자기 자신을 보게 됩니다. 나는 부정한 사람이라고 나는 살아남을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그가 사명을 보게 됩니다. 난 앞으로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을 만나고 보니까 내가 이제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 내게 주어진 운명을 혹은 사명을 받게 됩니다. 소명을 받게 되었다 라고 이렇게 정리해서 흔히들 말합니다.

자, 이제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보고 나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나 자신에 대한 지식은 있을 수 없습니다. 존 칼빈의 유명한 명제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먼저요. 하나님을 알고야 나를 압니다. 여러분, 부모를 알고야 나를 압니다. 스승을 알고야 나를 압니다. 이걸 잊지를 말아야 합니다. 나 자신을 본다고 나를 아는 게 아니에요. 나를 아무리 보아도 나만 가지고 나를 알 수가 없어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만 내가 누구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떤 어머니가 그 어린아이 아들이 말이죠 마당에서 개하고 노는 것을 보았답니다. 개가 그 아이를 따르고 또 애가 개를 좋아해서 이렇게 같이 노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는데 잠깐 있다가 깜짝 놀랐답니다. 이 어린애가 개더러 오라고 그러는데 이리 오라고 그러는데 안오는 거예요. 자꾸 오래도 안오니깐 마지막에 이 애가 하는 말이 “너 정말 안오면 죽여버린다” 그러더랍니다. 이 어머니는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저 어린아이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수 있을까? “너 내 말 안들으면 죽어” 그러더랍니다. 깜짝 놀라서 가서 붙들고 하나님 앞에 깊은 회개를 했답니다. 내 잘못이다. 언젠가라도 내가 그에게 이런 말을 입에 넣어 주었거든요. 이것은 어린아이 잘못이 아니에요. 그 어린아이를 보면서 자기 모습을 보았어요.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던가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이대로 간다면 운명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어린아이와 함께 깊이 회개했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을 보면서 그 앞에서 자기의 추한 모습, 부끄러운 모습, 나아가서는 저주스러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확실한 정체와 그 정체에서 이어지는 미래의 운명까지도 그가 볼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타난 특징은 죄는 많습니다. 여러 가지 죄가 있겠습니다마는 오늘 본문에는 “입술이 부정하다” 입술이 부정하다, 입이 부정하다는 것으로 집약되어 있습니다.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입술이 부정한 내가 하나님을 보았다. 아~ 나는 저주받았다. 나는 살아 남을 수 없다’고 두려워합니다. 입술이 부정합니다. 동시에 저 부정한 백성 중에 살기 때문에 문화화 되었습니다. 다같이 부정하니까 무엇이 부정인지 의인지 모릅니다.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그런 줄 압니다. 가만히 보면 그 부정한 말들을 하는 분들 습관화 되가지고 모르더라구요. 아주 깜짝 놀랄만한 더러운 말을 맘대로 하고도 태연해요. 왜요? 그렇게 들어왔고 그렇게 하는 거니까. 그 속에 살아왔으니까 이상할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여기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면서 그 부정한 입술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언어와 자기 자신을 우리는 종종 분리해서 이해하려고 하고, 분리하려고 하고, 분리해서 이해해 주기를 바랍니다. 바로 여기에 거짓과 또 다른 불의가 있는 것이올시다. 여러분 내 입에서 나쁜 말이 쑥 나갔어요. 그리고 하는 말이 ‘본래 그런 마음이 아니었는데 잠깐 내가 실수해서 뭐 그랬노라’ 하고요. 어떤 사람은 ‘나는 본래 당신을 사랑했는데 그래 그 취중이라서 술이 취해가지고 그만 내가 실수한 말을 많이 해서 마음을 아프게 했노라. 나는 본래 그러지 않았다.’ 그렇습니까? 이제 묻습니다. 술 취해서 한 말과 정신차리고 한 말, 어느 쪽이 진짜입니까?

저는 이 6?25전쟁 때 휴전되기 바로 직전에 신학대학에 입학해서 다니면서 말입니다 그러면서 저 부상병들은 많이 오고 이제 그 치료할 병원이 모자라고 의사가 모자라고 그럴 때에 군목도 많이 모자라는데 보조 군목으로 신학교 1학년 때 보조군목으로 대구에 있는 27육군병원이라고 하는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학교 가서 낮에는 공부하고 저녁과 밤에는 환자들을 돌보는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그때 보니까 의사도 진짜 의사는 몇 안돼요. 다 그저그저 뭐 그 그냥그냥 거들어서 일하고 간호원, 훈련받은 간호원은 하나도 없어요. 아무나 불러다가 간호원이에요. 그렇게 이제 할 때인데 그 수술을 받기 위해서 전신 마취를 합니다. 그 마취했다 깨어날 때 조심해야 되는데 그 내버려두니까 중얼중얼해요. 저도 많이 봤는데요 중얼중얼 하는데 그 간호원들이 지나다니면서 뭐라고 한마디하면 또 대답도 해요. 그때에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이 몇 사람 안돼요. 다 못됐더라구요. 그냥 욕설을 하고 뭐 죽일 욕을 하고 더러운 말을 하고 그래요. 그 얼굴을 보면서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보면은 깜짝 놀라요. 이런 멀쩡한 얼굴에서 어떻게 저런 소리가 나오나.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마취 중에 하는 저 말이 진짜거든요. 그게 자기 자신이거든요. 나는 몰랐노라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이 세상을 떠날 때 정신이 오락가락 할 때 그때 무슨 말이 나올는지 봅시다. 그게 중요한 거예요. 거기서도 감사와 찬송이 나올 만큼 예수를 믿어야돼요. 교회에서는 찬송 부르고 거룩하다가 어느 순간에 가서는 이게 뭐 형편없는 저속한 사람이 돼버립니다. 왜요? 그 속에 있던 것이 나오니까. 그래서 말은 마음의 창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무의식중에도 주를 찬송할 만큼 그 입술이 깨끗하고 정결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가끔 얘들이 가출을 하게되면 어머니는 정신이 없습니다. 얘가 나가서 어떻게 될 것인지 앞으로 돌아올 것인지 안돌아 올 것인지 이게 너무 답답해서 저를 찾아오는 어머니들이 많습니다. 그래 어떻게 돼서 나가게 됐습니까? 본인이 다 이야기를 하죠. 다 듣고 나서 저는 꼭 한마디 물어보는 게 있습니다. 혹시라도 얘가 공부도 안하고 말썽부리고 그럴 때에 “야! 그럴 바엔 집을 나가라.” 그렇게 말해본 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꼭 물어봅니다. 그러면 대답은 언제나 꼭같습니다. “그렇게만 말하지 않았죠. 나가서 죽어라 그랬다 그래요.” “너 같은 거 우리 가문에 필요없고, 너 낳은 걸 내가 후회한다” 이랬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웃으면서 “그 아들은 효자입니다. 나가 죽으라고 했는데 아직 살아있으니까.” 말이 씨가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오늘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칩니다. 말은 그의 인격이요. 그의 믿음이요. 그의 운명이라고. 말로 인해서 그는 저주를 받아요. “나는 저주받았다. 부정한 입술을 가졌기 때문에 저주받은 운명이다.” 이렇게 이사야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성경은 나의 말과 나 자신을 동일시합니다. 여러분, 거울을 보고 나를 보지 말고 내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을 종합하면서 자신을 보아야 되요. 내가 누구냐 이거예요. 부정한 입술이 부정한 운명으로 지향합니다.

험담이라는 것은 탈무드에 말하면 삼자를 죽인다 그래요. 하나는 말을 듣는 사람을 죽여요. 내가 험담을 말하게 되면 그 사람 마음이 그만 상하고 무너지거든요. 또 하나는 험담의 대상이 죽어요. 이 내용에 있는 거 내가 지금 험담하고 있는 바로 그 사람 죽어요. 그 다음에 더 중요한 것은 험담하고 있는 내 자신이 죽어요. 이걸 잊지 마세요. 어두운 말, 부정적인 말, 더러운 말을 하지 말 것은 이것이 바로 나 자신을 죽이고 있다고 내 심령이 지금 황폐해지고 말아요. 그리고 운명이 삐뚤어져 나간다고요. 그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모세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는 어쩌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요. 그리고 한평생 이스라엘을 구원하려고 수고 많이 했습니다마는 그 마지막 장면이 너무나 유감스러워요. 가데스바네아에 왔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앙을 져버리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원망하고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그러고 모세를 때려죽이겠다고 했죠. 이렇게 어려워질 때에 모세가 감당하기가 힘이 들었어요. 그 순간 그는 큰 실수를 합니다. 반석 앞에 서서 반석을 두 번 치면서 하는 말이 “이 패역한 놈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물을내랴” 그리고 반석을 두 번 쳤습니다. 바로 이 죄 때문에 그는 목메도 잊지못하는 가나안땅에 못들어가구요 비스가산 언덕에서 멀리 바라보기만 하고 거기서 죽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죄목을 낱낱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해석까지 합니다. 너는 나를 믿지 아니하고, 불신앙이에요.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것은 나지 네가 아니지 않느냐. 네가 왜 절망하느냐. 너는 나를 믿지 아니하고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일답게 할 것이요. 네가 왜 감정에 사로잡히냐 이 말이에요. 그리고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니라. 시편 106편 33절에서 분명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거기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니라. 말로 죄를 지었어요. 그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 얼마나 얼마나 무서운 이야기입니까? 여러분이 쏟아버린 그 말들이 그대로 현실로 나타나고 여러분의 운명으로 치닫는다면 어떤 결과가 올 것 같습니까?

이제 오늘 본문 성경에서 해답을 얻습니다. 이사야가 너무 끔찍하고 답답해서 나는 망했다. 다같이 망했다하고 슬퍼하고 회개할 때에 탄식할 때 스랍 중에 하나가 재단 숯불을 손으로 집어다가 이사야 입에 댔다 그랬습니다. 그 재단 숯불이라는 말은 원문대로 좀더 깊이 생각해 보면 제단에는 숯불은 없습니다. 자꾸만 제물을 태우기 때문에 거기에 돌들이 있는데 돌이 뻘겋게 달아있습니다. 그 뻘겋게 불처럼 달아오른 그 돌덩어리를 말하는 겁니다. 그게 숯불이라고 표현됐습니다. 그것을 갔다가 입에다 대고 지져버렸어요 거기다. 성경에는 없지마는 타버렸어요. 우지직 하고 지져버렸대요.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제단 숯불이 네 입에 닿았으니 이제 네 죄는 다 사함 받았느니라” 그게 무슨 뜻입니까? 제단은 죽음을 말하는 것이요. 제물이 거기서 타 죽지 않습니까? 네 입술도 죽었다 그거예요. 네 입술이 이젠 죽어버렸다. 지져버려라 이거예요. 다시 살아 꿈틀거릴 것이 아니오. 속죄의 징표를 보여주고 그런 고로 너는 정하게 되었다 라고 선언합니다.

12세기의 영성가인 끌레르보의 버나드 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의 유명한 Treatise on Humility and Pride 라고 하는 책에서 진리로 나가는 길 세단계를 말합니다. 우리가 깨끗하게 되고 의롭게 되고 정결하게 되는 길은 먼저 결정적인 것은 겸손입니다. 겸손하고야만 유순한 말을 할 수가 있어요. 유순한 대답은 노를 쉬게 한다고 했습니다. 교만한 자의 말은 언젠가는 터지게 마련이에요. 언젠가는 불의로 치닫기 마련이에요. 아주 낮추고 낮추어서 겸손하게 되면 말이 부드럽고 온유하고 화평하게 되는 것이에요. 무디라고 하는 유명한 부흥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온 천하를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그러나 그의 과거는 아주, 구두 깁는 사람이었어요. 무식하고 공부한 바가 없어요. 그러나 정열적으로 다니며 부흥회를 인도하고 있는데 어느 마을에 부흥회를 인도하러 갔더니 아 그 마을 신문에다가 무디에 대해서 그 무식한 거 그의 허물들을 줄줄이 나열해 가지고 이렇게 험담을 늘어놓았어요. 이 신문을 보는 동안 그 지방의 목사님들, 또 그리고 무디를 사랑하는 분들이 얼마나 마음이 아파요. “이 나쁜 놈들, 이런 이런…….” 그리고 욕을 할 때에 무디는 그 신문을 보면서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버려두라고. 신문에 나지 않은 허물이 훨씬 더 많으니까 그럴 것 없네” 빙그레 웃으며 대답합니다. ‘저들이 말하고 있는 그것보다 나는 훨씬 더 부족한 사람이다. 그들이 지적하는 죄인보다 더 큰 죄인이다’ 그 겸손이 부드러운 대답을 할 수 있게 만든 거예요. 그가 누구를 용서하므로 도인이 되고 높아지겠다는 게 아니에요. 겸손하고 보다 더 겸손했기에 그는 부드러운 말을 할 수가 있었어요. 또한 자비로운 마음입니다. 모두 이해하는 마음, 자비로운 마음, 믿어주는 마음, 내 편에서가 아니라 저 편에서 생각합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가득 차면 우리의 말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런가 하면 자기 순결을 지켜야 됩니다. 항상 내 마음을 내가 다스리고 깨끗한 순결, 입술이 깨끗해져야 합니다.

다시 초대교회로 돌아가 봅시다. 오순절 성령 충만한 교회의 특징이 뭡니까? 성경은 방언이라고 말합니다. 방언은 언어입니다. 언어의 변화가 먼저 오는 것이에요. 성령받은 사람의 말이 달라진 것이에요. 소통하는 말로 그리스도적인 말로 복음전하는 말로 언어가 변화되는 것이에요. 골로새서 4장 6절에 보면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여러분 배추나 무를 소금을 탁 쳐서 잠깐만 나두면 부들부들 해집니다. 소금으로 고르게 함 같이. 맛없는 것도 맛이 있게 합니다. 그러나 자기자신은 녹아 없어집니다. 자기 정체는 녹아 없어지면서도 자기 본질을 변화하지 않습니다. 그게 소금입니다. 소금으로 고르게 함 같이, 부드럽게 화목하게 맛있게 그러한 말을 하라.

그리고 이사야는 사명의식을 받게 됩니다.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 이사야는 대답합니다. “나를 보내소서 내가 가겠나이다.” 여기서 선지자가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폭력시대에 삽니다. 언어 폭력시대에 삽니다. 언어폭력이 실제 폭력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운명입니다. 말초신경적이요 극단적이요 속된 말을 하고 잔인한 말을 합니다. 요새 어쩌다 영화구경을 가보면요 얼마나 잔인하고 더러운 말을 하는지 이 운명이 어디로 가나 걱정이 됩니다. 죄송하지만 북한에 가서 보면요. 북한 사람들 참 거친 말을 합니다. 잔인한 말을 합니다. 아, 고대로 말해볼까요? “대가지를 까부시겠다” 그래요. 까부시는 게 뭡니까? 까부시는게. 살 값을 한다고 그럽니다. 아, 무서운 섬뜩섬뜩한 말을 합니다. 거침없이 합니다. 이것이 남을 죽이는 게 아니에요. 자기 자신을 죽이고 자기 운명이 망가뜨리는 거예요.

언어는 그 마음에 있고 그 인격에 있고 그 신앙에 있고 그 운명으로 치닫는다는 것을 잊지 마십니다. 입을 새롭게. 재단 숯불을 입에다 대서 지져버려! 다시는 살아나지 못하게 그리고 심령으로 새롭게 되고 입술이 새롭게 되고 다시 내 심령이 새로워지고 내게 듣는 사람 모두가 새로워질 거고 그에게 새로운 운명이 전개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신령한 세계를 바라면서도 아직도 해결되지 아니한 문제가 있고 정결함을 원하면서도 아직 입술이 정결해지지 못함을 고백합니다. 주여, 불쌍히 여겨 주셔서 하나님 앞에서 다시금 새로워지게 하시고 입술이 정결해져서 내 심령이 정결해지고 듣는 자가 정결해지고 이 사회가, 그리고 우리의 앞날이 정결해질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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