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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 (삼상 15:10-19)

by 【고동엽】 2024.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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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선희목사/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 (삼상 15:10-19)

 

조선일보에 논설위원으로 계시는 이규태씨가 쓴 책 중에 '한국인의 버릇' 이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 중에서 한국인의 강한 서열의 식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 물이나 사
리를 서열적으로 파악해야 만 사고와 행동이 안정되는 경향에 대하여 강하다고 지적하고 있
습니 다. 사람을 만날 때, 만나자마자 우 리는 상대방의 신분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이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왜냐하면, 신분이 나보다 높은가 낮 은가, 이걸 따지고 싶은 거예요. 나
이가 나보다 낮은가 많은가, 낮으면 그저
"자네"
하고 싶고, 높으면 예 의를 갖추어야 되기 때문이죠. 이 런 서열의식 이건 참으로 문제올시
다. 어느 학교 나왔나, 아주 궁금해 요. 나 보다 좋은 학교 나왔나, 학 교 못 나왔나? 또는
동창이라고 하 게 되면 선배인가 후배인가? 딱 정 하자마자 후배라고 하게 되면 벌써
"야, 너"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못 됐어요. 종씨라고 하면은 또 항렬 부터 따집니다. 몇 대손인가, 뭐
이 래 가지고요. 유별나게 명함 내놓 기를 좋아합니다. 그것도 다 이 서 열의식 때문입니다.
이 랭킹의식, 이것이 망조입니다. 이것 때문에 거짓되고, 이것 때문에 허영되고, 이 것 때문
에 거품이 일고, 형식주의에 빠지는 거라고요. 경제, 정치, 문화 모든 것이 여기서 결단이 납
니다요. 이 서열의식을 우리 머리에서 완전 히 빼 버리기 전에는 뭐 세계화니 뭐, 얘기는 꿈
도 꾸지 마세요. 어림 도 없는 얘기입니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어요. 초기 선교사들이 한
국에 와서 선교하실 때, 한국 가 정들을 방문하게 됩니다. 우리 옛 날 방이라면, 지금도 그
렇지만 방은 뭐 그저 그야말로 좁은 공간일 뿐입 니다. 아무 표시도 없는데 여기서 아랫목
윗목이 있습니다. 윗자리, 아랫자리가 있는데 이 선교사가 막 들어서면서 어디가 아랫자리인
지 윗 자리인지 알 수가 없거든요. 큰 고 충이었답니다. 만일에 선교사가 들 어서서 윗자리
에 앉았다가는 이거 벼락이 떨어지는 거예요. 선교는 다 한 거예요. 그런데 이 식별하는 길
이 없거든요. 무슨 표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중요한 것은 옛날에 추울 때니까 부엌이 있는
곳이 윗자 리예요. 부엌이 아랫목이니까 부엌 반대쪽인데 남의 집 부엌이 어디에 있는지 그
걸 알 수가 있나. 이 부 엌이란 여인들의 고유공간인데 이걸 기웃거리다가는 큰일나죠. 그리
고 는 또 하나는 좀 양반 집에 가면 의 관 즉, 갓이 걸려있어요. 바람벽에 갓이 걸려있는 바
로 거기가 윗자리 요. 어쨌든 윗자리, 아랫자리 이거 문제구요. 지금도 보면 무슨 식당 엘
가든지 어딜 가든지 보니까 뭐 아래위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올라 앉으세요, 내려앉으세요"
그래요. 뭘 올라앉고 말고 해 거기가 거긴 데. 왜 이렇게 서열에 신경을 쓰는 지 참 복잡해
요. 언제든지 자리에 한번 앉으려면 벌써 몇 번 옮겨야돼 요. 여기가 윗자리고, 저기가 아랫
자리고, 왜 이렇게 피곤하게 살아야 됩니까? 자기 스스로를 높이는 풍습 이올시다. 어느 신
문에 보니까 커 다란 수탉 한 마리가 거기에 나왔어 요. 그래서 웬 수탉을, 여기다 이렇 게
큰 사진을 그려놨나 했더니 설명 은 이렇습니다. 다른 수탉을 다 물 리치고 모든 암탉을 차
지하게 된 강 한 수탉이 지붕 위에 올라가서 위풍 당당하게 소리를 지릅니다.
"이 세 상은 내 것이다"
라고 말이 떨어지 기도 전에 독수리가 와서 채갔답니 다요. 나폴레옹의 말입니다.
"승리 했을 때가 가장 위험한 때다."
높 은 자리 조심하세요. 그 때가 위험 한 때입니다. 요사이는 용어를 바 꿔서 리더쉽이라고
하는 학문에 대 해서 많은 사람들이 연구를 하고 있 습니다. 미국의 최고 경영학 저서 에
수여하는 벤자민 프랭클린 상이 라고 하는 특별상이 있습니다. 이 상을 수상한 작품, A
Higher Standard of Leadership 이라고 하 는 책이 있습니다. 캐샤반 나이르 (Keshavan
Nair) 라고 하는 분이 쓴 것인데요. 이 책에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는 부분이 있습니다. 권
력과 부와 무력에 의한 지도력은 지 도력이 아니다. 돈 많다고 큰 소리 치는 거, 그건 지도
력이 못돼요. 권 좌에 앉았다고 큰 소리 쳐봐야 웃기 는 소리예요. 그건 지도력이 될 수 가
없습니다. 결국은 도덕적 원칙 을 바탕으로 해서 성심을 다해서 봉 사하는 간디의 리더쉽을
21세기를 내다보는 가장 이상적 지도력의 패 러다임으로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 습니다. 그
래서 이 책의 책이름을 우리 나라에서는 '간디의 리더쉽' 이 렇게 번역을 했어요. 이 속에서
몇 가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세 가 지를 강조하는데 첫째는 이중 기준 을 버리고 모범을
보이라. 우리는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따로따로 보려고 하는 의식이 있어요. 이건 어디까
지나 사적인 것이고 공적으로 하는 이것만 따라 오라, 하고 외치 지만 지도력이란 공사가
없습니다. 사적인 것을 보지 않고는 공적인 것 을 따르지 않습니다. 사생활과 공 적인 것이
별개 될 수 없다는 것이 지도력의 속성입니다. 그런고로 이 중성을 가지지 말고 생활에서
사생 활에서 모범을 보이라. 그래야 지 도력이 지도력 될 수 있다. 또 하 나는 핵심은 봉사
정신으로 임해야 한다. 그 만이 지도자가 될 수 있 는 것이에요. 예수님께서도 말씀하 십니
다.
"내가 세상에 온 것은 섬 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섬기려하 고 대속물로 주려고 왔노라"
섬기 는 자세! 이것이 문제입니다. 봉 사정신이 없어요. 그저 돈만 벌려 고 하고 또 돈만 벌
면 어디론가 가 버리고, 정신이 없어요 그만. 이게 문제란 말입니다. 봉사하는 마음으 로 공
부하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연 구하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돈을 벌 어야 되겠는데, 여러분
성인군자가 되라는 게 아닙니다. 최소한도 자 신의 행복을 위해서도 봉사하는 마 음을 가져
야 됩니다. 그래야만 지 도력이 성립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 야돼요. 사회도 가정도 마찬가지
입 니다. 셋째는, 결단과 행동의 기본 원칙이 있어야돼요. 정치도, 경제 도, 사회도 항상 기
본 원칙을 떠나 면 안돼요. 기본 원칙이 먼저요. 그것을 내가 먼저 지켜나갈 때 비로 소 지
도력이 성립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말합니다. 사람들은 돈 을 벌면 돈에 집착하고, 권
력을 가 지면 권력에 집착하고, 이런 집착이 지나칠 때 마침내 폭군이 되고 불의 한 길에
들어서게 된다 하는 말입니 다. 그래서 간디는 애당초 빈곤한 서민의 길을 택했습니다. 이래
서 오늘까지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높은 존경을 받는 지도자가 됩니다. 여 러분 깊이 생각해
야 됩니다. 오늘 우리는 지도자가 눈에 보이지 않아 서 이렇게 피곤해하고 있습니다. 미래가
보여진 게 아니라 미래가 안 보이는 게 아니고 우리가 전적으로 신뢰하고 믿고 따라갈 수
있는 지도 자가 보이지 않아서 이게 슬픈 얘기 입니다.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습 니다. 어떤
날 랍비가 말하기를,
"진리는 길에 널려있는 돌멩이처럼 흔한 것이다"
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래 제자가 묻기를
"선생님 그렇게 흔한 것인데 왜 사람들은 진리를 터 득하지 못합니까?"
랍비는 다시 대 답합니다.
"그거야 사람들이 허리 를 굽히기 싫어하기 때문이지. 허 리를 굽히기 싫어하기 때문에 돌
을 주울 수가 없단다"
그렇습니다. 허 리를 굽혀야돼요. 허리를 굽혀야 진리를 터득하고 진리를 터득해야 지도자가
되는 것이죠.
오늘 본문에는 사울 이라고 하는 왕의 이야기가 나타납니다. 그는 어느날 큰 실수를 했습니
다. 사무 엘 선지가 그를 책망하고요, 꾸지람 을 하고, 마지막에는 결정적으로
"여호와께서 당신의 왕의 지위를 빼 앗습니다. 당신은 이제 왕이 될 수 가 없을 것입니다"
라고 이렇게 심 판하게 됩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 이었습니까? 사울은 본래 겸손한 사람이
에요. 아주 겸손해서 그가 왕이 된다고 할 때, 도망가다 도망 가다가 마지막에 뒤주 뒤에 숨
어있 는 걸 끌어 내왔습니다. 그렇게 겸 손했던 사람이에요. 어떤 때는 또 아버지의 명령을
받아 가지고
"야 그 암 나귀 하나 잃어버렸는데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찾아와라"
그랬 더니 얼마나 정직하고 성실했던지 암 나귀를 찾아 사흘동안을 헤맸어 요. 그 만큼 순
종하는 사람이고 진 실한 사람이고 겸손한 사람이었어 요. 그리고 성경말씀대로 스스로 작
게 여겼습니다. 자기를 작게 여 겼던 그런 사람인데 왕이 되면서 어 느 사이에 교만해졌어
요. 아주 교 만해졌습니다. 그 교만에 대한 이 야기가 오늘 본문에 나타납니다. 첫째는, 아말
렉과 싸우게 되는데 이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이 결정합니 다. 미리 결정합니다.
"아말렉을 너의 손에 붙였느니라"
하고 말씀하 시고 나가라 하면 그 싸움은 이기게 되어 있는 겁니다. 이제 사울 왕이 나가서
싸웁니다. 이것은 소돔 고 모라를 진멸하듯이, 노아 홍수 때에 온 세상을 진멸하신 것 같이
하나님 께서 저들의 죄악을 심판하시는 순 간입니다. 그런고로 집행자로 사울 왕을 사용하
는 것이니까 사울은 이 제 아무 것도 물을 것 없습니다. 그대로 나가서 싸우고 진멸하면 되
는 겁니다. 자, 그런데 하나님이 이 기게 하셔서 이긴 것이고, 싸우라 해서 싸운 것이요. 이
긴 다음에 그 는 오늘 성경에 보는 대로 기념비를 세웁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기념비. 죄송
하지만 우리 교회가 이제 뭐 이 런 일, 저런 일, 이런 기관, 자선 기 관에, 뭐 이런 데에서
수고를 많이 하시는데 가끔 보면은 그 기관에서 저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기 위해서 감사패
를 줄 때가 있습니다. 저는 그게 그렇게 맘에 안 들어요. 주의 이름으로 봉사했는데 왜 감사
패를 받아야 합니까. 그 감사패가 옛날 엔 감사장, 그 종이로 돼서 불태워 버리면 됐는데,
요새는 뭐 고급 물 질로 하다가 요새는 또 돌로 합니다 돌로, 크리스탈로. 이거는 공해예요
공해. 둘 데도 없어요 그거. 어디 다 버리지도 못하겠구요. 그런데 이걸 받아야만 좋아하는
사람이 있 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거든요. 봉사하고 나서 왜 우리가 받아야 합 니까?
선한 일 하고서 왜 내가 감 사패를 받아야 합니까? 이거 정말 못마땅한 것이에요. 그런데
오늘 성경말씀에 보면 이 사람들은 옛날 이나 오늘이나 이런 사람들이 있어 요. 기념비 세
우기 좋아하는 사람 들이 있어요. '내가 여기서 싸워서 크게 이겼느니라' 기념비를 세울 때
에 하나님께서 그냥 내려칩니다.
"이건 네가 이긴 게 아니야."
네가 기념비 세울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 는 거죠. 여러분 어떤 일을 하든 간에 기념비적인
행사, 기념비적인 사건,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돼요. 다시 말하면 내 이름을 높이려고 하 는,
자기를 높이려고 하는 생각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마치 내가 한 것처럼, 내
가 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또 한 가지는 순 종치 않았어요. 순종하는 거 같으 나 순종치
않았어요. 아말렉과 더 불어 싸우라! 싸웠어요. 진멸하라! 진멸했어요. 그래서 순종했습니다
라고 하나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순 종 안 했어요. 순종이란 명령하시 는 자의 뜻을 고대로
받아들여야 되 는 것이에요. 내 의견과 내 생각을 버리고 아주 전폭적으로 100%로 그 분의
뜻을 받았을 때만 그것도 기쁨 으로 받았을 때 그게 순종이라는 것 이죠. 그런데 나가 싸우
라니까 싸 우기는 싸우고, 진멸하라니까 진멸 하기는 한 거 같은데 아니오. 좋은 양과 소,
쓸만한 것은 남겼잖아요. 오늘 성경에 보는 대로 이거 웬일이 냐고, 이것이 잘못이에요. 순
종한 것이 아닙니다. 형식적으로는 순종 했는데 내용적으로는 순종한 게 아 니요, 겉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 른 것 같은데 사실은 자기 욕심과 탈취물을 취하는데 급급했어요. 하
나님께서 이것을 심판하시는 것입니 다. 순종함이 없었어요.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변명을
하게 됩니다. 이 변명에 문제가 있어요.
"왜 이 런 일이 있느냐?"
하고 잘못을 지적 할 때,
"그렇습니다. 제가 잘못했습 니다"
했으면 좋았을 걸, 요 순간에 벌써
"나는 그게 아닌데 백성들이, 백성들이"
엉뚱하게 돌립니다요. 자기 잘못을 남에게 돌립니다. 그 리고
"백성들이 원해서", 그러다가 또
"아 이 좋은 양과 소를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리려고."
하나님께 드 리려면 내걸 드려야지. 그래, 아말 렉에서 싸워 가지고 온 전리품을 바 치겠어
요. 이 무슨 망언이요. 변명 하다보니 이 정신없는 소리를 한 것 이지요. 여러분 변명을 금
물입니다. 거짓말하면 안됩니다. 충고를 무시 하면 안됩니다. 도덕성과 정직을 떠나면 안됩
니다. 잘못된 걸 잘못 된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 회개입니 다. 여기서 생각해야 됩니다. 왜
정직하기가 어려우냐고요? 교만하 기 때문에. 정직하면 모든 체면이 다 무너지는 거 같으니
까. 여기서 진실했다가는 아주 그만 내 위신이 망가지는 것처럼 착각을 하기 때문 이에요.
바로 마음이 높기 때문에,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자 기 위치를 떠났습니다. 13장에
보 면은 하나님께서 크게 책망하시는 게 이겁니다. 제사는 제사장이 드 리는 겁니다. 아무리
왕이지만 왕 이 제 마음대로 하나님 앞에 제사드 릴 수는 없는 겁니다. 이래서 사무 엘 선
지가 크게 책망합니다. 어찌 하여 이런 망령된 일을 했느냐구요. 왕은 왕이 할 일이 있습니
다. 그 한계를 넘어서서는 안됩니다. 제사 장의 할 일을 자기가 해버렸어요. 또 변명을 합니
다. 이 변명하는 것, 이 거짓말하는 것, 이것을 하나님이 크게 책망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여러분 자신의 겸손함을 한 번 진단 해 보실까요. 먼저는 내게 주어진 분깃,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십니 까? 얼마를 받았던지 어떤 형편에 살던지 여기에 만족하십니까? 혹 불만하십니
까? 불만하면 교만이요, 만족하면 그게 겸손이요. 게다가 나는 작은 수고를 했는데 하나님이
큰 것을 주었다고, 난 아주 부족하 고 그런데 오직 은혜로, 오직 은혜 로 내게 이렇게 넘치
게 주셨다고 그 렇게 생각하시면 그가 겸손한 사람 이에요. 또는 여러분 이웃에 대해 서도
생각해 보세요. 만족치 않습 니까? 죄송하지만 아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게
분에 넘치는 아내입니까 아니면 '어쩌다 가 저런 못된 걸 걸렸나' 그런 생각 합니까? 내 분
에 넘치는 분이다, 그게 겸손이에요. 감지덕지하지. 그런가 하면 남편에 대해서도 '오직 하
나님의 은혜로 이 같은 남편을 주 셔서' 이런 마음입니까 아니면 '어쩌 다가 저 웬수 만나
가지고 한 평생 고생을 하나.' 조심하세요. 이 생 각 한 마디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몰라
요. 그저 감사하게. 또 자녀들 도 그래요. 자녀들에게 주신 거 보 면 세상에 태어난 것도 고
맙고 공부 를 잘하든 못하든 중요한 게 아니에 요. 그저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렇 게 생각하
면 이게 바로 겸손이고요 '어디서 내 속에서 저런 게 태어났 노' 당신은 교만한 사람이요.
이걸 알아야 되요. 겸손한 마음을 가지 면 이웃에 대해서도 가정에 대해서 도 내 하는 사업
에 대해서도 감사, 감사, 감지덕지해요. 이게 스스로 작게 여기는 마음이요. 혹 남들이 나를
칭찬하든가 비방하든가 상관없 어요. 그건 작은 일이에요. 이것이 겸손한 사람이요. 그것을
신경을 많이 쓰고 돌아가면 이 사람은 위선 자예요. 그것을 아셔야 되고요. 혹 여러분 억울
한 말을 듣습니까? 제 가 심각한 말씀을 드릴게요. 어느 날 우리 신학 후배들이, 제가 가르
친 제자들인데 아주 심각한 질문을 해요. 벌써 목회생활 오래 했거든, 20년씩하고, 이제 선
배 된 내게 묻 는 겁니다.
"목사님, 목회 하실 때 하고 억울한 얘기를 들을 때가 있는 데요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억
울한 말을 하고 자꾸 말이 번져 나갈 때 아주 속상해요. 아주 분하고 억울 하고. 목사님 그
럴 때는 그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습니까? 아무리 기도해도 안 되는데요."
그러면 제 가 대답을 합니다.
"조금만 더 겸 손하지 그래. 그리고 조금만 더 정 직하지."
"무슨 소린데요?"
"글쎄, 자넨 이해할 지 모르지만 나는 이렇 게 생각하네. 지금 저 분이 나에 대해서 억울한
말을 하는데", 그건 억울해요. 사실 변명하고 싶은 생 각이 있어요 그런 일은 없으니까
"조금 억울하긴 하나 가만히 생각하 면 들키지 않은 죄가 많거든. 그걸 아나? 이런 비방에
비방되지 않는 거, 남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 잘못도 내게 많잖아. 아 그러면 상 상해 버
리고 말지. 내가 워낙 실수 가 많은 사람인데 뭐 이런 정도 하 나, 없는 얘기 좀 하기로서니
어떤 가? 그렇게 생각하니까 뭐 아무렇 지도 않더만."
"그래요."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억울하다고 합니까. 억 울하긴 뭘 억울해. 죄인보고 죄인 이라는데 뭐
이 나쁜가? 고 하나가 뭐 기다 아니다 하고 따질 맘 있어 요? 여러분 한 계단만 더 내려앉
으 세요. 정직하기가 힘이 듭니까? 그건 교만이에요. 겸손한 사람은 언제든지 정직하기가 쉽
습니다. 회 개하기가 힘듭니까? 그건 교만하기 때문이요. 겸손한 사람은 언제라도 회개할 수
가 있어요. 여러분 요새 우리에게 큰 문제가 되는 게 이것이 아닙니까? 왜 원망과 불평이
많습 니까? 이 모두가 스스로 자기를 높 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 은 심각합니다.
교만한 사람, 겸손 한 사람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니에 요. 한 사람을 놓고 말하는 것인데 그
가 스스로 작게 여길 때, 그가 스 스로 작게 여길 때 하나님께서 그를 높여 이스라엘의 왕
을 만들었고, 그 가 스스로 자기를 높일 때 내려쳐서 왕이 되지 못하게 했습니다. 여러 분
하나님 앞에서 정직히 행해야겠 습니다. 야고보 4장 6절에서 보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 에게 은혜 주신다."
다시 한 번 더 겸손을 점검하십시다. 그리고 정직 하십시다. 그에게 다시 은혜의 날 을 허락
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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