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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선희목사/성실한 자의 복! (잠 28:10-20)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다음에 바 로 동독 드레스덴을 제가 방문한 일 이 있었습니다. 거기
서 여러 가지 를 생각해 보았는데 같은 독일 사람 인데 서독과 동독사이에 이렇게 큰 차이
가 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댁에 초대받아서 저녁식사를 하
는데 조그 마한 빵 하나를 갖다 놓고 그거를 얇게얇게 이렇게 썰어 놓고 토마토 몇 개 차려
놓고 치즈 한 쪽하고 이 러고 앉아서 그 목사님 댁 다섯식구 와 제가 저녁을 먹게 되는 겁
니다. 아 그거 한 쪽 더 먹었다가는 다 굶 을 판이에요 지금……. 나는 여행 많이 했지만은
저녁식사를 굶고 자 본 일은 그때가 처음입니다. 이렇 게 어렵고 가난할 수가 없어요. 홍 차
를 끓여 가지고 그거 홍차봉지 하 나 놓고 물을 얼마나 넣었는지 그거 만 자꾸 따라주면서
마시라는 거예 요. 인정은 좋은데 아 이렇게 어 렵게 지낼 수가 없어요. 그런데 우 리가 독
일사람 하면 부지런하고 정 직하고 그리고 생각이 합리적이고,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습니
까? 근 데 같은 독일사람인데 이렇게 다를 수가 없습니다. 또 이렇게 못 살수 가 없어요 지
금도 그렇습니다. 공 산주의가 사람을 이렇게 만들었어 요. 좌우간 공산주의 나라는 하나 같
이 못사는 거야. 그 못사는 정도 가 우리가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왜 이래졌을 거 같습니
까? 자본이 없습니까 기술이 없습니까? 아 달 나라에 가는 기술도 있잖아요. 그 런데 못살
아요. 그 원인이 뭘까? 많은 사람이 많은 책을 쓰고 연구합 니다 만은 결론은 간단합니다.
사 람이 변질됐다는 거죠. 인간이 못 쓰게 돼버렸어요. 그래서 우리가 공산주의 사회에서 나
온 사람을 만 나면 꼭 세 가지를 잊지 말아야 됩 니다. 첫째가 불성실하고 거짓말 잘해요.
또 하나는 게으르고 세 번 째는 무책임합니다. 모든 일에 책 임질 줄을 몰라요. 그 뿌리는
이렇 습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제일 많 이 쓰는 말이 혁명입니다. 혁명! 혁명! 개혁 혁명!
그러는데 가만히 분석해 보면 혁명이라는 건 내 가난 의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 거예요. 내
잘못의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 것 이 혁명이예요.
"내가 잘못했습니 다"하면서 혁명하는 사람 봤어요? 개혁을 외치는 사람마다 자기 개혁 은
없어요. 꼭 남보고 말하는 거지 이제……. 그 자체도 의식적으로 보면은 의식구조가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얘기예요. 그것도 무책임한 얘기입 니다. 우리는
수없이 개혁이라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그 개 혁을 무장하는 그 사람의 속에 개혁
이 있는 것을 본 일이 없습니다. 이건 꼭 모든 세상만 잘못됐대요. 사회가 잘못되고 세상이
잘못됐고 구조적으로 잘못됐고 총체적으로 잘 못됐고……. 아무리 외쳐도 그것은 무책임한
소리예요.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이올시다. 가난하고 부하고 지식이 있고 없고 지위가
높 고 낮고의 문제가 아니라 가장 기본 은 성실입니다. 나라도 경제도 정 치도 인격도 성실
이올시다. 여러분 신뢰 지수에 인격이 걸렸습니다. 신실을 잃어 버렸으면 다 잃어버린 것입
니다. 이걸 알아야 합니다. 프 랜시스 후쿠야마 라고 하는 사람이 쓴 '트러스트' 라고 하는
책이 있습 니다. 어떤 이유인지 이 책을 번역 할 때 책이름을 번역하지 않고 그대 로 썼어
요. '트러스트' 이랬습니다. 이 책의 주제는 이렇습니다. 경제 가 지식과 자본과 기술에 의해
서 이 루어지는 게 아니다. 신용도에 의 해서 이루어지는 거다. 이건 세계 적으로 큰 센세이
션을 일으켰습니 다. 여러분 돈이 없어 못사는 게 아니에요. 성실이 없어 못사는 거 예요.
기술이 있고 지혜가 있고 뭐 모든 것을 가졌다 하더라도 성실이 라고 하는 기초가 없으면
그대로 왕 창 무너지고 마는 거예요. 아무 소 용도 없는 거예요. 그런데 이 성실 지수가 문
제입니다. 어떤 사회가 성실도수가 높으냐 하는 거죠. 이 분의 생각은 봉건주의가 성실지수
가 제일 낮아요. 그 놈의 체면 때문에. 그리고 자기 가족만 위하는 생각 때 문에 성실지수가
제일 낮고 이 보다 더 낮은 것이 공산주의 사회예요. 이 분의 지론은 공산주의가 무너진 것
은 성실이 없기 때문이요 자본주 의 체계에서 그만큼이라도 살 수 있 도록 되는 것은 조금
이지만은 성실 이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거죠. 성실은 안다 모른다, 있다 없다, 할 수
있다 못한다, 이 문제 이전의 일 입니다. 기본자세입니다. 여러분 돈을 잃어버리면 일부를
잃어버린 것이고 건강을 잃어버린 것은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고 합니다. 성실을 잃어버리면
영원히 잃어버린 겁니 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 떤 어린아이가, 미국에서 된 얘기입
니다만은, 유치원에 다니는 꼬마가 저녁에 돌아와서 자기 형님들한테 25전짜리, '쿼터'라고
하는 돈 하나 를 들고 오늘 나는 이 돈을 벌었다 고 자랑을 하는 거예요.
"니가 돈 을 어떻게 벌었냐?"하니까 내가 버 스를 타는데 그 버스 운전사 옆에 있는 토큰을
넣는 통, 거기다가 이 걸 넣으려고 키가 작아서 발버둥을 하고 넣으려고 막 하는데 주위에
서 사람들이 왁 하고 미니까 그냥 뒤로 가버렸어요. 그래 돈을 안 내고 타 고 돌아와서 요
거 내가 벌었다고 자 랑을 하는 거예요. 아버지는 이 아 들을 붙들고 목을 놓고 울었습니다.
"너는 우리 가문의 정직이라고 하는 높은 전통을 25전에 팔아버린 놈이 다."
그리고 울었다는 겁니다. 여러 분 진실을 어느 정도 소중히 여기십 니까? 이건 생명보다 더
큰 것이에 요. 이걸 잃어버리면 아무 것도 없 는 거예요. 그리고 성실과 진실이 라는 것은
사실로 성품화 되어야 됩 니다. 전통이 되야 되고 체질이 되 야 되고 바라는 대는 문화화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실이라고 하는 그것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우리의 문화는 잘못됐
습니다. 여기에 가장 큰 슬픔이 있는 것입니다. 잘 살고 못 살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모두
가 거짓 투성이란 말이에요. 이러 고는 망하지 않을 수가 없음을 알아 야 합니다. 개인이건
인격이건 사 회건 성실 없이는 서지 못합니다. 경제고 정치고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성경에는
"성실한 자 가 복이 있다"
10절에 말하고요
"충 성된 자가 복이 있다"
20절에 말하 고 계속 성실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 습니다. 먼저는 자기 자신에 대하 여 성실
해야 합니다. 보세요. 스스 로 물어보세요, 여러분은 언제나 그 누구에든지
"나는 모릅니다"라는 말 을 쉽게 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성실한 사람이에요. 모른다는 말
을 하기가 뭔가 좀 걸려서 모르면서도 체면 위신을 생각해서 아는 척 하려 고 그래요. 이게
불성실한 거예요. 우리는 어찌 다 알겠습니까? 모르 는 게 당연하죠.
"그건 모릅니니 다"
이 말 한 마디를 아주 편하게 쉽게 할 수 있어야 되요. 우리는 유교 문화에 바탕을 두고 있
어서 그 체면 때문에 모른다는 말을 죽어도 못하는 사람이 있어요. 죽을 수 밖 에요……. 이
걸 알아야 합니다. 모 르고 아는 척 하는 것, 큰 거짓입니 다. 제가 대학에서 강의하고 나올
때 가끔 질문하는 사람이 있어요. 목사님 이러 이러한 거 하고 물어봐 요 그러면 제가
"나 그거 모르겠는 데"
하면은
"목사님이 그것도 몰라 요?"
그래서
"이 사람아 내가 아는 게 몇 가지 되는 줄 아나?"
그러고 맙니다 만은 여러분 교수가 돼서 학 생 앞에서
"나는 모른다, 그거 모른 다"
이거 말하기 어려워요. 그러나 못할 것도 아니예요. 바로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해
요. 아 는 건 아는 거, 모르는 건 모르는 거, 할 수 있는 건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 건 할
수 없습니다. 가진 것은 가졌고 못 가진 것은 못 가졌 어요. 못 가지고 가진 것처럼 없으 면
서 있는 것처럼 그럴 필요가 없습 니다. 그대로 받아들이세요. 여자 분들이 예쁘게 보이려고
꽤 애씁디 다 만은 가끔 제게 물어봐요
"목사 님 젊어 보입니다"
그럴 때, 내가
"예 젊어 보이는 것과 젊은것은 다 릅니다"
그러고 말아요. 그 늙었다 는 소리거든요 그렇잖아요?
"젊어 보입니다"
그래 내가 농담 겸 진담 으로 대답합니다
"실속이 있어야지 요"
그러고 맙니다. 보이면 뭘하누 실속이 없는데……. 여러분 그저 곱게 늙읍시다. 뭐 젊은 척
하려고 그러고 없는 기운 있는 것처럼 요란 스럽게 그러지 마세요. 그러다 먼 저 갑니다. 그
저 그대로 나이 들었 으면 들은대로 작으면 작은대로 크 면 큰대로 이것이 진실이예요. 작
은 사람이 크게 보이려고 할 것 없 고 큰 사람이 구부정하고 다닐 필요 없고. 안 그렇습니
까? 그대로.
또한 제일 중요한 것은 회개에 대하여 진실해야 됩니다.
"잘못했 습니다"
"하나님 앞에나 사람 앞에 잘못됐습니다"
라는 말을 깨끗하게 할 수 있는 그런 체질이여야 합니 다. 저는 다윗왕을 개인적으로 무 척
좋아합니다. 하나님도 좋아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신구약 성경에 다 윗이라는 말이 팔백번
이 나옵니다. 사람의 이름으로서는 최고로 많이 나오는 이름이 다윗입니다. 하나님 은 다윗
을 사랑했어요. 내가 알기 는 그는 정직한 사람이에요. 나단 선지가 말합니다
"당신이 죄인입니 다"고 할 때
"내가 죄를 지었습니 다. 엄청난 죄를 지었습니다"
남의 마누라를 뺏어왔지요, 남편을 죽였 지요. 이 엄청난 죄를 왕의 보좌에 앉아서 그대로
인정을 합니다.
"내 가 죄를 지었나이다"
그의 시편에 나오는 참회록에 보면은 단 한번도 밧세바를 원망하는 일이 없습니다. 환경을
나무라지도 않습니다. 그것 은 나의 실수였다고 말하지도 않습 니다.
"내가 죄인입니다.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는 죄인입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더 위대한 것은 그래 이 렇게 한번 지적을 당하고 회개하고 나서 왕관을
벗어버리고 하야하지 않았습니다.
"나 이 부끄러워서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노라"
그리 고 하야해서 베들레헴으로 가 버렸 다면 다윗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죄인보고
죄인이라는데 뭐 잘못됐나? 그대로 그 부끄러운 얼 굴을 가지고 그대로 나라를 다스립 니
다. 그래서 나라에서 반란이 일 어나고 자식이 아버지를 반대할 때 에도 그는 나무라지 않
습니다. 내 지은 죄의 대가로 이것이 여기에 있 다고
"내 집에 칼이 떠나지 아니하 리라"하고 말씀하신 나단 선지의 예 언이 여기에 응한 것이라
고 생각하 기에 그는 전혀 아무 말도 없습니 다. 정직했습니다. 성실했습니다. 맡은 바에 성
실했습니다. 위대한 것입니다. 회개, 회개에 성실해야하 고 또 자기 책임에 대해서 성실해야
됩니다. 여러분 내 잘못 내 탓이지 요, 다른 사람 잘못도 내 탓이에요. 자식이 잘못되는 거
누구 탓입니까? 남편이 잘못된 길을 가는 거 누구 탓입니까? 세상이 이 모양 되는 거 누구
탓입니까? 책임에 대해서
"다 내 책임입니다"
"나의 부덕함입니 다"
"나의 허물입니다"
이것을 신실 하게 인정하고 그게 성실함이에요. 이웃에 대해서 보세요. 우리 이웃 에 많은
신세를 지고 삽니다. 세상 에 받지 않은 것이 어디에 있습니 까? 얼마나 많은 사람의 도움
을 받 으며 삽니까? 그것을 고맙게 여기는 마음이 그게 성실이에요. 제 잘난 것처럼 살고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 럼 착각하지 마세요. 얼마나 많은 사람의 갚을 수 없는 신세를 지고
삽니까. 이것이 성실이요. 또한 의 무에 대해서 성실해야 하고 약속에 대해서 성실해야 됩니
다. 어떤 약 속이든 목숨을 걸고 지켜야 됩니다. 약속을 무서운 줄 모르는 것, 그것 은 무너
진 인격이요 파멸된 인격이 올시다. 약속을 소중히 여깁니다. 또한 맡은 책임 성실해야 됩니
다. 탐욕을 가지지 말것입니다. 왜요? 내 것은 내 것이고 남의 것은 남의 것이니까요. 시기
하지도 말고 질투 하지 말 것이요 그것이 성실입니다. 소득에 연연해서는 안됩니다. 제가 어
느 책을 보니까 너무 재미있는 얘 기가 한 마디가 있습디다. 그 백화 점을 해서 백화점으로
서 세계적으로 성공한 분이 계세요. 그 성공한 분 이 그 사훈이 오직하나예요.
"Custom is always right"
고객은 항상 옳다 그거예요.
"여기에 있는 것 비쌉니다"
그러면 '오 비싼거다'.
"작은 겁니다"
그러면
"아니에요. 큰 거예요"
이 말을 하면 안되요. 손님이 항상 옳아요. 바로 이 하나 가지고 성실하게 크게크게 성공한
분이 있습니다. 그럴 것입니다. 또 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성실해야 됩 니다. 모든 것은 하
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사입니다. 은혜의 선물에 대해서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합니 다.
"다 받은 것뿐입니다"
하는 그 마음 이게 성실이요. 또 믿음, 믿음 이 성실할 때 두려움이 없어요. 믿 는다고 하면
서 두려워하고 걱정, 근 심하는 것은 믿음이 부도나는 것이 에요. 믿으니까 아무 두려움도
없 습니다. 이게 성실이요. 하나님의 경륜과 사랑을 믿기에 인내합니다. 서두르지 않습니다.
조급하지 않습 니다. 오늘 본문대로 너무 급하게 부자가 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 얼마를 썼던지 족하게 여깁니다. 이것이 성실입니 다. 시간에 대해서 성실해야 됩
니 다. 하루하루 그 소중한 시간을 성 실하게 지켜가야 할 것입니다. 감 사하는 마음이 성실
이요. 특별히 생산적 성실을 가져야 됩니다.
"작 은 일에 충성했음에 더 큰 일을 맡 기리라"
일을 남기는 것이에요. 성 실이 열매를 맺는 그런 생을 살아가 야 한다 하는 말입니다. 여러
분, 여 러분 자신의 성실을 스스로 점검해 봅시다. 성실지수가 어디까지 왔습 니까?
재미 사업가 중에 백영중이라고 하는 분이 계십니다. 이 회장님의 별명이 지금 미국 현재
강철왕입니 다. 10월 7일자로 출간된 새로운 책에 책제목이 이렇습니다. '나는 정직과 성실
로 미국을 정복했다' 이 런 책입니다. 그런데 원문이 더 재 미있습니다. 원문 영어로 된 책
제 목은 이렇습니다.
"No Money, No English", 돈도 없고 영어도 못해요. 그런데 강철왕이 됐어요 미국에서. 이
회사는 소위 패코스틸이라고 하 는 회사인데 아이빔을 생산하는 곳 입니다. 년 매출액이 2
억불에 해당, 그리고 경량 철근 분야에서는 시장 점유율 60%입니다. 엄청난 회사의 회장이
됐습니다. 그는 선천에서 피난 온 하나의 청년이요, 단신으로 월남을 해서 남한에서 살아보
려고 하다가 길이 열리지 않아서 오십불 을 손에 쥐고 미국으로 떠납니다.
"No Money, No English"
돈도 없 고 영어도 못합니다. 그러나 그는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나 를 인도하시고
특별히 왜 이렇게 하 나님께서 내게 좋은 분들을 만나게 할까,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살 아갑니다. 너무 고달프고 어려웠을 때 그는 식당에서 일을 하면서 이렇 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북에서 쫓 겨나고 남한에 발 못 붙이고 미국까 지 밀려왔다. 이제는 더 물러설 곳
이 없다. 그래서 오로지 성실하게 진실하게 살자' 그리 살았습니다. 물건을 팔 때
"이거는 얼마입니다."
"그거 얼마예요?"
어떤 사람이
"이 거는 좀 비싼데요"하면 그 자리에서 깎아주는 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바로 다시 계산을
해서 다음 번에 값을 내려서 정가를 매겼답니다. 그리고 어떨 땐 물건을 사러 온 사 람에게
"이 물건은 이제 곧 없어지 게 될 거 같은데요, 혹 참고하셔서 필요하다면 여분 있게 사시
는 게 좋 겠습니다"
어떤 물건은
"값이 곧 좀 더 내려갈 거 같은데요 좀 기다렸다 사시지요."
이렇게 손님편에서 성실 하게 손님에게 봉사했습니다. 마침 내
"No Money, No English"
돈 없 고 영어도 못하는 사람이 미국에서 백만장자가 됐다 이 말이예요. 공 부 많이 하고
똑똑한 사람들 생각 좀 하세요. 무엇이 근본인가? 성실 을 잃어버리면 소용없는 거예요. 교
육이라는 것은 신앙을 잃어버리면 약바른 악마를 생산하는 것뿐입니 다. 깊이 생각해야 합
니다.
우리가 늘 듣는 바하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바하는 라이프치히 에 있는
"성 토마스 교회"라고 하는 시골 조그마한 교회입니다. 그 교 회 오르가니스트로 있으면서
주일마 다 성실하게 오르간을 연주하는데 누가 알아주던 말던 매일같이 새로 운 곡을 작곡
해서 연주합니다. 그 곡은 한번도 출판된 일도 없고 발표 회를 한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
실 하게 매일 매일 새 곡을 만들어서 연주를 합니다. 마침내 265곡의 오 르간 곡을 만들고
263곡의 합창곡을 만들고 162곡의 피아노 곡을 작곡합 니다. 그는 이렇게 될 때까지도 무
명의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알 려지기 시작해서 그는 음악의 악성 이라고 하는 높은 이
름을 가지게 될 때 그 수십년 전에 작곡한 것이 이 제 와서 다시 빛을 봅니다. 오로지 성실
로 하나님 앞에서 교회 앞에 살 았던 오늘의 바하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도산 안
창호 선생 님, 그의 학벌은 중퇴입니다. 중학 교 2학년 중퇴입니다. 그는 이력서 를 쓸 때마
다
"중학 중퇴"라고 썼습 니다. 그리고 특기란에는
"배 노 젓는 일"과
"청소하는 것"이라고 썼 습니다. 내 특기는
"청소". 그는 정직했습니다. 정직을 모토로 하고 한 평생을 살았습니다. 여러분 정 직함이라
는 것은 생명보다 앞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1 장 12절에 보면
"나를 충성되이 여 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그랬습 니다. 내가 교회를 핍박했으나 나 는 진실했다. 오로지 성실을 보고 하나님께서 내게
직분을 맡기셨다고 사도바울은 고백합니다. 수익과 출 세와 명예, 아무것도 아닙니다. 성 실
이 먼저입니다. 성실에다가 생명 을 거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요 순 교자입니다. 우리는 진
실을 너무 헐값에 팔아버리고 있습니다. 오직 성실로 하나님 앞에 바로 서고 하나 님이 인
도하시는 내일을 기다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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