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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누가복음 5장27-32 / 내가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by 【고동엽】 2022. 11. 19.
■2022년 11월2일(수)■
 
(누가복음 5장)
 
27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28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29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30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3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묵상/눅 5:27-32)


◆ 세리 레위


마태복음을 쓴 마태의 다른 이름이 '레위'였다. 유대인들이 두 이름을 가지게 되는 것이 당시로는 흔한 일이었다고 한다. 오늘 본문이 마태복음에는 '마태'로, 마가, 누가복음에는 '레위'로 소개되었다. 부르심 이후에 사용된 공식 이름이 '마태'인 것을 보면 예수님께서 붙여주신 이름이 '마태 (하나님의 선물)'가 아닐까 생각한다.


당시에 로마 정부는 유대인 고위 관리들에게 조세를 거두도록 하고, 그들은 세리를 고용하여 이 일을 수행했다. 당시에는 인두세와 같이 직접 세를 징수하러 다니는 세리가 있었고, 세관에 앉아서 통행세와 같은 간접세를 받는 세리가 있었다. 아마도 레위는 간접세를 받는 세리였던 것 같다.


유대인들은 세리를 모두 싸잡아서 로마의 앞잡이로 여겼고 혐오했다. 그래서 타락한 죄인을 대표하는 부류가 남자는 세리, 여자는 창녀라고 생각했다.


◆ 레위를 부르심


(27)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당시 유대인들의 세리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무릅쓰고 레위를 제자로 부르신 것은 매우 의미가 크다.


오늘날 많은 교인이 사람들의 평에 신경 쓰느라 일부러 유명한 교회, 큰 교회에 다닌다. 그들은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관심을 많이 둔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렇지 않으셨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에게 욕을 많이 먹고 있는 세리를 부르심으로써 하나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암시하셨다. 사람들의 평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에 적합하지 않다.


예수님께서는 레위에게 다른 요구를 하지 않으셨다. 지금까지 떼어먹은 것을 다 갚고 오라든가, 삼일을 금식해서 정결해진 후에 오라든가 하지 않으셨다. 아주 단순한 요구를 하셨다.
"나를 따르라"


세리 레위는 주님의 부르심에 즉시 응답했다.
이런 능동적인 순종이 우리 안에 하나님의 능력이 일할 수 있도록 한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중독에 빠져서 영적으로 무기력하다. 상당수의 성도가 술 중독, 게임 중독 등에 빠져있고, 본인들은 동의하지 않을지라도 인터넷 중독, 유튜브 중독 등에 빠져있다.


설사 일이나, 등산 등 건전해 보이는 것일지라도 엄청난 시간을 들여 몰두하는 반면, 하나님의 말씀 묵상에는 5분도 아까워한다면 분명히 그것도 중독이다. 신앙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레위가 결단을 내려서 주님을 따르기로 했듯이 우리도 결단해서 기도하는 시간,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그것이 나의 영혼과 도움이 필요한 형제들을 살릴 것이다. 아무리 주님께서 부르셔도 내가 '예'라고 하며 따르지 않으면 소용없다.




◆ 죄인을 부르러 오심


바리새인들은 주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서 식사하시는 것을 비난했다. 이때 주님께서는 아주 적절한 비유를 드셨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31)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전혀 다른 분이심을 드러내신다.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더럽혀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자들이라면 예수님은 오히려 더럽혀진 자를 씻으셔서 깨끗게 하시는 분이시다.


바리새인들이 병자를 피해 다니는 자들이라면 예수님은 병자를 찾아다니시며 고치시는 분이시다. 수준과 급이 다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 나아갈 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나아가자. 예수님은 우리를 고치시는 분이시다!


병든 자가 몸이 좀 건강해진 후에 의사를 만나러 가겠다고 하면 얼마나 우스운가?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갈 때는 좀 정결해져서 나아가자고 생각하지 말고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자. 그분께서 고치신다. 그분 앞에 엎드리자.


다만 병자가 고침을 받으려면 몇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일단 자신이 병자임을 인정해야 한다. 둘째는 자신이 스스로 고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셋째는 결단을 내려서 의사에게 나아와야 한다.


이것은 사람이 구원받는 단계와 비슷하다.
우리가 죄인임을 인정해야 하고, 내 노력으로 구원받을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예수께 나아와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신 그 십자가의 은총을 받아들여야 한다. 구원받은 자들도 매일 매일 십자가의 공로와 보혈의 능력으로 새롭게 될 수 있음을 기억하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한껏 위축된 죄인들에게 이 말씀이 얼마나 놀라운 복음인가?


세리 마태는 이러한 주님의 부르심이 너무나 기뻤다. 자기를 제자로 불러주심을 영광스럽게 여기고, 큰 잔치를 벌였다. 당시에 사람들은 예수님의 선택을 비난했지만, 예수님의 선택은 옳았다. 후에 레위가 마태복음을 우리에게 남긴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위대한 일인가?


지나치게 과거에 집착함으로써 우울과 자책에서 못 벗어나시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과거는 그냥 과거로 남겨두고 '나를 따르라'고 하신다.


지금 필요한 것은 주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다. 주님을 따르는 것이 당장 직장을 그만두고 목사나 선교사가 되는 것이라고 오해하지는 말자. 아니면 백 퍼센트 성경 말씀대로 사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자. 또는 거대한 어떤 사역이나 내 생활이 전혀 없는 노예적 삶을 상상하지 말자. 그런 것은 누구라도 자신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노예로 부르시지 않았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존중해주시는 분이시다.


지금 당장 주님께서 내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세상 염려를 벗어버리고 범사에 감사하며, 조그마한 일일지라도 실천할 수 있는 그것을 실천한다면 그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의 시작이다.


여전히 주님을 따르는 것이 무엇인지 몹시 추상적이라고 느껴진다면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좀 더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라. 우리가 주님을 알게 되면 그를 더욱 신뢰하고 예수님을 배우게 되며 예수님을 닮게 된다.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할지도 잘 알게 될 것이다.


주님,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하심을 감사합니다.
나 같은 죄인이 살길을 얻음은 이러한 주님의 부르심 때문입니다.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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