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선희목사/새로운 피조물! (고후 5:13-19)
새해 첫 주일 교회에 나오신 여러 분 이같은 큰 축복을 누리게 된 여 러분께 진심으로 축하
의 말씀을 드 립니다. 이게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특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특별 하게
2000년에 사는 그 복을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의 역사 2000년'이라고 하
는 책이 며칠 전에 출간되었습니다. 예일대 학교 교수 야로슬라프 펠리칸이라고 하는 분이
쓰신 것인데요 예수에 대 한 다양한 해석의 역사를 문화사적 측면에서 고찰한 책입니다. 그
는 이 책을 통해서 세계 역사라고 하는 것은 곧 예수님의 역사다. 다시 말 해서 예수 그리
스도에 대한 해석의 역사다, 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 혹은 예수
를 어떻게 대하느냐? 혹은 받 아 들였느냐 거절하느냐, 대항했느 냐 아니면 그에게 충성을
다했느냐? 또 예수를 받아들인 자라면 어느 정 도 받아들였느냐? 이런 모든 것에 의해서
그 나라 문화, 그 나라 역사, 그 나라의 번영, 그 나라 정치, 또 우리가 지향하는 안정과 행
복도 거 기에 걸려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래서 예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역사의
방향은 결정되는 것 이다 라고 그렇게 이 책에서 설명하 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는 새해를
맞았습니다 만은 한번 더 짚고 나가 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가 '2000년'하고
말하지만 그 기 준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는 겁니 다. 요새 밀레니엄 베이비라고 해 서 그
새해 첫 시간에 태어난 아이 를 뭐 굉장한 사건인 것처럼 이렇게 얘기들하고 있습니다 만은
난 그 얘 기를 들으면서 이건 넌센스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또 흔히 우리가 말하는 팔자라고 하는 것은 음력이지 양력이 아닙니다.
여러분 당장 가서 점을 쳐보세요.
"음력 몇 월 며칠이요?"하고 묻지 양력은 상관이 없는데 뭘 밀레니엄 베이비니 뭐니. 도대
체 어디다 기 준하고 이 소란이냐 이 말이에요.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기 준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비포 크 라이스트(Before Christ)' 할 때 우 리가 B.C.하고 말하지 않습니
까, 예 수 전. 하지만 이제 주 후를 말할 때는 우리가 주후라고 하지만은 원 래 주 후가 아
닙니다. '에프터 크라 이스트(After Christ)'가 아닙니다. A.D.입니다. A.D.라고 하는 것은 그
런 뜻입니다. '안노 도미나이 (Anno Domini)'그런 뜻입니다. 안 노(Anno)라고 하는 말은 '
해'라고 하는 말이에요. 년, 해 그런 뜻이고 도미나이(Domini)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주'라
고 하는 뜻입니다. 그 러기 때문에 영어로 옮기면 '인 더 이어 오브 아우어 로드(In the
year of our Lord)' 그것이 A.D.예요. 예 수를 기준으로 해서 주 전, 주 후가 아니고 주전은
주 전이지만 주후는 주가 다스리는 해, 우리 주님이 주 관하시는 해, 이것이 A.D.예요. 2000
년이라는 말을 똑바로 알고 쓴 다면 그야말로 아멘, 할렐루야죠. 예수의 나라, 예수가 다스
리는 세계 2000년에서 이제 3000년으로 넘어갑 니다. 예수가 다스리는 세계가 이 렇게 연장
되고 더 확장됩니다 그런 의미라는 말이에요. 뭘 알고 축배 를 드는지 모르겠어요. 그 중요
한 의미와는 관계없는 축제를 벌이고 소란을 떠는 게 아닌가 그러한 생각 을 합니다. 어쨌
든 2000년, 소위 밀 레니엄 축제라고 하는 것은 이 같은 신앙적, 신학적인 중요한 의미를 가
지고 있다 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전 것은 지 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 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제 새것 에 대
한 개념을 한번 정리하고 나가 야겠습니다. 새것이라고 할 때에 시간적 개념의 새것이 있습
니다. 어쨌든 작년은 지나간 것이고 금년 이 새해요. 어제는 낡은 것이고 오 늘은 새해입니
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새것, 사실 알고 보면 이것은 새것이라고 하지만은 우
리 자신에게는 곧 새것은 아닙니 다. 자 이제 우리가 이만큼 살았습 니다. 그러나 그건 의미
하는 건 뭘 말하는고 하니 이제 남은 시간이 얼 마 안 남았다 그거예요. 그만큼 남 은 시간
이 짧아졌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축배를 들 때마다 생각을 해야돼요. 이제 그만큼
내 가 세상 살 날이 짧아졌다 이걸 알 고 축하해야될 거 아니겠습니까? 생이 연장됐다는 뜻
이 아니에요. 생이 얼마 안 남았다는 뜻이에요. 어쨌든 이것은 시간적 개념에 의해 서 생각
할 수 있는 새로움이고요 또 하나는 형식적 새로움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이느냐 하는 것인
데요 결 국은 주관적인 내 경험에 준한 것입 니다. 내게는 새로운 거예요. 그러 나 그 본래
있던 거예요. 나로서는 새것이에요. 그러나 그건 전혀 새 것이 아닙니다. 오래 전 아니 어쩌
면 수천년동안 거기 있었어요. 내 가 그것을 오늘 처음 보고 처음 경 험하면서 이걸 새것이
다라고 생각하 게 됩니다. 그건 나 자신에게 속한 것이고요 또 하나는 신분적 의미에 서의
새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 떤 의미에서 소속적 개념에서 말하 기도 합니다. 자 여기에 처
녀가 있 는데 이미 노처녀입니다. 그렇지만 은 그가 어느 순간에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러
면 우리는 그를 불러 서 새색시라고 합니다. 혹은 새사 람이라고도 합니다. 이것은 지금 자
기가 친정에서 친정 식구들하고 같이 살다가 이제 엉뚱한 남자를 위 하고 그의 집을 따라가
서
"아버님, 어머님"하며 살게 됐으니까 신분이 바뀌었지요. 그래서 새 신분입니다. 이런 의미
에서 새것입니다. 그건 시간적 개념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 습니다. 이걸 알아야 되겠고요 또
하나는 좀 더 깊은 의미에서는 존재 와 속성적 의미에서의 새것이 있습 니다. 다시 말해서
그 시간과는 관 계없이 그의 생각과 그의 속성이 과 거에 속한 것일 때는 그건 낡은 것 이
요 미래 지향적으로 미래에 속한 사건일 때 그것을 우리는 새것이라 부릅니다. 또 하나는
계속 죽음에 속한 것을 낡은 것이라고 하고 계속 적으로 생명에 속한 것을 새것이라 고 합
니다. 가령 여러분이 좋아하 는 것, 뭐 보석이라든가 옷이라든가 집이라든가 혹은 여러분이
차고있는 시계라든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딱 내 손에 가지는 그 순간부터 낡 은 것입니
다. 아무리 좋은 차라도 한 번 탔다 내리면 중고입니다. 오 늘 사고 내일 팔아도 '유스드 카
(Used car)' 입니다. 그건 중고차 시장에서 팔리는 거예요. 이와 같 이 모든 것은 옛날에 속
합니다. 낡 아집니다. 그런고로 옛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에 속한 것을 보세요. 여기 좋은 시
계가 있고 여기 콩 한 줌이 있다고 합시다. 이 콩과 시계, 놓고 보면 시계가 비싼 거지요.
수 백만원짜리. 상대가 안돼요. 교환 가치로서는 아주 비싼 것이지만은 그건 오늘부터 낡은
것이요. 그러 나 여기에 콩은 땅에다 묻어놓으면 싹이 나고 다시 생명이 솟아오릅니 다. 그
런고로 살아있는 것은 새것 이요 죽은 것은 낡은 것입니다. 시 간과는 관계가 없어요. 정신
적으로 나 육체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살아 있는 것은, 생명적인 것은 언제나 새것입니다.
그걸 우리가 꼭 생각 을 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소생하고 다시 생명을 출산하고 다
시 성장하고 결실하기 때문이요. 생명은 계속적으로 더 새로워지는 역사를 만들어가기 때문
이요. 그러 나 생명이 없는 것은 썩어지고 낡아 지고 죽어지고 그러기 때문에 그건 옛것이
다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본문성경에 의하면은 그리스 도 안에 있으면 새것이고 그리스도 밖에 있는 것은 낡은
것입니다. 이 렇게 새것과 낡은 것을 분별하고 있 습니다. 이게 결정적인 겁니다. 이 건 존
재론적 의미를 가졌습니다. 이건 자연적 변화나 시간적 개념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로
지 생 명, 오로지 창조적 역사는 계속적으 로 새것이다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 습니다. 그래
오늘 성경말씀에 특 별히 아주 중요하게 우리에게 말씀 하고 있는데요 아주 보편적이고 넓
은 개방적 의미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이 '누구든지'라고 하는 말
을 귀담아 들 으시기 바랍니다. 부자냐 가난하냐 지식이 있느냐 없느냐 젊었느냐 늙 었느냐
뭐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 상관 안해요. 어제냐 오늘이냐도 묻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누구
든 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것이고 그리스도밖에 있는 것은 낡은 것이 다 라고 결정적으
로 선언합니다.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그 새것 됨의 조건은 오직 하 나 '인
크라이스트(In Christ)', 엔토 크라이스트, 오직 그리스도,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그리스도,
그리스도 안에 이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구속받는 생 명을 의미
하는 것이올시다. 오늘 본문에와 같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이다. 그가 부활하므로 그 안에 있 는 사람은 모두 산 것이다. 이런 귀한 신비로운 말씀
을 합니다. 그 래서 유명한 사도바울의 말씀이 있 지 않습니까.
"아이 엠 크루시파이 드 위드 크라이스트(I am crucified with Christ)",
"나는 그리스도와 함 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나는 이 미 십자가에 죽었어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 부활하는 순간 에 내가 부
활했어요.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을 말합니 다.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 항상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다. 오늘이 내 마 지막 날일 수 있다 라
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여기서 한 단 더 나갑 니다.
나는 이미 어제 죽었다, 나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 선언 하고 그리스도로 오늘을
사는 거지 요. 이런 신비로운 생명의 속성을 새것, 새사람이라고 말하게 됩니다. 완전히 그
리스도 안에 깨끗하게 장 사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아 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아
가는 그런 존재, 신비로운 속성입니다. 동시에 이는 오늘 본문의 말씀과 같 이
"이전 것은 지나갔다"라고 말합 니다. 옛것으로부터 완전히 자유함 을 말합니다. 옛 속성,
옛 죽음, 옛 습관 그 낡은 모든 것으로부터 온전 히 자유합니다.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로다"
바로 그런 겁니다. 생 각과 의식, 감성, 모든 면에서 낡은 것으로부터 완전히 자유할 때 그
사 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이요 새사람이 다 하는 말씀입니다. 이 인 크라이 스트라고 하는
말은 다시 예수님의 말씀을 빌어서 좀 더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에
보면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나는 포 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가지가 원 나무에 붙어 있으면 너는 내 안에 있고 나는 너 안에 있다 그래서 내 진액을 받
아서 네가 존재한다. 말 씀 안에서 존재한다 내 생명력 안에 네가 살아있다. 이것이 바로 그
리 스도 안에 있는 것이죠. 마치 나무 가지가 나무 원 줄기에 붙어 있으면 서 그 나무로 존
재하는 거와 같이 그 진액을 받아서 존재하고 열매를 맺는 것 같이 이런 신비로운 생명적
관계를 가르쳐서 새사람, 그리스도 인, 혹은 그리스도 안에서라고 말하 게 되고요 동시에 요
한복음에 보면 은 예수님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이것은 바 로 성령 안에 있음을 말합니다. 성 령, 그리스도의 마음, 그리스도의 영 이 그를
감동해서 그로 깨닫게 하고 그리스도 안에 살게 하고 그리스도 의 사람으로 성숙하게 하는
그런 신 비로운 성숙, 생명체를 새사람, 새것 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다 시 이 본문
성경에는 아주 논리적으 로 차근차근 새 사람의 의미가 무엇 인가를 말해줍니다. 첫째는 이
재 창조된 피조물이라는 것은 목적이 새로워집니다. 오늘 15절 말씀을 눈여겨보시면 이렇습
니다.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 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 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위하여"
라는 말을 보세요. 다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나를 위하여 죽으 시고 나를 위하여 부
활하신 바로 그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게 하려함이 라. 목적이 바꿨어요. 혹 방법은 아직도
옛날 사람일 수도 있어요. 혹 미급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목 적이 바뀌었어요. 그 때 새사
람입 니다. 목적이 그리스도를 위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이 목적은 내가 세
운 게 아닙니다. 그 가 나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해서 이 목적이 생긴 겁니다. 바울은 위대
한 선언을 합니다. 내가 그 요절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빌립보 3장 12절에서 말합니다.
"그리스도께 잡힌바 된 것을 잡으려고 쫓아가노 라"
내가 선택한 이상이 아닙니다. 내가 선택한 철학도 아닙니다. 내 가 세운 이상이나 꿈이 아
닙니다. 내가 세운 목적이 아니고 그가 나를 포로해서 완전히 강권적으로 체포해 서 내 길
을 돌려서 그리스도를 따르 는 사람을 만들었어요. 그런고로 내 목적은 내 것이 아니에요.
그가 만들어주신 거고 그가 강권적으로 세우신 목적이요. 그 목적을 내가 내 것으로 삼고
기쁜 마음으로 쫓아 가노라 그랬어요. 억지로가 아니고 기쁜 마음으로. 이것이 새사람이요.
이것이 새로운 피조물이요. 목적이 확 바뀐 거예요. 그걸 알아야 합니 다. 목적이 그리스도
께로 향할 때 나를 위하여 죽으신 바로 그 분을 위할 때 그가 그리스도인이요. 두 번째는
삶의 동력입니다. 동력인, 그 동력이 문제입니다. 무슨 힘으 로 사느냐 하는 겁니다. 새 피조
물 은 그 삶의 힘이 그 원동력이 본질 적으로 다릅니다. 사람 사람들 가 만히 보면 삶의 힘
이 무얼까? 욕 심, 혹은 뭐 증오심, 시기, 질투, 경 쟁심, 어떤 사람은 복수하는 마음, 어떤
사람은 그러대요. 죽고 싶어 도 억울해 못 죽어. 억울해서라도 살아야겠다. 발악을 하면서
살아보 겠다고 몸부림을 치는 그 힘이 어디 에 있느냐 미워하는 마음이요. 질 투하는 마음
이요. 어떤 사람은 이 경쟁심이 강해 가지고요 경쟁자가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해요. 그것도
사실은 타락한 성품이요. 꼭 누구 하고 같이 해야만 뭐 힘이 나는 거 예요. 이기려고 바득거
릴 때만 제 대로 되요. 이거 빼놓으면 없어요. 그래 내가 그렇게 그 사람하고 싸우 고 이기
려고 하다가 그 사람 죽어버 리면 나도 죽어버려요. 도대체 당 신의 삶의 동력은 어디에 있
습니까? 이걸 알아야 됩니다. 새로운 피조 물은 오늘 본문말씀대로
"그리스도 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시는도다"
강권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미쳐 서 사는 거예요. 미움으로 사는 게 아니요. 억지로 사는
것도 아니요 사랑에 취해서 살아요. 사랑에 끌 려서 살아요. 이 사랑은 바로 생명 력이에요.
이런 우스운 얘기가 있 습니다. 조선일보에 연재되는 '광수 생각'이라는 그런 칼럼이 있죠.
거 기에 나오는 얘기인데요 어떤 친구 가 자기 친구에게 말하기를
"자기 요새 여자 교제한다며?"
"그래"
"그 런데 그 여자가 부탁해서 술을 끊었 다며?"
"아 끊었어, 자꾸 끊으라고 해서 끊었어."
다음에 또 다른 친 구가 말하기를
"자네 그 좋아하던 도박도 끊었다며?"
"아 그 내 지금 교제하는 여자가 도박하지 않는 게 좋다고 해서 그 사람을 위해서 끊었 어"
또 한 사람이
"아 자네 요새 그 담배도 끊었다며? 그 줄담배를 피우더니"
"아 그 내 사랑하는 사 람, 그 교제하는 여자가 담배 피우 지 말라고 해서 담배끊었어."
그 다음 친구가 말하기를
"자네 그럼 그 여자하고 왜 결혼하지 않나?"
이 친구 대답하는 말이
"내가 이렇게 다 끊고 착한 사람이 되고 보니까 내가 괜찮은 놈이야. 아무리 생각 해도 그
여자보다 더 좋은 여자를 만날 거 같아서 결혼하지 않네."
여러분 저는 생각합니다. 그 사람, 지금 사랑하는 여자하고 헤어지면요 담배 또 피울 사람이
에요. 그 사람 술독에 빠질 사람이에요. 이 여자 가 그를 사랑하고 그와 사랑을 느끼 는 동
안에 그 사랑의 힘으로 그 좋 아하던 도박도 담배도 술도 끊고 나 가는 줄 모르고, 이 주제
넘게. 이 사람 정신없는 소리하고 있는 거예 요. 사랑의 줄이 끊어질 때 나는 옛 사람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이 걸 잊지 말아야 되요. 예수그리스 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해서 여기에
취해 가지고 나갈 때 새사람이죠. 새 세상을 살지요. 이 사랑의 줄이 끊어질 때 나는 다시
저 깊은 수렁 으로, 옛사람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 고요 새 피조물은 16절에 보면 새로 운
가치관을 가지고 삽니다.
"육체 대로보고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 라"
즉 신령한 세계에 살아요. 물 질의 세계가 아니라 정신의 세계, 지식의 세계가 아니라 지혜
의 세계, 세상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을 지향 하는. 여러분 미래의 시대는 문화 의 시대라고
합니다. 그럴까요? 다음 세대는 영적인 세대입니다. 영이 지배하고 영이 영적인 것이 최 고
의 가치를 말할 수 있는 그런 시 대입니다. 그걸 깊이 생각해야 합 니다. 새로운 신령한 가
치관에 살 고 또 사명에 삽니다. 화목케하는 직책을 주셨다 그랬습니다. 내가 화목할 뿐만
아니라 화해하는 피스 메이커! 이걸 알아야 합니다. 누 구라도 미워하고 있으면 안됩니다.
누구라도 다소라도 기분까지라도 누 구를 언짢게 생각하고 있는 한 당신 은 옛사람이에요.
오늘 우리는 새 로운 피조물은 오직 화평, 모든 사 람과 화해할 뿐만 아니라 또 화해되 지
못하는 세상에 내가 들어가서 피 스메이커로 화목케 하는 화목을 만 드는 그런 직책을 가지
고 오늘 이 세상에 살아갑니다. 그 사람이 새 로운 피조물입니다. 오늘 본문 말 씀의 깊은
뜻을 다시 한번 새겨들어 야 합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라 고 말씀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성 경을 자세히 읽으세요.
"보라 새것 이 되었도다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다"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지금 주님은 말씀하십니 다.
"너희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다 보라 새것이 되 었도다"
이 선포, 이 선포되는 복 음 내가 받아들일 때 믿을 때에 그 리스도안에 새로운 피조물로
이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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