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나님은 나의 구원 자료원 : 박종순목사 충신교회 발행일 : 94년 12월 18일 이사야12장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감사와 찬양입니다. 이스라 엘 사람들은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찬양이 136편이나 되었다고 합니 다. 본문의 찬양 주제는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는 것입니다. 12:1은 "그날에 너희가 말하기를"이라는 서두로 시작됩니다. (In that day you will say) 그 뜻은 그날에 있을 사건 때문에 찬양한 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그날은 주님이 메시아로 오시는 날 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볼 때 이사야12장은 주전 700년 전에 불렀 던 성탄송가가 되는 것입니다. 12장은 둘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그 것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감사와 찬양(1-2)과 하나님의 구원을 세계 만방에 전하라는 것입니다(3-6). 우리는 2절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워이심 이라"고 했습니다. 2절 속에 하나님 찬양의 내용이 드러나고 있습 니다. 1."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고 찬송합니다. 우린 여기서 [나]라는 1인칭을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이 시라고 노래하지 않고 나의 구원이시라고 노래한 점을 주목해야 합 니다. 1절 끝을 보면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나의 하나님""나의 구원"이 바른 고백입니다. 구원은 내 것일 때 감격스 럽고 감사가 넘치는 것입니다. 만성 고질병을 앓던 사람이 명의를 만나 병을 고쳤습니다. 그를 만나는 사람마다 어떻게 병을 고쳤는 가를 물었습니다. 그는 감격한 나머지 울먹이멸 어느 병원인지는 잘 모르겠고 의사 이름도 모르는데 하여튼 우리가 고침받았다고 떠 벌렸다고 가정합시다. 그 사람은 가장 중요한것을 잊어버린 사람입 니다. 병원을 대고 고쳐준 의사 이름을 대고 내가 그분 때문에 고 침받았다고 소리를 높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는 이 고백 속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들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만 나의 구원이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유일성과 구원의 유일성을 천명하는 것입 니다. 하나님이 한 분이신 것처럼 구원의 길도 하나입니다. 다른 방법으로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교리를 바울은 갈1:6에서 [다른 복 음]이라고 했고, 1:8에서는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 다"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도량이 크고 넓은 사도였습니다. 심지어 자기를 배신했거 든 의견을 달리했던 사람들도 용납하고 포용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복음은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신학사상 가운데 종교 다원주의라는게 있습니다. 미국은 본래 합중국이어서 각 나라 각 민족이 각각 다른 종교를 가진 채 모여 살고 있습니다. 각 나라 사람마다 각각 다른 종교 신앙을 가지고 살면서 구원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만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기독교의 교리는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유 교나 불교나 회교나 인도교나 그 어떤 종교도 구원이 있기 때문에 꼭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 받는다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것 이 종교 다원주의 주장입니다. 종교 다원주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나 교회의 존재를 완전히 무시해 버리고 있습니다. 이 사상은 무신론보다 더 무서운 적입니다. 한마디로 바울이 말한 [저 주받을 다른 복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예수 그리스 도의 십자가 없이는 구원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십니 다. 둘째 하나님은 나를 용서 하신다는 것입니다. 용서는 구원의 과정이며 조건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은 내가 죄용서 받는 것입니다. 용서받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하는 것입니 다. 용서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지은 사람이 죄없는 사 람더러 "내가 당신을 용서하겠소"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죄인은 죄인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물론 사람이 사람에게 지은 죄는 서로 용서하고 용서받을 수 있 습니다. 그러나 지옥갈 죄를 용서해 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대통령의 특사로 수감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교도소에서 나온 사 람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특사]라는 말은 듣는 순간 하늘이 빙 빙 돌더랍니다. 그리고 설마하는 생각으로 기가 막히더랍니다. 자 기 허벅지를 꼬집어 보았답니다. 분명 꿈은 아니더랍니다. 전신의 힘이 쑥 빠지면서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었답니다. 그리고 이젠 살 았구나라는 감동이 전신을 휘감고 소리치며 노래를 부르고 싶더랍 니다. 그리고 죄사함을 받은 그 감격은 비교도 할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 그 무엇에 그것을 비길 수 있겠습니까? 위가 쓰리고 아파 서 병원을 찾아간 어느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설마 했지만 암이라 는 진단 결과가 나왔습니다. 하늘이 노랗게 변하고 현기증이 일어 나면서 의자에 털썩 주저 앉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왜 암이야라는 분노가 치솟았습니다. "내가 뭘 잘못했길래 암이란말야, 뭐 이따위 병원이 다있어?"라 며 모든 것이 다 증오스러워 졌습니다. 그 시간 부터 위가 쑤시고 열이 오르고 구역질이 나고 개스가 터 져 나왔습니다. 식욕이 떨어지고 소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소식 을 들은 친구 의사가 모 종합병원의 내과 과장을 소개해 주면서 다 시 한번 검사해 보도록 주선을 했습니다. 결과는 암이 아니었습니 다. 그 순간 세상이 그렇게 밝고 아름답고 햇빛이 그토록 찬란하더 랍니다. 의사가 그토록 고맙고 팔다리에 힘이 솟고 차 안에서 노래 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 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엔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특사받은 감격만도 못하고 암이 아니라는 건강 진단을 받은 후의 감격만도 못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심판하실 수도 있고 용서하실 수도 있습니다. 벌하실 수도 있고 상을 주실 수도 있습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무서운 심판을 받은 사람이나 민족들의 이야기 가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경우는 용서받은 사 람들이 된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셋째 그 구원은 영속적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의사나 약은 내 몸둥이를 고쳐 줍니다. 그러나 그 몸둥이는 나이 들면 노쇠하고 병약하게 됩니다. 영원히 건강하게 되는 것이 아닙 니다. 어떤 잡지를 보니까 외국의 어떤 여자 배우는 얼굴 성형수술만 세번을 했다고 합니다. 20대 초반에는 눈이며 코며 양 볼의 보조개 를 성형했다고 합니다. 30대 초반에는 이마의 주름을 없애고 팽팽 하게 하기 위해 머리 속으로 이마 피부를 끌어 잡아 꿰메는 수술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40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늘어진 목덜미와 턱을 팽팽하게 만들기 위해 목 뒤로 피부를 비끌어 메는 수술을 했 다는 것입니다. 그 잡지의 평은 만일 50이 지난 그녀의 얼굴을 비 끄러맨 실을 가위로 싹뚝싹뚝 잘라 버린다면 하루 아침에 그녕는 60 노파가 되고 말 석이라고 했습니다. 미인도, 영웅도, 영광도, 재물도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은 영원한 것입니다. 구원은 영원히 영원히 계속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2. 하나님은 나의 힘이라고 찬송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힘이라는 찬송은 경험적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힘 을 체험한 사람만 그렇게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힘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됩니다. 첫째는 육체의 힘입니다. 물건을 드는 힘, 만드는 힘, 무력, 폭력, 경제력, 정치력, 지식 의 힘 등 인간 세계에서 생성되고 행사되는 모든 힘을 가리켜 육체 의 힘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살아가는데 이 힘이 없으면 살기가 어렵습니다. 그 힘과 힘이 겨루는 것을 경쟁력이라고 합니다. 둘째는 영적인 힘입니다. 영적인 힘은 초자연적이며 초월적입니다. 마귀도 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힘입니다. 이 힘은 누구도 무엇도 겨룰 수 없고 맞설 수 없습니다. 가장 이 힘에 맞설 수 있는 것은 마귀의 힘인데 이밈 마귀는 하나님의 힘 앞에 무릎을 꿇은지 오랩니다. 하나님의 힘은 자기 힘을 믿는 사람에게서는 떠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힘을 믿고 의지하면 강한 힘이 돼 주십니다. 교만과 불신 과 의심과 염려는 내게서 힘을 빼앗아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만을 앙망하면 새 힘이 솟구치는 것입니다. 사40:31을 보면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한평생 하나님의 힘을 체험하며 살았던 다윗은 시18:1에서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 고 이어 2절에서는 "여호와는 나의 반석, 요새, 건지시는자, 피할 바위, 방패, 구원의 뿔, 나의 산성이시라"고 노래 했습니다. 다윗은 고독할 때마다, 힘들 때마다, 시련이나 환난이 앞을 가로 막을 때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힘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그 힘 으로 승리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며 구원이십니다. 3. 하나님은 나의 노래라고 찬송 했습니다. 가사있는 노래는 사람만 부릅니다. 새들의 노래는 소리와 곡조는 있습니다만 가사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노래는 가사가 있고 사상이 있고 뜻이 있습니다. 노래는 자연, 이념, 사상, 사랑을 예찬하거나 표현하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찬송은 그 대상이 하나님입니다. 영국 시인 에드워드 영은 "기도는 우리의 길을 하늘로 향하게 하 지만 찬양은 이미 그곳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노래 가운데 가장 귀하고 고상한 노래는 하나님을 노래하는 것입 니다. 그것은 거룩한 노래이기 때문에 [성가]라고 부릅니다.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등 우리에게 익숙한 찬송을 많이 쓴 크로 스 비는 생후 6개월만에 시력을 잃고 맹인이 되었습니다. 어느날 친구가 그녀에게 "하나님은 왜 너 같이 착하고 재주 많은 사람을 맹인이 되게 하셨을까?"라며 한마디 했습니다. 크로스비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내가 태어나는 순간 네 소원이 무 엇이냐고 물으셨다면 나는 맹인이 되게 해달라고 부탁했을거야 왜 냐하면 천국에 가서 맨처음 눈을 뜨고 주님을 볼 수 있기 때문이 야"라고... 그녀는 일생동안 2000여개의 찬송시를 썼습니다. 우리 찬송가에 도 24편이나 수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당면한 현실은 각각 다릅니다. 두 눈을 뜬 사람도 있고 감은 사람도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도 있고 실패한 사람도 있습니다. 행복한 사람도 있고 불행한 사람도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도 있고 병든 사람도 있습니다.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도 있고 문제 투성이인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크로스 비는 두 눈을 감을 채 2천여개의 감사와 감격의 찬송시들을 썼습니 다. 시119:164절을 보면 "주의 의로운 규례로 인하여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행16장을 보면 빌립보 옥 중에 갇힌 바울과 실라가 깊은 밤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밤에 옥문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성탄은 하나님의 구원과 그 크신 사랑을 찬송하는 계절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산처럼 쌓여 있더라도 감사하고 찬송합시다. 금성철벽 여리고 성도 나팔불고 찬송하며 돌았기 때문에 무너졌습 니다.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이신 주여 내가 주를 찬양 하나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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