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원리와 교회원리 에베소서5:28-33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몸같이 할찌니 자기 아내를 사랑 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둘이 한 육체가 될찌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바울이 에베소서를 통해 제시한 교회론은 두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며 교회는 그의 몸이라는 지체론이고 다른하나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설명한 가정원리론입니다. 머리와 몸은 개체가 아니라 한몸입니다. 머리와 몸은 떨어질수 없는 유기체입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와 교회는 한 몸이며 떨어져서는 안되는 관계라는 것입니다. 본문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 즉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부부관계로 설명하고 있습 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속에서 가정원리와 교회원리는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 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행복한 곳, 행복하지 않으면 안 될 곳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아 무데나 행복한 곳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행복한 곳, 행복해야 하는 곳, 행복하지 않 으면 안되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가정과 교회입니다. 그리고 가정은 교회 같을 때, 교회는 가정같을 때 행복해 지는 것입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직장은 일하고 보람을 찾고 그리고 생활의 방편을 찾는 곳이지 행복이 넘치는 요람은 아닙니다. 그러나 가정과 교회는 행복해야 합니다. 행복이란 편안하고 즐겁 고 재미있고 보람이 어우러질때 성립됩니다. 일터에서 지친 사람들이 일과 후 술집을 찾거나 놀이를 찾아 지친 피로를 푼다고 합 니다. 그러나 술마시며 행복을 느끼는 것은 바른 행복이 아닙니다. 빈둥거리고 놀면 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도 참 행복이 아닌 것입니다. 본문이 주시는 두 원리를 찾아 보겠습니다. 1. 가정원리 세가지 첫째원리: 사랑과 존경의 원리입니다. 22절을 보면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고 했고, 23절에서 는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라고 했습 니다. 그리고 24절에서는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 종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이상은 아내가 지켜야 할 원리입니다. 주님께 교회가 복종하 듯 남편에게 복종하고 존경하라는 것입니다. 남편이 지켜야 할 원리도 있습니다. 25절을 보면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 을 주심같이 하라"고 했고 28절에서는 "이와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남편이 할 일은 주님께서 교회를 사랑하며 자기 몸을 주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복종과 사랑, 어느 것이 더 어려울까요? 복종은 "주의를 기우려 듣는"(헬 라어 휘파쿠오)는 뜻입니다. 자세를 낮추고 고분고분한 태도로 경청하는 것이 복종입 니다. 그러나 사랑은 자기를 전적으로 희생하는 아가페입니다. 교회를 위해 희생하시 고 피흘려 죽으신 사랑이 아가페입니다. 우린 여기서 아내가 져야 할 짐보다 남편이 져야 할 짐이 더 크고 무겁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21절을 보면 "그리스도를 경 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가정이 잘 되고 행복해지려면 남편은 남편구실 을 바로 하고 아내는 아내로서의 구실을 바로 해야 합니다. 자기 자리를 벗어나면 안 됩니다. 둘째원리: 떠나고 만나는 원리입니다. 31절을 보면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 지니"라고 했습니다. 부모를 떠나 남녀가 합하는 것이 결혼입니다. 결혼 후에도 부모의 그늘이 너무 크다든지 그 입김을 벗어나지 못하면 부부가 성장하기 어렵습니 다. 떠날 것은 떠나고 합할 것은 합하는 것이 가정원리라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부모를 떠나라는 것은 부모를 도외시하고 불효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라는 것이며 부부윤리를 확립하라는 것입니다. 결혼한 후에도 마마보이가 된다든지 친정어머니 치마폭에 감겨 산다면 독립된 개체로서의 부부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셋째원리: 하나되는 원리입니다. 31절 끝을 보면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고 했습니다.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가운데 육체와 육체를 합해 하나가 될 수 있는 관계는 부부뿐입니다. 자 기 아내나 남편이 아닌 사람과 육체를 섞고 합하는 것은 불륜이고 음행입니다. 남남 끼리 사업을 같이하고 여행을 함께 하고 운동을 함께 하고 독립운동도 함께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몸을 섞는 것은 안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부부만 한 육체가 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시대의 어둔 면을 표현하는 다양한 용어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도덕불감증, 가 치관의 혼돈, 부정부패 등입니다. 도덕불감증 가운데 뺄 수 없는 것이 성도덕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성윤리는 아내와 남편만 한 육체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외 의 어떤 행위도 성경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깨끗하고 경건한 가정을 이룩하려면 부부 가 하나되는 원리를 지켜야 합니다. 2. 교회원리 세가지 첫째원리 : 경외와 복종의 원리입니다. 21절을 보면 "그리스도를 경외하라"고 했고 22절에서는 주께 하듯 하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교회를 사랑하사 자기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이것은 사랑의 원리입니다. 그 사랑을 받은 우리가 할 일은 주님을 사랑하고 경외하고 복종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 면 내가 주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지 다 해야 합니다. 이유는 주님께서 가장 귀한 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미국초대대통령 죠지 워싱턴의 어머니에게 누군가가 물었습니다. "아들을 어떻게 키웠기에 위대한 대통령이 될 수 있었습니까? " "저는 아들에게 하나님께 절대복종하는 법을 가르쳤습니다"라는 것이 어머니의 대답 이었습니다. 순종을 배우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은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께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가 교회의 머리라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머리는 모든 지체의 상체입니다. 명령 과 통제의 상황본부입니다. 사람의 신체구성을 보면 발도, 손도, 귀도, 코구멍도 눈 도, 폐도 둘씩입니다. 그러나 머리는 하나입니다. 물론 좌뇌와 우뇌로 나누어져 있 긴 합니다만 그러나 머리는 하나입니다. 머리가 둘이면 그것은 기형입니다. 모든 지 체는 머리의 지시를 따라 행동해야 하는 것처럼 기독교인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명령 을 따라 순종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카네기홀에서 연주회를 열고 있었습니다. 두명의 목사님 이 연주회 관람을 위해 객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날 객석은 초만원이었습니다. 1부 연주가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A목사 교회는 언제쯤 이나 오늘 이 연주회 관객처럼 차고 넘칠 수 있겠소" A목사님의 대답은 "우리교회에 도 지휘자의 지휘에 전적으로 따르고 순종하는 100명만 있으면 객석이 차고 넘치게 될 수 있을 것이요"라는 것이었습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지휘자의 지휘를 따르지 않는다면 연주는 실패합니다. 그리고 음악팬들은 그런 연주 때문에 연주회장을 찾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부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르고 순종하는 사람들이 목사가 되 고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고 집사가 될 때 그리고 그들이 격조 높은 음악을 연주할 때 교회는 차고 넘치게 될 것이며 은혜가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나는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순종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느냐 못하느냐를 가늠하는 척도는 하나님을 얼마큼 높히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느냐 안하느냐에 있는 것입니다. 절대 복종 하는 신앙이 가장 위대한 신앙이라는 것을 성경은 도처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창세기 6장을 보면 대홍수사건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상을 홍수 로 심판하시기 전 노아에게 배를 만들어 피신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배를 만 드는 장소가 아라랏산 꼭대기였습니다. 배를 만드는 조선소는 바다에 인접해 있는 것 이 상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상식을 무시한 채 산 꼭대기에 배를 만들라고 명하 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인 명령에 순종한 노아 의 태도입니다. "그대로 하니라"가 노아의 태도였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100 세에 기적적으로 낳은 외아들입니다. 사랑하는 독자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명 령을 따르기 위해 아침 일찍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중요 한 것은 노아나 아브라함의 행위에 대한 결과입니다. 두 사람 다 복을 받았습니다. 하 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복 받는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둘째원리 : 떠남과 만남의 원리입니다.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하는 것이 가정원리인 것처럼 교회 역시 세상을 떠나 예수와 합 하는 것이 신앙원리인 것입니다. 32절을 보면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하는 것을 큰 비 밀이라고 했습니다. 비밀이라는 말뜻은 "신비하다, 신기하다, 알고 나면 기쁘고 좋 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술 담배끊는 것은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예수 믿기 전 술 담배 마시고 피우 던 사람들은 그것을 끊는다는 것을 상상도 못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 수 만나고 난 후 그것들을 끊게 됩니다. 그리고 본인 자신도 그것을 신기하게 생각합 니다. 더 좋은 것을 만났고 더 좋은 것을 선택했기 때문에 이전 것을 끊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결혼을 예로 들겠습니다. 남녀가 결혼을 약속하고 교제를 시작하거나 결혼을 했으면 그 이후로는 남녀교제가 선명해야 합니다. 결혼한 새댁에게 날이면 날마다 다른 남자로부터 수십 통씩 전화가 걸려 온다든지 여자로부터 신랑한테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전화가 걸려 온다면 문제 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신앙생활을 시작했다면 다시 말하면 떠남과 만남이 분명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원리: 하나되는 원리입니다. 신앙생활의 궁극적 목표는 예수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닮아보려 는 것이 궁극적 이상이고 목표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은 대인관계 도 아름답고 원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부가 하나되어 가정을 이루는 것처럼 교회는 주님과 하나가 되고 그리고 많은 지체들이 하나가 되어 교회 공동체를 이루게 되는 것 입니다. 부부는 하나될 때 가장 행복합니다. 남편마음 속에 아내가 자리잡고 있는 것, 아내 마음속에 남편이 자리잡고 있는 것, 그래서 늘 생각하고 위하는 것이 부부 의 바람직한 사랑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 마음 속에 늘 내가 자리잡고 있는 것, 내 마음속에 늘 주님이 자라잡고 있는 것, 그래서 늘 주님을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위하 고 사랑하는 것이 주님과 하나된 사람의 삶인 것입니다. 일본의 가가와 도요히코 선생은 "교회는 온갖 쓰레기를 버리는 청결통과 같다"고 했습 니다. 피차 허물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라는 뜻입니다. 교회 안에서 받은 상처 때문에 교회를 안나오고 집에서 혼자 예수 믿겠다는 낙심한 신자 집에 목사님이 찾아 갔습니다. 벽난로 앞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목사님이 불집게로 활활 타오 르고 있는 나무토막 하나를 집어 벽난로 밖으로 내 놓았습니다. 그 나무는 이내 불이 꺼졌고 시커먼 숯덩어리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목사님은 집주인에게 "교회는 벽난로 와 같습니다. 떠나면 결국은 불이 꺼지고 맙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한참 생각하던 주 인은 "목사님, 다음 주일부터 교회에 나가겠습니다. 불꺼진 나무토막이 되지 않겠습니 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교회는 소중합니다. 교회는 주님이 세우셨습니다. 교회는 가정원리와 같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고,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과 하나될 때 교회는 멋지고 아름다운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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