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는 사람들 이사야 26:16-21 여호와여 백성이 환난 중에 주를 앙모하였사오며 주의 징벌이 그들에게 임할 때에 그들이 간절히 주께 기도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잉태한 여인이 산기가 임박하여 구로하며 부르짖음 같이 우리가 주의 앞에 이러하니이다. 우리가 잉태하고 고통하였을지라도 낳은 것은 바람 같아서 땅에 구원을 베풀지 못하였고 세계의 거민을 생산치 못하였나이다. 주의 죽은 자들 은 살아나고 우리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거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를 내어 놓으리로다. 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 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간 숨을지어다. 보라 여호와께서 그 처소에 서 나오사 땅의 거민의 죄악을 벌하실 것이라. 땅이 그 위에 잦았던 피를 드러내고 그 살해 당한 자를 다시는 가리우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요한복음 11:25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기독교가 생명을 주는 종교이며 부활의 종교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본문 19절을 보면 "주 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우리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클에 거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 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를 내어놓으리로다"라고 했습니 다. 이 말씀도 죽은 자들의 부활이 있음을 밝혀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사람은 부 활을 믿어야하고 그 부활을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의 부활도 믿어야 합니다. 부활을 믿지 않으면 구원도 없고 영생도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세가지 부활이 있음을 가르 쳐 주고있습니다. 1.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은 예수님의 부활의 확실성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12를 보 면 그 당시에도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고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 에게 바울은 부활의 확실성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다시 살아나실 것을 생전에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후 여러 차례 나타나 보여 주셨습니다. 요20:11 이하를 보면 막달라 마리아에게 보여주셨고 누가복음 24:13이하를 보면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5장 5절 이하를 보면 베드로에게, 바울에 게 친히 나타나 보여주셨습니다. 바울의 강조점은 이보다 더 확실히 증거가 어디 있겠느 냐, 이 이상 더 확실한 증명이 필요하겠느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거나 믿지 않는 것은 개인의 자유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자유가 아니라는데 중요성이 있습 니다. 3절을 보면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했고, 4절에서 는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가 성경 의 예언대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5:7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라고 했습니다. 부활을 믿지 않으면 믿음도 헛되고 죄사 함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바울의 강조점인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 으면 그는 기독교인도 아니고 구원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도선교사 스탠리 존스가 어 느 날 길거리에서 전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전도를 듣고 있던 회교도 한사람이 스탠리 존스 에게 소리쳤습니다. "여보쇼. 선교사 양반, 우리 회교도는 당신네 기독교인들이 가지지 못 한 것을 가지고 있소" "그게 무엇이요" "메디나에 가면 마호멧의 시체가 들어있는 관이 있 어서 마호멧이 실제로 존재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소. 그러나 당신네가 믿는 예수는 예루살 렘에 가봐도 무덤이 없지 않소?"스텐리 존스는 소리쳐 대답했습니다. "맞습니다. 당신 말 이 옳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기독교와 회교의 다른 점입니다. 예수는 다시 살아 나셨 습니다. 그래서 빈 무덤 밖에 없습니다"라고. 석가도 무덤이 있고 공자도 무덤이 있고 소크 라테스도 무덤이 있고 마호멧도 무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덤이 없습니다. 기독 교는 빈 무덤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무덤 대신에 생명이 있고 부활이 있고 영생이 있고 구원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어야 나도 부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은 역사적 사건이며 예언의 성취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수 다시 사셨습니다. 2. 믿는 사람들의 부활입니다. 본문 19절을 보면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땅이 죽은 자를 내어놓으 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이 다시 살아날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요한 복음 11:25-26을보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했습 니다. 베다니에 살고 있던 예수님의 친구 나사로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친구의 비 보를 접한 예수님은 나흘이 지난 뒤 베다니를 찾아 가셨습니다. 이미 시체를 장사한지 나흘 이 지난 뒤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 날로 장례를 치르는 관습이 있었습니 다. 지금처럼 사체를 보관하는 냉동시설이 없었기 때문이었고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무더 운 날씨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스페인 사람들은 그 날로 장례식을 치릅니다. 스페인 사람들 은 세 가지가 빠르다고 합니다. 첫째는 말이 빠릅니다. 둘째는 사랑이 빠릅니다. 그들은 정 열적이고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랑도 만나자마자 이뤄집니다. 셋째는 장례식이 빠릅니다. 그 날로 장례를 치릅니다. 나사로의 경우 죽은 지 나흘만에 주님이 찾아오셨기 때문에 이미 썩어 냄새가 나기 시작했고 그의 누이들은 실망과 슬픔에 잠겨 있다가 예수님을 만나자 원망 섞인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나사로의 누 이 마르다에게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고 하셨고 마르다는 "마지막 부활에는 다시 살 줄 을 내가 아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녀에게 주신 말씀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 를 믿으면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였 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으면 다시 삽니다." 이것을 믿어야 기독교인이 되고 그리고 다시사는 부활의 은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내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 다. 다시 말하면 나를 살리기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살아나신 것도 나에게 영 원한 부활생명을 주시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죄사함 받고 구원을 받을 뿐 만아니라 부활의 은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동안 여러 차례 여러 곳에서 예수님 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림을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똘레도 성당 미술관에 걸려있는 그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17세기 미술가였던 뜨리스탄이 그린 십자가에 달린 예수입니다. 깡마른 얼굴, 튀어나온 광대뼈, 크지 않은 키, 메말라 불거 져 나온 갈비뼈, 흘러내리는 핏자국, 고통 하는 그 눈빛, 이것이 뜨리스탄이 그린 십자가 에 달린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고린도전서 15:20에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 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곧 우리의 부활이라는 뜻입니다. 죽은 신 것도 나때문이고 다시 사신 것도 나를 다시 살리기 위해서였 습니다. 감사와 찬송을 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3. 불신자의 부활입니다. 사도행전 24:15을보면 "저희의 기다리는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 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부활하고 믿지 않는 사 람도 부활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5:29를 보면 예수 믿는 사람의 부활과 믿 지 않는 사람의 부활은 같은 부활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 의 부활도,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도 나오리라"고 했습니다. 둘 다 부활합니 다. 그러나 부활하는 이유와 목적이 다릅니다. 예수 믿고 부활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부활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은 심판 받고 지옥 가기 위해 부활하 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과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대우도 다르고 상급도 다릅니 다. 비행기 여행하는 사람들 가운데 대기 승객이 있습니다. 다른 승객이 다 합승하고 난 뒤 자리가 남으면 탑승이 허락되는 것이 대기 승객입니다. 빈자리가 나지 않으면 제아무리 긴 시간을 기다렸더라도 탑승이 불가능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대기 승객이 아닙니다. 예수의 피로 구속받고 그 증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영원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들인 것 입니다. 예수 바로 믿고 구원의 표를 받아 우리 모두 함께 천국에 들어갑시다. 결론을 찾아 야 합니다. 예수 믿고 사는 우리들, 주님의 부활을 믿고 사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 까? 첫째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16절을 보면 "여호와여 백성이 환난 중에 주를 앙모하 였사오며 주의 징벌이 그들에게 임할 때에 그들이 간절히 주께 기도하였나이다"라고 했습니 다. 세상살이가 힘들고 견디기가 힘들고 환난과 시험이 닥치더라도 주님을 바라보고 간절 히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절망하고 낙심하고 좌절하더라도 부활신앙 을 가진 우리는 그럴수록 흔들리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깨어 노래해야 합니다. 19 절을 보면 "죽은 자 살아나고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라면서 "티끌에 거하는 자들아 너희 는 깨어 노래하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 하고 찬송하고 감사하고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죽어도 다시 산다는 부활 신앙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국 버밍엄대학의 창설자이며 초대학장이었던 올리버 로지 (Oliver J.Lodge)경의 아들이 세계 제1차 대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했습니다. 전사한 아들 이 아버지에게 유서처럼 써보낸 편지속에 이런 글귀가 있었습니다. "아버지, 제 무덤에 오 지마세요. 저는 거기 없습니다." 왜 거기 없을까요? 그것은 부활하여 주님 곁으로 갈 것이 기 때문입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가 아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죽거들 랑 아무데든 묻어라 장지 문제로 신경 쓰지 말도록 하라"고 아들 어거스틴이 "고향에서 너 무 멀리 떨어진 곳에 묻으면 허전하지 않겠느냐"고 하자 모니카는 "괜찮다. 하나님께는 멀 고 가까운 곳이 없단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것이 부활신앙입니다. 우리는 다시 사는 사람 들입니다. 무덤도 우리를 가두지 못합니다. 절망도 우리를 에워싸지 못합니다. 죽음도 우리 를 묶어 두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무덤 문을 여셨기 때문이며 절망과 슬픔을 이기셨기 때 문이며 죽음의 권세를 깨트리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외쳤습니다. (고전 15:56-57)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쓰는 것이 어디있느냐" "우리 주 예 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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