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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눈을 들어 사면을 바라보라 이사야 60:1-5

by 【고동엽】 2022. 11. 15.

네 눈을 들어 사면을 바라보라 이사야 60:1-5 /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제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 오리라 네 눈을 들어 사면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원방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워 올 것이라 그 때에 네가 보고 회색을 발하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풍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열방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 저는 구약성경 중에 이사야서를 특별히 좋아하고 애독합니다. 이유는 준엄한 심판이 예언되고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 속죄와 구원이 명확하게 약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서를 읽다 보면 공격적이고 정죄적인 기사들 때문에 놀라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이 구구절절 흐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가장 절묘하게 어우러진 책이라고 보는 것입니 다. 신학자들은 이사야서 40:~60:을 "구약 속의 신약(New Jestament book of Old Jestament)"이라고 부릅니다. 이유는 주된 기사 내용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 간의 깨어졌던 관계가 회복된다는 것과 구원받은 사람들이 받은 복에 대해 예언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서 60:~62:은 이스라엘의 영광스런 회복을 예 언하고 있으며 그 구원과 회복은 메시아를 통해 성취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 니다. 특별히 우리는 60:1-5은 주목해야 합니다. 문은 세 가지를 명령하고 있습니다. 1. 일어나라는 명령입니다.(1절)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에 졌기 때문에,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한다 는 이유 때문에,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빼앗겼을 뿐만 아니라 무너졌다는 이유 때문에 얼굴을 들지 못한 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곧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될 것이며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찾게 될 터이니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일어나라"는 명령 속에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당당히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그 동안 이스라엘 민족은 강대국 틈새 에 끼어 눈치보고 살기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430년 동안 애굽의 눈치보며 살았 습니다. 북왕국은 앗수르 눈치 보기에 바빴고 남왕국은 바벨론 눈치 보기에 바빴 습니다. 그리고 한 때는 친애굽파 친앗수르파 친바벨론파로 국론이 분열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교훈은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다. 일어나라, 일어나 서 당당하게 살아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애굽이나 앗수르나 바벨론 같은 주변의 강대국들이 그들을 도와주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도우시고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8:40이하를 보면 그 당시 회당 관리 책임을 지고 있던 야이로라는 사 람의 딸이 중병으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열 두 살난 딸의 죽어 가는 모습을 보 다 못한 야이로가 찾아와 살려달라고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려 간청했습니다. 전 후 사정을 다 들으신 예수님이 그와 함께 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회당 장집에서 사람들이 마주 오더니 "당신의 딸이 죽었소이다. 예수 선생을 더 이상 괴롭게 할 필요가 없게 되었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신 후 그 집 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숨 끊어진 열두 살난 아이의 손을 잡고 명령하셨습니다. "아이야 일어나라!"고 누가복음 8:55을 보면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 려는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신대"라고 했습니다. 죽은 자라도, 숨이 끊어 진 자라도, 영이 떠난 자라도 주님이 "일어나라"고 명령하시면 살아났고 일어났 습니다. 우리는 실패와 절망으로 점철되었던 20세기를 마감하고 새천년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누구라도 당당하게 일어설 수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3장의 기적도 우리에게 위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나면서부터 앉 은뱅이된 걸인이 성전문간에서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기도하러 올라가던 베드로가 그를 보았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일어나 걷기도 하며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했습니 다. 모든 희망을 포기했던 사람입니다. 병원도 포기했고 의사도 포기했고 가족도 포기했고, 본인도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포기하지 않고 계셨습니 다. 그래서 그가 예수 이름을 의지했을 때 주의 권능을 믿었을 때 일평생 묶은 절망과 포기를 떨쳐버리고 일어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를 바라보고 일어섭시다. 예수 바라보고 당당하게 일합시다. 둘째는 지금 일어나라는 뜻입니다. 몇 해전 도움을 요청하러 찾아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지가 멀쩡한 데도 자기 를 도와 달라며 떼거지를 부리고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오늘 5천원을 받아 가겠느냐 아니면 일주일후에 다시 와서 만원을 받아 가겠느냐고 물었더니 오늘 5천원을 받아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의 대답은 "일주일 뒤엣 일을 어떻게 믿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대답은 오늘 현찰이 더 좋다는 것입니다. 좋은 일은 오늘 지금 해야 합니다. 위대한 결단은 지금 해야 합니다. 오늘은 항상 오늘이지만 내일은 영원히 내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6:2에서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은혜도 지금 받아야 하고 구원도 지금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집사님이 새해 소원을 몇 가지 적어 낸 후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그 소원 가운데 매월 십일조 1000만원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게 들어있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천만원 십일조는 훗날 일이니 천만원 십일조만하게 해달라고 매달리 지 말고 지금 당장 10의 2조 10의 3조 하는 훈련을 시작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이유는 10의 2조나 3조를 하는 훈련을 하는 사람이라야 천만원 십일조할 믿음이 생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네 습관이나 버릇은 10년 후에 천만원 십일조 하겠다면서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합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 무엇이든 결단하고 하는 사람이 큰 일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390장 찬송은 듀필드가 가사를 짓고 웹이 곡을 부친 찬송입니다. "십자가 군병들아 주 위해 일어나"라는 찬송입니다. 지금 당장 당당하게 일어나 주 위해 일합시다. 절망, 포기, 패배, 좌절을 떨쳐 버리고 일어섭시다. 2. 빛을 발하라는 명령입니다. 빛이 무엇인가를 요한복음 1장이 설명해 줍니다. 요한복음 1:9을 보면 예수님을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을 비취는 빛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9:5에서는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사야는 우리가 일어나 할 일을 빛을 발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홀로 빛 을 발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빛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빛을 발하라는 것은 빛 되신 예수를 전하고 그 빛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대전 유성에 가면 "대청마루"라는 복.아구찜 전문식당이 있습니다. 주인은 대전 순복음 교회 집사님입니다. 관광지인 탓으로 평일보다 주말이 면 식당도 손님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늘 주일도 문을 열고 장사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 다. 그러던 어느 날 본인의 말을 빌리면 독한 마음을 먹고 주일은 문을 닫기로 결단하고 문을 닫았습니다. 결과는 뻔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드러내놓고 빈정 대는가 하면 매상이 줄기 시작했습니다. 약한게 사람 마음인지라 슬며시 어느 주일 문을 열었습니다. 물론 마음이 편치는 않았습니다. 문을 연 그 주일날 드문 드문 손님이 들락거리며 매상을 올려주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월요일에 벌어졌습니다. 하루종일 단 한명도 손님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 집으로 오는 듯 싶어서 내다보고 있으면 옆집으로 들어가고 건너집으로 가버리곤 했습니다. 그는 그 날밤 크게 깨닫고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주일부터는 아예 간판을 크게 써서 내걸었습니다. "주일은 쉽니다"라고. 제가 대접받으러간 날 저녁도 홀 과 방마다 사람이 북적거리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장사가 주일날 문 열었을 때 보다 배나 잘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 체험이후부터 일주일에 하루는 전도지를 들고 유성시내를 돌며 전도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 이런 삶이 빛을 발하는 삶입니다. 봉화를 태우고, 폭죽을 터트리고 수십 개의 조명등을 밝히는 것이 빛을 발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하루 내가정에서, 직장에서, 일터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서 빛을 발하며 사는 것이 빛을 밝히는 것입니다. 작은 불빛이 모이면 횃불이 되고 작은 전등이 모여 세종문화회관을 밝히듯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빛이 된다면 이어 둔 세상은 밝은 세상이 될 것입니다. 일어나 빛을 발합시다. 3. 네 눈을 들어 사면을 보라는 명령입니다. 4절을 보면 "네눈을 들어 사면을 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눈을 들어 동서남북 을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를 4절 이하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4절에서는 "무리가 네게로 오기 때문이며 네 아들딸이 원방(먼곳)에서 오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5절에서는 "바다의 풍부가 네게로 오며 열방의 재물이 네게로 오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6절에서는 미디안 사람들과 스바사람들(이방인)이 금과 유향을 가지고 올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8절에서는 동서남북에서 구름같이 비둘기 가 날아오는 것처럼 날아온다고 했습니다. 그 뜻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루살렘이 회복될뿐만 아니라 동서남북에서 떠났던 사람들이 돌아오고 헤어졌던 사람들이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다의 배를 타고 물질이 돌아온다는 것입 니다. 그뿐입니까? 이방인들이 각종 보물을 가지고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신앙이 회복되고 영혼이 회복되면 다시 말해 영적 으로 예루살렘이 회복되면 복과 은혜가 동서남북에서 모여든다는 사실입니다. 내 신앙이 회복되고 내 영혼이 복을 받으면 떠났던 사람이 돌아오고 잃었던 재산이 회복되고 예기치 않았던 복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새천년, 새해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뭘해야 할까요. 집을 새로 수리해야 합니까? 새 양복을 맞춰 입어야 합니까? 아닙니다. 영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동서남북에서 몰려오는 축복과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눈을 들어 동서남북으로 사면을 보십시다. 나만 바라보고 주변 만 바라보면서 절망하고 낙심하고 좌절하지 맙시다.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면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은총이 20절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영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마칠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아멘이고 할렐루야입니다.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나를 도우시고 복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시다. 그리고 동서남북에서 몰려오는 축복과 은총을 바라보며 기뻐합시다. 금년한해 눈을 들어 사면을 바라보며 살아갑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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