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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3(마 6:9~15)
"나라이 임하옵시며"
지금 계속해서 주기도문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복습하는 의미에서 앞의 내용을 잠깐 정리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 기도의 시작이 하나님이라 하지 않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기도의 대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내 마음에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인격자이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음,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오직 당신의 이름만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라는 기원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욕을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이나 악한 자들 때문도 있고 또한 믿는 우리들의 잘못 때문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이여,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라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께 이렇게 하십시오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일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시옵소서 하는 간구입니다.
언젠가 연세 많으신 장로님을 길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장로님은 저를 보자마자 차를 대접하겠다고 해서 찻집으로 갔습니다. 저는 "장로님께서 차는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연세도 높으시고 이제 집에서 쉬시니 제가 당연히 사야지요" 했더니 "목사님, 저 이래도 돈 넉넉합니다"하고 자신 있게 대답하십니다. "어떻게 넉넉하십니까. 아드님이 용돈을 잘 주십니까?"하고 여쭈었더니 장로님의 대답이 일품이었습니다. 장로님은 아들에게 "내 수중에 돈이 있어야 네가 효자다"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지혜로운 아버지입니까? 물론 이 정도로 유머러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부자지간이면 참 좋은 사이입니다. 늙은 아버지에게 용돈이 두둑하면 아들 잘 두었다고 높임을 받으니, 아들 효자 만들기 위해서 남에게 구걸하기보다는 대접하며 다닌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지금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시라고 기도하고 있는데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특별히 꼬집어서 말한다면 내가 잘 돼야 하나님이 영광되고 내가 잘못되면 하나님의 이름에도 손해가 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주기도문에서 두 번째 간구로 "나라이 임하옵시며"(The Kingdom come)입니다. 우리말은 관사를 잘 쓰지 않는 습관이 있어서 문법상으로 손해가 많습니다. '그 나라'든지 '한 나라'라는 말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관사 없이 둥글둥글하게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서양 사람들은 반드시 'the'나a를 사용하여 의미상의 큰 차이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I am the way"와 "I am a way"에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습니까? 그래서, 요즘 현대신학에서는 The Christ냐, A Christ냐고 맹랑한 논쟁까지 벌이고 있습니다. A Christ는 그리스도가 한 분이 아니라 누구나 그리스도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신학자들이 오히려 이상한 말들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나라이 임하옵시며"는 원래 "그의 나라" 또는 "당신의 나라가 임하옵시며"인데 우리말의 번역에서 관사가 빠졌습니다. 영어 번역의 "The Kingdom come"은 대단히 좋은 번역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므로 "당신의 나라가 임하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충성을 약속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기서「그의 나라」의 개념을 생각하겠습니다. 만약, 예수님의 모든 설교에 제목을 붙여 본다면, 그것은「하나님의 나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공생애의 첫 번째 선언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 4: 17)고 외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가까왔다'는 이 말은 우리들에게 늘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부터 지금까지 이천년동안 계속 천국이 가까왔다고 같은 소리로 기간을 연장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가까왔다는 우리말의 번역을 시간적으로 해석한 데 문제가 있습니다. 가까왔다는 말은 가까이 있다는 뜻입니다. 영어 번역을 보면 "Kingdom of heaven is at hand"로, 'at hand'에 묘미가 있습니다. 헬라어로도 "엥키켄"이라고 손에 닿는다는 뜻으로, 아주 가까이 있다는 의미로 쓰여져 있습니다.
그러면「천국」이라는 단어가 복음서에서는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천국이「하늘나라」로 30번,「하나님의 나라」로는 3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하늘나라」라는 말은 전혀 없고「하나님의 나라」가 마가복음이 16번, 누가복음이 32번으로 각각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는 천국이 영생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여기서는 생략하겠습니다. 단지 지금 문제되는 것은 왜 여기서는 하나님의 나라이고, 저기서는 하늘나라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대상의 문제입니다. 말이나 글은 언제나 대상이 누구냐를 생각해서 말하고 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똑같은 단어라도 대상에 따라 이렇게도 말하고 저렇게도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남북회담 때 우리측 대표들이 평양의 식당에서 봉사하는 여자들에게 "아가씨"라고 불렀다가 그들에게 혼이 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북에서는 아가씨라는 말이 마치 창녀와 같은 호칭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식당에서 서브하는 여자들을 접대부라고 부른답니다. 우리의 습관은 접대부보다는 아가씨라는 호칭이 훨씬 더 좋고 일반적인 호칭이 아닙니까? 이렇게 같은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대상에 따라 뜻이 완전히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북과 우리 남한은 벌써 수십년 단절되어 있는 동안에 이런 예가 허다합니다. 같은 예로 히브리 사람들은 하나님이란 말을 쓰기를 대단히 꺼려했습니다. 십계명 중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말씀 때문에 될 수만 있으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그 대칭 (subs- titute)을 찾아서 썼습니다. 그래서, 주(Lord) 또는 아도나이 라는 말을 썼고, 하늘이라는 말을 쓰는 것입니다. 겉으로 부르기는 주 또는 아도나이라고 하면서 속으로는 여호와를 생각했고, 하늘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 히브리 사람들의 개념입니다. 그래서, 천국도 하늘나라라고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헬라 사람들에게 편지를 쓸 경우에는 또 사정이 달라집니다. 왜냐하면 헬라인들은 3층천의 우주관을 갖고 있어 하늘에 대해서는 좋지 못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땅에는 사람과 생물들이 살고, 땅 위에는 공중(보통 하늘)이 있어, 여기에는 각종의 귀신들이 산다는 것입니다. 귀신들끼리도 결혼하고 시기 질투하며, 그들이 싸우다가 꽝하고 터지면 비가 오는 등 헬라신화의 모두가 여기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공중보다 더 높은 곳에 높은 하늘이 있어 여기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하늘나라」라고 하면 중간층으로 헬라 사람들에게는 마귀의 나라가 되므로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말할 때는 하나님이 계신「하나님의 나라」라고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대상에 따라서 마가복음이나 누가복음에서는 하나님의 나라이고 마태복음에서는 하늘나라이며 요한복음에는 좀더 다른 신학적인 차원에서 영생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결국 이 용어들을 다 합치면 내용은 하나로, 천국입니다.
다음은「나라」에 대한 개념입니다. 이 용어는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알아야 합니다. 나라라고 하면, 일반적인 개념으로 민주주의 국가인가, 공산주의 국가인가 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게 됩니다만 여기서는 상징적인 용어로 사용되었습니다. 마치 하나님을 아버지라 하고 예수님을 아들이라고 하며 그리고 성령을 바람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상징이란 어느 진리 하나를 말하기 위한 것이지 전체가 다 맞아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가령,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는 것은, 그가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요, 창조주로 우리를 보호하시고 사랑하시며, 또한 이 사랑은 공의로운 사랑이요 진노하시는 사랑을 가진 분으로 이해하기 위해 상징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하나님이 아버지라고 해서 어머니는 누구일까? 언제 어떻게 결혼해서 우리를 낳았을까? 하는 생각으로 발전해 나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라고 할 때, 아버지를 상징으로 해서 말하고자 하는 그 뜻이 무엇인가만 알면 되는 것입니다. 아들이나 바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단어들이 말하고자 하는 그 뜻이 제한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나라」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는 어떤 것입니까? 성경이 기록될 당시로 돌아가서 그 문화권과 역사적 배경 안에서 이해되어야만 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만 특히 그 옛날에는 나라를 잘 만나면 그것이 곧 행복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그 당시 로마 시민권만 가지고 있으면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었습니다.
로마 군인들은 자신들이 출세하기 위해 유권자들에게 노예들을 배급해 주기까지 했었으니까요. 이 때에는 노예 둘만 있으면 충분히 잘살 수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로마 시민권만 있으면 여러 가지 특권이 주어졌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나라가 없었으니, 그들의 소원이 무엇이었겠습니까? 다윗이 온 천하를 호령하던 그 시절을 그리워했고, 지혜의 왕 솔로몬에게 이디오피아의 여왕이 예물을 바치며 경배하던 그 왕국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나라가 다시 온다면 국방도 튼튼하고 사랑과 지혜와 축복이 넘치는 나라로써 편안하게 살 수 있으리라는 소망이 간절했습니다. 그들의 모든 행복이 나라에 매여 있었던 것입니다. 정말 옛날에는 왕만 잘 만나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할 것 없이 백성들은 편안할 수 있었고, 반대로 왕을 잘못 만나면 죽으라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하나님을 왕으로 하는 나라는 얼마나 좋을까를 자꾸만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하게 된 것입니다. 나라(Kingdom)는 희랍어로 "바실레이아"로써 왕권, 왕의 통치, 또는 왕의 주권이라는 뜻입니다. 즉 왕국이란 왕이 모든 것을 통치하는 독재정치입니다. 원래 독재라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훌륭한 왕이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민주주의다, 헌법이다 하는 것은, 통치자가 항상 좋은 방향으로만 나가는 것이 아니고 때로는 나쁜 방향으로도 기울기 때문에 이것을 견제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제도입니다. 힘이 한 곳으로 많이 집중된다고 문제가 됩니까? 장기 집권이라고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까? 훌륭한 왕이기만 하면, 즉 하나님이 왕이 되시기만 한다면 이런 것들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바로 그런 나라를 생각해서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 문화권으로는 나라에 대한 개념이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옛날에는 천국이라 하지 않고 천당이라고 말했습니다. 요즈음 다시 천국이라고 고쳤는데, 필자 생각으로도 천국보다는 천당이 우리에게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필자도 하늘나라이니 천국이 옳다고 늘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좀 깊이 생각하니 천당이 역시 우리에게 맞는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천국이란 가장 행복하고 편안할 수 있는 곳을 상징해야 하는데, 나라보다는 집이 더 적합하지 않습니까? 집이란 곧 가정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손자 등으로 구성된 따스하고도 안락한 곳입니다. 나라와 가정을 놓고 비교해 볼 때 어느 쪽이 더 행복한 느낌을 줍니까? 우리에게는 어디까지나 집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집, 즉 천당이지요. 그래서 필자는 천당을 영어로 번역할 때 "heavenly house"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천당 개념입니다. 왠지 우리 국민들은 나라에 대해서는 그렇게 행복하다는 생각이 없습니다. 항상 빼앗기고 침략 당하고 정치 혼란이 계속되어 왔기에 우리 문화로써는 "하늘나라" 하면 당연히 천당이 옳은 표현이다 하는 것이 필자의 주장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늘나라를 두 세계로 나누어서, 현재의 나라 (present age)와 앞으로 임하는 나라(age to come)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천국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세계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주권(sovereignty of God)이 행사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행사되는 시간, 하나님의 주권이 행사되는 인격, 하나님의 주권이 행사되는 공간,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니까 줄을 그어놓고 여기까지가 하나님의 나라다 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나 하나님의 주권이 행사되는 곳이면 모두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반대로 지옥은 자연히 하나님의 은총 밖으로 떨어진 세계를 말하게 됩니다. 이미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의 나라는 가까이 있습니다. 손을 펴면 닿을 정도로 가깝게 잡을 수 있습니다. 가령, 어머니가 먹을 것을 선반 위에 올려놓았는데 아이들이 그것을 꺼내려고 이불과 베개를 포개놓고 올라서면 손이 닿는 것처럼 이렇게 손이 닿는 곳에 있는 것이 천국입니다.
그러면, 천국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 자신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지금 천국이 와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특별히 구체적으로 나타난 곳이 누가복음 11:20과 마태복음 12:28입니다. 예수께서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시어 깨끗한 정신으로 돌아오게 하자, 사람들은 놀라며 말하기를 여기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났다고 말하기도 하고, 또 귀신의 왕인 바알세불을 힘입었다고 비난도 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고 오묘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자, 지금 여기에 귀신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곳은 마귀의 세계요 지옥입니다.
그런데 귀신이 쫓겨가고 성령이 들어와 깨끗한 정신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지금 예수님이 계심으로 말미암아 쫓겨났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하였다(already has come)는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주권이 행사되고 마귀의 주권이 물러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성경의 여러 곳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여기 왔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등 모두가 하나님의 나라가 여기 지금 와 있다는 뜻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말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 순종하고 예수님과 사귀면서 어둡고 사탄에 매였던 권세가 물러가고 하나님의 나라가 그 마음속에 가정 속에 사회 속에 자꾸만 들어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접할 때마다 점점 밝아지고 어두움이 조금씩 조금씩 물러가는 상태를 보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누가복음 17 : 21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못하리니 너희 안에 있느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거의 대부분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너희 안에 있다'고 해서 내 마음에, 즉 심중천국(心中天國)으로 해석을 하고 있단 말입니다. '너희 안'이라고 할 때 '너희'는 '네 안'이 아니라 복수로써의 너희 안(among you)입니다. 더군다나 이 말은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하신 말씀이므로 논리적으로 생각해 볼 때에도 바리새인들의 마음속에 천국이 있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천국이 너희 안에 있느니라'는 말은, 앞으로 천국이 있을 것이다가 아니라 현재에 있다는 말이므로, 바리새인들 안에 있는 예수님 자신을 의미하신 것입니다. 천국은 곧 예수님을 가리키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구하라'(seek)는 것은 찾고 애쓰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보다 극적으로 표현하신 것은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눅 16 : 16)고, 천국이 공격받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침입한다는 것을 천국의 입장에서 보면 침입 당한다는 뜻으로 하나님이 졌다는 뜻입니다. 야곱이 환도뼈가 부러지면서까지 하나님을 꼭 붙잡고 복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네 이름을 이스라엘로 고쳐라", 이 뜻은 야곱이 이겼고, 하나님이 졌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우리들도 아이들이 계속해서 칭얼대고 조르면 마지막에는 "그래, 내가 졌다" 하고 아이의 소원을 들어줍니다. 이것은 힘이 모자라서 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열심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가졌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천국이 빼앗길 천국입니까? 그러나 빼앗기겠다고 말씀하셨으니 우리는 빼앗아야 합니다. 전쟁에 임하듯이 천국을 위해서는 온 생명을 바치는 노력이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또한 천국은 임할 뿐만 아니라 전파되고 계속 확장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고 하나님의 주권이 행사되면, 행사되는 것만큼 천국이 넓어지고 있습니다. 즉,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점점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임할 천국도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내가 하나님 나라에서 이 잔치에 참여할 때까지는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리라"고 천국이 임할 때 어떻게 되겠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데려 가고 한 사람은 머물겠다고 심판적인 요소가 있음도 말씀하셨고, 열 처녀 비유에서 다섯 사람은 들어가고 다섯 사람은 들어가지 못하는 종말론적인 천국도 시사하셨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을 정리해 보면 천국은 세 차원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천국이 임했고, 복음이 전파되면서 하나님의 나라(주권) 즉 천국이 확장되고, 예수께서 재림하심으로 천국이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가 임하시옵소서"라는 말은, 주님의 주권을 완전히 내 마음에 내 가정에 내 사회에 내 나라에 행사되게 하옵시라는 뜻입니다. 그리하면 어둠의 권세, 사탄의 권세, 더러운 권세가 다 물러나고 주님의 권세만이 있을 것입니다. 극적 장면으로 표현하면, 여기 귀신들린 사람이 있는데 "나라가 임하시옵소서"라고 하면, "이 사람의 흐린 정신은 물러나고 맑은 정신이 되게 하옵소서"라는 뜻입니다. 누가 미워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이 때에 "나라에 임하옵소서"하는 말은, 용서하는 마음이 되고 화평하는 마음이 되어 미운 마음은 다 사라지게 해 주십시오 하는 기원입니다. 병든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가 임하옵소서" 하면, 병이 낫고 건강하고 명랑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더러운 마음이 성결케 되고 하나님의 뜻으로 화하는 그런 인격이 되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나라가 속히 임해 주시옵소서"라고 기원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관련을 지으면 더욱 중요한 뜻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종말론은 전쟁도 있고 기근도 있고 환난도 있고 배신도 있고 배교도 있겠다고 여러가지 징조를 말씀하셨습니다만 결정적인 결론은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된 후에라야 나라가 임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그 날은,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된 후에야 이루어진단 말입니다. 그렇다면 "나라에 임하시옵소서"는 무슨 뜻입니까? 어떤 분은 직설적으로 해석해서 빨리 복음을 전파해서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이 하나도 없어야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건설된다고 주장합니다. 일리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빨리 이 땅에 임하게 하는 길은 복음을 듣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복음이 전파되는 유일한 채널은 무엇입니까? 언어입니다. 우리 나라는 한 언어로 다 통하지만 인도 같은 나라는 그 안에서 40개의 방언이 통용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라도 서로 말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언어가 통해야 복음을 전파할 수 있지 않습니까? 서로 통하지 않을 때는 죽인다고 해도, 살린다고 해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래서 금년 10월에 에딘버러에서 복음이 들어가지 아니한 언어가 없도록 국제회의를 가집니다. 지금까지도 복음이 들어가지 못한 언어가 천이 넘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방송을 하고 책을 만들어 전파해도 알아듣는 언어로 전하지 아니하면 복음은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라도 그 언어를 가진 사람이 예수를 믿어야 전도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복음을 받지 못한 언어를 하나도 없이 하자고 알 윈터 교수가 제안해서 회의를 갖습니다. 한 나라에서 몇 개의 언어를 맡아, 책임지고 복음을 전하려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복음을 전하는 데 세 가지의 큰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황색 인종이라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백인들은 흑인들과 불통이 고, 흑인들은 백인들과 불통입니다. 그러나, 희지도 검지도 않은 우리들 은 양쪽과 다 통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습니다. 둘째는 공산주의의 위협에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다른 나라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중요한 여건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이 점이 눌린 자(oppressed pe- rson)들에게 대단히 유리한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우리가 무당 종교에 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직도 미신이 많이 있어 푸닥거리가 여기저기서 행해지고 있지 않습니까? 앞으로 복음을 받아야 할 곳이 모두 미신 속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논리적이고 이론적이고 기계적인 세계의 사람들은 미신이 많은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할 수가 없습니다.
비슷한 도깨비 문화 속에 사는 사람들이어야 도깨비를 이해함으로 전할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학술적인 용어로 말하면, animistic world에 산 사람이라야 animistic world에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에게 경제적인 부는 없지만 전도할 자격은 충분히 갖추어져 있습니다. 아무튼 복음을 듣지 못한 민족이 하나도 없어야 하나님의 나라가 빨리 임할 것 아닙니까? 복음을 듣지 못해서 예수를 믿지 못한 사람은 없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종말론의 결론입니다.
그러면, "나라이 임하옵소서" 하는 기원은 무슨 말입니까? 쉽게 말해 서 "열심히 전도하겠습니다" 또는 "내가 주의 나라의 주권에 전적으로 순종하고 충성하고 헌신하겠습니다"라는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 문을 활짝 열고 하나님의 주권이 확장되기 위해서 내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천국은 과거, 현재, 미래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이요, 그리스도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가 마음에 가정에 교회에 사회에 나라에 세계에 임하기 위해서 우리는 열심히 기도해야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기도문의 원래의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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