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돋는 해 아침 빛 같은 다윗 삼하23:1~5

by 【고동엽】 2022. 10. 23.
목록가기
 
 

◈돋는 해 아침 빛 같은 다윗    삼하23:1~5       10.05.30.인터넷설교녹취

 

 

본문 삼하23:1~5절은, 다윗이 살아생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도, 마지막 말을 남기는 사람은 적고,

성경에도 등장하는 많은 위인들 중에도, 마지막 말이 성경에 기록된 경우가 희소한데..,

그런 점에서, 본문의 다윗의 생애 마지막 남긴 말은, 깊이 묵상해 볼 만 하다.

 

 

 

◑다 늙은 노인이, 너무 팔팔하고 젊은 노래를 부른다.

 

다윗은 시편에서, 주옥같은 기도시를 많이 남겼지만,

그의 생애 마지막 순간에 남긴 말도, 정말 영감이 서린 놀라운 말을 남겼다.  삼하23:1,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인생을 마감하며 남겼던 그 마지막 말(삼하23:1~7) 중에

가장 하이라이트는 :3~:4절이다.

 

삼하23:3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바위가 내게 이르시기를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자 ,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

 

:4, ①저는 돋는 해 아침 빛 같고 ②구름 없는 아침 같고

③비 후의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의 광채와 같으니라 하시도다.

 

 

▶1. ‘저는 돋는 해 아침 빛 같고’  (여기서 저he는 자기 자신을 가리킴)

우리가 ‘아침 해가 돋을 때 만물 신선하여라’라고 찬송을 부르지만,

여러분, ‘아침 태양이 떠오르면서 신선하게 비쳐주는 그 빛’

다윗은 바로 자신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이르시기를, 그렇게 인정해 주셨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바위가 내게 이르시기를 :3

 

어둠을 몰아내는 빛, 잠을 깨우고 삶에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희망의 빛,

그것이 바로 자신이라고,

노래하는 그의 마지막 언어를 보게 된다.

 

   사람이 늙어서 죽을 때가 되면, 사실 수저를 들 힘조차 없어진다.

   몸도 누가 부축해 주어야 겨우 일으키게 된다.

   그런 입장에 처하게 될 때, 사람들은 천하장사라도 위축되게 마련인데,

   다윗은 정반대로 노래하고 있다. ‘나는 돋는 해 아침 빛 같아!’

 

▶2. 다윗은 또 ‘구름 없는 아침’과 같다고 자신의 상태를 노래한다.

요즘처럼 이 말씀이 실감나는 때가 없는 것 같다.

요즘은 시계視界가 30킬로가 넘는 맑은 날이 계속되고 있다.

오츠크 해협의 찬 공기가 한반도로 밀려와서, 시계가 맑고 넓다고 한다. 

 

‘구름 없는 맑고 청명하게 하늘이 개인 아침’,

다윗은 늘 하늘을 바라보며

자기 마음이 기뻐지고 높은 곳을 사모하고 있으므로

자기 매일의 아침(시작)이 그렇게 밝고 희망차다는 것이다.

 

   사람이 임종이 가까워지면,

   사실 못 죽어서 사는 사람들이 많다.

   요즘 ‘요양원’에 가보면, 거기 전신이 마비된 중환자들이 누워있는 곳이 있다.

   한 병실에, 침대가 여러 개 놓여있고,

   노인들은 거기서 하루 종일 자면서 죽기만 기다린다. 찾아오는 사람도 거의 없다.

   의식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숨은 있는데, 몸은 거의 죽은 것과 마찬가지다.

 

다윗은 30세에 왕이 되었고, 40년을 다스린 후에 70세에 소천했다.  삼하5:4~5

그러나 노년의 다윗은,

마치 모세가 죽을 때까지 그 눈과 기력이 쇠하지 않았던 것처럼,  신34:7

그의 마음은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은 청춘을 살고 있다.              

 

▶3. 또 곧 돌아가시는 할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비 후의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의 광채와 같으니라’ 라는 고백을 하고 있다.

 

여러분, 비온 뒤에 솟아나는 풀잎들을 보면 얼마나 싱그러운가!

사막과 황무지 같은 곳에서, 또는 한 겨울 시베리아의 추위를 이기고 나서

새싹들이 올라오는 모습을 보노라면.. 얼마나 새로운지 모른다.

 

식물이 말라서 죽는 뜨거운 팔레스타인 땅에서도

아침 이슬을 받아먹고 자란 새싹들이

아침에 뾰족뾰족 대지를 가르고 올라온다.

 

비/이슬 내린 땅에

생명이 솟아나 구체적인 실체를 띈다.

 

‘움이 돋는다’는 것은

땅속에서 배아가 터져서 싹으로 자라나다가

표피를 뚫고 올라오는 희망의 실체를 말하는 것이다.

그 ‘새 싹’을 바로 자신이라고.. 다윗이 표현하고 있다.

 

   목련꽃을 보면, 겨울에는 나무가 눈에 덮혀서 지낸다.

   그러다가 봄이 되면, 나무에 물이 오르면서, 

   움같은 것이 돋아서, 커지다가, 마침내 터진다.

   그리곤 거기서 하얀 목련꽃이 피어난다.

 

마찬가지로, 다윗은 자신의 삶을

이 딱딱한 세상의 표층을 뚫고 나와

아름다움을 얘기하는 희망이라고..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

 

   여러분, 이 이야기를.. 노쇠한 할아버지가 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 크리스천들이 불러야 할 생의 찬미이다.

  

   바울이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이 날로 새롭도다 라고 말했던 이유도 고후4:16

   자기 속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살아서, 생명을 날마다 공급해 주시기 때문이다.

 

결코 그의 일생이, 아름답게 노래할 만큼, 쉽고 평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다윗은 왕이니까, 일생을 평탄하게 살았으니까,

저런 노래를 부를 수 있었지..’  나는 지지리 고생하고 사니까, 저런 노래를 부를 수 없어!

 

그러나 다윗은

자기 삶이 일평생 편안하기 때문에, 이런 시를 노래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여러분 다윗은 죽어갈 때, 젊은 날의 삶의 흔적을 갖고 병들어 있었다.

그는 일평생 군인으로 살았다.

그래서 전장에서 얻은 많은 상처와 자국들이, 자기 몸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는 칼에 베이거나 찔린 경험도 여러 차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늙으면.. 모든 사람이 다 병에 들게 되어있다.

   ‘사람이 늙어서 죽는다’고 말하지만,

   의학적으로 정확히 표현하면 ‘병들어 죽는다’이다.

 

   폐렴이든지, 대장암이든지, 심장병이든지

   사람은 병에 걸려서, 죽는 것이지,

   늙어도 아무 병이 없으면.. 죽지 않는다.

   늙으면 사람은 어떤 병이든지 다 병들게 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밝은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다윗이 본문에서 행복을 노래하고 있지만,

그는 자기 아들 압살롬 때문에, 반란군에 잡혀서 죽을 뻔도 했었다.

겨우 반란이 진압되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그 후에도 여러 가지 시련이 끊이지 않았다.

 

더 슬픈 사실은, 다윗이 이 노래를 지어서 부를 즈음에

자기 아들 아도니야의 반역을 겪는다.

 

아도니야는, 아직 아버지가 살아계심에도 불구하고,

허락도 받지 않고, 자기 스스로 왕이 되었다고 공포해 버린다.(일종의 반역이다.)

그리고 그 반역에, 자기 오른 팔과 같았던 군대장관 요압이 합세했고,

정말 오랜 동지 중의 동지였던 제사장 아비아달도 가세했다.

 

‘늙었다고 나를 괄시하나?’ 다윗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말 늙어서, 힘을 다 잃어버려서, 내가 천대와 무시를 당하는 구나..’

이렇게 생각할 시기에

도리어 그는 ‘아침 해 같은 자기, 돋는 풀 같은 나’ ..이렇게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므로 본문의 이 노래는, ‘왕’이라는 행복한 상황이 만들어준 노래가 아니라,

다윗의 ‘믿음’이 만들어준 노래이다.

 

주님을 믿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고백이다.

그와 더불어 우리가 동일하게 해야 되는 고백임을.. 마음에 잊지 말자.

 

▶적용

돌이켜보면, 우리 삶에 아무리 큰 상처가 있다 하더라도,

관계의 아픔을 경험하고, 사람들로부터 모진 이야기를 듣고,

자기 삶을 다 깨뜨려버리고 싶은 상실한 마음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더 이상 실망하거나, 좌절하거나, 부정적인 생각을 할 자격이 없다.

 

우리는 그 고난과 비교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구원을 얻은 성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늙었지만, 얼마든지 생을 노래하고 찬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분, 우리가 확실히 하게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아들이 고귀한 피를 흘려서, 우리를 구원해주신 그 공로는

내 삶에 아무리 큰 설명할 수 없는 아픔을 겪었다 하더라도,

우리를 노래하게 만들어준다. 다윗보다 더 하게!

 

   정말 본문을, 집에 가셔서, 일주일 내내 반복해서 묵상해 보시기 바란다.

   정말 성경에 나오는 표현들 중에, 이렇게 아름다운 표현이 없다.

   이런 아름다운 표현이,

   다 늙어서 자기 생명의 불이 꺼져가는 할아버지 마음과 입에서, 

   얼마나 힘 있게 솟아나왔는지..

   특별히 이스라엘 역사책(나중에 성경책이 됨)에 다 기록이 되었던 것이다.

 

 

◑노래에 나타난 다윗의 신앙 엿보기

 

▲1. 그는 은혜를 따라 자신을 기억, 인식했다.

 

삼하23:1,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높이 올리운 자, 야곱의 하나님에게 기름 부음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가 말하도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의 정서 속에서 살았다.

여러분, 은혜가 가득차면, 다른 것은 다 사라져 나가버린다.

은혜가 부어지면, 다른 잡다한 것들은 다 밀려서 떠나가게 되어있다.

 

은혜의 정서 속에 푹 젖어 살았던 다윗은,

자신의 몸에 병고의 고통이 있었지만,

가족 관계에 있어서 마음에 상처가 있었지만,

희망을 노래했고, 그 희망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은혜를 헤아리고, 은혜를 일깨우고, 은혜를 각인할 때,

‘나의 나된 것은 주의 은혜로다’는 바울의 고백이, 나오게 된다. 고전15:10

다윗 식으로 표현하면

‘나는 아침에 터져 나오는 햇빛, 구름이 걷힌 아침 같다’이다.

 

 

▲2. 다윗은 평소에 성령으로 늘 충만했다.

 

삼하23:2, 여호와의 신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심이여.. 그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그는 자신의 혀를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말과 시가, 자신의 노래가 아니라, 성령의 감동이라고, 자신 있게 선포한다.

 

여러분, 연약한 새싹 풀잎이, 어떻게 단단한 땅 표피를 뚫고 바깥으로 나오는가?

그것은 힘으로, 능으로 절대 되지 않는다.

오직 성령충만한 사람이, 자기 한계를 벗어난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여러분, 늘 성령님을 매시간 인식하고, 내 곁에 동행하심을 인정하고,

그 분과 대화하시며,

그래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이 사는 성도님들 되시기 바란다.

 

▲3. 그는 언약의 말씀을 붙잡은 사람이었다.

 

삼하23:5, 내 집이 하나님 앞에 이 같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나로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케 하셨으니..

 

그는 자기 권력을 붙잡지 않았다. 자기가 가진 재물을 의지하지 않았다.

그가 성전에 헌물로 드린 금의 무게를, 오늘날의 시세로 환산하면

아마 수 조 원을 호가할 것이다.

 

그런 어마어마한 재벌이, 물질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붙잡기가 쉽지 않았을 터인데..

오랜 신앙의 연단을 받은 다윗은, 그것이 가능했다.

 

한 번은, 다윗의 모든 아들이 다 몰살되었다는 소문을 접하기도 했다. 삼하13:30

나중에 알고 보니, 암논 한 사람만 죽은 것이었다.

 

그렇게 된 원인은, 다윗의 아들 암논이, 이복여동생 다말(압살롬의 누이)을

강제적으로 성관계를 맺은 것이었다.

그래서 압살롬이 원한을 품고 있다가, 기회를 봐서 암논을 칼로 죽여 보복한 것이다.

 

이렇게 다윗의 집안에는, 문제가 끊이지 않았지만,

다윗은 ‘네 왕위가 영원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만 굳게 믿고 버텨나갔고, 삼하7:16등

실제로 그 믿음대로 되었다.

 

그는 외부적으로/내부적으로 문제가 터질 때마다,

그래서 풍전등화처럼 자신이 흔들릴 때마다

다른 것(권력, 물질, 외세, 인맥)을 의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을 굳게 붙잡았다.

그래서 그는 ‘저는 돋는 해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이’ 살 수 있었다.

 

▲4. 다윗은 사람을 키우는 목자였다.

삼하23:8절부터 ‘다윗의 용사들의 이름은 이러하니라’는 말씀이

마지막 39절까지 계속되면서, 다윗을 호위했던 용사들의 명단이 쭉 나온다.

그는 37명의 유명한 장군들을 길러냈다. 삼하23:39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용사들이 언제부터 다윗에게 모여들었는가 하면,

그 힌트를 찾을 수 있는 구절이 아래 구절이다.

삼하23:13, 또 30두목 중 3사람이 곡식 벨 때에 아둘람 굴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갔는데, 때에 블레셋 사람의 때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쳤더라.

 

즉 다윗이 도망 다니는 중에, 아둘람 굴에 피신해서 지낼 때였다. 

그 때 다윗에게 모여든 사람을 성경은 이렇게 표현한다.

환난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 장관이 되었는데  삼상22:2

 

주류 사회에서 소외되었고, 인정받지도 못하던 사람들,

어쩌면 비참한 인생으로 끝날 수밖에 없던 비주류 인생들이 다윗에게 모여들었고,

그들 중 일부는, 거기서 훌륭한 용사로 거듭났던 것이다.

다윗은 완전히 ‘바닥 인생’들을 이끌어서 ‘장관’들로 키워냈다.

 

그 사람들이 다윗과 함께 지내는 동안, 다윗과 같은 지도자로 변모한 것이다.

(근묵자흑 근주자적, 近墨者黑 近朱者赤) 

 

▶마치는 말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확신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존감을 갖고서,

늙어죽는 시간에 이르러서도

그 자존감을 절대 버리지 않았다.

 

정말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더욱 새롭게’ 살았던 것이다. 고후4:16

 

삼하23:5절을 다같이 읽으면서, 설교를 마치려고 한다.

‘내 집이 하나님 앞에 이 같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나로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케 하셨으니

나의 모든 구원과 나의 모든 소원을 어찌 이루지 아니하시랴?’

 

출처 : https://rfcdrfcd.tistory.com/1597275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