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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퍼의 계시현상의 실체적 해석학(1)

by 【고동엽】 2022. 10. 20.

김재진 (연세대학교 교수) 2004.11.30 조회 : 433  

I. 하나님 말씀의 원문(Urtext)인 예수 그리스도

디트리히 본회퍼(D. Bonhoeffer, 1906-1945) 신학의 특성은 해석학적 전망에 따라서 학자마다 다르게 강조되고 있다. 박봉랑 교수는 본회퍼 신학의 특성을 "基督敎의 非宗敎化"라고 특징지어 말한다. 그러나 본회퍼 신학의 특성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는 그 강조점에 있어서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박재순 박사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본회퍼의 신학을 하밀톤(W. Hamilton)과 필립스(John. A. Phillips)는 세속화 신학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뮐러(Hanfried Müller)는 맑스주의적으로, 몰트만(J. Moltmann)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대리적 사역으로 해석하였다. 그린(Clifford J. Green)은, 본회퍼가 복음을 사회학적으로 전개하였다고 보고 있으며, 파일(Ernst Feil)은, 본회퍼의 신학이 그리스도와 세상에 대한 이해로 일관성있게 통일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래서 베트게(Eberhard Bethge)도, 본회퍼의 신학은 계시의 구체성을 강조하는데 있어서 수미일관하였다고 본다.
그러나 본회퍼 신학에 관한 연구는 최근 트로비취(M. Trowitzsch), 파일(Ernst Feil) 그리고 크뢰트케(W. Krötke)에 의해서 사회학 뿐만 아니라, 해석학과 철학적 차원에서 새롭게 연구되고 있다. 본회퍼 신학에 대한 이러한 최근 연구는 본회퍼 신학의 철학적 혹은 해석학적 근거를 찾아보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본회퍼가 교회와 역사 속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자유로운 계시행위를 칸트적 선험철학과 헤겔적 관념철학을 극복하고 그리스도-존재론적으로 전개하게 된 해석학적 방법을 분석해 보고자 하는 연구이다. 왜냐하면 본회퍼의 초기 작품인 {성도의 교제(Sanctorum Communio), 1927}와 {행위와 존재(Akt und Sein), 1930}의 해석학적 방법은 당시를 지배하고 있었던 독일의 위대한 두 철학자 칸트(I. Kant)와 헤겔(G.W.F. Hegel) 철학을 신학적으로 종합한 저작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본회퍼는 여전히 칼 바르트(K. Barth)의 그리스도 중심적인 개신교 신학의 핵심적 주제를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봉랑 교수는 바르트의 신학이 본회퍼에게 미친 영향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본회퍼는 초기 바르트의 하나님 말씀의 神學을 따라가면서도 ('성도의 교제') 계시의 초월적인 행동과 위기의 지나친 강조에 대해서 계시의 존재의 면으로 억제하고('행위와 존재에서'), 계시의 객관적인 권위성의 위험에 대해서 계시의 세상적인 언어를 강조 했지만('옥중서간') 본회퍼는 '종교적' 인간의 인간학적 가능성으로부터가 아니고, 인간에게 오고 인간에게 말함으로써 행동하는 하나님의 현실로(예수 그리스도: 필자 주)부터 신학을 세우는데 있어서, 다시 말해서 그의 신학의 구조와 골격, 그리고 방법론에 있어서 본회퍼의 신학은 항상 바르트의 신학이었다."

이러한 박봉랑 교수의 해석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본회퍼 신학에 대한 해석학적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본회퍼가 그리스도론적으로 안내된(christologisch orientiertes) 말씀의 신학 내지 계시의 신학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학자들마다 공통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봉랑 교수의 본회퍼 해석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정당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이 제기된다: 어떠한 근거에서 본회퍼의 신학이 그리스도론적으로 안내된 말씀의 신학이라고 볼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답변의 일환으로서 트로비취(M. Trowitzsch)는 본회퍼의 해석학에 대한 10가지 중요한 명제를 제시하였다. 그 첫 번째 명제에 의하면 "근원적인,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차적으로 이해되어져야 하는, 필연적인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다." 이와같이 트로비취가 이해하고 있는 본회퍼의 해석학적 명제는, 본회퍼의 해석학이 철저히 기독론적 출발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더 자세히 말하면 본회퍼는 "신학의 대상은 그 자체의 대상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교회 안에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런데 이 말씀, 곧 성서의 원전(Quelle), 혹은 최초의 본문(Urtext)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으로 본회퍼는 본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격적인 말씀이다. 바꾸어 말하면 본회퍼는 하나님의 말씀을 존재론적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교회에서 선포되고 있는 말씀도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격적 말씀에 기초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제 설교자는 분명히 말씀을, 곧 십자가에 달리신 분에 관한 말씀을 회고해야하고, 그 말씀을 선포해야 한다. 왜냐하면 설교자의 회고에는 오로지 신적인 사건에 대한 '회상(Gedächtnis)'에서 나온 일반적인 '문장들'과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말씀들을 설교자는 따라 말할 수 있고(nachsprechen), 그러나 그리스도인격(Christusperson)의 살아있고 창조적인 말씀 자체를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예수가 성서 텍스트와 설교자에 의해서 선포되는 말씀의 원본문(Urtext)이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예수의 존재는 단순히 육신으로 살았던 33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성서의 말씀이 선포되는 설교자의 말씀 속에 존재하게 되고, 더 나아가 그 말씀이 실현되는 곳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은 말씀이 선포되는 교회에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본회퍼가 하나님의 말씀의 세가지 형태, 더 자세히 말하면 '설교'와 '성서'와 '예수 그리스도' 속에는 "그리스도의 인격(Christusperson)"이 계시되었다고 봄으로서 말씀을 존재론적으로 해석한다. 왜냐하면 본회퍼에게 있어서 존재(ist)는 단지 "있음(es gibt)"이 아니라 "행위(in Akt)" 속에서 인식되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격은 행위를 통하여 인식되어지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 곧 로고스(ՋՏՃՏՒ)라는 것은 본회퍼의 {그리스도론(Christologie), 1933}에서도 지배적으로 나타난다. 그에 의하면 하나님은 자신의 자유 안에서 말씀으로 자신을 계시하신다. 왜냐하면 인간도 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말씀하시는 로고스 안에서 인간과 만나시기로 결정하셨다. 인간의 로고스 안으로 하나님의 로고스가 들어오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그 인격 속에 말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더 자세히 말하면 "하나님의 인격적인 말씀"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인격적인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교회의 말씀, 곧 설교 속에 실존(existieren)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선포된 말씀으로서 현존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는 설교 속에 현존한다. 바꾸어 말하면 설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재 형태(Daseinsgestalt)"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설교 속에 현존한다는 것은 그가 "객체적 말씀"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주체, 곧 "...에게 말씀을 건네는 분"으로 현존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설교를 듣는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교회의 설교는 전적으로 인간의 말이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 곧 하나님의 인격적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러한 근거에서 본회퍼 해석학은 말씀의 세가지 형태 속에 현존해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본회퍼의 성서 해석학은 곧 그리스도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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