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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오바댜를 만난 엘리야

by 【고동엽】 2022. 10. 14.


왕상 18:3-15

세상에 죄악이 관영하여져서 선한 자가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언제나 의인은 남아 있게 마련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성경의 역사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타락하여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때에도 노아와 같은 의인이 남아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구원을 받았고 소돔과 고모라 성이 죄악으로 관영하여 심판을 받을 때에도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의인으로서 심판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본문에서 아합이 통치하던 이스라엘이 바알 숭배로 타락하였을 때에도 아합의 궁내 대신이었던 오바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 남아 있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바댜'(오바드야후)는 '여호와를 섬기다'는 뜻이다. 특히 이 이름 속에 담긴 동사 '아바드'는 '노예처럼, 종처럼 섬기다'는 뜻을 갖고 있다. 그런데 사실상 이름 그대로 오바댜(Obadiah)는 지극한 열심으로 여호와를 섬긴 사람이다. 즉 당시 바알 숭배의 심장부라 할 아합 궁중의 고위직에 있었던 자였음에도 그가 여호와의 선지자 일백 인을 숨겨 주었다는 사실(4절)은 가히 그 신앙의 열성과 순수함을 짐작케 해준다.
오바댜는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 생활을 하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바로 알고 성경을 배우며 자란 사람들은 계속해서 신앙 생활을 잘하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해서 위대한 일을 한 사람들을 보면 어려서부터 신앙으로 자라난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예를 들면 서머나 교회의 감독으로 유명한 폴리갑은 아홉 살 때 주님을 바로 알고 신앙으로 자라서 순교를 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인 요나단 에드워드 목사는 일곱 살 때 주님을 알고 나중에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신앙 생활을 해야 나중에 훌륭한 일들을 감당하기가 쉽습니다.
오바댜는 당시 바알 숭배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아합 궁중의 고위직에 있었습니다. 그는 궁중의 모든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궁내 대신이었습니다. 그는 궁에서 돌아가는 모든 사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세벨의 손에서 여호와의 선지자 일백 인을 구원하여 굴속에 숨기고 떡과 물을 공급하였습니다.
오바댜의 이러한 행위는 생명을 건 모험이었습니다. 그 사실이 알려지기만 하면 그도 이세벨에 의해 죽음을 당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바댜는 하나님을 경외하였기에 생명을 걸고서라도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구하여야 했습니다. 그는 순교의 신앙을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합 왕궁의 궁내 대신인 오바댜는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죽일 때에 일백 인의 선지자들을 보호하였습니다. 그는 말로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바댜가 비록 궁중의 모든 일을 관장하는 높은 위치에 있었다고는 하나 극한 가뭄의 시기에 백 명이나 되는 선지자들을 공양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게다가 그 일이 탄로가 나면 자신의 생명은 극히 위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과 재력을 최대한 선용하여 위기에 처한 선지자들을 돕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이 일을 위해 생명을 걸었습니다.
악한 세대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 남아 있던 오바댜는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선지자들이 멸절되는 위기에서 그가 그들의 생명을 구하고 먹을 것을 공급한 것이었습니다. 엘리야는 그릿 시냇가에 숨어서 까마귀를 통하여 먹을 것을 공급받았지만 그들은 오바댜를 통한 하나님의 손길로 생명을 부지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즉 오바댜는 자기 선지자들을 구하시려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받았던 것입니다. 오바댜가 그 일을 실행하기까지는 인간적인 고민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아합의 궁내 대신으로 남아 있는 것이 그때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믿음으로 결단하였을 것입니다.
이는 마치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부탁을 받고 ‘죽으면 죽으리이다’(에5:16)라는 결단으로 왕 앞에 나아간 것과 같습니다.

성도는 자신이 처한 위치와 모든 환경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서 사용받기 위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임을 항상 기억하여야 합니다.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유익만을 위하여 산다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바댜가 만일 자신의 안일만을 추구하였다면 선지자들을 숨기는 위험한 일을 행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부흥시키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이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헌신할 자를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응답함으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도구로 사용받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바댜가 악한 왕인 아합에게 인정을 받아 궁내 대신이라는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된 것은 그가 근면하고 성실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바댜는 아합 왕과 더불어 물의 근원을 찾아 다닐 정도로 아합 왕의 신임을 받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위대한 신앙인들이 성실하고 근면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이나 다니엘이 우상을 숭배하는 나라의 높은 관직에 오른 것은 그들이 기용된 자리에 그들만큼 적격인 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환경에 처하더라도 성실과 근면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오바댜는, 우상 숭배에 그 누구보다도 열심이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아합 왕의 신하로서 우상을 숭배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만을 경외하였습니다. 그 주위에는 우상 숭배자들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악한 자의 길을 가거나 악에 물들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바댜와 같이 우리들도 아무리 주위가 악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할지라도 세속에 물들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인간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과 부활로 하나님이 재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피조물이므로 악하고 패역한 이 세대를 본받아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 세대는 사단의 종이 되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는 그리스도인들을 타락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든 생활에서 주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도의 삶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주의 뜻을 갈망하고 분별하는 사람을 사용하시고 이 역사를 맡기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칭찬받았던 다윗처럼 주의 뜻을 분별하는 자이어야 합니다.
사람이 무슨 일을 할 때 잠시 열심을 내기는 쉬우나 꾸준히 계속하기란 어렵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일을 바꾸어서 하기는 쉬우나 한 가지 일에만 지속적으로 전념하여 충성하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자는 시종 일관 충성해야 하되 종의 자리에서 충성해야 하고 하나님 앞에서 충성해야 합니다.

오바댜의 신앙적 행위는 성도가 악한 세상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교훈하여 줍니다. 엘리야와 같이 겉으로 드러나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정의를 외치는 자가 있는가 하면 외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숨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는 자도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어떠한 방법을 취하든지 간에 오직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헌신의 자세를 지녀야 하겠습니다. 악한 세대에서 경건한 자로 남아 있는다는 것은 큰 고통과 핍박을 감내하여야 함을 의미합니다.
(딤후 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과 하나님께 대한 사랑으로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까지라도 버리는 순교적 신앙과 결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바댜와 같이 악한 세대에 경건한 자로 남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합이 가뭄이 들어 짐승들이 갈하여 죽게 되자 물 근원과 내를 찾아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아합이 동행한 자가 오바댜였습니다. 수많은 신하들이 있었겠지만 아합이 그 중에 오바댜만을 데리고 간 것은 그가 아합 왕에게 신임을 받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신하가 왕에게 신임을 받는 것은 그가 평소에 정직하고 성실하였다는 증거입니다. 오바댜는 하나님을 크게 경외하는 경건한 자로서 아합이 비록 악한 왕이었으나 충성을 다함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아합 왕의 궁내 대신이 된 것이 하나님께로서 말미암았으며 그 일에 충성을 다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충성되이 섬기는 것이라는 믿음에서 말미암았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바댜는 자신의 모든 삶 속에서 경건한 자로서의 선한 증거를 얻는 자였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하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 신앙에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사회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서의 선한 행실을 통하여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도된 종은 주인을 섬기되 하나님을 섬기듯이 성실함으로 할 것을 명하였습니다
(엡6:5-8).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
  성도의 하나님께 대한 신앙은 모든 삶과 모든 인간 관계 속에서 열매로 증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오바댜와 같이 하나님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까지도 인정받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서의 빛을 드러내야 하겠습니다.

아합이 다스리던 이스라엘의 악한 시대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서 남아 죽음을 무릅쓰고 하나님의 도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한 오바댜를 통하여 성도의 사명에 대해 교훈을 받았습니다. 성도는 하나님께로부터 택함 받아 이 세대의 경건한 자로서 남겨졌음을 기억하여 언제나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위하여 자신을 헌신하는 자세를 견지하여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에 닥친 오랜 가뭄이 계속되어 이제 먹을 물도 귀한 때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아합은 오바댜와 더불어 물의 근원을 찾아 나서 각기 다른 길로 행하였습니다.
물의 근원을 찾아나선 오바댜에게 엘리야 선지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엘리야를 만나자 '내 주 엘리야여' 라고 인사했습니다. 한 나라의 궁내 대신인 오바댜가 아합 왕에게 쫓겨 다니는 엘리야를 향해 내 주 엘리야라고 한 것은 그가 하나님의 선지자를 공경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오바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사자를 명예롭게 하고 대접하기를 즐겨하며 내세에 관심이 큰 자였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가 아합을 만남에 있어서 경건한 오바댜를 사용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 속에서 오바댜가 자신의 생명을 부지하기 위하여 아합의 궁내 대신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구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함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강성찬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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