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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

by 【고동엽】 2022. 10. 8.

잠18:21,약3:10


우리는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외모를 보고 평가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얼굴을 보니 사람이 괜찮아 보이네”라고 사람을 평가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얼굴만 보아 가지고서는 사람의 속을 알 수 없습니다. 또 우리는 그 사람의 가진 재산이나 학벌을 보고 평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업을 잘! 하는 것을 보니 괜찮은 사람인가 봐", "많이 배웠으니 뭔가 다를 거야” 등 등. 그러나 이것도 사람을 바르게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보고 그 사람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할 수 있겠습니까? 마음입니다.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인격과 성품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좋은 사람인지 좋지 않은 사람인지 그 사람의 마음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고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진실한 사람이고,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깨끗한 사람입니다.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너그러운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 獵? 사람은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그 사람의 마? 쉼≠活? 보고 그 사람을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인물이 잘났으면 뭐합니까? 아무리 재산이 많고 학벌이 좋으면 뭐합니까? 사람이 악독하고 더럽고 거짓되고 몰인정하고 양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인물과 재산과 학벌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분명히 나쁜 사람에 속합니다. 가진 것이 많아도 속이 비어 있는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말은 마음의 창문

말은 마음의 창문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말을 들어보고 그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 집의 창을 들여다보고 그 사람의 사는 형편을 대강 짐작할 수 있듯이,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의 속을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보고 그 사람의 인격과 생각과 사상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사람의 말 한마디는 커다란 영향력을 끼칩니다. 특히 믿는 사람들의 경우,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신앙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인지 믿음이 없는 사람인지, 구원을 받은 사람인지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인지, 은혜를 받은 사람인지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인지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보고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을 안지 한 이십 년이 되어 가는데도 도무지 그 사람이 믿음이 있다는 증거도 없고, 은혜 받은 표도!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본인은 믿음이 있다고 하고 은혜를 받았다고 말하지만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믿음이 전혀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겉모양 치장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특히 여자들의 경우 화장과 머리 손질에 시간을 들이고 옷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그래서 말없이 가만히 있으면 누구나 교양 있어 보이고 젊잖아 보이며 또 훌륭해 보입니다. 잠언 17:28절을 보면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기우고 그 입술을 닫히면 슬기로운 자로 여기우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말을 아끼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막상 말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그 사람의 속에 들어있는 것들이 다 나오기 시작합니다.

미련한 자라도 말을 많이 하지 않으면 지혜롭게 보입니다. 그러나 말을 많이 하다보면 당연히 미련한 것이 밖으로 다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렵다고 했습니다(잠 10:19). 말은 복을 가져오기도 하고, 화를 불러들이기도 합니다.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며, 사람을 기쁘게도 하고 슬프게도 합니다. 말은 사람을 즐겁게도 하고 화나게도 하며, 사람을 지혜롭게도 하고 미련하게도 합니다. 말은 사람을 칭찬 듣게도 하고 욕을 먹게도 하며, 사람을 성공하게도 하고 실패하게도 만듭니다. 말은 사람을 대접받게도 하고 천대받게도 하며, 사람을 강하게도 하고 약하게도 합니다. 말은 사람을 행복하게도 하고 불행하게도 합니다. 잠언 13:3절을 보면 “입을 지키는 자는 그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고 했습니다. 특히 말이라고 하는 것은 분위기를 좌우합니다. 그러므로 좋은 말은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고, 험한 말은 분위기를 급속히 냉각시켜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만듭니다.

혀는 배의 키와 같습니다(야 3:4).

아무리 큰 배라 할지라도 모든 배는 키에 의해 방향이 결정됩니다. 사람의 덩치가 크고 우람해도 세 치 밖에 안 되는 작은 혀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인생길이 달라집니다. 복 받는 길로 갈 수도 있고 저주받는 길로 갈 수도 있으며, 성공하는 길로 갈 수도 있고 실패하는 길로 갈 수도 있습니다. 또 행복한 길로 갈 수도 있고 불행한 길로 갈 수도 있으며, 사는 길로 갈 수도 있고 죽는 길로 갈 수도 있습니다. 혀는 불과 같습니다(야3:6). 작은 불이 어떻게 큰 산을 태우는지 보라고 했습니다. 불은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잘 사용하면 대단히 유익합니다. 그러나 잘못 사용하면 엄청난 피해를 가져옵니다. 혀와 불은 아주 비슷합니다. 시작은 작게 조용하게 시작하는데 나중에는 걷잡을 수없이 엄청난 결과를 가져옵니다. 우리는 얼마나 말을 쉽게 잘합니까? 말은 ! 밑천이 들지 않고 힘도 들지 않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사람들이 말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런데 말이라고 하는 것은 잘 번집니다. 불은 한번 붙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번집니다.

맨 먼저 말을 시작한 사람은 어떤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번지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이 번집니다. “누가 그러는데... 그렇다고 하들아...”하는 말이 시간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부풀려져서 나중에는 엉뚱한 말이 돌아다닙니다. 그러므로 처음에 말을 퍼트린 사람의 책임이 큽니다. 우리는 때때로 남에게서 들은 말이라고 하면서 말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들은 소리를 전한다 해도 내 입으로 말한 것이니 모두 내 말이 됩니다. ?! 뼈括? 그 말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책임을 지지 않으려면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사람들은 남에게 전하면서 “꼭 너만 알라”고 신신당부합니다. 그러나 절대로 비밀이 지켜지는 말은 천하에 없습니다. 말은 퍼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여튼 어떤 식으로 말을 하든지 말을 하는 그 순간은 마치 불을 지르는 순간과 같습니다. 불은 한번 붙으면 잡기가 매우 힘듭니다. 있는 대로 다 태우고 잿더미가 된 다음에야 비로소 불이 꺼집니다. 얼마나 큰 손실을 가져오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말은 꺼지는 법이 없습니다. 수백 년, 수천 년을 제멋대로 번져나갑니다. 그러므로 말의 위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야고보서 3:6절을 보면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 섟擁? 혀는 우리의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고 했습니다. 말을 더럽게 하면 자신의 입만 더러워지는 것이 아니라 온 몸을 다 더럽힙니다.

우리는 좋은 말을 골라서 해야 합니다. 덕을 세우는 말이나 긍정적인 말을 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잘된다” “성공한다” “복 받는다” 는 말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절망이 없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부정적인 말이나 절망적인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세워주는 말, 용기를 주는 말을 자주 해야 하겠습니다.

부부 사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말을 골라서 해야 합니다. 되도록 세워주는 말, 용기를 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남편의 기를 살리는 말이 있습니다. 38가지가 있는데 몇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1. 이 아이가 당신을 닮아 똑똑한가 봐요 2. 내가 시집 하나는 잘 왔지. 3. 당신이라면 할 수 있어요. 4. 역시 당신 밖에 없어요. 5. 당신이라면 할 수 있어요. 6. 당신 곁에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는 것을 아시지요. 7. 나는 당신 없이는 하루도 못 살아요. 8. 당신은 언제 봐도 멋있어요. 9. 세상에 당신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요 10. 나는 다시 태어나도 당신밖에 없어요.

반면 남자를 기죽이는 말도 있습니다. 57가지입니다. “당신이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것 있어요” “그럴 줄 알았어요” “당신 집 식구들은 왜 그 모양들이에요” “군대나 제대로 갔다 왔어요” “머리 벗겨지는 걸 보면 공짜는 대개 좋아하나 봐” “당신 잘릴 줄 알았어요” “애들이 당신보고 뭐라고 그러는 줄 알아요” “지지리도 복도 없지 어째 이런 남자를 만났을까” “애들이 뭘 보고 배우겠어요 제대로 해요” “에고 지애비 닮아 가지고 피는 못 속여” “평생 쪽박이나 차고 살 인생이에요”. “당신하고 사는 것이 정말 지겨워요” “당신은 구제 불능이에요” “창피해서 못 살겠어요”

좋은 말을 하고 사십시오. 죽으려고 했던 사람도 벌떡 일어납니다. 그러나 좋지 못한 말은 가슴에 비수를 찌르듯이 듣는 사람에게 상처를 줍니다. 사람을 분노케 하고 슬프게 하며, 절망하게 만듭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이 담긴 말을 해야 합니다. 믿음이 담긴 말, 성령께서 주시는 은혜로운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듣는 자마다 은혜가 됩니다. 복 받을 말을 하십시오. 말은 심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학교에 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학교생활을 하던 중 조그마한 일로 선생님과 불편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속한 학급과 학교에 대하여, 또 선생님에 대하여 험담을 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학생은 자기가 생각했던 것이 오해였고 잘못이었음을 깨닫게 되어서 담임선생님을 찾아가서 용서를 빌었습니다. “선생님, 용서해 주세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선생님은 “용서해 줄 터이니 그러면 내가 하라는 대로 할래?” 학생은 용서해 준다는 말에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이 베개 속의 오리털을 골목마다 뿌리고 돌아오너라“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 학생은 이유도 모른 채 베개 속의 오리털을 골목골목에 뿌리고 나서 선생님께 의기양양하게 돌아 왔습니다. “선생님! , 선생님 말씀대로 베개의 오리털을 다 뿌렸는데요. 이제는 되었나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수고했다 이제는 그 뿌린 오리털을 다시 주어 모아오너라“고 했습니다. 이 학생은 오리털을 다시 모으려 했지만 모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바람에 다 날아가고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속상해 하는 학생에게 선생님은 “오리털이 없지? 말도 여기저기 하고 다니는 것은 자유이지만 말한 것은 다시 모을 수 없는 것이란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말하는 것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교훈합니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잠언 10장 19절) “불량한 자는 악을 꾀하나니 그 입술에는 맹렬한 불같은 것이 있느니라”(잠 16:27) 사람이 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삶과 죽음이 좌우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용하는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능력 앞에 우리 자신을 복종시켜야 자신의 혀를 지배할 수 있습니다. ! 그래서 시편기자는 141편에서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혀로 아름다운 소식만 전합시다.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 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야고보서 3:10

틀린 용어를 쓰는 것보다 훨씬 나쁜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기준에 훨씬 못 미치는 말들을 입 밖에 낼 때입니다. 조잡하고 모독적이고 추잡하다고 생각되는 단어들을 사용할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확한 기준을 위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어떤 형태로든지 불손하게 혹은 불경스럽게 말할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고(출 20:7). 만일 우리가 죄 되는 것들에 대해서 농담을 하면 우리는 우리가 해서는 안 되는 방법으로 말을 하고 있는 것이고(엡 5:12). 우리가 추잡한 대화에 참여한다면 (5:4)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불명예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약 3:10)고 말했습니다. 그런 말은 위선입니다. 우리 혀를 다스리는 것도 그것이 "길들일 수 없는 악" (8절)이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기준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한 현명한 늙은 올빼미는 참나무 위에 앉아서 더 많이 볼수록 더 적게 말했고 더 적게 말할수록 더 많이 들었다네.

왜 우리는 그 현명한 늙은 새만도 못한가?“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거짓이 없나니-야고보서 3:17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는 연기자가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동안 한 사람이 막 뒤에서 대사를 말했는데 무대 뒤의 그 변사를 “말한 것을 행동에 옮기지 않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막 뒤의 사람은 오늘날 우리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경험하는 문제 하나를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 중 많은 이들은 신앙적인 듯이 말하는 데는 능숙하지만 그 말을 행동에 옮기지 않습니다. 이것은 위선입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을 때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 Ⅶ塚? 초래하기 때문에 많은 불신자들이 복음의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역할은 고대 그리스 배우들과 매우 다릅니다. 그들 중에는 연기하지 않는 변사가 있었고 말하지 않는 연기자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진실을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당신은 매일 한 장씩 복음을 쓴다네. 당신이 하는 행동으로, 당신이 하는 말로 믿음이 없든 진실이든, 당신이 쓴 것은 읽히리니

말해보라 당신의 복음이 무엇인지“

행복을 만드는 언어

① 이해하고 들어라 : 예수님께서는 삭개오가 뽕나무에 처량하게 올라가 있는 모습을 보고 "너는 돈만 알더니 결국 처량하게 되었구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또한 열두 해 동안 혈루병을 앓던 여인이 옷깃을 만졌을 때 "무슨 죄를 지었기에 그런 부정한 병에 걸렸느냐?"라고도 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절대로 이런 식으로 판단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 마음을 그들 편에서 이해하셨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창기와 세리,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고 병든 자들의 참된 위로자기 되었던 것입니다.

인생 속에 드러나는 모든 문제에는 반드시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도둑이 처음부터 태어나는 것이 절대 아니고 살아가는 인생과정에서 도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이 편이 되어 들어주는 마음 즉 이해하는 마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모든 상황에 민감합니다. 우리가 마음속으로 판단하는 생각을 가지면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금방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어려움을 말할 때 얼마나 힘들까? 라고 생각하면 그 생각을 상대방이 느끼게 됩니다. 자신을 이해해줄 때 상대방이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을 이해해줄 사람을 찾아갑니다. 자신의 고통을 이해해줄 사람, 자신의 문제를 이해해줄 사람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사람의 마음은 변화되기 시작한 것을 알아! 야 합니다.

듣는 말을 배워야 한다

① Door Opener를(마음문의 열쇠)하라: 말하는 사람은 처음에는 듣는 사람에 대해 경계심을 갖기 쉽고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에 말을 조심하고 마음에 있는 깊은 얘기는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뢰하고 속마음을 내어놓을 수 있도록 마음을 여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Door Opener' (마음의 열쇠)라고 합니다.

'Door Opener'는 상대가 말을 할 때 그를 자연스럽게 우호적으로 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뚫어보는 것은 상대방이 판단적, 공격적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 네~ 그렇겠군요. 알겠습니다" 하며 고개를 끄덕거리고 그 사람의 말에 간략하게 동조해주면 됩니다. 상대방의 말에 긍정적인 반응을 하는 사람이 'Door Opener'를 잘하는 사람이며 말하는 상대방에게 마음을 열고 편하게 말하도록 만들어 주고 에너지를 주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은 어디든 환영을 받습니다.

우리 사회는 듣는 말이 없는 사회입니다. 비판과 판단만 하고 자기 말만 합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사회는 살벌하기까지 하고 비방과 헐뜯기가 난무하게 됩니다. 그러나 동조만 해주어도 말하는 사람은 엄청난 에너지를 얻으며 자기 마음을 열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① 판단하며 듣는 것: 누구와 다투었다고 이야기하면 어떻게 해결하도록 도와줄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이 사람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따져 보는 것이 우리 현실입니다. 약한 사람을 도와주고 배려하는 교육을 받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맞는가를 따지는 교육만 받았기 때문입니다. 판단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과 단절됩니다. 그런 사람 앞에서는 누구나 입을 닫습니다. 세상에 판단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따라서 판단하려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로마서 14: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② 대화를 재촉하는 것: 어디에 가서 무슨 일을 좀 하려하면 그저 빨리 말하라고 재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특히 아쉬운 부탁을 해야 하는 처지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는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이야기를 들어주는 부모, 말하도록 하는 선생님 가운데에서 자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말을 못하게 하고 "말이 많다! 어른이 이야기하면 가만히 있어!" 하고 윽박지르는 가운데서 살아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 사회에는 대화가 단절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인간관계가 막히고 서로 불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럴 경우 적대감, 불쾌감만 생깁니다. 우리는 누구나 상대방이 차분히 말할 수 있도록 여유 있게 들어주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③ 속단하며 듣는 것

④ 자기 말만 하는 것 : 상대의 말을 잘라버리고 자기 말만 많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귀를 둘, 입을 하나로 만드신 것은 '듣는 말'을 '하는 말'보다 2배나 더 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는 말이 듣는 말보다 많으면 절대 잘하는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보다 많이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혀의 창조적 능력을 사용하라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마음속에서 잉태된 다음, 혀로 만들어져서, 입을 통해 나가게 되면 그 말씀은 내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발휘하는 영적인 힘이 됩니다. 말은 이 우주 안에서 가장 힘이 강력한 것입니다. 입으로 내는 말은 나를 성공케 하든지 아니면 나를 속박할 것입니다. 영의 세계는 하나님의 말씀의 지배를 받습니다. 자연 세계는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것에 의해 지배를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입으로 말해진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적인 능력입니다. 하나님께 문제를 기도하지 말고 구하고 바라는 응답을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기도는 나를 위하여, 즉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현장으로 모시기 위해 믿음 충만한 말을 사용할 나의 법적인 권리입니다. 믿음이 나의 말속에 들어 있도록 ?! 求? 것은 내 안에 거하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기도가 역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기도가 없이도 역사합니다.

기도는 믿음을 나타내는 수단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시켜서 우리의 믿음을 나타내기만 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삶에 역사 하게 될 것입니다.

혀는 불이요, 불의 세계입니다. 혀는 온 몸을 더럽힐 수 있으며, 생의 바퀴 곧 자연의 순환을 불사릅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 몸 안에 자연 치유의 능력이 있는데 부정적인 말은 하나님의 치유를 막을 수도 있습니다.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고 죽이는 독이 가득한 쉬지 아니하는 악입니다. 그렇지만 옳게 사용하면 그것은 나의 인생에 성공을 가져다 줄 것이고 영과 혼과 몸에 생명과 건강을 심을 것입니다. 아무도 혀를 길들일 수 없다고 했지만, 성령께서는 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안에서 밖으로 사람에게 역사 하십니다. 나는 나의 입의 말로 나의 몸에서 병과 아픔을 몰아낼 수 있습니다. 그 질병이 내 몸에 존재할 권리를 부정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몸은 말에 순종합니다. 몸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행동하도록 훈련되! 어야 하고 몸은 마음의 명령에 순종합니다. 창조적 능력은 하나님의 입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의 입에도 있습니다. 삶의 선한 것은 나의 마음에 무엇을 쌓든지 거기서 나오며, 나의 영을 프로그램화시킨 그 정보가 나를 위해 생산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종류를 따라 생산합니다.

혀의 능력

혀는 나의 인생을 망하게 하거나 성공시킬 능력이 있습니다. 같은 입에서 복이 나오고 저주가 나옵니다.(약 3:11) 사람이 자기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히 거하게 하여 그것을 믿음으로 말하면 그는 영의 세계에서 역사하는 영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영의 말들이 자연 세계를 지배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영의 말들이 이미 사람들 안에 존재하고 있는 믿음에 불을 붙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을 폭발시킵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나온 말들에 의해서 움직입니다. 믿음으로 가득 찬 말은 잠자고 있거나 힘이 없는 다른 사람들의 믿음에 활력을 불어넣어서 믿음을 발휘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는 것들을 담대하게 선포할 때는 창조적 능력이 나오는데, 또한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믿음을 발휘하게 합니다. 영의 말, 영의 생명으로 가득 찬! 말은 사람에게서 나온 말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온 말입니다. 혀는 나를 죽일 수도 있고, 내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을 흘러나오게 할 수도 있습니다.

마음속에서 잉태되고, 혀로 만들어져서, 입을 통하여 나온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적 능력이 있습니다. 입으로 말해진 말씀은 내가 그것을 계속 고백할 때 나에게 역사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 삶에 도움을 줍니다. 그의 말씀(예수)은 우리의 지혜, 의로움, 거룩함, 구속함입니다. 내가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기 시작할 때는 거기서 자유함이 나오게 됩니다. 거기서 건강과 치유가 나온다고 하나님의 말씀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입의 말로 하나님의 능력을 나오게 하는 수준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말의 사전적인 의미는 '사람이 생각이나 감정을 나타내는데 쓰는 음성 또는 그것을 문자로 나타낸 것'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말은 일반적으로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지칭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말이란 하는 말과 듣는 말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말은 하기도 하고 듣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듣는 말이 없이 하는 말만 많은 사람은 말쟁이가 되고 맙니다.

그렇다면 과연 말을 잘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발표를 잘하는 사람, 거침없이 말을 뿜어내는 사람이겠습니까? 그런 사람도 말을 잘하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말을 잘하는 사람은 말을 많이 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말은 많이 하지 않고 항상 상대의 말을 듣는데 능숙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말을 잘하려면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라고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하는 말보다 듣는 말이 더 중요하고 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말로 말을 잘하는 것은 '하는 말'?! ? 잘 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말'을 잘 하는 것입니다.

우리 말 듣기를 소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의 말을 듣고 싶어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를 나누시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말을 간절한 마음으로 듣기를 소원하시고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말은 기도로 표현됩니다. 하나님은 크고 작은 일에 우리의 기도를 듣기를 원하십니다.


소리 없는 말을 들으시는 예수님

우리 주님은 우리 인생의 작은 소리도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군중 속에서도 들려오는 한 사람의 고통의 소리! 신음 소리! 무언의 소리를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세상은 나의 신음 소리를 듣지 않습니다. 나의 고통의 소리, 나의 고독의 소리를 듣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우리의 무언의 절규를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예수님처럼 세상의 신음 소리를 듣는 사람입니다. 고통의 소리, 고독의 소리를 듣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많은 말을 쏟아내는 말쟁이가 아니라 소리 없는 신음 소리를 들음으로써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들이어야 하는 사명을 소명받고 있습니다.

듣는 말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예수님이 삭개오의 소리 없는 말을 들어주실 때 변화가 시작되었듯이 진정한 변화는 듣는 말에 의해 시작됩니다. 사람은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빼앗기고 자신이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의 말을 잘 듣게 되는 것입니다.

화와 잔소리를 잠재우는 비결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이나 언어 습관이 강한 곳에서 살아 온 사람, 그리고 큰 소리를 내는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습관적으로 언어가 강하고 드셉니다. 이런 사람은 같이 말대꾸하고 따지면 불이 나기 쉽습니다. 침묵해도 화가 잘 잠들지 않습니다. 침묵을 거절의 의미로 해석하기 때문에 소리가 커지기 십상입니다. 이런 사람의 화를 잠재우는 비결이 있는데 그것은 그런 사람의 하는 말을 잘 들어주고 그가 하는 대로 잘 받아주는 것입니다. "네. 그래요. 죄송해요. 알겠어요."! 진심으로 이런 태도로 나오면 서서히 마음에 있는 불이 사그러지기 시작합니다. 또한 잔소리가 많은 사람도 그 잔소리를 들어 줄 때 그 버릇을 고치게 됩니다. 잔소리가 더 많아지는 이유는 잘 들어주지 않고 외면하고 침묵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기만 하면 잔소리도 작아지고 목소리도 작아집니다. 이는 듣는 말에는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말을 합시다. 자기의 경험이나 자기의 지식으로 나오는 말이 아니라 자기의 심령 깊은 곳에서 솟아 나오는 믿음의 말을 합시다. 믿음의 말은 하나님을 움직입니다. 믿음의 말은 모든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안된다', '못하겠다', '죽겠다'는 말을 절대로 하지 맙시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하나님이 도와주시니 잘 된다', '하나님이 응답하시니 축복 받는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살겠다'..... 등등 믿음의 말만 합시다! .


자녀를 보면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형통하겠다고 축복의 말을 아끼지 맙시다. 욕먹고 자란 자식은 그 말처럼 성장합니다. 농사를 지을 때 오염 물질을 자꾸 뿌려주면 그 식물이 오염될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늘 깨끗한 물과 깨끗한 공기를 먹고 자란 식물은 건강하고 깨끗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 '죽일 놈'이라고 욕먹고 자란 자식이 안 죽는 것이 신기한 일입니다.

출처/서정호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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