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δεδομένα 18,185편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알라

by 【고동엽】 2022. 10. 8.

시16:1-5

존귀한 자로 창조된 자

어디를 가도 사람들이 피하고 싫어하는 사람을 천덕꾸러기라고 합니다. 사람 중에는 깔보이고 무시당하며 소홀히 대접받는 비천한 사람이 있는 반면에 존경을 받고 사랑을 받으며 모든 사람에게 인기가 있는 귀인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은연중에 귀인대접을 받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옷도 맵시 있게 입으려 하고 차도 고급차를 타려고 하며 신분상승을 위하여 수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겉으로 화려하게 자신을 치장하고 굵직한 자리를 여럿 꿰차고 명함에 빽빽하게 적어 가지고 다니며 과시하여 그 앞에서 굽신거리게 할 수는 있어도 진심으로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 그리고 칭찬을 들으며 귀히 여김을 받기는 쉽지 않습니다. 돈은 구겨지고 더럽혀져도 돈으로서의 가치를 그대로 인정받는 것처럼 우리가 실수하고 넘어져도 하나님은 내 가치를 ! 변함없이 인정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귀한 사람입니다. 비록 죄로 인하여 지금 우리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존귀한 존재로 지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어떤 이는 다른 사람에 비해 얼굴이 덜 예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건강이 좋지 않을 수도 있으며 어떤 사람은 나와 성격이 달라서 내 맘에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들은 비록 서로 다르기도 하고, 또 못나 보이는 부분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두고 보시기에도 아까울 정도로 귀하게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존귀한 존재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때로는 내가 나를 죄악의 진흙탕에 몰아넣을 때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당신의 사랑하는 독생자를 주셔서 우리의 모든 죄악을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하게 씻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연약하여 인생길에서 넘어지고 쓰러져도 다시금 일으켜 세워주시고, 성령으로 강건케 해 주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존귀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구약의 본문 시편 16: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시편 16편은 다윗이 지은 시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았고, 또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이 얼마나 존귀한 자인지를 이렇게 고백한 것입니다. 다윗은 왕으로 세움을 받은 자신만 존귀한 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 ?! 醍? 성도가 다 하나님 앞에 존귀한 자들입니다. 목사나 장로님, 권사님들만 존귀한 자가 아닙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 모두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하나님께 존귀한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존귀한 성도는 어떻게 사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께 존귀히 여김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사람입니다. 본문을 보면 1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지금 하나님?! ? 자신을 살려 달라고 탄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 나를 살려 주십시오. 내가 지금 죽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명이 위험합니다. 도와주십시오. 내가 주님께 피난 갑니다' 그런 뜻입니다.

여러분, 피난은 언제 가는 것입니까? 나라가 평안하고 부강할 때가 아니라, 전쟁이 나고 난리가 나서 너무너무 살기가 힘들 때 피난을 갑니다. 평안할 때는 피난을 가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사람께 존귀함을 받습니까? 어려움을 당할수록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고 더욱 하나님을 잘 믿는 성도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아무리 초라하다 하더라도 하나님 품으로 피난 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받아주십니다. 받아주실 뿐만 아니라 가장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입혀주십니다. 왜 그렇게 해 주십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아들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우리는 존귀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아무에게나 그렇게 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그렇게 존귀함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 그렇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 존귀히 여김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행복을 찾습니다. 2절에서 다윗은 고백합니다.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존귀히 여김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하나님 안에 행복의 열쇠가 있고, 하나님의 안에 행복의 자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기준으로 삼고, 세상에서만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려는 사람은 존귀한 성도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늘을 보며 살아가야 할 성도들인데, 하늘의 유업과 축복은 보지 못하고 세상적인 것에만 연연한다면 어찌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존귀한 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존귀한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가 갈망하는 행복을 반드시 주실 것입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께 존귀히 여김을 받는 사람은 다른 성도를 존귀히 여깁니다. 다윗은 3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다윗은 자신만이 존귀한 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왕인 자신은 존귀한 자이고, ! 권력이 없는 평민은 존귀하지 않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모든 성도가 다 존귀하다고 말합니다. 모든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존귀하기 때문에 자신도 그 성도들을 존귀히 여기고, 그 성도들을 바라보면서 마음속에 기쁨과 즐거움을 갖게 됩니다.

왜 세상 속에 있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예수님은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시고 자신과 동일시 하셨겠습니까? 거기에는 최소한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에서는 버림받을 만큼 작게 취급되는 그 사람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존귀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사람을 차별합니다. 권력의 높낮이에 따라서 차별하기도 하고, 돈을 얼마나 가졌느냐에 따라서 차별하기도 합니다. 남자냐 여자냐 하는! 것으로 차별하기도 하고, 나이를 얼마나 먹었느냐 하는 것으로 차별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신앙인들조차도 어떤 직분을 가졌느냐 하는 것으로 사람을 차별하기도 합니다. 목사를 바라볼 때에 얼마나 큰 교회에서 목회를 하느냐 하는 것으로 목사를 차별하기도 합니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온통 차별이 공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똑같이 존귀한 자로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를 따라서, 또 하나님께서 바라보시는 그 눈으로 사람을 바라보시기 때문에 세상에서는 작아 보이는 그 사람까지도 사랑하시고, 그들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계십니다.

또 하나는 세상의 모든 사람이 똑같이 구원을 받아야 할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것은 특정한 일부의 사람만을 구원하시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셨습니다. 죄를 지고 사?! 좇? 고통에서 헤매이는 모든 사람이 예수님으로 십자가 사건으로 구원함을 받아야 할 대상입니다. 예수님은 부자나 권력을 가진 사람만을 위해서 십자가 지신 것이 아닙니다. 그 십자가를 지심으로 구원하신 사람들이기에 주님은 작은 자 하나까지도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들과 자신이 하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랑하신 형제들이라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구원하실 만큼 존귀한 사람들이라면,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들을 그렇게도 존귀하게 생각한 사람들이라면, 우리가 무슨 권리로 그들의 존귀함을 빼앗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아무리 못난 내 남편, 내 아내라 하더라도 예수님께서 존귀하게 여겨 생명 주셨고, 구원하셨고, 존귀하기 때문에 나와 함께 살게 하셨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함께 신앙생활 하는 분들 가운데서 아무리 초라해 보여도 그는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시면서 구원하신 귀한 생명입니다. 그들과 함께 신앙생활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해 해야 합니다.

네 번째로 하나님께 존귀히 여김을 받는 사람은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다윗은 4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저희가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다윗은 어떤 경우에도 우상에게 제물을 드리거나 우상을 섬기는 일을 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주위에 온통 우상숭배의 풍조가 만연해 있다 하더라도 자신만은 독야청청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는 신앙의 자리에 굳게 서 있겠노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는 어떤 경우에도 "나는 쓸 모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난날 내 삶의 모습이 아무리 초라하고 또 죄악 가운데서 헤매며 사는 삶이었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우리의 존귀함이 반감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존귀하게 여기시는데, 우리 스스로 우리 자신을 존귀하지 않다고 깎아내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정말 존귀한 사람들입니다. '나는 존귀한 사람'이라는 것을 늘 가슴에 품고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당당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만 존귀한 것이 아니라 내 주위에 있는 모든 분들이 다 나처럼 존귀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 남편, 내 아내도, 또 함께 신앙생활 하는 모든 교우들도 똑같이 존귀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존귀한 사람으로 만드셨고, 존귀한 사람으로 인 ! 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을 존귀하신 예수님을 대하듯이 존귀하게 여기며 대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더욱 존귀함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두 걸음을 보신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우리를 이렇게 보십니다. 우리가 쓰러 넘어지는 순간이나 실수하는 순간은 보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두 걸음을 보시고 우리가 잘한 일을 보시고 최고의 순간을 기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주 실수하기도 하고 해서는 안 될 행동도 합니다. 이때는 하나님과 우리가 상처를 준 사람에게 용서를 구해야 하지만, 언제까지 자책하며 죄책감 속에 빠져 있어서는 곤란합니다. 우리는 항상 앞으로 나아가며 자신감 있게 고개를 들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완성되어 가는 작품’ 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한 일 두 가지를 보십니다.

하나님의 방식으로 자신을 보려면, 어떤 실수를 하든지 자신의 잠재적 가치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내재 가치를 판단할 때는 자신이 얼마나 많은 성과를 거두었는지, 남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 내가 얼마나 인기가 있고 성공했는지를 기준으로 삼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우리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근거하여 자신의 가치를 평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창조물인 우리는 다른 누구도 줄 수 없는 것을 세상에 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이고 기뻐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삶을 제대로 누리고 싶다면 현재 자신의 모습이 맘에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자신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나머지 온갖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들은 당연히 행복을 모르며 마음에 불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모릅니다.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남도 사랑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남을 사랑하기 위한 출발점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대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대로 자신을 사랑하라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흠이 있습니다. 진정한 자유를 얻으려면 많은 ‘흠’ 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항상 자신을 비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너무 느려, 나쁜 이 습관을 왜 버리지 못하는지, 나는 정말! 한심해. 나는 매력이 없어.” 자신에게 심하게 굴지 마십시오! 물론 누구나 자기 인생에,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기 마련입니다. 고쳐야 할 나쁜 습관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명심할 것은 하나님은 아직 우리를 완성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아직 우리를 바꾸시는 과정에 있습니다.

포기하고 싶은 유혹이 들 때마다 우리의 미래가 점점 빗나간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되새기십시오. 갈 길이 너무 많아 남아서 포기하고 싶을 때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왔는지 돌아보십시오.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조차 과거보다 얼마나 발전했는지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하나님이 보시는 우리의 가치는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잘못을 저지르는 순간 하나님이 커다란 붓을 꺼내 생명책에서 우리의 이름을 지우시고 “저 놈은 어쩔 수 없군. 내 일에 쓰기엔 적합하지 않은 놈이야.” 라고 말씀하실까요? 천만에요!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이시며 두 번째 기회를 주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이 실망을 시켜드려도 하나님이 보시는 우리의 가치는 항상 처음과 똑같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빳빳한 새 지폐를 주면 받겠습니까? 싫다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내가 그 지폐를 구겨서 아주 지저분하게 만들었다고 합시다. 이런 지폐라도 받을 생각이 있습니까? 당연합니다.  내가 그 지폐를 주차장으로 가져가 땅바닥에 던지고 그림을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밟았어도 받겠습니까? 얼핏 봐서는 이게 돈인지 분간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받을 생각이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왜일까요? 아무리 지저분하게 만들었어도 여전히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폐는 여전히 그 가치가 있습니다. 아무리 낡아도 아무리 모양이 흉해졌어도 돈의 내재 가치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이 돈처럼 보십니다. 우리는 누구나 난관에 부딪히고 시련을 겪습니다. 때로는 구겨지고 더러워진 지폐 같은 심정?! ?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폐가 여전히 가치 있듯이, 우리도 여전히 소중한 존재입니다.

우주의 창조주가 우리에게 가치를 주셨으니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서 그것을 앗아갈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나 조직이나 환경 때문에 우리의 가치를 평가절하하지 마십시오. 누군가에게 학대받고 이용당한 쓰디쓴 아픔이 있는가요? 좋은 친구가 아무런 이유 없이 등을 돌리는 바람에 외톨이가 된 기분인가요? 어렸을 적에 학대당한 후 죄책감과 수치 속에 살아왔는가요? 과거의 일어난 모든 나쁜 일이 자신의 잘못 때문인 것 같은가요? 그래서 스스로 상심과 고통, 죄책감, 자기비하 속에 살아 마땅한 사람이라 여기는가요? 모두 헛되고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치를 잘 아신다.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을 항상 되새기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으며 우리는 하나님의 걸작품임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의 가치가 떨어졌다고 속이는 말에 마음의 틈을 조금도 내주지 마십시오. 희망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기가치를 회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윗은“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해 두시고 새 노래를 내 입에 두셨도다.”라고 기록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새로운 희망의 노래를 두고자 하십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의 무너진 꿈을 아름다운 꿈으로 바꿔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치와 잠재력을 아십니다. 우리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다 알지 못하지만 한님이 우리 삶을 다스리시고 위대한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계시니 고개를 높이 드십시오. 우리가 원하는 그대로 인생이 펼쳐지지 않더라도 성경은 하나님의 방법이 우리의 방법보다 훨씬 더 좋고 뛰어나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다른 모든 사람이 우리를 거부해도 하나님이 우리 앞에서 그 전능하신 팔을 넓게 펴고 계심을 명심하십시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영접하시고 우리의 가치를 인정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항상 우리의 두 걸음이 보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중한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았든지, 얼마나 많은 실망을 경험했든지,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의 가치는 항상 처음과 똑같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언제나 우리는 눈에 !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시니 스스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이사야43:4에는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인생 품질을 결정하는 하나님의 나에 대한 평가 선언, 가치선언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견해를 가지고 나를 보든지, 내가 나를 어떻게 보든지 하나님께서는 나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보십니다. 이제 우리는 가치 있는 존재로 살아야 합니다. 가치 있?! ? 존재로 산다는 것은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신앙을 가지고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존재입니다.

출처/서정호목사 설교 중에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