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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삶을 누리는 비결 (엡 3:14-21)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의 아버지이십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아들딸들인 줄 믿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부요하시며,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오, 모든 것의 주인이신 줄 믿습니다. 부자 집 아들은 가진 것이 없어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걱정이 없는 줄 믿습니다. 부자이신 아버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풍성함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분명한 것은 풍성한 삶이 보장 된 줄 믿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풍성한 삶을 누리는 비결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 속사람이 강건해야 풍성해 집니다.
엡3:15,1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15)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의 풍성한 삶을 사는 비결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비결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속사람이 강건한 것”입니다. 현대는 겉 사람! 육체를 강조하는 시대입니다. 외모를 아름답게 치장하는 여러 가지 장신구나 화장품의 종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저마다 자기 외모에 울고 웃습니다. 그러나 다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요즘 “내 이름은 김삼순입니다.”가 유행인데 인기 드라마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삼순이란 이름을 가지신 분이 두 분인데 드라마 중에 나오는 삼순이 같이 당당한 그런 사람도 많습니다. 그 드라마가 인기가 있는 것은 얼 짱, 몸 짱은 극소수인데 대부분의 많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을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삼순이가 대변해 주기 때문에 대리 만족으로 인기가 급증하는 것 같습니다. 삼순이가 성형지상주의를 한방에 날려 보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외모에 얽매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이고, 나는 나로서 특별하고 개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외모를 가꾸려고 하는 것은 죄도 아니고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건강도 중요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뭐니 뭐니 해도 속사람이 강건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 그러므로 어차피 쇠하여져 가는 겉 사람! 후패해 가는 겉 사람만 위하지 말고, 속사람을 위해서 더 많은 관심을 갖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속사람이 새롭고 건강하다면! 영육이 동시에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일본의 ‘하루야마 시게로’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글을 쓰는 작가인데, 건강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30년 동안 책을 쓰면서 건강의 6가지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사람이 건강하려면 이 여섯 가지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첫째는 피곤하지 않게 하라! 둘째는 적절한 잠을 자라! 셋째는 식욕을 절제하라! 넷째는 화를 내지 말라! 다섯째는 두뇌를 계속적으로 사용하라! 여섯째는 적당한 운동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후에 이 사람은 “뇌내혁명((腦內革命)“이라는 책을 쓰면서 정말 인간에게서 필요한 것 여섯 가지에 한 가지를 더 첨가했는데, 그것은 ‘마음의 평안’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마음의 평화가 건강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55%로 보았습니다. 다른 모든 것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평화”라는 말입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사람의 겉모습 보다는 속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람의 몸은 정신에 의해 지배를 받고 정신은 영혼에 의해 지배를 받게 되어있습니다. 맥아더 장군은 그런 말을 했습니다. “청년이란 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에 의해 결정된다. 붉은 뺨이나 입술이 아니라 굳센 의지, 정신, 상상, 감정, 생명력에 달렸다. 청년은 용기로 비겁을 이기며 모험으로 앞일을 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이 부요하지 못하다면 풍성한 삶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을 향해서 기도하기를,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라고 기도했습니다. 부디 저와 여러분들의 영혼과 속사람이 강건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을 주장하시면 풍성해 집니다.
엡3:1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가 풍성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마음을 완전히 지배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내 안에 계신다는 말씀은 두 가지로 해석 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손님으로 계신다는 뜻이며, 둘째는 주인으로 계신다는 의미인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주님의 내주하심이 이 두 가지 중에 하나입니다. 어떤 분은 주님을 영접하고서도 주님을 손님처럼 대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고, 자기 뜻대로 모든 것을 주장합니다. 내가 주인이고 주님은 손님입니다. 또 어떤 이는 주님을 모시되 주인으로 모시고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님이 주인이 되어 주님의 뜻대로 결정하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느 쪽입니까?
주님은 우리 안에 오실 때 손님으로 오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분은 내 삶의 모든 영역, 내 생각의 모든 영역들을 온전히 지배하는! 그런 주인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나의 삶을 누가 주장하시며, 누가 주인이신가에 따라서 삶이 달라집니다. 질이 달라집니다. 내가 주인이 되고 내가 주장할 때는 모든 것이 불안하고 불확실하고 실패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나의 주인이 되시면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심령의 손님이 아니라 주인이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이 내 마음에 주인으로 오신다면, 내가 그분을 향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주여! 뜻대로 하시옵소서.” 내가 가지고 주물렀던 모든 열쇠 꾸러미를 주님께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집 열쇠도, 우리 광 열쇠도, 나의 현재도, 나의 미래도, 나의 생명도, 나의 염려 근심도 다 주님께 맡기고, 주님께서 완전히 지배하시라고 맡기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렇게 하십니까? 풍성한 삶, 충만한 삶이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주인이 되시는 것을 말합니다. 풍성한 삶을 원하십니까? 충만한 삶을 소원하십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시도록, 주님이 나의 주인이 되시도록 맡기시고 복종하시기 바랍니다.
3. 주님을 사랑하면 풍성한 삶을 살게 됩니다.
엡3:18,19절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18)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19)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미워도 예뻐 보이고, 잘 못 해도 잘하는 것만 같고, 무슨 말을 해도 사랑스럽고 예쁩니다. 장소가 문제가 아니면 먹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함께만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과 사랑에 빠지면 황홀합니다. 부요해 집니다. 부족함이 없습니다.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주님의 놀라운 사랑을 받고 있음을 알면 풍성해 집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권하기를 “그리스도의 넘치는 사랑을 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면 마음에 풍성함이 옵니다. 평안이 옵니다. 염려 근심이 사라집니다. 달려가도 피곤치 않습니다.
사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우리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주님의 죽으심은 온 인류의 죄악을 인함이니 얼마나 넓은 사랑입니까? 요3:16절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사랑하셨다고 했습니다. 유대인의 하나님만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니 얼마나 넓으신 사랑입니까? 모든 종족, 모든 인종과 문화와 사상을 다 뛰어 넘는 넓은 주님의 사랑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사랑은 영원한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하셨으니 얼마나 주님의 사랑이 깁니까?(요13:1) 그리고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지옥형벌을 받아 마땅한데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주님께서 지옥까지 낮아지셨습니다. 아무리 흉악한 죄를 진 사람이라도 우리 주님을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습니까? 저 죄악의 깊은 심연, 지옥의 저주를 받아 마땅한 나를 위해서 음부까지 내려가셔서 나를 끌어올리신, 그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 지옥 밑바닥에서 나를 끌어올려 저 천성, 주님의 보좌에까지 나를 올려놓으신 주님의 높은 사랑을 깨달아 아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이 같은 사랑을 깨닫게 될 때에 무엇이 걱정이며, 염려이며, 불안하며 아쉬울 것이 있겠습니까? 그 사랑을 깨닫는다면 그 분에게 나의 삶을 맡겨드리고, 그 분을 나의 주인으로 섬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완전히 맡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삶이 풍성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충만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3. 그러면 얼마나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엡3:18,19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18)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19)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우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냥 충만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충만함으로 충만케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한 마디로 말씀드리면 주님의 것이 다 내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누가복음 15장에서 아버지는 탕자가 돌아 왔다가 잔치를 하십니다. 그러나 이런 아버지가 맏아들은 못 마땅합니다. 그래서 불평을 합니다. “지금까지 아버지를 섬겨 일하였거늘 염소 새끼 하나라도 주셨습니까?“ 탕자의 아버지가 불평을 하는 그의 큰 아들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내 것이 다 네 것이 아니냐? 그러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노라”하셨습니다.(눅15:31,32)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내 부요가, 내 평안이, 내 은총이, 내 능력이, 내 사랑이 다 네 것이다!” 주님은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우리를 채우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2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것, 아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넘치도록 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모쪼록 속사람이 강건하시고, 그리스도로 충만하시며,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심으로 풍성한 삶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극동방송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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