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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되지 않은 자의 운명 (마25:1-13)

by 【고동엽】 2022.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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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되지 않은 자의 운명   (마25:1-13)


성서는 우리가 이해하기에 그렇게 쉬운 책이 아닙니다. 성서가 어려운 책이라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까닭도 있지만 성서에 배경이 되어 있는 문화와 전통이 우리의 것들과는 너무 다른 유대 문화와 전통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예수님의 비유인데, 이 비유 내용 역시 우리의 결혼 의식과는 너무 다른 그 당시 유대 전통의 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비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시대 결혼 풍습을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 시대 유대의 결혼 의식에서는 신부가 열명의 들러리를 세우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이 들러리 역할은 대개 신부의 절친한 친구들이 맡게 됩니다. 신랑이 신부를 데리러 신부집에 오면 이 열 처녀들은 결혼식이 거행되는 신랑의 집 혹은 신랑 부모의 집까지 신부를 동반합니다. 이런 일들은 주로 밤에 행해졌습니다. 그 때 처녀들은 구리 그릇이 달린 장대 횃불을 들고 신부 앞에서 춤을 춥니다. 춤을 추는 동안에 횃불이 계속 타오르게 하기 위해 충분한 기름을 준비해야 합니다. 본문의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이러한 준비를 전혀 하지 않은 채 신부집에 가서 신랑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 시대 관습에 의하면 신랑이 오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습니다. 그 시간이 초저녁이 될 수도 있고, 한 밤중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신랑이 오는 시간이 지체되는 것은 결혼 지참금 때문입니다. 당시 결혼할 신랑은 신부집에 지불해야 할 지참금이 있습니다. 신랑이 신부집에 건네주는 지참금이 지불되고 약정서에 서명하기 전까지는 신랑은 신부집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본문에 신랑의 도착 시간이 늦어지게 되자 신랑을 기다리던 신부 들러리들은 졸음을 참지 못하여 결국 잠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깊은 밤중에 갑작스럽게 신랑과 그의 일행들이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며 신부집으로 다가왔습니다. 집안에 있던 처녀들은 재빨리 일어나 얼굴을 다듬고, 그들의 등을 챙겨 불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다섯 처녀들은 충분한 기름이 없이는 결혼식 행렬이 시작되기도 전에 횃불이 완전히 꺼져 버릴 것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허둥지둥 상인에게 달려가 필요한 기름을 샀으나, 그러는 동안 모든 사람들은 신랑집에 도착하여 잔치에 참여했습니다. 결혼식 행사가 거행되는 동안 신랑집 문을 닫아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도 당시의 관례였습니다. 그러한 관례로 다섯 처녀들도 결혼식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시고, 덧붙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신랑이 오는 시간은 희망, 기쁨,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시간입니다. 그 시간에 참여하기 위해 깨어 있으라고 말씀합니다. 이 비유는 오고 있는 하나님 나라와 관련된 비유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슬픔, 좌절, 분열, 한숨이 아닙니다. 오고 있는 하나님 나라는 의·평화·기쁨입니다. (롬 14:17)

그런데 이 하나님 나라를 맞이하는 데는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그 준비는 깨어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깨어 있다는 것은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의미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은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선행과 같은 공적이 필요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 준비라는 것은 그 시간을 맞이할 수 있는 내적 특성을 의미합니다.

이제 불과 몇 시간 후면 대학 입학 자격 수능시험이 있습니다. 이 시간을 위해 거의 90만에 가까운 고등학교 졸업 예정자, 또는 졸업한 학생들이 준비를 해오고 있습니다. 이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실력을 쌓는 길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고 충분한 시간을 두고 성실한 준비를 한 학생이라야 그 시간에 임해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공적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주어진 시간에 성실한 준비만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준비가 필요하다'는 말도 그러한 의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 나라와는 다르기 때문에 뇌물이나, 공적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오직 거기에 합당한 준비를 한 사람만이 그 나라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느 순간엔가 맞이할 죽음에도 준비가 필요합니다. 평생 자신의 무의식 세계를 도외시하고 상호의존적인 삶에만 치우쳐 살아가던 사람은 자신의 죽음 앞에서 매우 두려움과 공포에 떨게 됩니다. 그 이유는 무시해 버리고, 소외시켰던 무의식이 무서운 괴물로 그 앞에 나타나 그를 삼키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평상시 자신의 무의식 세계를 무시하지 않고, 자신의 무의식에 귀를 기우려 성실하게 그 욕구에 응답해온 사람은 죽음의 시간을 보다 여유 있고 평화롭게 맞이하게 됩니다.
불시에 다가오는 죽음을 평화롭게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은 평상시 준비를 해 온 사람이라야 그렇게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그 사람의 품성입니다. 그 품성이 죽음을 평화스럽게 맞이할 수 있는 등잔의 기름과 같은 것입니다. 그 품성(character)이 천당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 품성이 낙원으로 들어가는 길과 같은 것입니다.

러시아의 문호 또스토엪스키는 그가 스물 여덟 살 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영하 50℃나 되는 추운 겨울날, 그는 형장으로 끌려갔습니다. 형장에는 기둥이 세워져 있었고 한 기둥에 세 사람씩 묶었는데 그는 세 번째 기둥의 가운데에 묶였습니다.

사형 집행 예정 시간을 생각하면서 시계를 보니 자신이 이 땅 위에 살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이 5분이 남아 있었습니다. 28년간을 살아왔지만 이렇게 단 5분이 금쪽 같이 생각되어지기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는 이제 5분밖에 남지 않은 생명을 어디에다 쓸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형장에 같이 끌려온 아는 사람에게 마지막 인사를 한마디씩 하는데 2분이 걸리고 오늘까지 살아온 생활과 생각을 정리해 보는데 2분을 쓰기로 하였습니다. 남은 1분은 오늘까지 발을 붙이고 살던 땅과 눈으로 볼 수 있는 자연을 마지막 한 번 둘러보는데 쓰기로 하였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눈물이 고인 눈으로 옆에 묶여 있는 두 사람에게 최후의 키스를 하고, 남은 가족을 잠깐 생각하고 나니 벌써 2분이 지나버렸습니다. 이제 자신에 대하여 생각하는데 문득 3분 후에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생각이 나면서 눈앞이 캄캄해 지고 아찔해졌습니다.

28년간이라는 세월을 한순간 한순간 아껴 쓰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었습니다. 이제 다시 한 번 살 수만 있다면 순간마다 값있게 쓰련만 하는 생각이 절실하였지만 돌이킬 수 없는 뉘우침 뿐이었습니다.

그러자 탄환을 총에 장탄하는 소리가 철커덕 났고, 그와 동시에 견딜 수 없는 죽음의 공포가 밀려왔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장내가 떠들썩 하더니 한 병사가 흰 손수건을 흔들면서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황제의 특사령을 가지고 왔던 것입니다.

또스토엪스키는 그곳에서 풀려나와 시베리아 유형 생활을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마지막 5분동안의 시간을 절실하게 생각했던 그 때를 생각하며 시간을 금쪽같이 소중하게 아끼면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세상을 떠나면 어디로 갈 것인가를 한 순간도 뇌리에서 떨쳐본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 다음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은 "기회를 상실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의미입니다.

신랑이 오는 희망·기쁨·평강의 시간은 그 때를 기다리는 열 처녀들에게는 그들의 생애에 매우 소중한 기회입니다. 그 열 처녀들 중 다섯 처녀는 그 기회를 상실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 기름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가운데는 준비가 되지 않아 귀한 기회를 놓지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신약성서에서 그러한 기회들을 놓친 사람들의 모습에 대해 "슬피 울며 이를 갈게된다"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준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회를 놓쳐 슬피 울며 이를 간다는 것은 자신에게 허용된 시간들을 헛되이 보낸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표현입니다. 그 때 후회해야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생이란 시간은, 준비를 위한 시간들입니다. 이 기간에 준비해 놓지 않으면 우리는 매우 소중한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전생의 의미와 목적이 신랑이 오시는 그 시간을 맞이하는데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의 각 계절은 어떤 의미에서 생의 다음 계절을 위한 준비의 기회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닙니다. 생의 봄은 여름, 여름은 가을, 가을은 겨울, 겨울은 영원을 위한 것입니다. 각 생의 계절에서 충분한 준비가 되어지지 않으면 그 다음 생의 계절을 맞이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평강, 기쁨은 준비된 사람에게 허락되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다음으로 우리의 생에는 반드시 필요하면서도 빌릴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다섯 처녀가 그들에게 기름이 필요하다는 것을 발견하였을 때, 그것을 빌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여기서 기름으로 비유된 것은 믿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 그를 이 세상에 보내신 분이 누구인가를 알고, 그 분과 바른 교제 가운데 사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러한 교제는 이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영원한 세상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한 교제의 삶은 믿음으로만 소유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믿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 11:6)고 했습니다.

믿음은 단지 내세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현세에서 더욱 필요합니다. 믿음이 있어야 이 현실에서 다가오고 있는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자로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믿음은 희망의 시간을 언제나 기다리며 살아가게 합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희망의 시간을 기다리며 사는 삶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게 되고 이 현실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현실에서 성실하게 살아가게 합니다. 자신을 초월해 가는 유일한 길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사는 길입니다.

마지막으로 문이 항상 열려 있지 않고 닫혀질 때가 있습니다. 본문에 신랑이 도착한 뒤에 문이 닫혀져 다섯 처녀는 기름을 사왔지만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준비나 사는 것이 무의미해지는 때가 반드시 온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희망의 새 삶의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다 열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언제인가는 닫혀지게 됩니다. 그 때는 준비의 시간이 아니라 신랑과 함께 새 삶을 시작하는 시간입니다. 그 시간은 우리의 생의 모든 결핍이 채워지고 온전케 되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우리의 준비는 단지 그 때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후회 없는 생을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후회 없는 삶은 이 세상의 쾌락을 마음껏 맛보는 데 있지 않습니다. 후회 없는 삶은 생의 바른 길을 걷는데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은 무한정 이러한 상태로 진행되지는 않습니다. 반드시 마감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마감의 때가 우리 개인의 삶에도 있게 되고, 이 역사에 그리고 전 우주적으로 그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때를 내가 보면서 준비를 해야합니다. 주님께서 그 때와 시간은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출처/임영수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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