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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노예에서 명령하는 삶으로 (출 6:5-9막11:20-25)

by 【고동엽】 2022.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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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노예에서 명령하는 삶으로   (출 6:5-9막11:20-25)  

우리는 믿은대로 성취한다.

우리의 생각과 기대는 우리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센 닉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아주 몸집이 크고 건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직업은 조차장에서 일하는 것입니다. 조차장이란 철도에서 화물차나 객차를 분리하고 연결하는 일을 하는 작업장입니다. 그는 아주 성실하고 인간관계가 좋은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단 한가지 단점은 항상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는 비관적으로 항상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고 말하기 좋아했습니다.

어느 여름날 저녁, 한 직원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퇴근 시간을 한 시간 앞당겼습니다. 시간이 되어 모든 승무원이 파티 준비를 위해 집으로 갔지만 닉은 보수를 위해 조차장으로 들어온 냉동 열차 안에 사고로 갇히게 되었습니다. 이 냉동 열차는 비어 있었고 다른 열차에 연결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냉동 열차 안에 갇혔다고 깨달은 순간 닉은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는 팔과 주먹에 피멍이 들 정도로 문을 두드리고 소리를 질렀지만 동료들은 이미 모두 퇴근한 후였습니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닉은 목이 쉴 때까지 외치고 또 외쳤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이 냉동 열차 안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습니다. 그렇다면 안의 온도는 영하 30ºC 정도, 아니면 그보다 더 낮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여기서 나가지 못하면 분명 얼어 죽고 말거야. 이 추운 곳에서 밤새 견딜 수는 없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점점 더 추워졌습니다. 문이 꽉 막혀 숨쉬기가 곤란하고 빠져 나갈 방법도 없는 상황에서 그는 바닥에 주저 앉았습니다. 그리고 추위 아니면 질식으로 죽음이 찾아오기만 넋 놓고 기다렸습니다.

그러다가 자신의 상황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셔츠 주머니를 뒤졌더니 펜이 한 자루 있었고 구석에 마분지 한 장이 보였습니다. 거의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을 떠는 와중에도 그는 긴박한 상황을 적어 내려갔습니다.

“너무 춥다. 몸이 마비된다. 빨리 나가지 않으면 아마도 이것이 내 마지막 글이 될 것이다.”

그의 말처럼 그 글은 닉의 마지막 자취가 되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출근한 승무원들이 냉동 열차의 문을 열었을 때 닉은 구석에 쪼그린 채 죽어 있었습니다. 부검 결과는 동사였습니다.

그런데 경찰 조사에 의하면 닉이 갇혀 있었던 냉동 열차는 전원이 켜있지 않았습니다. 그 냉동 열차는 오랫동안 고장이 나 있었고 바로 그 고장 때문에 수리를 위해 조차장에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닉이 죽던 날 밤도 역시 그 냉동 열차는 고장난 채였습니다. 여름이었으므로 냉동 열차 안의 온도는 보통의 실내 온도보다 약간 낮을 뿐이었습니다. 닉은 냉동 열차가 가동하고 있다고 믿은 나머지 추위를 느끼고 몸이 얼어 붙었습니다. 스스로 죽음을 기대했습니다. 닉은 생존 가능성이 없다고 확신했습니다.

닉이 두려워했던 일은 현실에서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인생은 스스로 이루어지는 예언’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에도 닉처럼 늘 최악의 상황, 패배, 실패, 그저 그런 삶만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기대대로 거두며, 자신이 믿은대로 되어갑니다.



과거를 끊으라

오늘 구약 본문은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출6:7-8).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두 가지 약속을 하셨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시켜 주시겠다는 약속이고, 두번째는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땅을 주리라는 말씀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나 그들이 마음의 상함과 가혹한 노역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더라”(출6:9).

무겁고 가혹한 노동에 지칠대로 지치고 기가 죽어서 모세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현실은 이처럼 사람을 지치게 하여서 그 것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바라지도 못하게 하고, 실행하지도 못하게 합니다.

해방이 필요할 때, 해방을 갈망할 마음이 없었고, 은혜가 가장 필요할 때, 은혜를 사모할 수 없었습니다. 무능하고 지쳤을 때, 하나님을 의지해야 했건만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무력증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런 의욕이 없는 무력증에 빠져 있었습니다.

마음 먹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마음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생각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이집트에서 노예 살이를 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현실에 지쳐서 꿈을 꾸지도 해방을 생각하지도 못하는 백성들이었습니다. 이들에게는 노예 근성이 있어서 과거의 장벽을 깨지 못하고 다람쥐 쳇바퀴 도는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그 땅의 엄청난 풍요화 자유를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대신 항상 현실의 문제만을 바라보고 불평하며, 자신과 목표 사이에 있는 장애물에 걸려서 넘어가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현재 때문에 미래를 꿈꾸지 못하는 불행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정적인 현재의 반복을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현실은 평범한 현실이 아닙니다. 우리는 현실에 감사는 하되 안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더 큰 선물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현실의 장벽을 넘어서 하나님께로 나가야 합니다.



현실/마음의 장벽을 부수라.

현실의 장벽을 부수기 전에 마음 속에 있는 장벽을 먼저 부수어야 합니다. 현실의 장벽을 부수는 일보다 마음 속에 있는 장벽을 부수는 일이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마음 속에 있는 장벽은 자기가 쌓은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쌓은 장벽은 절대 무너뜨리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장벽에 갖혀서 스스로 감옥살이를 합니다. 그러므로 가장 무서운 적은 자기 마음에 있는 법입니다. 자기 마음의 장벽이야 말로 견고한 진입니다.

‘나는 과거에 이렇게 살아 왔고 지금 이러므로 미래도 이렇것이다!

우리 집안과 같은 가문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나는 머리가 나빠서 안돼! 나는 외모가 좋지 않아서 안돼!’

이렇게 자기가 심판하는 자기 모습에 좌절하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그러나 성경의 야곱을 보십시오. 야곱은 현실의 장벽을 부수는데 도전한 사람입니다.

그는 먼저 장자의 축복권에 도전한 사람입니다. ‘나는 둘째라서 안돼’ 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다’하고 도전했습니다. 그가 팥죽 한 그릇과 장자권을 바꾸고 아버지를 속여서 형의 장자 축복권을 훔쳤지만, 곧바로 축복이 온 것이 아니라 더 큰 고난이 찾아 왔습니다.

그는 형의 살해 기도에 불안을 느낍니다. 형의 칼을 피해서 그는 도망치다가 밤에 광야에서 돌을 베고 잠에 듭니다. 도망자로서 참으로 비참한 신세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하나님을 만나는 꿈을 꿉니다. 꿈에 보니까 사닥다리가 땅위에 있는데 그 다른 끝이 하늘에 닿았고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그의 기도가 응답받은 것입니다. 도망자의 처지에 만족하지 않는 끊임없는 도전 정신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큰 축복을 주십니다. 그렇지만 고난은 그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 이후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간이나 일군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빈털터리였습니다. 14년 간의 노동은 결혼 지참금으로 모두 빼았겼고, 그 이후 6년의 노동 조차도 외삼촌이 임금 계약을 10번이나 바꾸면서 착취를 했던 것입니다. 그는 빈손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비참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외삼촌을 설득합니다. 정상적인 양은 모두 외삼촌의 것이고, 만약 얼룩진 것이나 점있는 것을 내 품삯으로 주십시오.

야곱은 극히 확률적으로 낮은 선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뭇가지를 얼룩지게 해서 양들이 새끼를 밸 때 그 얼룩 나뭇가지를 보게했습니다. 새끼 갖게 되는 양들에게 주술을 거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 주술이 잘 먹혀들어가서 얼룩무늬 양, 검은 양이 많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계속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도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결국 하나님의 천사에게도 도전하여 얍복강에서 밤새도록 씨름을 하여 이기게 됩니다. 그 때에 얻은 이름이 ‘이스라엘’ 즉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다’는 뜻입니다. 지금 그의 후손의 이름이 ‘이스라엘’입니다. ‘아브라함 족속’이라고 부르지 않고 ‘이스라엘 민족’이라고 부릅니다.



실패를 두려워 말라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보다는 차라리 실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처음부터 성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꿈이 있기 때문에 실패가 있는 것입니다. 실패가 두려워서 도전을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입시에서 떨어지는 체험이 두려운 사람이 시험을 회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실패의 쓴 잔을 마실 일이 전혀 없지만, 승리의 기쁨도 또한 맛볼 기회가 없습니다.

길을 떠나니까 여행의 고통이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것을 발명하려고 하니까 실패가 있습니다.

일을 하려고 하니까 반대가 있습니다.

연애의 실패가 두려워 애인을 사귀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실망할 일이 없지만, 동시에 행복한 가정을 꾸밀 수 없을 것입니다..

살아있는 사람, 움직이는 사람은 고통이 있습니다.

시체는 질문을 하지도 않고 대답도 없습니다. 죽은 자는 갈등이 없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실패가 두려워서 인생을 포기 할 수는 없습니다. 살고 안 살고는 선택 사항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 인생은 반드시 성공할 수 밖에 없는, 성공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실패 역시 꿈에 속합니다. 꿈이 있기 때문에 실패가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시도해보지 않고 기회를 놓친 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당신이 지금 실패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실패한 게 아니라 이뤄지지 않는 한 가지 방법을 발견했을 뿐입니다.

삶은 성공과 실패가 거듭되면서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무늬입니다. 지금 당장 그 무늬의 좋고 나쁨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가장 큰 실패는 두려워 아무런 일도 시도해볼 용기조차 갖지 못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진정한 실패는 한번도 도전해 보지 않고 그래서 한번도 실패해 보지 못한 삶입니다.

포드 자동차사 창업주인 헨리 포드는 “당신이 할 수 있다고 믿든지 할 수 없다고 믿든지 당신이 믿는 대로 될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싸이클 선수 ‘랜스 암스트롱’은 암이라는 극한 상황을 극복하고 2003년까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산악 사이클 대회인 ‘뚜르 드 프랑스’에서 5연패의 위업을 달성해서 인간 승리의 표본이 된 인물입니다.

아직도 사람들은 암에 걸리면 극복보다 죽음을 우선시합니다. 그런데 암스트롱은 자기의 극복 의지가 더 강했습니다. 삶에의 의지가 얼마나 강했으면 암을 극복하고 다시 사이클을 시작하여 최강자가 되어 인간 승리의 표본을 보여주었겠습니까?

암스트롱은 말합니다.

“인생은 실패할 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할 때 끝나는 것이다.”

“암이 내 육신을 바꾸어 놓은 것은 아니다. 다만 내 정신을 바꿔놓았을 뿐이다. 암이란 진단을 받기 전의 나는 대단한 게으름뱅이였다. 100%의 노력을 다하지 않고도 상당한 액수의 월급을 받았다. 그것만으로도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나 자신에게 말했다. 내게 다시 한 번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번에는 정말 올바르게 살겠다고… 그리고 나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이상의 어떤 것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고…

레이스는 나 아닌 타인을 물리치는 것이라기 보다는 나 자신을 경쟁의 상대로 삼는 일이다. 나는 점점 더 나와의 경쟁에 익숙해 졌고 전보다, 작년보다, 지난달보다, 아니 어제보다 오늘이 더 나은 레이스를 하게 되었다.

고통이 주는 진짜 대가는 이런 것이다.

바로 자기 인식, 자각이다. 그러나 고통 앞에서 포기한다면 고통은 영원히 나를 떠나지 않는다. 아무리 작은 포기라도 그 고통은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된다. 포기하고 싶을 땐 자신에게 먼저 물어보아야 한다. 고통과 평생 함께 살고 싶은지 고통 아닌 다른 것과 함께 살고 싶은지.”



고난을 이겨라.

어느 교수가 학생들에게 질문했습니다.

“한 부부가 있는데 남편은 매독에 걸려 있고 아내는 심한 폐결핵에 걸려 있다. 이 가정에 아이들 넷이 있는데 하나는 며칠 전에 병으로 죽었고 남은 세 아이들도 결핵으로 누워 살아날 것 같이 않다. 이 부인은 현재 임신중인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

그러자 그 학급의 한 학생이 “낙태 수술을 해야 합니다!” 하고 대뜸 소리쳤습니다. 그 때 교수는 “자네는 방금 베토벤을 죽였네” 하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은 불행한 환경에서 다섯 번째 아이로 태어난 사람이 바로 베토벤이었습니다.

베토벤의 생애는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13살 때 돌아가셨고, 술주정뱅이로서 삼류 극단의 악사였던 아버지는 17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음악을 배웠고 불행 중에서도 소중한 결심을 하게 됩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영혼을 흔들어 깨워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도록 그들에게 좋은 음악을 만들어주자”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이 꿈이 그의 일생을 지배하게 됩니다.

그는 가진 것이 없어 연애에도 실패하지만 음악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던 중 32살 때 결정적인 불운을 겪게 됩니다. 청력을 잃게 된 것입니다. 눈 먼 사람이 그림을 그릴 수 없듯이 귀 먹은 사람이 음악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는 수없는 좌절을 겪었지만 결국은 마음 속에서 울려 나오는 어린 시절의 꿈 때문에 계속해서 다시 일어섭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악을 들려주어야 해! 그래서 그들의 영혼을 흔들어 깨워주어야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게 해야지! 내가 안 들려주면 누가 들려주나?’

베토벤은 육신의 청각을 잃은 뒤에 영의 귀가 열려 위대한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는 청각 장애를 앓고 있으면서도 정열적으로 작곡했는데 하나의 곡을 최소한 열두 번 이상 다시 썼습니다. 베토벤은 귀머거리가 된 후에 더 좋은 곡들을 만들었습니다

베토벤은 고백했습니다. “나는 괴로움을 뚫고 항상 기쁨을 발견했다. 그래서 행복했다.”

여러분, 괴로움이 절망은 아닙니다. 괴로움은 단지 잠시 멈추는 길, 생각하는 길, 천천히 가는 길, 그리고 돌아가는 길일뿐입니다.

시인 밀턴은 안질이 심해져서 실명한 뒤에도 불후의 명작인 ‘실낙원’을 썼습니다. 실명은 밀턴에게 흑암을 준 것이 아닌 광명을 준 것입니다.



자신을 인정하라

우리가 인정할 것을 정직하게 인정하면 고난과 문제를 이길 힘을 얻습니다.

우리는 인정할 것을 인정하면 됩니다. 먼저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십시오. 자신의 부정직과 게으름을 시인하시기 바랍니다.

자기가 태만해져서 의무를 성실히 행하지 않은 것을 두고 어쩔 수 없는 연약함이라고 핑계 대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파렴치한 행동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흔히 연약함이라고 부르는 것의 실체는 게으름의 악인데, 그것을 정직하게 인정하지 않고 연약함이라고 두루뭉실하게 포장하여 넘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게으름에 부정직을 더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디, 게으름을 버리고 성실함과 부지런함으로 살아가십시오. 여러분이 그러한 삶을 결단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도우실 것입니다. 부지런한 삶을 위해서 지불해야 할 고통과 인내가 아무리 쓴 것처럼 보여도, 게으르게 살다가 정욕에 삼킨 바 된 상태가 되어서 나중에 지불해야 할 영혼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죄악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죄를 시인하고 십자가 앞에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 죄악을 모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에 의지하여 씻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라.

우리가 인정해야 할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2-24).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고 현실을 향하여 명령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는 사람은 더 이상 현실의 노예가 아닙니다. 현실을 지배하는 주인이 됩니다.

모세는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는 비록 자기 자신은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줄 알면서도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꿈을 죽을 때까지 꾸었습니다.

그는 죽으면서도 높은 산에 올라가 요단강 저편에 있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위대한 꿈을 꾸며 죽었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한 지도자 여호수아 보다 모세가 더 위대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꿈을꾸는데 나이가 없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늙은이는 꿈을 꾸며 젊은이는 환상을 볼 것입니다. 꿈꾸는 노년, 그는 모세와 같은 지도력을 가질 것입니다. 젊은이들에게 꿈을 심는 노년은 존경을 받게 될 것입니다. 꿈꾸는 노년이 있는 교회, 미래에 그 꿈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환상을 보는 젊은이가 있는 민족, 그 꿈을 이룰 것입니다.

유명한 마르틴 루터 킹 목사님이 워싱턴 시를 지나가다가 한 흑인 청소부 청년을 보았습니다. 그 흑인 청년은 갖은 욕설을 퍼붓고 짜증을 부리면서 청소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곁에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보게, 자네는 하나님이 자네에게 맡기신 지구의 한 모퉁이를 쓸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가 없소.” 그러면서 등을 두드리며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청소를 할 때 베토벤이 음악을 작곡하듯, 미켈란젤로가 조각을 하듯, 괴테가 작품을 쓰듯 그렇게 하나님의 일을 하시오!”

‘오! 주님, 나에게 이 일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렇게 감사가 나오는 순간, 날마다 똑같이 되풀이 되는 지겨운 일인데도 주께서 내 마음에 긍지를 심어 주시는 그 순간,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가 내 마음 속에서부터 흘러나오기 시작합니다. 성령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 오늘 아침도 일어나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믿음, 용기, 도전 정신을 가지고 절망과 낙심을 이기고 현실의 장벽을 부수는 능력을 주옵소서.’

현실의 장벽을 향하여 명령하고 극복하고 지배하는 믿음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독수리처럼 하늘을 비상하며 이 삶을 하나님의 창조 능력을 덧입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 능력과 이 용기와 이 비전을 가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출처/박병욱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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