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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의 즐거움 (잠 23:19~25, 엡 6:1~3)

by 【고동엽】 2022.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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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의 즐거움   (잠 23:19~25, 엡 6:1~3)  

  프랑스의 역사상 69명의 왕이 집권하였습니다. 그 가운데서 세 사람의 왕만이 백성들로부터 한없는 존경을 받는다고 합니다. 존경을 받는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친어머니의 젖을 먹고 친어머니의 품에서 자라난 왕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 진정한 사랑을 체험한 왕이 그 사랑 때문에 백성들을 깊이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심겨져 있었기에 백성들을 사랑하는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통계는 모르긴 해도 어머니의 젖을 먹고, 사랑 받고 산 사람은 좋은 사람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부모님은 자녀에게 생명을 주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존경을 받아야 하고, 자녀는 이것 하나만으로도 감사해야 합니다. 부모님은 자녀가 세상에서 처음 만나는 스승입니다. 자녀는 부모를 통하여 인생을 배웁니다. 더구나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알게 하신 스승이십니다.

  가시고기란 작은 고기가 있습니다. 산란기가 되면 암컷은 알을 낳고 떠납니다. 그러면 수놈이 알이 부화할 때까지 신선한 공기를 제공합니다. 침입자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리고 새끼 고기들이 알에서 나와 둥지를 떠날 때면 생을 마감하는 작은 물고기입니다. 잘 아시는 우렁이가 있습니다. 제 몸에 알을 낳으면 새끼는 어미의 살을 파먹고 성장합니다. 마침내 어미는 한 점의 살도 남김없이 다 새끼에게 먹이로 주고 빈껍데기가 되어 조용히 물에 떠내려갑니다. 따지고 보면 그렇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부모들은 여건이 그렇지 않을지 모르지만 다 그렇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말했습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모른다면 너의 친구가 되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부모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는 사람과는 상종도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를 사랑한 흔적이 역력히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머니에게 극진한 효도를 베풀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아 고생했다는 이유 때문에 예수님의 마음은 늘 아팠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낳아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을까요? 처녀로 잉태하였습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그 일을 어머니는 해야 했습니다. 12살 때 성전에서 잃어버려 가슴이 다 내려앉았습니다. 사흘 만에 다시 성전에서 찾았을 때는 어머니의 마음을 몰라주고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라는 알아듣지 못할 말만 하였습니다. 아들은 늘 유대인의 반목과 고소에 시달려야 했으므로 어머니의 마음도 항상 콩알만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아들을 죽이려고 모함할 때는 어쩔 바를 몰랐습니다. 아들이 그 심한 매를 맞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향해 갈 때는 그 곁에서 안타까운 가슴만 뜯고 있었습니다. 십자가 아래서 십자가에 매달려 신음하다 죽는 아들을 보았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가련한 어머니가 어디 있겠습니까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에 가면 ‘피에타’란 미켈란젤로의 조각 작품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와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있는 조각입니다. 이 조각은 어머니의 처절한 모습이 절절히 담겨 있는 작품입니다.
  어머니를 이렇게 괴롭게 한 예수님은 인간적으로 보면 참 불효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효는 십자가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제5계명을 십자가에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요한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부탁합니다. “요한아 이제부터 네 어머니니라.” 애절한 아들의 효심입니다.

  우리 옛 속담에는 “부모가 온 효자가 되어야 자식이 반 효자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의 자녀에 대한 책임이 그만큼 크다는 말입니다. 지난 주 어린이주일에는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책임을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어버이주일에는 부모에 대한 자녀의 책임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자녀가 부모를 즐겁게 하는 책임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일러주고 있습니다.

첫째, 자녀가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24절 상반절에는 말합니다.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자녀가 의인이면 부모는 즐거워합니다. 참 중요한 말씀입니다. 자녀가 의인일 때에 부모는 즐거운 법입니다. 세상에 아무리 나쁜 부모라도 자녀가 옳게 자라는 것을 기뻐합니다. 나는 의롭지 못했지만 자녀가 의로운 것을 원하는 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옳지 못한 삶을 살았던 부모가 “나 같이는 되지 말라”고 자녀에게 충고합니다.

  의인이 무엇입니까?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알고 옳은 것을 택하는 사람이 의인입니다. 최소한의 양심은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어느 것이 옳은 것인가를 아는 선천적 지식은 다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때리면 안 된다, 다른 사람의 것을 훔치면 안 된다, 거짓말하면 안 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것을 훔치고, 때리는 것을 옳다고 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의로운 세상은 의로운 자가 잘 되는 사회입니다. 우리나라는 의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옳게 사는 자가 잘못됩니다. 법을 지키는 자가 항상 손해 봅니다. 정당하게 경기하는 자가 항상 집니다. 이런 사회는 고등 사회가 아니며 삶의 가치가 떨어진 사회입니다. 힘이나 돈이나 지위가 의로 변질된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닙니다.

  우리사회는 공중의 것과 나의 것에 대한 구분이 희미합니다. 한 해에 없어지는 대한항공의 기내 담요가 무려 21만장이라고 합니다. 이것도 작년의 통계니까 올해는 더 많아졌겠지요. 아시아나도 기내 담요 10%가 없어진다고 합니다. 담요가 한 장에 1만원이라고 하니까 없어지는 담요 값만 해도 상당하지요. 왜 그걸 가지고 가느냐고 설문 조사를 했습니다. 제일 많은 응답이 “화투칠 때 좋아서”랍니다. 그리고 “장거리 버스나 야간 기차 탈 때 편리해서”라고 답했습니다. 비행기를 탈 만하면 알만한 사람들인데 이런 의로운 의식이 부족해요. 그리고 아무래도 화투가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알아야 할 것은 그건 다 탑승자 부담입니다. 비행기회사야 그만큼 요금을 더 받을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담요 훔쳐가지 않으면 비행기 요금 약간은 싸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사회가 어른과 스승을 공경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내가 잘 되고 장수하는 비결입니다. 부모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이기적으로라도 공경해보세요. 복 받고 하다보면 진정으로 공경하게 될 것입니다.

  미국 루지애나주에서는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5학년 학생까지는 선생님에게 반드시 Sir, Ma'am, Miss, Mrs, Mr. 등 호칭 붙이도록 하였습니다. 그 결과 학생들의 질이 좋아지고, 사고가 적어지고, 학습 능률이 올라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주에서도 이와 유사한 법 제정이 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어른을 공경하면 아이들이 잘됩니다. 이건 인륜의 철칙입니다.

  항의 신흥 H대학교는 기독교 이념을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이 학교의 교정에 들어가면 다른 학교와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학생들이 어른들만 만나면 꾸뻑 인사를 합니다. 누군지 모르지만 학교 교정에서 만난 어른에게 인사를 합니다. 최근에 이 학교의 졸업생들이 취직이 잘됩니다. 회사에 들어가서 성실하고, 상사에게 잘 하고, 동료들과 인화관계가 좋아서 회사에서 이 학교 졸업생들을 선호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로운 교육과 예절이 다른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자기에게 유익한 것입니다.

  저명한 아동교육자 제임스 돕슨은 “훈육은 바람직한 것이지만 처벌은 나쁜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아이들에게 훈육해야 합니다. 의를 가르쳐야 합니다. 잘 가르쳐야 어른들은 공경을 받고 아이들도 자신에게 많은 유익이 있습니다.
  왜 의인이 되어야 합니까?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의로우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4:1에는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의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의롭게 살아야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사람입니다. 의를 좇아 살아야 사람답게 사는 것입니다.

  창세기 6:9을 보세요.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고 합니다. 노아가 의인인 까닭에 그의 세 아들, 세 자부가 함께 구원을 받습니다. 어떻게 노아가 의인이 되었습니까? 창세기 6:8에 해답이 있습니다.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의인은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가능합니다. 우리 자녀가 은혜를 입어야 의인으로 살 수 있습니다. 부모가 의인이면 자녀에게 구원의 혜택을 줍니다. 자녀가 의인이면 부모에게 기쁨을 줍니다. 의인의 삶은 이렇게 복된 것입니다.

  제사장 엘리와 그 아들들을 보세요. 전혀 의롭지 못한 부자입니다. 아버지 엘리는 도덕에 대하여 엄격하지 않습니다. 죄에 대하여 단호하지 않습니다. 아들들이 부도덕한 일을 많이 하여 세간에 말이 많았습니다. 그 때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나무라지 않습니다. 사무엘상서 2:23에는 “내 아들아 그리하지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고 합니다. 옳고 그름을 분명히 가르쳐야 하고, 따라야 합니다. 아이들을 나무랄 때는 눈물이 쑥 빠지도록 훈계해야 합니다. 그런데 의를 가르치지 못하니 그 집안이 완전히 몰락하였습니다.

  시편 37:25을 잘 들어보세요.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이래도 의롭게 살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의는 살아 있습니다. 의인은 자기가 잘됩니다. 그리고 부모에게 큰 기쁨이 됩니다.

둘째, 자녀가 지혜롭게 되는 것입니다.

  24절 하반절입니다.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 자녀가 지혜로워야 부모가 즐겁습니다. 지혜로운 자녀는 부모의 기쁨입니다. 자녀들이 분별력을 가지고 자라야 부모가 즐거워합니다.
  지혜란 히브리 단어로 ‘살아가는 기술’이란 뜻입니다. 살아가는 기술이 있어야 즐거움을 줍니다. 지혜의 반대말은 ‘어리석음’일 것입니다. 어리석다란 말의 영어 ‘absurd’란 말은 귀머거리라는 뜻의 라틴어 단어 ‘surdus’에서 나왔습니다. 부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것이 어리석음입니다. 이것이 지혜롭지 못한 일입니다.

  에베소서 6:1을 보세요.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합니다. 순종은 듣고 따르는 것입니다. 보모님을 듣고 따르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듣지 않고 따르지 않는 것이 어리석은 일입니다.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그 자체가 어리석음입니다. 어리석음은 듣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중고등학교에서 부모공경을 가르칠 때에 조지 워싱턴의 예를 든다고 합니다. 그는 젊을 때에 바다로 나가서 훌륭한 선장이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하여 선원으로 취직하여 바다로 떠나려고 어머니에게 작별인사를 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만류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꿈을 꾸어왔던 일이지만 어머니의 만류에 마음을 돌이켰습니다. 그리고 그는 “어머니의 눈물과 내 꿈을 바꿀 수는 없다”고 말하면서 항해를 포기하였습니다. 그는 훗날 선장대신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6:2에는 말합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허락 있는 첫 계명이니.” 공경이란 말은 헬라어로 ‘티마오’란 말입니다. 이 말은 ‘가치 있게 여기다’, ‘명예롭게 여기다’란 말입니다. 부모가 가난하고, 못생겼고, 명예가 없고, 지위가 없어도 가치 있게 여기고, 명예롭게 여기라는 뜻입니다. 이게 효입니다. 나아가서 이것이 지혜입니다.
  높은뜻 숭의교회의 김동호목사님은 저와는 절친한 친구요 동기생이며 동역자입니다. 서로가 좋아하는 사이이고 아주 훌륭한 재능과 열정을 가진 목사님입니다. 아주 가까우니까 제가 이 말을 해도 괜찮으리라고 봅니다. 그의 부친은 47세에 그를 낳았습니다. 북한 평북 선천에서 피난 오셔서 갖은 고생을 하셨습니다. 그의 부친은 오랫동안 학교의 수위이셨습니다. 그런데 아주 당당하게 사셨습니다. 불의하고는 타협을 못하셨고, 때로는 교장선생님에게도 직언을 하였지만 원채 근면하셔서 운동장에 풀 한포기가 없었답니다. 김동호목사님은 자신의 아버지가 학교 수위였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여기기는커녕 오히려 자랑합니다. 그의 기억 속에는 아버지는 자신에게 가장 훌륭한 분이셨습니다. 어디 가든지 이 사실을 떳떳하게 밝히고 삽니다. 저의 눈에는 그 아들과 그 아버지가 다 훌륭해 보입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공경하면 이렇게 훌륭하게 변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녀의 지혜는 부모님께 기쁨이 됩니다. 이런 지혜로 부모님께 기쁨을 드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자녀가 부모를 즐겁고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25절입니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이 말은 자녀에게 부모가 기뻐하는 일을 하라고 권고하는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를 즐겁고 기쁘게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효도 10훈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첫째는 ‘건강하라’는 것입니다.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是也)입니다. 우리 몸은 부모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므로 잘 보존하는 것이 효도입니다. 그리고 열째는 ‘자기 하는 일에 충실하여 부모를 기쁘게 하라’는 것입니다. “몸을 세워 이름을 떨치니 이로써 부모도 드러난다. 이것이 효의 마침이다”고 합니다. ‘효경’과 조선시대의 ‘소학언해’에도 같은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이름이 드러나면 부모에게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상가승무노인탄’(喪家僧舞老人嘆)이란 이야기를 아시지요? 숙종이 평복을 하고 민가를 야행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가난한 집 앞을 지나는데 울음소리가 납니다. 그 집을 들여다보니 상복을 입은 사람이 노래를 부르고, 승려는 춤을 추고 있고, 노인은 탄식하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의 생신을 맞아 생신잔치를 할 돈이 없어 며느리가 머리를 잘라 팔아서 상을 차리고 아들은 아버지를 즐겁게 하려고 노래를 부르고 며느리는 빡빡 깍은 머리를 하고 춤을 추고 있었고 아버지는 이 사실이 마음에 괴로워 탄식하고 있었습니다. 숙종은 이 아들을 불러 글을 배웠느냐고 물었습니다. 조금 배웠다고 하자 다음에 있을 과거별과에 응시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아들이 과거에 가서 문제를 받고 보니 ‘상가승무노인탄’이었습니다. 이 아들은 과거에 장원급제 하였고 아버지를 잘 섬겼답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복을 받습니다. 부모를 기쁘게 하면 복이 하늘에서 굴러옵니다.

  부모가 늙으면 세 가지가 없어진다고 합니다. 힘이 없어집니다. 돈이 없어집니다. 형편 없어집니다. 그러기에 자녀가 부모의 힘이 되고 돈이 되어야 합니다. 효도는 복의 근원입니다. 어떤 분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고 부모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대리자이기 때문에 부모에게도 십일조를 해야 한다고 합디다.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는 하지 않지만 참고하세요. 나쁜 말은 아니라고 봅니다.

  에베소서 6:2입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허락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도 장수하리라.” 잘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웰빙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잘 되는 것은 자연의 이치입니다.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공경하지 않으면 잘 되지 않습니다.

  옛날에 고려장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부모가 늙으면 산중에 버리는 풍습이었습니다. 어떤 집에 아버지가 70살이 되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지게에 지고 산중에 가서 약간의 음식과 지게를 둔 채 내려왔습니다. 그 사람의 아들이 따라갔는데 내려올 때에 다시 지게를 가지고 왔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왜 지게를 가지고 오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 때 “아버지도 나이가 들면 이 지게에 지고 가야지요”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이 사람은 뉘우치고 다시 아버지를 모시고 집으로 모시고 와서 잘 봉양하였답니다.

  효자로 소문난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의 직장동료가 얼마나 효자인지 궁금하여 퇴근길에 그 집을 함께 방문하였습니다. 그 친구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깜짝 놀랐습니다. 들어서자마자 이 효자는 “엄마, 다녀왔어요. 구두 벗겨 줘”라고 합니다. 어머니는 “오냐, 물 가져오마”하더니 아들의 발을 씻어줍니다. “엄마, 피곤해 어깨 주물러 줘.” “엄마, 배고파 밥 줘.” 끊임없이 어머니에게 요구하기만 합니다. 친구는 속으로 “이 불효막심한 놈”하고 욕을 합니다. 그리고 효자에게 말합니다. “실망했네, 어찌 그럴 수 있는가? 어머니를 마치 종 부리듯이 하고 있지 않나?” 그 때 효자는 말합니다. “이것이 어머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네. 이것이 내 어머님의 유일한 낙이야.” 효자는 부모가 기뻐하는 것에 관심을 가집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부모에게 요구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옛 말에는 “효성이 지극하면 돌 위에 풀이 난다”고 합니다. 효성을 다하면 자연도 감탄합니다. 이런 기쁨을 드리는 자녀가 되기를 바랍니다.

결론

  “자녀들은 당신의 말 보다 당신의 행동에 더 주목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녀는 우리의 복사품입니다. 우리의 모습과 사고까지고 모방합니다. 부모의 행동이 자녀들에게는 절대적인 가치를 줍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좋은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는 부모에게 배우고 부모의 기쁨이 되고 즐거움이 되어야 합니다.

  “오해”라는 시가 있습니다. 잘 들어보세요.

오 해  

우리 어머니는 엄마가 보고 싶지 않은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첫사랑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친구가 한 사람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 몸은 절대 아프지 않는 어떤 특별한 몸인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아무 꿈도 품은 적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드는 것을 좋아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특별히 좋아하시는 음식이 한 가지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짧은 파마 머리만 좋아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얼굴이 고와지고 몸매가 날씬해지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신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좋게 받아들이고 아무 불만도 없으신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우리가 전화를 길게 하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계실 줄 알았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단 하루라도 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웃는 걸 모르시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딸이 시집가는 것을 보고 마냥 기뻐만 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 외에 아는 여자라고는 한 사람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배가 빨리 불러 와 좋은 음식 앞에서 먼저 일어나시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양복 입고 넥타이 매는 것을 싫어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 안 주머니에는 늘 돈이 얼마쯤은 들어 있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좋아하시는 운동도 취미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우리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듣지 않으시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무리 깊고 험한 길을 걸어가도 조금도 두려워하시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 눈에는 눈물이 한 방울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우리가 객지로 떠나는 것을 좋아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어버이주일입니다. 부모님께 감사하며 자녀로서 부모님께 기쁨의 대상이 됩시다. 태어날 때 기뻐하셨던 그 기쁨을 회복합시다. 미운 일곱 살이 다 지나도 아직도 미운 존재가 아니라 늘 기쁨을 드리고 부모의 기쁨이 하나님의 기쁨인줄 아는 자녀가 다 되기를 바랍니다.

어버이주일을 맞이하여 세상의 모든 어버이들께 많은 은총이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출처/이성희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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