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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자료실 종합모음

말씀 중심으로 부흥하는 교회 (행4:4)

by 【고동엽】 2022.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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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중심으로 부흥하는 교회  (행4:4)

(행 4:4)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정한 시간에 모여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때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기 위해서 성전을 향해 올라갔습니다.
그때의 시간은 제구시 즉, 오후 3시였습니다.
이때 베드로와 요한은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신체의 장애로 인해서 소외된 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40여년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행 4:22) 이 표적으로 병 나은 사람은 사십여 세나 되었더라
사람들이 메어 와서는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성전에 예배를 드리러 들어가는 유대인들이 늘 그 곳을 지나 다녔고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미문은 이방인의 뜰을 지나 여인들의 뜰로 들어갈 때 통과하게 되는 문으로 봅니다. 사도들은 유대인 남자들이었던 까닭에, 성전 바깥뜰(이방인의 뜰)을 지나 계단을 올라 여인의 뜰(성전 내부의 첫 뜰)로 들어갔고, 다시 이스라엘의 뜰로 들어갔습니다.  이방인의 뜰에서 조금 더 걸으면 바깥뜰과 안뜰을 나누는 성전 벽이 있습니다. 이 성전 벽에는 이방인이 들어가면 죽을 것이라는 경고문이 헬라어와 라틴어로 제시되어 있었습니다. 제사 의식은 좀 더 들어가 성전 가장 안쪽 뜰(제사장의 뜰)에서 행해졌습니다.  일반 유대인들은 보통 그 안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성전에 기도하려 올라가던 베드로와 요한은 미문에 앉아 있는 그를 만난 것입니다.
실상 사도들은 그 사람이 구하는 유의 도움을 줄 수는 없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더 나은 것을 주었습니다.
(행 3:6)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그러자 그는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도들은 많은 이적을 행했으며 특히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병 고치는 이적을 많이 행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사와 표적들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경건한 두려움을 주었고 하나님의 권능에 대해 경외심을 갖도록 했으며 사도들의 교훈과 사도직을 확증해 주는 역할도 했고 그 이적들로 인해 사도들이 증거한 그리스도의 부활이 더욱 신빙성 있게 되었고 능력 있게 되었습니다.
누가는 표적 중의 하나를 선별해서 기록했습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서 사도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며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자 사람들은 그가 성전 미문에 앉아 있던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아보고는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란 무리들은 모두 솔로몬 행각에 모여들었습니다.
솔로몬 행각은 성전 바깥뜰 동편 끝에 있는 행각이었고 이방인들의 뜰 동편을 따라 길게 늘어선 부속 건물이었습니다. 놀라운 기적을 보고 잔뜩 관심을 가지고 모여든 군중들이 날 때부터 앉은뱅이였으나 이제 건강한 두 다리를 갖게 된 그 사람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이러한 그들에게 자연스럽게 설교할 기회를 갖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기와 요한이 그 앉은뱅이를 걷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들의 능력도, 경건도 아니었음을 설명했습니다.
(행 3: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그를 고친 것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다시 살리신 에수님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행 3: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저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안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부인하였으니
(행 3:14)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행 3: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베드로는 부활의 증인으로서 이적을 보게 된 사건에 대해서 설명하며 치료의 능력은 예수께로 말미암았음을 베드로는 힘있게 증거합니다.
(행 3: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서 믿음을 찾으셨고 아무리 미미한 형태라도 믿음이 있으면 고치셨습니다. 이 앉은뱅이가 고침을 받은 것도 바로 믿음에 의해서였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듯이, 불과 몇 달 전 예수님은 성문 밖에서 십자가에 달리셨었습니다. 주님의 시체가 십자가에서 내리우고 장사되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주님의 종말인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습니다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모인 무리를 향해 예수를 소개하고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을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행 3: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누가는 예언의 성취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사야가 말한 종이기도 하시지만, 모세가 예언한 대선지자이기도 하십니다.
(행 3:22)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 모든 말씀을 들을 것이라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그분을 보내사 그의 백성을 자기들의 죄에서 돌아서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행 3:26)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그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또한 땅의 모든 족속이 그 안에서 복을 받을 아브라함의 후손이기도 하시다는 것입니다.
(행 3:25)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앉은뱅이를 고친 것은 사도들이 행한 많은 기사와 표적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교회가 든든히 세워져 가는 속에서 표적은 예수님의 이름을 나타내는 능력으로 보여집니다. 모든 것이 예수님의 이름에 의한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언들의 성취와 함께 열어 놓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시대는 회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임을 베드로의 메시지는 강조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이 선포된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행 4:4)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1907년처럼 부흥하되 3월은 말씀중심으로 부흥하는 달입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롬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히틀러의 경호원 중에 쿠르트 바그너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히틀러를 신(神)처럼 숭배했습니다. 히틀러가 베를린의 한 벙커에서 자살하자 그의 모든 신념과 희망도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도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커피 한 잔을 마시던 중 그의 눈에 성경 한 권이 들어왔습니다. 처음에는 무심코 읽었으나 점점 성경에 빠져들었습니다. 바그너는 목사님을 찾아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쟁을 좋아하는 사람을 평화의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말씀에 붙잡힌 바 될 때 우리의 인생은 달라집니다.(쿠르트 바그너를 변화시킨 말씀)

   말씀은 거듭나게 하는 능력입니다.
(약 1:18)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가난한 사제 사보나롤라는 몹시 타락한 도시에서 유일한 정의의 예언자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그만이 제단에서 힘 있게 말씀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변화되어 충실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감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보나롤라의 설교로 인한 결과였습니다. 그의 설교로 도시의 모든 모습이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어떤 부인은 자기의 보석과 장신구를 버리고 수수한 옷차림을 하였으며, 제멋대로 굴던 플로렌티누스는 종교인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또 경건한 찬송이 로렌조의 축제날에 울려 퍼졌습니다.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나쁜 서적과 그림들을 버렸고, 축제 마지막 날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장작불을 피우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말씀은 힘이 있고, 이제까지 신앙인들의 진술이기도 합니다. (J.WARSCHAUER-말씀의 힘)

    말씀은 살리는 능력입니다.
  (시 119:50)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
  90명이 넘는 사람이 눈 덮인 산비탈에서 실종된 8살 소년 도미닉 드카를로를 밤새워 찾아다녔습니다. 동이 터가는 데도 소년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헬리콥터 두 대가 탐색 작업에 합류한 뒤 15분 만에 스키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지상 탐색대가 흔적을 따라갔는데, 마침내 나무에서 소년을 찾아낸 것입니다. 소년을 즉시 병원으로 데리고 갔으나 의사는 소년이 정상이라고 하면서 입원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소년이 매서운 추위에 밤을 지샜는데도 말짱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즉, 소년의 아버지는 실종될 경우의 행동 요령을 미리 알려주었고 소년은 아버지의 말을 그대로 따랐다는 겁니다. 도미닉은 나무에 기어올라 가 나뭇가지로 몸을 감싸서 동상이나 체온 저하를 미리 막았습니다. 어린이였으므로 이런 일을 혼자 생각해서 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단지 지혜롭고 사랑이 많은 아버지의 말에 순종했을 뿐입니다. (아버지의 말씀대로)

  말씀은 점점 왕성해 갑니다.
(행 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버틀러라고 하는 유명한 영국교회 감독이 있었습니다. 그 감독이 병이 중해서 곧 세상을 떠나게 되었는데 그때에 자기의 가까운 친구 목사가 그 옆에 앉아 있었습니다. 버틀러 감독은 자기가 곧 세상을 떠날 것을 스스로 느끼면서 그 옆에 있는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일생토록 죄를 멀리하고 어떻게든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갖은 애를 써왔지만 나는 원래 약한 인간이니까 지금 내가 세상을 떠나면서 생각하니 내 마음 가운데 두려운 마음이 들어온다.”그 말을 들은 친구 목사가 말했습니다. “아 감독님, 왜 그런 생각을 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다 속량해주신 구주가 아닙니까?” “그렇지 예수님께서 참 구주가 되시지. 그러나 꼭 내구주가 되는지 내가 어떻게 알겠나?”그 감독이 의심스럽게 반문할 때 친구 목사가 다시 말했습니다. “감독님. 예수님께서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잊으셨습니까?”그 말을 들을 때에 감독은 얼굴에 기쁨이 충만해지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과연 그렇다. 내가 성경을 수 천 번 보았지만 그 구절의 뜻을 이제야 분명히 알았구나. 나는 평안한 마음으로 간다.” 성경말씀은 한 말씀 한 말씀이 진리요, 생명입니다.(수 천 번 본 말씀의 분명한 뜻)

   미국이 낳은 대작가 월레스는 본래가 장군이요 장관이요 외교관이며 문필가로서 평소에 기독교 신앙에 대하여 적개심을 품고 있던 불신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세상을 떠나기전에 세상을 깜짝 놀라게할 큰 작품 하나를 쓰고 싶어했습니다. 그것은 어떤 종류의 작품이냐 하면 반기독교적 작품이었습니다. 사람이 작품만 읽으면 기독교를 떠나서 적그리스도가 되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나서 마지막으로 성경의 약점과 거짓, 그리고 허구성을 폭로하기 위하여 신구약성경을 읽기로 작정했습니다. 창세기에서부터 읽기 시작한 그는 복음서를 다 읽기 전에 마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하였고 요한계시록을 다 읽기 전에 돌 같은 마음이 물 같이 녹게 되었습니다. 큰 감동에 복받쳐서 그리스도에게 항복한 그는 기독교를 농락하려던 붓을 꺾어버리고 새로운 붓으로 그리스도의 사랑과 속죄를 주제로 하여 만인의 심금을 울리는 대작을 쓰게 되었으니 그것이 저 유명한 작품 '벤허'입니다. (21세기 예화-성경)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어떤 목사가 한 유명한 법률가를 꼭 회개시켜야 한다는 책임감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법률가의 사무실을 방문하여 돌아오는 주일 저녁예배에는 꼭 참석해 달라고 신신당부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마침내 법률가가 응낙하였습니다. 그래서 목사는 특별히 그 법률가를 위하여 말씀을 준비하였습니다. 약속한 당일, 설교가 끝나고 이어서 아직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새롭게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도록 초청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법률가가 제일 먼저 앞으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는 저절로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후에 목사가 법률가에게 물었습니다. '제 설교 중 어떤 부분이 당신으로 하여금 주님에 대한 말씀을 고백케하고 용서를 구하게 하였는지요?' '제가 믿음을 갖게 된 것은 목사님의 설교 때문이 아니었어요. 그것은 바로 목사님이 설교 본문으로 사용한 성경 구절 때문이었지요.' 하나님의 말씀은 힘이 있어 잠자는 영혼들을 깨워 영적인 생명으로 인도하기에 충분합니다.(살아 있는 말씀)
  기가 막히도록 좋은 칼을 만드는 유명한 대장장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칼로 갑옷을 한칼에 두 조각낼 수 있다고 장담했습니다. 왕이 이 소문을 듣고 그 대장장이를 불러 자신의 갑옷을 두 조각 내보라고 명령했습니다. 만약 하지 못한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 대장장이는 칼을 단 한번 휘두르고는 칼집에 꽂았습니다. 왕이 다시 호통을 치려 하자 대장장이는 '왕이여 몸을 한번 흔들어 보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몸을 흔들자 두 조각이 나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왕은 놀라운 칼잡이의 실력 때문에 자신의 몸이 두 동강난 줄도 몰랐던 것입니다. 이 전설은 하나님의 손에 들린 검의 위력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속에 있는 죄를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속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위기를 만드시면 우리가 순간적으로 무언가 심오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들릴 때 전혀 신경쓰지 안하기 때문에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조차 알 수 없겠지만 몇 개월 후 위기가 닥치고 갑자기 하나님의 말씀이 다가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그 때 우리는 '이 말씀이 어디서 왔지?'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 말씀이 어디서 왔지?)

말씀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왕성케 합니다. 살았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말씀 중심으로 1907년 처럼 다시 부흥하는 교회가 되도록 함께 하는 모두가 됩시다.

출처/강성찬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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