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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사람 (마태복음 3:1-4 , 4:1-2)
이스라엘 성지에 가서 가장 충격을 받고 놀라는 것은 광야 때문입니다. 낙심이 될 정도입니다. ‘이 땅이 무슨 성지냐? 이런 땅이 무슨 가장 축복받는 가나안이냐? 젓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했는데 물도 안 흐른다. 이런 땅이 어디 있느냐?’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성지의 모습입니다. 이스라엘 땅은 면적도 얼마 안 되거니와 거의 광야입니다. 낮에는 40도 50도 오르내리는 뜨거운 열기가 용광로 같고, 찜질방보다 더 훨씬 뜨거운 열기가 막 솟아오릅니다. 1분도 서있을 수 없습니다. 밤에는 한없이 춥습니다. 과일나무, 곡식하나 심을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 때부터 오늘날까지 곡식하나 심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지의 모습입니다. 아브라함이 살았던 헤브론 브엘세바는 광야입니다. 저주의 땅입니다.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을 보기 좋게 우리가 그러지 그 주변이 전부 광야입니다. 사해바다에서 저 요단강까지 요단강을 거쳐서 갈릴리까지 남북 다 동서남북 어디를 봐도 삭막하고 메마른 저주의 땅입니다. 설수 없는 깎아지는 듯 한 절벽 칼날 같은 먼 계곡들이 천천만만을 이루고 있고 높은데서 돌 하나 구르면 몇 백 미터 바로 떨어집니다. 전갈과 뱀이 있는 그 광야, 이스라엘은 다 광야라고 보아도 됩니다. 왜 하나님은 이곳으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왜 이곳으로 선민을 다시 이끌어 내셨습니까? 오늘날까지 유대인들은 왜 이 땅을 이렇게도 좋아하고 미국같이 영국같이 좋은 곳에 살면서도 이스라엘의 꿈은 시온이즘입니다. 여기서 사는 것입니다. 이 땅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엄청난 전쟁, 별의 별 일 겪으면서도 지금도 팔레스타인이 성지로 몰려들며, 이 땅 아무 가치 없는 이 땅을 왜 이렇게도 좋아합니까? 이 땅이 어떻게 이렇게 축복의 땅이 될 수 있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보는 것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의 힘은 바로 이 광야에 있습니다. 광야는 성경이 말해주는 바로 모든 신비한, 숨은 비밀이 말할 수 없이 숨겨져 있는 거룩한 영적 보고의 땅입니다. 이스라엘의 축복과 능력은 바로 이 광야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광야를 분리해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 영적 힘은 바로 이 광야에서 나옵니다.
오늘날 세계에 이스라엘 민족이 우뚝 선 배경에는 광야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광야는 은혜의 땅입니다. 축복의 땅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 놀라운 일들은 광야에서 일어나지 않습니까? 오늘 읽어드린 세례요한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입니다. 세례요한은 원래 제사장의 아들입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아들이지만은 이 세례요한은 광야로 들어가서 오늘 무엇을 먹었다고 나옵니까? 메뚜기 잡아먹고 몸에는 뭘 걸쳤습니까? 짐승 가죽을, 약대 털옷을 간단하게 두르고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40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목마르게 갈급하게 기다렸습니다. 끊임없이 말씀해 주시던 선지자가 뚝 끊어지고 400년 동안 메시아를 기다리고 선지자를 기다렸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의 소리를 광야에서 들리게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광야로 몰려들었습니다. 가보니까 완전히 수염이 온 얼굴에 가득한, 털이 나있는 형편없는 옷을 입은 세례요한이었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잘 먹고 평안을 누리며, 부유하게 잘 입고 아주 영광스러운 삶을 살 텐데 제사장의 옷을 벗어 던지고 약대 털옷을 입으며, 양다리를 뜯어야 할 사람이 지금 메뚜기를 잡아먹으면서 광야에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세례요한이 위대한 선지자였고 예수님은 세례요한을 찾아 광야로 가서 만나서 세례를 받지 않습니까? 오늘 안 읽어드렸지만 이 다음 세례요한에게 예수님이 세례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세례요한이 세례를 베풀었던 자리를 저희들이 가 보았습니다. 요단강 지역인데 거기도 완전 광야입니다. 거기 가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세례 받으시고 바로 성령에게 이끌리어 광야로 가셔서 40일 동안 금식기도를 하십니다. 예수님도 광야, 세례요한도 광야, 광야가 얼마나 놀랍습니까?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이끌어 가셨다 그랬습니다. 성령이 인도하는 곳은 옛날이나 오늘이나 광야입니다. 광야로 간 사람들은 다 위대한 하나님의 사역에 쓰임 받고 인류역사에 최고의 큰일을 했습니다. 광야로 간 사람들, 광야를 귀히 여긴 사람들은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브라함이 광야 출신이지 않습니까? 사도바울도 갈라디아서 1장 17절에 보면 광야로 가서 예수님 믿고 3년 동안 광야에서 기도하고 은혜 받으며, 새 사람 되고 변화되며 주의 일을 했습니다. 3년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광야에서 3년, 모세는 40년 광야에서 양을 쳤고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인도했으니 그의 생애는 80년을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우리가 가야할 곳이 어디입니까? 광야입니다. 광야는 메마른 곳입니다 삭막한 곳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은 곳입니다. 광야는 모든 생명이 살 수 없는 식물 동물이 죽어가는 곳이지만 영적으로는 내 영혼이 사는 곳이 광야입니다. 광야로 들어가면 내 영혼은 살게 되어져 있습니다. 아무것도 먹을 것, 입을 것이 없는 메마른 황폐한 땅이지만 영적으로는 내 오아시스가 터져 나오는 생수가 터져 나오는 곳이 바로 광야입니다. 겉모양은 약대 털옷을 입고 형평 없지만은 그의 심령은 거룩하고 새로워지며 정결함을 입는 곳이 바로 광야입니다. 광야를 찾아서 불행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늘 현대인들이 도시를 찾고 유흥가를 찾으며, 연락의 장소를 찾고 사람 있는 곳으로 가서 모두 불행해지고 고통당하며 슬픔이 오는 것이지, 광야로 간 교회 광야를 찾은 사람은 망한 일도 없고 불행한 일이 일절 없습니다. 현대문명이 우리로 하여금 광야를 없이하게 하고, 인간의 지식과 물질과 능력으로 에덴동산같이 아름답게 꾸몄지만 우리의 가정은 파괴되고 실질적인 우리의 삶은 광야같은 비참함이 왔습니다. 광야로 간 사람들은 다 새로움과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는데 이러한 현대문명 속에서 만족을 얻으려고 하는 현대인들은 소돔성을 찾았던 롯과 같이 패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갈 곳은 바로 광야입니다. 예수님은 40일 금식기도를 하실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광야에서 복음을 전하셔서 오병이어의 기적도 광야에서 베푸시고 끊임없는 광야와 관계된 삶을 사시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광야의 은혜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광야로 들어가는 사람은 새로운 삶을 얻습니다. 주님을 만납니다. 엘리야도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모세도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광야에 들어간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만납니다. 광야를 거쳐야 담대해집니다. 그런 곳을 지나야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용기가 생깁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현대인들은 염려가 너무 많습니다. 두려움이 왜 그렇게 많습니까? 조그만 것도 참지 못하고 요사이는 얼마나 자살을 많이 하는지, 부모가 조금 꾸중해도 죽어버립니다. 부부간에도 조금 다투면 아파트에서 나가떨어집니다. 시험 떨어졌다고 죽고 대학 못 갔다고 떨어지며, 얼굴 성형 수술했다가 계획대로 안됐다고 죽고 전부 죽습니다. 안 죽어도 조그만 일에 흥분하고 조그만 일에 좌절하며 조그만 일에 인생을 포기합니다. 다 광야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현대인들은 광야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왜 죽습니까? 살아야지.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데 광야를 거친 사람은 어떤 일, 환경에 적응합니다. 광야에 그 모든 어려운 환경이 있기 때문에 어떤 일에도 적응합니다. 여러분! 자녀를 그냥 얼렁얼렁 길러놓으면, 그 아들은 그 자녀는 광야 생활에 승리할 수 없습니다. 영적으로 광야를 거쳐야 광야 같은 세상을 잘 살 수 있습니다. 이 광야 같은 세상에 얼마나 환란, 시험, 재난, 사고, 불행한 일이 많습니까?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지 않고는 세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광야를 거쳐야 광야를 이길 수 있습니다. 광야를 감당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광야를 거쳐야 감사한 마음이 생깁니다. 광야를 지나봐야 모든 것이 감사합니다. 메뚜기 하나 잡아먹어도 감사하고 이만한 과일 하나 있어도 감사하며, 집에서 밥을 주어도 감사하고 밥 안주면 라면 끓여 먹고도 감사하며, 먹을 것 있는데 왜 감사 안 하겠습니까? 옷을 입으면 입어서 감사하고 잠을 자면 잠을 자서 감사하며, 걸어가면 걸어가서 감사하고 차타면 차타서 감사하며, 버스타면 버스타서 감사하고 다 감사합니다. 건강하게 살아있는 이 모든 삶에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데 항상 감사가 넘치는 줄로 믿습니다.
광야를 거쳐야 오직 주님입니다. 주님 중심한 삶, 사람 믿을 거 없습니다. 내 주변에 사람 이글이글하고 인기가 많고 먹을 거 입을 거 많은데, 하나님 찾습니까? 주님 있습니까? 실제로는 예수님 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광야로 가야하고 광야가 소중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은 광야로 인도합니다. 교회는 항상 광야와 같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갈 곳은 어디입니까? 우리의 설 곳이 어디 입니까? 한국 교회가 살려면, 우리 모든 성도들이 살려면, 영적으로 승리하려면, 광야로 가야합니다. 광야에 가서 기도해야 합니다. 광야에 가서 부르짖어야 합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 살아날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 눈물 흘리고 광야에서 회개하며, 광야에서 성령 충만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복음을 증거 하는 증인으로 사명을 다하고 하나님의 몸 된 교회에 충성하는 기둥 같은 성도들이 될 수 있습니다. 광야 없이 하나님을 만나니 예배의 기쁨이 없습니다. 교회 나와도 은혜를 못 받습니다. 광야를 떠나서 주님을 만나지 않고 세상으로 나가니 만신창이가 되어서 돌아옵니다. 얻어터집니다. 하나님 없이 광야를 거치지 않고 사람 만나니 사람에게 속고 사기당하며, 사람에게 온갖 상처 다 받습니다. 하나님은 만나지 않고 사업하니 사업이 짐이 되어 사업 때문에 고민하고 걱정하다가 그만 자살해 죽습니다. 하나님 만나지 않고 부부간에 만나니까 오히려 싸움만하다가 세월 다 보냅니다. 만나 참 사랑을 하나도 못하고 동물적인 사랑이나 하고 그 외에 정말 인간적인 성숙한 사랑 하루도 못하고 톡탁 거리다가 툭 끊어집니다. 광야를 거쳐야 이 모든 축복을 축복으로 알고 은혜를 은혜로 알고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광야는 소중합니다.
우리 한국교회 축복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광야에서 왔습니다. 일제시대 때 그 많은 환란, 순교, 엄청난 핍박, 6.25사변의 그 많은 전쟁, 우리 한국 교회는 광야가 있는 민족입니다. 많은 고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눈물로 모두 밤을 새워 부르짖고 우리 믿음의 어머니들, 믿음의 선조들,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저는 60년대부터 목회를 했는데 설교하면 90%가 웁니다. 웃는 일은 없습니다. 기도한번 하고 일어나 보면 마룻바닥에 콧물, 눈물, 다 떨어집니다. 누구는 울고 누구는 안 우는 게 아닙니다. 다 웁니다. 우리는 콧물, 눈물 흘리며 살아왔습니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힘입니다. 그럴 때 교회는 살았습니다. 광야가 있으니까 삽니다. 광야가 있으니까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한국교회는 광야를 잃어버렸습니다. 너무 많은 축복 속에 은혜 속에 부유함과 번영 속에 광야에다 나무를 심어 교회마다 에덴동산 같습니다. 풍성합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위기입니다. 저는 우리 한국 교회에 안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그런 세계를 잘 모르는데 많은 분들이 그런 분들에 대해서 증오하고 모이면 막 욕하고 저주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안티가 있어야 됩니다. 권력도 환란도 부딪히고 안티를 어디서나 만나야 교회가 삽니다. 사도행전의 교회는 항상 안티가 있었습니다. 이걸 나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한국 교회는 끝까지 안티가 있어야 됩니다. 그냥 두면 안 됩니다. 잡초는 가만히 두지만은 곡식을 그냥 두면 안 됩니다. 항상 가만히 두면 안 됩니다. 교인은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교회가 되고 능력 있는 교회가 되려면 안티하고 같이 있어야 됩니다. 교회가, 교회 지도자가 나라를 이끌어 가면서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이렇게 하면 교회가 살줄 압니까? 그러면 더 위기가 옵니다. 한국 교회에 앞으로 그런 일이 와서는 안 됩니다. 권력의 주변에 주의 종들이 얼렁거리면 안 됩니다. 왔다 갔다 하면 안 됩니다. 교회는 항상 광야에서 주님과 함께 외롭게 ‘아버지! 우리를 살려주세요.’라고, 하나님 앞에 눈물로 부르짖어야 목사도 살고 교회도 살며, 성도가 사는 줄로 믿습니다. 교회가 오는 어려움, 성도들이 오는 어려움은 축복의 자원입니다. 광야가 이스라엘의 영적 힘이라면, 여러분 주변에, 여러분의 가정에, 여러분의 앞날에, 여러분 자녀에게 오는 이 광야는 여러분에게 영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주실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선물인 줄로 믿습니다.
세계 육상계를 잡고 있는 나라들이 많은데 그 중에 대표적인 나라가 에티오피아입니다. 에티오피아는 여러분이 잘 아는 대로 맨발의 선수, 1960년 로마 올림픽에 금메달을 따고 그때까지 세계 기록이 2시간 26분입니다. 그런데 이 기록을 십 분 대로 처음 단축한 사람이 바로 에티오피아 선수 아베베라고 하는 선수입니다. 아키라 비킬라 아베베라고 하는 이 선수는 맨발로 뛰었습니다. 여러분 자동차로 가도 42Km 한참 갑니다. 한참은 아니지만은 42Km 가 보십시오. 보통 멉니까? 60Km로 자동차로 달려도 40분 가 야 됩니다. 42Km 얼마나 멉니까? 신을 신고 가도 다 해어지는데 맨발로 42Km를 뛰었습니다. 맨발의 청춘 대단하지 않습니까? 이분이 아베베입니다. 이 분은 한번만 이긴 게 아닙니다. 1964년 동경 올림픽에서 또 금메달을 땄습니다. 역사에 없는 일입니다. 올림픽에서 어떻게 두 번이나 다 금메달 딸 수 있습니까? 그때는 2시간 12분대. 십 분대 또 단축을 시킬 수 있는 기록을 이 아베베가 혼자서 다 놓습니다. 놀라운 일이지 않습니까? 여러분 십분 정도를 벌려놓는 똑같이 뛰는 사람, 십분 간격으로 떨어뜨린다는게 보통 잘 달리는 것이 아닙니다. 육상은 아베베만 아닙니다. 2004년 세계 육상 올해의 선수로 뽑힌 사람 케니시아도 에티오피아 사람입니다. 5,000m, 10,000m 세계 기록입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또 10,000m, 3,000m에 우승한 사람 베켈라도 에티오피아 사람입니다. 데파르라고 하는 이 여자는 3,000m, 5,000m, 10,000m 3개에서 1위입니다. 여자인대도 3개 다 메달 갖고 있습니다. 최고입니다. 최고의 선수입니다. 그 외에도 굉장히 많습니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많이 있는 곳이 바로 에티오피아입니다. 우습게 알면 안 됩니다. 에티오피아에서 왜 이렇게 세계적인 선수가 많이 나오느냐? 모르는 분은 모릅니다. 이게 진리입니다. 저는 에티오피아를 많이 갔기 때문에 압니다. 왜 그렇습니까? 에티오피아는 수도 아디스아바바는 2,700m 넘습니다. 도시가 이렇게, 산에 이렇게 되 있는데 제일 윗동네로 올라가면 3,000m로 올라갑니다. 그러니까 산소가 얼마나 부족한지 모릅니다. 여기 하고는 비교가 안 됩니다. 그런데서 늘 걸어 다니고 그런데서 훈련 받으니까 과학적인 훈련을 안 해도 그 지역이 과학적인 훈련보다 열배나 더 좋습니다. 산소가 없는 그 어려운 곳에서 살아가고 뛰어 다니니, 밑에 내려오면 새가 됩니다. 못 당합니다. 지난번 2004년 그리스에서도 러시아 선수가 아무리 따라가도 3,000m를 달리는데 마지막 100m를 남겨두고 육상 100m같이 뛰어가 버립니다. 힘이 남습니다. 못 당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어떻게 보면 이 높은 곳, 산소가 부족한 것, 매일 숨차게 사는 것, 어려운 것 같지만은 그것을 활용하는 민족, 영적으로 그것을 잘 활용하는 민족이 세계적인 지도자가 되고 성공하는 사람이 되며, 세계를 움직이는 놀라운 과학과 문화가 스포츠 할 것 없이 거기서 나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나쁜 환경을 원망하고 불평하면 안 됩니다. 감사함으로 이겨내면 거기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엘리야도 엘리사도 다 광야 출신입니다. 광야에서 힘들게 어렵게 거칠게 살면서 저들은 아합과 싸워 이길 수 있었고, 별의별 어려움 환란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한국교회도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원수 마귀가 방방곡곡에서 얼마나 많은데 우리 한사람 여러분을 다 넘어뜨리려고 하기에 광야 정신이, 야성이, 근성이, 헝그리 정신이 있어야 됩니다. 교인은 약할 때는 어린 아이한테도 지지만은 믿음을 지킬 때는 세계가 달려들어도 못 이겨야 그게 진짜 교인입니다. 말 한마디에 나가 뚝, 뚝 떨어지고 공갈치면 뚝, 뚝 떨어지고 어려운 시험 오면 뚝뚝 떨어지는 거 교인 아닙니다. 광야를 거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성도는 노예 근성이 있어야 됩니다.
벤허라는 영화에 보면 막 그 채찍에 맞으면서 마지막 경주할 때 막 때려도 달리는 이런 정신이 있어야 됩니다. 할렐루야! 십자가의 정신, 구속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이 세상을 살 때에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예수 안에서 누가 나를 대적하겠느냐?’ 이 험한 세상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우린 모든 일에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보라 능력의 주님 바라보아라 주의 이름 부르는 모든 자를 힘 주시고 늘 지켜 주시리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님의 얼굴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님의 얼굴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 주시리.♬
우리 교회 3월 특별새벽집회, 9월 특별새벽집회는 27년 지나오면서 우리 교인들에게 엄청난 힘든 시간이고 여러분이 너무너무 고생을 많이 하십니다. 그러나 저도 말할 수 없이 어렵습니다. 얼마나 어렵나 하면 하여튼 몸이 몇 kg이 항상 줍니다. 빼짝 마릅니다. 왜 그렇습니까? 잠을 못 자서 그렇습니다. 첫째, 4시에 시작하니까 3시부터 일어나야 합니다. 12시까지 원고 준비 다해 합니다. 어렵습니다. 못 견디게 몸이 줄고 금식하며, 그러니까 얼마나 긴장하고 벌써 3월이지 만은 12월 넘어서면 내년 3월 걱정합니다. 아휴~ 3월전에 주님 오시면 좋겠다. 이런 마음, 너무너무 힘듭니다. 세상에 3월이 오는 것처럼 내게 힘든 일이 없습니다. 원고정리도 어렵고 이거 감당하기가 설교도 몇 번 해야 되며, 그러면서 다 일해야 되니 너무너무 어렵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나면 얼마나 제가 새로워지고 제 위치로 돌아가며, 제가 주님을 다시 붙잡게 되고 제가 약함을 알면서 주님을 의지하니 여러 가지로 얻는 은혜가 너무 많습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은혜를 얻습니까? 잘 먹고 좋은 곳에 가 대접받고 그런데서 우리가 은혜를 받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잔을 기쁨으로 받고 인도하는 곳 광야라고 하여 피하지 말고 나가면 그 곳에서는 다 황금을 캐냅니다. 황금을 캐러간 사람은 돌도 못 캡니다. 오늘 우리 한국 교회는 너무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광야를 버리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성도들이 은혜를 받고 광야를 피해 삽니다. 광야 없는 곳에 가서 지상의 낙원을 누리고 행복하게 살려고 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흥청거리며 놀고먹고 마시는데서 이걸 축복으로 착각합니다. 교회마저도 그렇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거는 종말론적으로 하나님 앞에 저주받는 길입니다. 안 되는 길입니다.
여러분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조금 전에 에티오피아 육상선수 아베베는 원래 황제 근위병이었습니다. 쫄병 병장이었는데 이거 갔다 오고 뭘 얻었느냐 장교가 되었습니다. 셀라세 황제가 장교로 만들었습니다. 그때 선물을 주는데 황제가 무슨 선물을 하느냐하면 폭스바겐이라고 하는 독일제 차를 줬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성공하면 인기도 따라오고 영광도 따라오며, 사병이 장교가 되고 돈이 많아지며 여자도 생기고 흥청거립니다. 폭스바겐 타고 막 다니다가 교통사고 나서 평생 아베베가 불구자가 됩니다. 이걸 잘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면 차오고 집 따라오며, 명예 따라오고 인기 따라옵니다. 성공해 보십시오. 인기가 오면 인기 따라 다 따라오고 출세하면 출세를 따라 돈 생기고 집 생기고 명예 생기고 안 생기는 게 없습니다. 다 따라옵니다. 교회도 주의 종들이 기도해서 교회 일으키고 나면 부흥하고 나면 교인들이 은혜 받았다고 자가용도 집도 선물해주고 돈도 가지고 옵니다. 그러나 그거 날름날름 받으면 거기에 올라타다가 목사는 사고 납니다. 죽습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저는 개척하고 저 있는데도 얼마나 차가 많이 들어왔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안탔습니다. 저는 17년 동안 전세 살았습니다. 몇 만 명 모여도 전세 살았습니다. 우리 장로님들이 좋은 집들 얼마나 구하러 다니고 ‘이거하세요.’해도 제가 끝끝내 안 받아 줬습니다. ‘장로님과 나와의 관계는 개척했기 때문에 긴장관계 사는 게 좋아.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이런 식으로 우리 교회 가면 안 돼. 나는 주의 종으로 내 사람 하나 없이 외롭게 살아야 되고 장로님들도 그렇게 살아야 돼.’ 그 집 가지고 지금 갔더라면 40-50억 되었을 것입니다. 필요 없습니다. 그게 다 폭스바겐 됩니다. 폭스바겐 안합니다. 끝까지 난 안 합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면 됩니다. 할렐루야! 우리 교인들도 성공하고 가정을 버리는 분들 제가 너무 많이 봤습니다. 우리 교인 중에도 남편 위해서 눈물로 부르짖고 낮에도 회사 가서 일하해 남편 성공했습니다. 사무실에 가보니 어마어마하게 벌었습니다. 그런데 그 남편 집사님은 부인 버리고 비서하고 살림 차려 이혼하고 새 가정 꾸몄습니다. 그래서 저는 남편위해 기도할 때 돈 잘 벌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꼭 잘 사는 거보다도 어쨌든 잘 믿는데 맞추어서 믿음 달라고 기도해야지 돈 벌게 하면 남편 잃는다고 말합니다. 남편 잃습니다. 그렇다고 또 망해라 그런 말은 아닙니다. 잘 믿게 해야 됩니다.
여러분! 우리 아이들 성공하게 해 주십시오. 좋은 대학, 좋은 곳에 취직해 돈 벌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자녀 잃습니다. 부모하고도 원수 됩니다. 아이도 망칩니다. ‘너는 먼저 크리스챤이 되라.’ 예수 잘 믿고 성령 충만한 아들 되면 천리만리 갔다가도 돌아오지 만은, 예수님 없으면 옆집 아파트에 살아도 안 찾아옵니다. ‘바빠요. 아빠 바빠요.’ 안 옵니다. 그저께 어떤 분이 그럽니다. 한국 사람으로 세계적으로 성공한 최고의 사람인데 그 어머니가 6.25사변 때 이 아들을 길러서 그렇게까지 성공했습니다. 어머니는 권사님입니다. 밤, 낮으로 눈물 흘려 기도합니다. 이 아들이 그렇게 성공하고 국회의원 몇 번을 해도 이 어머니한테 전화 한마디 안 합니다. 며느리가 들어와서 어머니의 나쁜 것만 늘 일러줍니다. 그래서 너무 화가 나 목사님이 찾아 갔습니다. 딱 가서 인사하면서 그랬습니다. ‘당신 그럴 수 있냐, 당신 유복자인거 내가 안다. 당신 어머니 우리 교회 나와. 당신 어머니한테 전화 한 통화 안하고 그럴 수 있어? 당신 어머니를 그렇게 대할 수 있느냐? 어머니는 너무 낙심해 그러는데 당신 그럴 수 있냐?’고 그랬더니 울며 회개하더랍니다. ‘목사님! 잘못했습니다. 다음 주일날 교회 나가겠습니다.’ 그래 와 가지고 어머니한테 절하고 사죄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국회의원 됐다고 다 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저버리고 천하에 나 혼자 잘난 척 하면 안 됩니다. 광야를 거쳐야 됩니다. 할렐루야! 지난 주 신문에 미국의 제2의 몬로라고 하는 스미스라는 여자분이 서른 아홉 살에 의문의 죽음을 가졌습니다. 영화계나 세계 미인계도 세계적인 미인도 늘 나오는 게 아닙니다. 몬로가 간 다음 30년 지나서, 몬로 같은 인물을 그렇게 기다렸는데 바로 몬로를 닮은 분이 스미스입니다. 1992년 플레이 보이지에 표지에 모델로 나오면서 세계가 열광하는 15년 동안 전 세계 연예계를 주름잡는 분이 이 스미스라고 하는 여자입니다.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그런데 모든 자라난 배경이 몬로하고 비슷합니다. 17살에 이미 아이를 낳았고 몬로하고 다 비슷합니다. 또 이혼하고 끊임없이 상처를 받으면서도 인기를 얻어 전 세계 최고의 미인이 됩니다. 그러면서 드디어 이 분도 석유재벌 89세 되는 마셀이라고 하는 분과 20대에 결혼을 합니다. 또 이분이 마셀하고 결혼하려고 막 여러 가지로 그랬습니다. 마셀은 89세인데 당치도 않는 일을 그렇게 합니다. 마셀은 열넉달 살고 돌아갑니다. 여러분! 80대에 조용하게 사십시오. 그거 안 될 일, 그거 살 수 있겠습니까? 그 분하고 스미스는 온갖 영광 누리고 그 유산 물려받으며 인기도 다 얻었지만은 17살에 난 첫 아들이 지난해 10월에 죽었습니다. 이번 2월 달에 이분은 불행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여러분! 너무 인기 얻고 너무 잘살고 너무 높이 되고 너무 성공하고 너무 예쁘고 그러면 한없이 올라가고 좋을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 분이 인기가 조금만 덜해도 팔십 구십세 까지 잘 살터인데 너무너무 높이 올라가서 다 일찍이 끝납니다. 적당하게 만나서 예수님만 잘 믿으면 되지, 인물 성형수술 어지간하면 되지, 아예 코 없으면 야 붙이지 그러나 있으면 있는 대로.
할렐루야! 내 모습 이대로 주님이 좋다는데 왜 우리가 자꾸 바꿉니까? 스미스를, 인기를, 명예를 따라가면 안 됩니다. 세상으로 나가면, 아름다움을 쫓아가면, 좋은 것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하늘 문 열어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나가야 합니다. 한국 교회 주의 종들도 신학교에서 광야가 없습니다. 요사이 목사는 일 년에 만 몇 명이 목사 안수를 받는데 일할 곳은 십분의 일밖에 없고 9000명은 그 다음에 할 일이 없습니다. 한국이고 미국이고 목사들이 할 자리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광야를 거치지 않아서 일이 없습니다. 광야를 거치면 일이 너무너무 많은 세상인데 나 잘 먹여주고 편히 어디 목회할 자리 찾으니... 시골을 안가, 서울 아니면 서울 수도권이라도 이글이글 머물려고 그럽니다. 교인들도 장로님을 세울 때도 좀 뭐 헌금한다고 세우는데 그러다가 큰 일 납니다. 광야를 거쳐야 됩니다. 저 분이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확실히 영접했는지 금식기도 몇 번했는지 영적으로 이런 절차가 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 감당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이 세상일에 협조하고 세상 사람들이 가는 길에 도와주며, 더 좋은 나라 만드는 일에 일익을 감당하고 고아원 양로원 하나 세웠다 해서 교회 사명을 다하는 게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 앞에 버림받은 철저하게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인류를 위해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영접하고 믿고 의지하고 그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을 만들어 내는 곳입니다. 할렐루야! 세상이 아무리 좋다 해도 세상은 변화될 수 없습니다. 더 좋은 대학, 더 좋은 사회, 더 좋은 자동차가 나오고 집이 나와도 우리 인간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은 예수를 떠나면 길이 없습니다. 예수 아니면 승리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의 사람을 만들어서 믿음으로 사는 이런 심령을 만들 때만이 교인도 교인이고 교회도 교회이며, 우리는 이 나라와 이 민족을 건져낼 줄로 믿습니다. 오늘 이 시간 나온 모든 성도들은 주님을 바라보고 항상 시간이 있을 때는 기도하기 바랍니다. 며칠 전에 저가 어떤 분하고 식사를 했는데 아주 우리나라 국회에 인기 있고 힘이 있고 그런 분인데, 일주일을 기도원에서 금식하고 간답니다. 그건 자기가 알아서 합니다. 이것은 광야로 누구를 보러 가는 게 아닙니다. 자기가 1월1일이 되면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갑니다. 그래야 광야 같은 세상을 국회의원을 하면서도 상처받지 않고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악한 세상 전갈이 이글거리는 세상 광야를 거치지 않으면 이겨낼 수 없습니다. 기도해야 됩니다. 영적으로 깊이 들어가야 육적인 삶이 피곤하지 않고 독수리 같은 새 힘을 얻어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출처/김삼환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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