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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 가야할 사람들 (본문 눅16:19-31, 23:39-43)

by 【고동엽】 2022. 9. 29.

 천국에 가야할 사람들  (본문 눅16:19-31, 23:39-43)


저는 최근 두주간 동안 장례에 현장에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저는 다시 한번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강하게 도전해오시는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천국과 지옥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교해야 필요성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전부다 천국에 가야할 사람들입니다.교회에 다니는 우리 모두가 바로 천국을 가야 합니다.
바로 오늘은 이 주제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한국교회가 두가지 사실로 비판을 받습니다. 하나는 지나치게 기복적이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너무 타개적이라는 것입니다. 즉 너무나 내세적이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기복적이며 교회에만 관심이 있고 세상에는 관심이 없고 천국 생각만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기복적이라는 것은 그래도 어는 정도 수긍이 갑니다.그러나 저는 한국교회가 내세신앙이 크다는 비판을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국교회가 기복신앙에 빠지는 것은 내세신앙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해서 부정 부패를 저지르며 사는 것은 바로 내세 신앙이 부족한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 영원한 세계를 결정한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한국인의 종교의식을 조사했습니다. 1000명의 기독교인과 1000명의 비기독교인에 대해 각각 질문했습니다. 먼저 기독교인들에게는 어떤 천국을 믿습니까? 영원한 세계의 천국과 지금 이세상에서 하나님을 믿고 누리는 상징적인 천국을 믿습니까? 하였을 때 후자 쪽이 41.2% 가 나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벌써 자유주의 신학이 깊이 퍼져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었습니다. 비기독교인들에게 물었습니다. 내세즉, 영원한 천국을 믿느냐? 하였을 때 믿는다는 사람이 33.9%가 나왔습니다.
결론은 이것입니다. 믿는 사람이든지 믿지 아니하는 사람이든지 내세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너무 빠져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내세에 대해 관심이 없을까요?
첫째,지나친 물질주의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현실에 너무 집착하고 지금 살아가는 것에만 많은 관심이 쏠려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죽은자들에 대한 태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분의 영혼보다도 그의 재산에 더욱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둘째, 언제부턴가 한국교회의 내세에 대한 무관심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축복받는 것에 집중되어 있고, 천국과 지옥에 대한 설교보다는 현실의 삶에 대한 설교가 중심적으로 선포되고 있습니다.
갤럽조사에서 어떤 설교를 듣기 원하느냐?에 대한 질문에 있어서 내세에 대한 설교를 듣기 원한다는 대답은 1.5%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성경의 가장 중요한 주제인 "내세"에 대해 우리는 알아야 하고 천국에 대한 소망과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영원한 세계는 어떠한 곳입니까?
먼저, 그곳은 죽은 즉시로 가는 곳입니다. 바로 우리가 숨이 끊어졌을 때 가는 영원한 세계입니다.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으로 들어갔고 부자는 음부로 갔습니다.아브라함의 품은 천국(낙원)을 의미하고 음부는 바로 지옥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둘은 더 이상 그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과 지옥의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둘째, 그 곳은 의식이 살아 있는 곳입니다.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자기 형제에게 나사로를 보내어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곳에 오지 못하게 해달라고 합니다. 이렇듯 부자의 의식은 살아 있는 것입니다. 나사로 또한 위로를 받는 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의식이 계속 되므로 그는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즉, 내세에서의 의식은 이 세상을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자살이 우리에게 치명적인 까닭은 여기에도 있는 것입니다. 죽음은 우리의 의식을 멈출 수 없습니다.

세째, 영원한 세계는 두개의 대조적인 장소가 있습니다.
바로 지옥과 천국이 있습니다. 천국에서는 위로를 받지만 지옥에서는 본문에서 보여주듯이 계속되는 고통이 있습니다. 음부의 고통과 고민은 끝나지 않습니다. 영적인,정신적인 고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전해야 하고 믿게 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평화와 축복도 중요하지만 내세에 그들은 천국에 가야합니다. 나의 가족과 나의 이웃이 고통받는 곳에 가서는 안됩니다. 하나님도 그들이 지옥에 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마귀를 선택해서 마귀를 따르니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천국은 영원한 위로와 사랑이 있습니다.(계21:3)

네째, 그 두 장소는 서로 왕래가 불가능한 곳입니다. 불순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또는 헌금을 많이 거둬들이기 위한 수단으로 지옥 갈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내용을 이야기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바로 천국과 지옥은 결정되어져서 우리가 죽어서 그곳에 갔을 때는 그 두 곳은 서로 왕래할 수 없습니다. 본문 22절에 나와있듯이 천국에 들어간 나사로는 천사들에게 받들여 아브라함의 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도 이렇게 천사들에게 받들여 아브라함의 픔으로 들어가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천국과 지옥으로 나눠지는 결정은 무엇입니까? 30절에서 부자는 바로 회개의 필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회개가 우리를 지옥과 천국으로 나눠지는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나의 죄를 인정하고 자신을 하나님께 돌이켜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안에 천국에 대한 소망과 확신을 갖고 하나님앞에 진정으로 회개하며 자신을 돌이켜 우리 모두 천국에 들어가기를 축원합니다.

출처/오경남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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