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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준 사람이 금조각을 주었다. (욥 42;10-11)

by 【고동엽】 2022. 9. 29.

상처준 사람이 금조각을 주었다.  (욥 42;10-11)

<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이에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및 전에 알던 자들이 다 와서 그 집에서 그와 함께 식물을 먹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금 한 조각과 금고리 하나씩 주었더라>(욥 42;10-11)


유럽에 수도원을 제일 먼저 세운 사람이 있습니다. 마카리우스입니다. 그가 수도원을 세우게 된 동기가 있습니다.
그가 목회하던 교회 홀로 사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이웃 남자와 같이 정겹게 지내다가 임신을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누구 아이냐고 추궁을 하였습니다. 그 여자는 차마 그 남자 이름을 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카리우스 목사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거짓말이었습니다. 교회에서는 너무나 뻔뻔한 목사라고 그를 내쫓아 버렸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를 위선자라고 손가락질을 하였습니다. 마카리우스는 그 아이를 길렀습니다. 심지어는 업고 그 교회를 다녔습니다. 다른 목사님이 부임하여서 설교하는 데 아이를 업고 뒷 자리에 앉아 있곤 하였습니다. 교인들은 동네 사람들이 챙피하다고 제발 이 교회만은 나오지 말아 달라고 신신 당부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카리우스는 아랑곳 하지 않고 그 아이를 업고 교회 뒷 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리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를 지극히 사랑하여 주었습니다. 그 여자는 괴로워서 견디다 못 하여 사실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교회는 난리가 났습니다. 모든 교인들이 몰려 와서 무릎을 끓고 빌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와서 목회하여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마카리우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산속으로 들어가서 수도원을 세웠습니다.
그를 조롱하던 이들이 모두 그를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바로 욥 이야기입니다.

성경에 욥이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는 동방에서 제일 의롭게 하나님을 잘 섬기며 살았습니다. 동방 최고의 부자였습니다. 자녀도 10남매나 두었습니다. 종들도 많았고 땅도 넓었습니다. 어느 면을 보아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반대의 인생이 되었습니다. 많은 재산을 다 도적질당하였습니다. 10명의 자녀가 한꺼번에 집이 무너져 깔려 죽었습니다. 엎친 데 덮쳤습니다. 머리에서부터 발까지 부스럼 투성이로 고름이 질질 흘렀습니다. 이 때 모든 사람들이 욥을 조롱하였습니다. 그 때 상황을 성경은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나의 형제들로 나를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내게 외인이 되었구나.
  내 친척은 나를 버리며 가까운 친구는 나를 잊었구나.
  내 집에 우거한 자와 내 계집 종들은 나를 외인으로 여기니 내가 그들 앞에서 타국 사람이 되었구나.
내가 내 종을 불러도 대답지 아니하니 내 입으로 그에게 청하여야 하겠구나.
내 숨을 내 아내가 싫어하며 내 동포들도 혐의하는구나.
어린 아이들이라도 나를 업신여기고 내가 일어나면 나를 조롱하는구나.
나의 가까운 친구들이 나를 미워하며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돌이켜 나의 대적이 되었구나.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욥 19;13-21)

욥은 상처 투성이가 되었습니다.
1. 형제가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2. 친척이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3. 우거하는 자 즉 방문자들이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4. 계집 종이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계집종은 종중에 종이요 가장 비천한 이들입니다.
5. 남종들이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6. 아내까지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7. 동포들이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8. 아이들까지도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9. 가까운 친구들까지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10. 하나님까지 상처를 주는 것같습니다.
21절에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욥에게 위로를 주는 이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상처를 주는 이뿐이었습니다. 온 세상이 오사마빈라덴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을 때 신문에 놀라운 사진이 보도되었습니다. 빈라덴 어머니가 손을 모으고 알라에게 기도하는 장면입니다.

<알라, 알라, 알라여! 내 아들 잡히지 않게 하소서!>

어머니만은 빈라덴을 위하여 공개적으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안 잡히고 있습니다. 쌍둥이 빌딩을 폭파시켜 5000명 가량을 죽인 빈라덴에게는 그래도 상처를 주지 않는 이가 곁에서 용기를 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욥 주변에는 상처를 감싸주는 이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극복하고 승리하였습니다.

상처를 받으면 두 가지 현상이 벌어집니다.
1. 자살하게 됩니다. 비관하기 때문입니다.
2. 한이 맺히면서 공격하게 됩니다.
상처와 한은 비례합니다. 상처가 심하면 한이 커지고 한이 커지면 공격력이 생깁니다. 그래서 한을 맺히게 하면 원한이 맺히게 되고 원한이 맺히면 큰 사고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2000년 2월 25일 고대생이 자기 아버지 어머니를 죽인 사건이 일어나 온 나라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것도 시체를 너무나 잔인하게 토막을 내어 죽였습니다. 아버지는 완벽주의자 군인 출신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영부인을 꿈꾸던 꿈많은 여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신학교 공부를 하였습니다. 주변에서 너무나 믿음이 좋고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여인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완벽 주의자라 늘 아내를 들볶았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일류로 만들려고 늘 잔소리였습니다. 상처가 늘 전가되는 집안이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아들을 완벽하게 길러 보려고 늘 상처를 주었습니다. 살인범이 된 아들의 일기에서 이런 구절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시계보는 법을 매맞으면서 배웠다. 유치원 때...
운동화 끈 못 맨다고 매를 맞았다.....초등학교 때
대변 검사하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밤 늦게 쫒겨 날 뻔 하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밥을 늦게 먹는다고 아버지가 젖가락을 던져서 유리창에 금이 갔다....초등하교 4학년 때....
전화 받은 것을 잘 전달 못 하였다고 구타를 당하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과천 고등학교에 못 들어 갈 것같다면서 혼이 났다. 중학교 때......
키가 작아 큰 사람이 되지 못 할 것 같다면서 혼이 났다. 고등학교 때....
나는 현재까지 모욕만 당하고 살고 있다.>

그는 어머니를 토막 내고 그 시체 앞에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엄마!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힘들었나요?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만 들었더라면...그 한 마디만 했으면...>

이렇게 상처가 깊으면 큰 일이 벌어집니다. 그러나 욥은 더 큰 상처 투성이였습니다. 그러나 상처를 극복하였습니다.
우리는 살아 가면서 이렇게 저렇게 상처를 받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상처를 받으며 살게 됩니다.
  출생상처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상처를 받으며 태어납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는 태어나면서 울면서 태어납니다.
그런데 욥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나중에 욥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이 금 조각을 들고 와서 위로하고 상처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이에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및 전에 알던 자들이 다 와서 그 집에서 그와 함께 식물을 먹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금 한 조각과 금고리 하나씩 주었더라>(욥 42;11)

욥에게 상처를 주었던 이들이 모두 금조각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위로하였습니다. 상처가 금조각이 되었습니다. 욥이 상처를 극복한 비결이 있습니다. 욥은 모두를 잃었습니다.
물질을 잃었습니다.
사람을 잃었습니다.
건강도 잃었습니다.
그러나 욥이 잃어 버리지 않은 것 3가지가 있습니다.

1. 내일을 잃지 않았습니다.
욥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무는 소망이 있나니 찍힐찌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욥 14;7)

나무를 잘라도 그 옆에서 가지가 나오는 것을 보고 욥은 용기를 얻었습니다. 다 잘렸어도, 다 잃었어도 다시 돋아 날 수 있다는 내일을 바라보았습니다.
산에 가면 종종 벌목한 현장을 보게 됩니다. 나무를 베고 나면 그 밑에 그루터기가 남아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루터기에서 싹이 돋아납니다. 그리고 다시 나무가 되어 크게 자라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들 통하여 주신 말씀도 이 말씀입니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 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 하리라. 이 백성이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 지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사 6;9-13)

얼마 전 나는 9시 뉴스를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교통사고로 두 팔을 잃어 버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리로 이도 닦았습니다. 발가락에 연필을 끼고 글을 썼는 데 명필이었습니다. 나는 졸필입니다. 한번은 은행에서 기록부를 작성하였더니 <초등학교 나오셨습니까?>라고 물어 보는 데 챙피하였습니다.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천재는 졸필이라는 데....>
그런데 발가락으로 쓴 글씨가 내가 손으로 쓴 글씨보다 잘 썼습니다. 그의 직업은 시계 수리공이었습니다. 작은 손목시계 톱니바퀴를 발가락으로 집어 끼우는 데 내가 손가락으로 하는 것보다 더 정확하였습니다.
그루터기만 있으면 소망이 있습니다. 신체 불구라도 괜찮습니다. 욥은 다 잃었어도 내일만은 잃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상처준 사람들이 금조각을 가지고 와서 위로하여 주었습니다.. 내일을 잃지 않고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상처가 금조각이 됩니다.

2. 하나님을 잃지 않았습니다.
욥은 다 잃어 버렸어도 내일을 잃지 않았고 하나님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처를 받으면서 욥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 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편으로 돌이키나 뵈올 수 없구나.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 23;8-10)

다 잃어 버렸어도 내일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잃지 않는 이들에게는 욥과 같이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성당 중에 하나는 프랑스 파리에 있는 노틀담 성당입니다. 그 성당의 반주자가 되면 굉장한 영예라고 합니다. 그가 얼마 전에 우리 나라에 와서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는 시각장애자였습니다. 앞도 못 보는 자가  파이프 오르간의 전체 키를 다 사용하면서 청중을 매료시키는 연주를 하여 모든 사람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더우기 바하 곡은 세계에 최고 권위자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경악속에서 물었습니다.
<귀하는 소경으로서 어떻게 그렇게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잘 하십니까?>
그 때 그의 대답은 의미심장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다른 것은 할 수 없으니까요. 나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이것만 알고 이 것만 열심히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좋은 반주자로 단련시키려고 이렇게 소경의 상처를 주신 것을 알았습니다.>
다 잃어버려도 하나님만 잃어 버리지 않으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성처가 금조각이 됩니다.

몇 년 전 우리 성막 수양관에서 성막 쎄미나 180기를 할 때 생긴 이야기입니다. 맹인 목사님들이 27분이 오셔서 공부하셨습니다. 우리나라 전체에 맹인 목사님들이 130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생활하는 지를 자세히 보았습니다. 새벽 시간에 은평 침례교회를 담임하고 계시는 김 택수 목사님이 설교하셨습니다. 나는 오랜만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는 1965년 12월 4일 19살 때 아버지가 경영하는 공장에서 가성소다와 청산가리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가마솟을 열다가 폭팔하여 얼굴에 뒤집어 쓰면서 눈을 잃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 길을 걸을 걸어 가고 있는 데 한 사람이 손을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전도하는 것이었습니다. 내미는 팔을 만져 보니 손이 없는 손목만 있는 것이었습니다.
<손없는 병신이군요. 나는 두 눈없는 병신입니다.>
이렇게 말했더니 그가 말을 받았습니다.
<형제여! 나는 두 눈도 없습니다.>
<나보다 더 하군요. 손도 없고 눈도 없군요?>
그가 말했습니다.
<예수 믿으면 소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알고 보니 그는 당시 우리 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맹인 교회를 담임하고 목회하고 있는 강 영준 전도사였습니다. 그는 성냥 공장을 하는 아버지 공장에서 일하다가 손목을 잘리고 두 눈을 잃었습니다. 그 후 비관한 그는 타락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독실한 크리스챤이었습니다. 그런 지경이 되었는 데 어머니는 위로하기 커녕 호되게 야단을 쳤습니다.
<네가 그렇게 방탕하니까 그렇게 된 것 아니냐? 이제부터라도 늦지 않았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예수님을 잘 믿어라.>
어머니의 벼락같은 호령에 그 때부터 신앙생활을 잘 하였습니다. 그래서 신학교에 가서 전도사가 되었다고 간증하면서 예수님을 잘 믿으면 소망이 있다고 전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김 택수 목사님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맹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안마, 침이었습니다. 김 목사님은 침을 배우고 안마를 배우다가 뛰쳐 나왔습니다. 그리고 피어선 신학교로 갔습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살 것이냐고 야단이었습니다. 그러나 김 목사님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된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고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어 지금은 행복한 목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두 가지 신조를 간증하였습니다.
하나는 거짓말을 절대로 하지 않으면서 남을 즐겁게 한다는 신조입니다. 그래서 성도 집에 가서 밥을 먹고 나서 맛이 없으면 <잘 먹었습니다>라고 인사를 합니다. 그리고 맛이 있는 집에 가서는 <참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라고 인사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인생의 신조는 <혼자 살면 외롭고 둘이 살면 괴롭다>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둘이 살면서도 부딪치지 않고 살려고 애를 쓴다는 것입니다.

욥은 다 잃어버렸어도 내일을 잃지 않았고 하나님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상처를 준 사람들이 금조각을 가지고 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잃지 않고 굳굳히 사는 이들에게는 상처가 금조각이 됩니다.

3. 기도를 잃지 않았습니다.
욥은 모든 것을 잃었지만 내일을 잃지 않았고 하나님을 잃지 않았고 기도를 결코 잃지 않았습니다. 욥이 그런 곤경에서 돌이켜 큰 축복이 시작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도였습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욥 42;10)

한 자매가 어떤 남자와 결혼할 때 예수를 믿겠다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고는 결혼하고 나니 교회간다고 핍박이 심하였습니다. 그러나 주일지키는 것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성격이 거칠어서 아내를 술을 먹은 후 때리고 짓밟고 핍박하였습니다. 날이 갈 수록 더욱 심하여졌습니다. 딸이 5명이 되었는 데 이제는 못 살겠다고 생각하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교회 다니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혼을 각오하고 나니까 무엇도 두렵지 않아 떳떳이  주일에 교회에 나갔습니다. 오히려 교회간다고 꼬투리 잡으면 이혼할 것이고 그러면 당장 응하리라 마음먹고 나니까 편하였습니다. 하루는 목사님과 이혼을 의논하였으나 목사님은 이혼은 성경의 뜻이 아님을 알려 주었습니다. 40일 기도를 작정하였습니다. 기도중에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딸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지금까지는 아내로 살았고, 어머니로 살았고 자부로서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이 가정을 향한 선교사로 살자고 결심하였습니다. 가정을 위하여 기도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선교사의 심정으로 대하였습니다. 가족들의 마음이 변화를 받았습니다. 짜증만 부리던 성격이 모두를 수용하는 성격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상처가 금조각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욥은 다 잃어 버렸어도 세 가지를 잃지 않았습니다.
1. 내일을 잃지 않았습니다.
2. 하나님을 잃지 않았습니다.
3. 기도를 잃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상처를 가장 많이 받은 이가 한 분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일을 하신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태어나실 때부터 그 분 때문에 많은 갓난 아들들이 죽어야 했습니다. 그는 머리둘곳이 없도록 오늘은 이 곳 내일은 저 곳으로 피해 다니셨습니다. 그리고 바리새인 서기관 사두개인들의 공격으로 일생을 마치셨습니다. 마지막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도 사람들이 와서 침을 뱉았습니다. 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상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승리하셨습니다.
부활하시고 지금은 하늘에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고 계십니다. 모두가 예수님을 존경하고 흠모하고 따르고 있습니다. 상처를 준 이들 모두가 금조각을 주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주변에서 상처를 준 이들이 금조각을 가지과 와서 위로할 때까지 내일을 잃지 마시고 하나님을 앓지 마시고 기도를 잃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출처/강문호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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