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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갈망 (시편 27:1 ~ 14)

by 【고동엽】 2022. 9. 27.

세 가지 갈망   (시편 27:1 ~ 14)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오.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오. 나의 대적, 나의 원수 된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 … 내가 산 자의 땅에 있음이여 여호와의 은혜 볼 것을 믿었도다. 너는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시편27:1-14

   세상만사는 변화합니다. 오늘 여러분은 지난주의 여러분이 아닙니다. 입은 옷도, 피부도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그 사이에 여러분의 세포 중에 어떤 것들은 죽었고 또 새로 태어난 것들도 있습니다. 우리 몸의 혈액은 벌써 수만 번 핏줄을 돌았습니다. 내면과 외면, 생각과 느낌이 다 변했어요. 조금도 같은 모양으로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철학개론 강의를 들었거나 철학책을 읽었다면 ‘존재와 변화’(Being and Becoming)라는 책에 대해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인간과 우주는 그냥 존재하는 것이냐, 아니면 변하고 있는 것이냐를 놓고 철학자들이 논쟁을 합니다. 결론은 ‘모든 존재는 다 변한다’는 것입니다. 단 좋게 변할 수도 있고 나쁘게 변할 수도 있는 게 문제입니다. 상향적 변화, 또는 하향적 변화입니다. 여러분도 계속 변화하고 있는데 그 방향이 어느 쪽인가 하는 점이 중요합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다윗이 쓴 시입니다. 다윗이 처한 형편이 드러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단어가 대적(大敵)입니다. “나의 대적, 나의 원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에게 큰 적이 있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나를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나와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는 악한 행동을 하는 행악자(行惡者)로서 ‘대적, 원수’로 표현되는 사람입니다. 군대를 이끌고 전쟁을 일으킵니다. 그 아래 구절을 보면 ‘위증자’라는 말도 있습니다. 말을 바로 하지 않고 거짓말로 괴롭히고 비방하는 사람입니다. 12절에는 ‘악을 토하는 자’, 즉 입만 열면 욕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옆에 대적, 원수, 행악자, 적군, 위증자가 있습니까?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다면 감사한 일입니다. 다윗은 극도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자연히 그 마음에 두려움이 일어납니다. 밖으로는 적들이 둘러싸고 안으로는 불안, 공포, 낙심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인생에 수많은 일들이 벌어지는데 사실 밖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대해서는 내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어제 눈이 펑펑 왔는데 그것은 내 의사와 상관없이 내렸어요. 하지만 “아, 저 함박눈 멋있다!”거나 “왜 또 눈이 오지?”하는 내 생각과 태도는 내가 관리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신년연설에서 뭐라고 말하든 나의 외부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내가 어찌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회견에 대한 나의 반응은 내가 결정할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그 결과 내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나 자신의 결정과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계속 반응을 잘하는 사람들은 아름답고 훌륭하게 변하지만 잘 못한 사람들은 망가집니다.

   마흔 살 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2,30대를 젊다고 했지만 요새는 나이 많은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마흔도 젊지요.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열심히 운동을 해서 20대에 요즘 말하는 ‘몸짱’이 되었답니다. 배에 ‘왕’(王) 자가 그려지고 체격이 멋있어지자 ‘미스터 코리아 대회’에 나갔습니다. 최대한의 노력을 다해 훈련하였고 대회에서 최대한의 실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등수에 들지 못하여 크게 낙심을 했습니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 모든 것을 포기하였고 우울증에 빠져 10여년을 헤매다가 40세에 몹쓸 병까지 얻어 폐인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시합에서 떨어진 데 대한 반응이 문제였습니다. 그 일에 계속 부정적으로 반응했습니다. 심사위원들을 욕하고 참석한 선수들을 비하하면서 마음이 어두워지고 나쁘고 악하게 변한 것입니다. 잘못되게 하는 하향적 변화가 생겼어요. 몸은 마음을 따라갑니다. ‘나 기분 나쁘다!’ 이런 생각을 하고 말을 하면 몸속에서 악한 독이 막 솟아나옵니다. 10여 년을 그렇게 했으니 그 몸에 악한 병이 안 생길 수가 없죠.

    다윗처럼 나의 밖에 대적과 원수와 행악자, 적군, 위증자, 악을 토하는 자들이 있어도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내가 더 좋아질 수가 있고, 이 모든 도전과 시련이 오히려 내가 멋있고 아름답게 변하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고 가정 형편이 어렵고 직장일이 잘 안되더라도 내가 개인적으로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그것이 축복의 출발이 될 수 있습니다. 나의 반응에 따라 변화의 방향이 정해집니다. 참 조심해야 됩니다.

   다윗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믿음으로 반응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 하리요.”(1절). “두려워 하리요. 무서워 하리요.” 하는 것은 무섭다는 말입니다.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은 다윗을 두렵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두렵기 때문에 하나님 쪽으로 반응했습니다. 신앙고백을 해버렸습니다. “내가 지금 어두움 속에 헤매고 있지만 하나님이 나의 빛이기 때문에 이 어두움은 빛으로 변하고 말 것이다!” 내가 하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두렵고 겁이 나지만 “내 하나님이 구원이요 나의 빛이니 나는 겁낼 것 없어!” 외치면서 방향을 바꿨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변하고 있습니다. 어느 쪽으로 변하는가, 그 방향이 중요합니다. 하늘을 향하여 하나님을 찾으며 믿음으로 반응하는지, 불신앙으로 불평과 불만으로 반응하는지, 거기에 여러분의 변화가 달려있습니다. 어떻게 변할 것인지. 이로 인해서 잘 될 것인지 잘못될 것인지는 여러분 스스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에너지의 방향을 위쪽으로 틀 것이냐 아니면 아래쪽으로 틀 것이냐에 따라 상황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어려움들도 하나의 도전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이 빛이시고 구원자시고 나의 생명의 능력자인 것을 체험하는 기회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또한 자신감으로 반응했습니다. “나의 대적, 나의 원수된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2절). 여호와가 구원이시고, 여호와가 빛이시고, 여호와가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까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3절) ‘안연하리로다’는 영어로 ‘I am confident!’ 즉 자신감이 있다는 말입니다. 불안하고 겁이 나 도망가고 싶었는데 이제 하나님을 나의 빛, 나의 구원자, 나의 생명의 능력자로 신앙고백을 하니 두려움이 사라지고 자신감이 생기는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다윗은 무너질 수도 있었는데 믿음과 자신감, 신앙고백으로 반응했기에 빛과 구원과 생명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언제나 믿음과 신뢰, 자신감으로 반응하시길 바랍니다.

   다윗은 또한 기도와 찬송으로 반응했습니다. 4절을 봅시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청했다는 것은 기도와 간구입니다.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구하는 것 역시 간구입니다. “나로 실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하나님을 사모하고 그 아름다우심을 체험하고 자기 눈으로 보는 것이 다윗의 소망이요 기도요 간구였습니다. 밖에서 나를 괴롭히는 온갖 종류의 적들이 넘나드는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기도로 반응했습니다. 기도로 반응했기 때문에 기도가 응답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언제 응답이 되나? 기도를 할 때입니다. 언제 응답이 안 되나? 기도를 안 할 때입니다. 도리가 없지요. 기도를 안 하는데 무슨 응답이 있겠습니까? 왜 하나님의 능력을 자주 체험하지 못하나? 자주 기도를 안 했으니까. 왜 가끔 하나님을 체험하나? 가끔 기도했으니까. 왜 자주 하나님을 체험하고 날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가? 날마다 기도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기도로, 믿음으로 반응했습니다. 그 결과가 자신감으로 나타났습니다. 잘못 반응하면 망합니다. 결국 나에게 달렸습니다. 내가 앞으로 편안하고 즐겁고 자신감 있게 찬송하며 살 것인지 아닌지는 나에게 달렸습니다.

   뉴욕 매디슨 스퀘어에 아주 아름다운 여자 동상 하나가 서 있습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그 동상을 좋아합니다. 볼 때마다 힘이 나요. 아름다운 것을 보면 감동이 있고 즐겁지 않습니까! 그 동상은 다이애나라는 젊은 여자를 모델로 삼았는데 사람들마다 “다이애나!”를 외치고 그녀의 인기가 치솟자 그만 가슴에 바람이 들어갔어요. 여자 친구와 동성애를 시작하더니 온갖 어려운 문제가 생겼고 결국 술과 마약에 빠져 세월을 보냈습니다. 어느 날 어려운 사람들에게 저녁도 주고 하룻밤 재워주는 구세군 보호소에 할머니 한 분이 나타났습니다. 직원이 “할머니, 이름이 뭐죠?” “다이애나.” “다이애나라면 뉴욕사람들이 다 아는 그 다이애나요?” “그래요. 내가 바로 그 옛날의 다이애나예요. 하지만 오늘의 나는 그 다이애나가 아니에요. 변했습니다.” 다윗은 문제가 생겼을 때 방향을 위로 잡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다이애나는 세상과 악을 향하여 방향을 잡았어요. 결국은 다 망가진 할머니로 밥을 얻어먹으러 다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극단적인 경우지만 방향을 어디로 잡느냐에 따라 좋게 변할 수도, 나쁘게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대왕으로서, 예수님의 조상으로서, 우리 모든 사람들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별은 ‘다윗의 별’(The Star of David)입니다. 다윗은 믿음으로 반응을 했고 위로 반응했습니다. 영적으로 반응했고 육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적극적으로 반응했고 부정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변화를 얻게 된 것입니다.

   기도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찬송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5절).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잘 보호해 주셨습니다.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두른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6절). 기도로 반응했기 때문에 입술에 찬송이 터졌고 하나님의 보우(保佑)를 체험했습니다. ‘나’의 밖에서 생기는 어렵고 힘든 문제들에 대해서는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지만 그 일을 놓고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반응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로 반응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자신감과 찬송을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기도의 응답을 간구하는 그 목소리 때문에 결국은 방향이 정해졌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소리로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7절). 안타깝게 기도합니다. 원수와 행악자가 있고 전쟁이 일어나고 위증자와 악을 토하는 자들이 잔뜩 둘러싸고 있어서 겁이 나고 급합니다. 두려워서 조용히 소곤소곤 혼자서 기도할 수가 없어요. 큰 소리로 “주여, 하나님이여, 아버지여!” 눈물로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방향을 제대로 잡은 것입니다. 나를 괴롭히는 그 사람만 쳐다보면 대답이 없습니다. 나를 위협하는 사건만 쳐다보면 대답이 없습니다. 여러분, 언제든지 기도로 반응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7절) 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겁니다.

   두려움에 가득 찬 순간,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 마음이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8절). 방향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행복은 여러분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밖의 여건과 상황들, 다른 사람들은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내 마음 과 내 신앙, 내 기도, 내 찬송, 내 속의 두려움을 제거하는 이것만은 믿음과 기도로 나 자신이 관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환경과 여건 속에서도 신앙적으로 반응하고 기도로 반응하기 때문에 어떤 악한 경우도 우리를 망하게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풍랑을 이용해서 더 빨리 잘 되고, 더 빨리 변해가는 축복이 우리에게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가장 큰 변화는 하나님과 내가 하나가 되고 싶은 것입니다. 결혼해서 남편과 하나 되고 아내와 하나 되고 내 자식들과 하나 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아픔이 있고 힘든 것들이 있었습니다. 인간은 궁극적으로 어디에서 소망을 얻습니까? ‘나와 하나님은 영원히 끊어질 수 없는 하나다’라는 확신입니다. 이 변화를 체험할 때 우리는 하늘을 향해 나는 독수리처럼 될 수 있습니다. 세상은 다 변합니다. 좋은 친구도 얼마 있으면 그저 흐지부지해집니다. 젊었을 때의 건강도 어느새 약해집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끝없이 변합니다. 국가의 정세, 세계의 정세, 경제적 환경과 여건도 모두 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한 분만은 영원하시며 여러분을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영원한 사랑의 대상이신 하나님, 나를 영원히 사랑하시는 그 분과 내가 하나가 될 때 거기에서 놀라운 자신감과 담대함이 생기는 것입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10절) 부모는 우리를 언젠가 떠납니다. 때로는 우리가 못 되게 굴면 우리를 버리기도 합니다. 부모도 속상하면 “너 오늘부터 내 아들 아니야!”하고 버릴 수 있어요.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만은 여러분과 저를 절대로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사람이 다 버려도 끝까지 나를 끌어안아 주실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과 내가 영원히 하나가 되는 것은 우리의 변화와 성장에 결정적인 요소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많은 분들이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셨어요. 예수님과 여러분이 하나가 되고 성령님과 여러분이 하나가 되어 성령님이 여러분 마음속에 살고 계실 것입니다. 혹시라도 여러분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모시고 성령과 여러분이 하나가 된 경험이 아직 없다면 오늘 이 아침에 하나님과 여러분이 하나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결정적인 변화, 발전적인 변화, 상향적인 변화를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어떤 여건에서도 그분과 함께 기도하고 믿음으로 찬양으로 다가가 그분의 품에 안기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된 경험을 많이 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13절 말씀이 참 좋습니다. “내가 산 자의 땅에 있음이여 여호와의 은혜 볼 것을 믿었도다.” 믿음의 반응입니다. 이 분은 아무리 흔들어도 망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습니다.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14절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적이 둘러싸고 있고 욕하고 미워하는 사람, 거짓말 하는 사람들로 둘러싸여있어도 겁내지 말고 강하게 일어나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합니다. 그런 믿음이 생기고 기도가 생겼습니다. 위를 향한 변화가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에게도 2007년 이 한해에 은총을 허락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은 변합니다. 여러분도 아래로 변하든지 위로 변하든지 영적으로 변하든지 육적으로 변하든지 변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방향으로 변하고 있나 하는 것입니다. 방향을 하나님을 향하여 분명하게 잡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함께 기도하고 믿음으로 고백하고 적극적으로 반응함으로써 여러분 가슴속에 담대함과 힘과 용기와 소망이 가득 찬 한 해가 되기를 원합니다.

출처/김상복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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