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족치 않게 하려 함이니 (요 16: 1~11)
오늘 이 본문의 말씀은 우리 성도들에게 이 세상에서 당하게 될 일들을 미리 경고함으로써 준비케 하려는데 목적이 있는 말씀입니다.
세상에서는 성도들을 미워하고, 심지어는 쫓아내기도 하고, 죽임을 당하는 순교가 있을 것을 말씀하면서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핍박과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은 복되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영광을 얻을 것에 대한 보증수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 고난을 당하는 분들은 천국에서 받게 될 큰 영광이 있을 것을 확신하고, 오히려 기뻐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 세상은 광야이기 때문에 누구나 실족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실족한다는 말은 [넘어진다]는 뜻입니다. 영어의 스캔들(scandal)이란 단어가 바로 실족이란 헬라어, [scandalizo]란 말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사실 광야에 가면 길을 잃고 실족하기가 쉽습니다.
가시나무가 여기 저기 있고, 미끄러운 돌들이 있고, 또 골짜기가 있어서 넘어지기 쉽게 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어둡고 험한 세상이어서 성도들이 실족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실족 중에는 용서받을 수 없는 것도 있고 돌이킬 수 없는 것도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실족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마18:7절에 보면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고 경고했습니다.
6절에서는 특별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경고의 말씀입니까?
(예 화) 톨스토이의 이야기 가운데 재미있는 예화가 있습니다.
어떤 나그네가 광야에서 맹수에게 쫓겨 갑니다. 나중에는 기진 맥진 하는데 마침 앞에 큰 우물이 있었습니다. 안을 보니 다행히 물이 없습니다. 감사하게도 칡넝쿨이 안으로 길게 늘어져 있었습니다. 맹수가 너무도 가까이 다가왔기 때문에 줄을 타고 안으로 들어갑니다.
거의 다 들어가서 보니 놀랍게도 안에서는 큰 뱀이 혀를 날름거리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위로 다시 올라가려니 맹수가 기다리고 있고 안으로 들어가려니 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난관에 처해있게 되었습니다.
마침 무엇인가 끈적한 것이 얼굴에 떨어집니다. 손으로 만져서 입에 대어보니 꿀입니다. 시장도 한 김에 먹기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때에 흰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 가면서 나그네가 잡고 있는 칡넝쿨을 썰고 있었지만 그것을 알지를 못했습니다.
얼마 지나면 그 줄은 끊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나그네는 꿀 먹기에만 바쁩니다.
톨스토이는 이것이 바로 인생이라고 했습니다. 맹수란 의식주를 말하고, 우물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는 것을 말하고, 뱀은 죽음을 말하고, 꿀은 쾌락을 의미하고, 흰쥐와 검은 쥐는 낮과 밤을 말하고, 칡넝쿨은 인생의 생명의 줄을 의미합니다. 인생은 실족하면서 살게 되어 있다는 내용입니다.
2. 그러면 실족에는 어떤 종류가 있습니까?
크게 4가지 경우만 말씀드리겠습니다.
(1) 무엇보다도 먼저 [세상 사람들에게서] 실족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것을 미리 아시고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마10:16절에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뱀과 같은 지혜가 없으면 세상에서 성도들은 항상 당하기만 합니다.
연인이라고 믿다가 배신당하여 실족하고, 남편이라고 믿다가 실족 당하고, 심지어 교회의 직분자라고 믿고 돈을 꾸어주었다가 실족 당하고, 이렇게 세상에는 수많은 실족함이 있습니다.
저는 이번 심양을 다녀오면서 중국이 놀랍게 변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2년 후에 있게 될 올림픽을 위해서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많은 교포들이 조선족들에게 사기당하고 실족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았습니다.
그것은 세상에는 빛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불신자들은 다 어두움 속에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또 믿는다 해도 주님과 동행하지 않으면 우리는 밤에 사는 사람들이 되기 때문에 다 실족하게 됩니다.
(2) [의심하게 될 때에] 실족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믿다가 실망해서 실족하기도 합니다. 또 하고 있는 일이 너무 무겁고 힘들어서 낙심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우리 자신의 잘못이 많습니다.
사실 내가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하실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에게 다 맡기면 되는데 내가 다 지고 가려고 하니 무거워 실족합니다. 또 우리가 마땅히 가져야 할 그 이상의 너무 많은 기대를 하고 있기 때문에 실족하기도 합니다.
이런 기대는 첫째로 [욕심]에서 나온 기대일 수가 있습니다. 둘째는 [인내하지 못하는데서] 실망하기도 합니다. 셋째는 신앙에 [의심]이 생겨 실족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신앙인에게는 제일 무서운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바로 그런 경우였습니다.
(3) 안타까운 것은 [교회 안에서] 실족하기도 합니다.
교회도 세상의 일부이기 때문에 실족하는 일이 없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교회 안에는 온전히 헌신되지 못한 사람들이 다수이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도 실족하게 됩니다.
목회자가 교인들에게서 실족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대로 교인들이 목회자들에게 실족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성도들끼리 실족하기도 합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인내하지 못하면 지상교회에서 믿음 생활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4) [가정에서] 실족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서 실족하고, 아내가 남편에게서 실족하고, 자녀가 부모에게서 실족하고, 부모가 자녀에게서 실족하고, 형제간에도 자매간에도 실족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자기가 해야 할 역할은 감당하지 않고, 또 주어야 할 것은 생각지 않고, 받을 것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 자기 중심적인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3. 그러면 실족하지 않는 삶을 사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6가지 비결이 있습니다.
(1) 무엇보다도 [위를 바라보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초점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시편 42편 5절과 11절에 보면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고 했습니다.
실족하는 사람의 특징은 낙망과 불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면 이 낙망과 불안이 안개처럼 사라집니다. 믿습니까? 왜냐하면 하나님의 섭리의 손을 보게 되고, 나를 향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에 14장 25절 이하를 보면 시몬 베드로가 주님이 밤 사경에 물위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만일 주시어든 자기도 걷게 명해달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오라 하자 물위로 걸었습니다. 그러나 바람을 보는 순간 의심이 생기고,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그러자 물에 빠져갔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바다와 같은 고난 속에서도 주님의 말씀만 의지하고 주님만 바라보면 우리는 걸어갈 수 있습니다. 아이엠에프의 물결위로도 걸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환경을 보는 순간에 주님은 못보고, 환경만을 보면서 의심하게 되고, 두려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2) 다음은 [주님의 손을 꼭 붙잡으면] 실족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실족하는 원인이 말씀을 순종치 않는데서 오기 때문입니다. 어린애가 아무리 복잡한 길을 가도 어머니의 손만 꼭 잡으면 결코 길을 잃지 않습니다.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군중 속으로 들어가면 그 순간 길을 잃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손을 꼭 잡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강한 손을 잡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에게 이렇게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3) 주님이 말씀하는 [바른 길]로 가면 실족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잠언 4:12절에 보면 하나님의 지혜로운 길로 가면 “달려 갈 때에 실족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길이 무엇입니까? [진리가 바른 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바른 길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즉 주님이 바로 바른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주님이 걸어가신 대로만 따라가면 됩니다. 다른 길로 가려다가 실족하고 맙니다.
그래서 주님은 요8:12절에서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4) [영적 눈이 어두워지지 않아야] 실족하지 않습니다.
요11:9절에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소경은 막대를 집고 갈 수는 있지만 그러나 보는 사람보다 많이 실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안약을 발라 보게 하라고 했습니다. 보아야 실족하지 아니합니다. 영적 눈을 소유해야 합니다.
그래서 영적 판단력이 있어야 실족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뱀 같이 지혜로워야 한다는 하신 것은 바로 세상에는 많은 속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어주셔서 우리를 위로하고 인도하고, 축복하십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보내주신 보혜사 성령님은 바로 우리들의 안내자요 위로자 이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실족하지 않게 하시려고 보내주신 것입니다. 믿습니까?
(5) 영적으로 [병들지 말아야] 실족하지 않습니다.
병들어 기운이 없으면 작은 돌에도 넘어지고 실족합니다. 노인들이 잘 넘어지는 것은 바로 기운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조심해야 할 병에는 내가 최고라고 착각하는 [교만 병], 기도 안 하는 [벙어리 병], 말씀을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 병], 섬길 줄 모르는 [손 마른 병], 등 많이 있습니다. 이런 병에 걸리면 실족하게 됩니다.
(6) [하나님의 손에 붙들림을 받아 그에게 사용되면] 실족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이용되면 다 마지막에는 버림받고, 실족합니다. 왜냐구요? 인간은 다 남을 이용만 하려고 하는 이기주의적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악기는 누가 연주하느냐에 따라 그 소리가 다릅니다. 칼도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의사가 사용하면 암 환자를 수술하여 살립니다. 그러나 악인이 사용하면 사람들을 협박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들은 누구의 손에 있습니까? 마귀입니까? 주님이십니까? 자기가 자기를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사실은 사탄의 지배하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오른 손 안에 쥐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의 인생을 아름답게 연주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맺는 말
시편 66:9절에 보면 하나님은 “우리의 실족함을 허락지 아니하시는 주시로다”고 했습니다. 또 우리가 잘 아는 시편 121편 3절에서도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실족합니다. 주님의 손을 붙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시각장애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다 빛 가운데로 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의 오른 손에 들려 사용되면 실족하지 않고, 다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실족함을 받지 않기를 다시 한 번 축원합니다.
출처/신성종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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