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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자료실 종합모음

나를 위한 면류관 (디모데후서 4:1-8)

by 【고동엽】 2022. 9. 25.

 나를 위한 면류관  (디모데후서 4:1-8)

하루의 삶속에서도 우리는 수많은 경우를 만나면서 살아갑니다. 너무 기뻐 찬양할 때가 있는가 하면 때로는 견딜 수 없는 고통에서 탄식할 때도 있습니다. 말세가 되어 사단이 최후의 발악을 하는 때이기에 성도는 이런 현실가운데 시달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와 환경에도 넉넉하게 이기시고 복되고 아름다운 삶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바울사도가 종말의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최후의 권면을 여러가지로 말씀하는 중에 세상에 어떤 경우를 만나더라도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이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고 계시는 것이 감사하는 것이라고 하시니 당연히 해야할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일에는 누구나 감사할 수 있지만 어렵고 힘든 일에는 감사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오늘은 본문을 통해 왜 범사에 감사해야 할는지, 어떻게 하면 어려울 때도 감사할 수 있을 것인가를 찾아보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먼저 범사에 감사해야 할 이유를 생각해 봅니다. (18절)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우리를 통해 감사를 받으시기 원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일에 감사해야 합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날을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장래의 일을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7:14) 하시니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하나님이 주시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형통한 날이야 좋지만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곤고한 날도 주시겠습니까? 생선 달라는 자식에게 뱀을 주는 아비가 없으며 떡을 달라 하는데 돈을 줄 아비가 없기에 세상에 나쁜 사람이라도 자기 자식에게는 좋은 것 주려고 하는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자녀에게 좋은 것 주시지 않겠느냐(마7:9-11) 하셨으니 하나님은 우리에게 절대 나쁘게 하시지 않을 줄 믿습니다. 우리의 작은 머리로는 다 깨달을 수 없습니다. 계속적으로 잘되면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자만하고 교만할 것이기에 그것을 꺽어 버리시려고 곤고한 때를 만나 기도하게 하신 것이요, 어려움속에서 훈련받아 더 좋은 역사를 이루시기 위함이기도 할 것입니다. 한치 앞도 볼수 없는 사람의 한계있는 생각과 눈으로 판단하여 좌절하지 마시고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라도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에게 절대 나쁘게 하지 아니하신다는 믿음이 있을 때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감사할 수가 있는것입니다. 자신이 가진 작은 경험과 잣대로 판단하여 틀렸다 맞다 하며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세상에 수만개의 교회가 있지만 똑같은 교회는 하나도 없습니다. 행정도 운영방법도 다 다르게 마련입니다. 그러기에 비교하여 불만하는 것은 어리석으며, 그것 또한 내 입장에서 보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면 그 어떤 것에도 감사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다양한 것들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간다는 것 기억하면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범사에 감사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좋을때는 찬양과 기쁨으로 주께 감사할 수 있겠으나 특히 어려움이 닥쳐질 때 감사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봅시다.

1. 생각을 좋게 가져야 합니다. (15,21,22절)
어떤 경우에도 선을 쫓으라 하시니 선이란 하나님의 일로(눅18:19) 나보다 먼저 하나님의 일을 하는자가 되고 모든일에 좋은 것은 받아드리고 악한 것은 버려라고 하셨으니 어떤 경우 무엇을 보더라도 생각을 좋게 하라는 것입니다. 생각, 마음, 뜻, 계획이란 비슷한 용어입니다. 행동하기전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좋은 쪽으로 정하면 좋은 행동과 습관이 되며 훌륭한 인격이 형성됩니다. 자기의 생각대로 하지 말고 믿음으로 하나님 입장에서 생각해 봅시다. 똑같은 일이나 물건을 보고도 좋은 것을 생각하며 좋은 마음을 갖는자는 감사와 찬송이 나옵니다. 자신의 생각으로 불평과 원망하다 보니 더 나쁜일들이 생기게 됩니다. 나쁜것을 보고 나는 저렇게 아니하겠다 하고 좋은 것 보면 나도 저렇게 해야지 하는, 좋은마음 갖는 그곳에 발전이 있고 성공이 있으며 복이 따라 옵니다. 생각을 바꾸면 길이 보인다고 합니다. 비난과 비방보다 좋은 생각을 갖고 범사에 감사하는 자가 됩시다.

2. 주님말씀 믿고 따라가야 합니다. (19-20절)
성령을 소멸치 말고 예언을 멸시치 말라고 하셨는데 이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요, 예언 곧 하나님의 말씀을 중하게 여김은 말씀을 순종함이니 주님의 말씀을 따르다 보니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3. 더 좋은 것 주실 주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고난을 통하여 새롭게 되어 하나님의 축복 받았음에 많은 역사가 있습니다. 아무 잘못이 없는 요셉이 종살이와 감옥으로 어려웠으나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시려는 것이었고 앞에는 홍해요, 뒤에는 애굽의 군대로 어려웠으나 바다를 가르시고 건너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이 더 좋은 것 주시기 위함임을 믿고 나아갈때에 담대함도 생기고 역사도 이루어 집니다. 믿음으로 나아가도 잘 안될때에 하나님께 늘 기도하라 하십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감사하게 됩니다.

말씀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깨닫고 날마다의 삶에서 감사하고 살아가야 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의 삶이 그렇게 잘 되지 않기에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그 자녀에게 좋은 것 주실것이요, 한계있는 사람의 생각으로는 안 되어도 하나님의 역사는 가능하기에 범사에 감사해야 할 것이요, 좋은 생각과 마음으로 세상을 볼 때 감사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며 하나님이 모든 일에 좋게 해 주실줄 믿고 나아가면 감사할 수가 있기에 복음열매 거두고 범사에 감사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 되시기 바랍니다.

2000년 10월 29일

여호와께 감사하세 (역대하 20:20-30)

새천년의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감사로 하나님께 이 절기를 지키는 모든 성도들의 심령과 가정과 사업위에 하나님의 크신 복이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3번의 절기를 지키라고 명하셨습니다. 첫째 유월절 즉, 무교절이라고도 하여 애굽땅 종 되었던 곳에서 해방을 주신 은혜를 기억하라는 것이요, 다음 맥추절을 지키라 하셨으니 이는 첫곡식 드림을 감사하는 것이요, 다음이 수장절을 지키는 것이니 이는 년중에 곡식을 거두어 저장함이니 오늘의 추수감사절입니다.(출23:14-17) 이렇게 절기를 지켜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사람이 완악하여 주어진 현실밖에 볼줄 몰라서 감사보다는 불평과 원망하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 감사절을 기하여 지난날에 불평을 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찬양을 하나님께 드리며 복 받아 누리는 성도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국가적인 위기에서도 “여호와께 감사하세”라고 찬양하여 큰 승리와 축복 받음을 보면서 진정 ‘여호와께 감사하세’ 찬송하는 성도 되시기를 바랍니다.
북쪽 이스라엘과 합하여 아람나라와 싸웠으나 패전하여 백성도 피폐해지고 난세를 맞이하였는데 뜻하지 않게 남쪽의 모압,암몬,세일이란 3개국이 연합하여 쳐들어 옵니다. 이때에 유다의 여호사밧왕은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승리의 확신을 선지자로부터 듣게 되었습니다. 하여 백성중에서 노래하는 자를 선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혀 나아가 “여호와께 감사하세”라고 찬양하였을 때 3개국 연합군이 자기들끼리 싸워서 다 죽게 되었고 거기에 가서 본즉 재물,의복,보물이 많아서 모두 거두고도 다 가져가지 못할만큼 많이 거둔후 그곳을 브라가 골짜기 즉, 축복과 송축의 골짜기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성도들이여, 이 사건이 과거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진정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에게 승리와 축복을 지금도 주고 계십니다. 진정한 찬양으로 나와 여러분의 심령과 가정, 교회위에 브라가 골짜기가 되어지기 원하여 어떻게 하는 찬양이 되어야 할 것인가 생각하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믿음으로 찬양 하시기 바랍니다. (20절)
여호사밧왕이 백성을 드고아 들판에 세우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하시리라 그 보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라”하셨습니다. 그때는 상황이 매우 어려울 때 였습니다. 전쟁에서의 실패후에 두번째의 전쟁이며, 또한 연합군이 쳐들어 오고 있으니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더욱이 군인들을 준비시키는 것도 아니라 노래하는 자를 준비하여 내어 보내는 것은 아무리 보아도 엉터리 없는 것이라 믿지 아니하고는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보낸 사역자를 신뢰하여 그 말씀 을 따를때에 승리하게 하신다 하셨으니 이들의 찬송은 믿음으로 드려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상황을 따지지 아니하였습니다. 실상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러기에 1-4절에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12절에 우리는 아무것도 없고 대적할만한 능력도 방법도 없기에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라고 믿음을 나타내었고 여기에 선지자를 통해 15절에 확신을 주셨습니다.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하였다”고 하셨으니 이를 신뢰하고 성가대를 내보냈습니다. 이것이 온전한 믿음의 찬양입니다.

2. 합심하여 찬양해야 합니다. (21절)
“백성으로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를 택하였다”고 했습니다. 물론 믿음의 결과이기도 하겠습니다마는 여호사밧왕의 말을 백성이 받아서 한마음 되었기에 이 찬양은 합심하는 찬양이었습니다. 적군이 쳐들어 오는데 거기에 대비하여 전쟁준비를 하든지 도망을 하든지 화평을 내게 하든지 해야할 것이나 엉터리 같은 전술에 하나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귀합니까? 가정도 믿음으로 하나될때에 축복이 있습니다. 나라와 민족도 주의 이름으로 하나가 될때에 거기에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자기의 뜻대로 할때에 피차 어려움 당하고 맙니다. 합심하는 기도를 하나님이 응답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마18:18) 또 합심하는 전쟁도 승리하게 하신다고(전4:12) 하셨습니다. 10월에 우리교회는 추수전진대회를 통해 100명이상이 등록하였습니다. 얼마나 귀한일을 하였습니까? 이는 성도들이 합심하여 노력했던 연고입니다. 이렇게 합심하여 최선을 다한 심령과 가정에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함께 하실줄 믿습니다.

3. 찬양의 결과를 살펴봅니다. (24-25, 30절)
적군들이 자기들끼리 싸워 “땅에 엎드러진 시체 뿐이요 하나도 피한자가 없는”완전한 승리를 거두었고, 그 가운데 재물과 의복과 보물이 너무 많아 사흘을 거두고 능히 가져갈 수 없을 만큼 많았다하여 주변의 국가들이 두려워하였고 여호사밧의 나라가 태평하였고 하나님이 평강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이런 결과를 거두기를 누구나 다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심지 아니하고 거둘수가 없습니다. 좋은 결과를 보면서 우리는 다시한번 정리해야 합니다. 제2성전 건축할 일과 교회의 할일이 많아도 우리는 평택삼락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이렇게 심어진 이후의 결과는 하나님이 해 주실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오곡백과 익어 추수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지요.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살면서 감사보다 불평했던 것들을 이제 과감하게 절단하고 생각하는것도 바라보는것도 감사합시다. 현실이 우리를 어렵게 해도 믿음을 갖고 현실뒤에 하나님의 손길 믿고 찬양할 것이요 마음을 합하여 찬양할때에 분명한 승리와 축복이 있습니다. 이 사건이 옛날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브라가 골짜기의 역사가 우리의 심령과 가정과 교회와 나라와 민족위에 임하여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0년 11월 5일

나를 위한 면류관 (딤후 4:1-8)

계절의 감각도 잊어버린채 바쁨에 쫓겨 살다가 보니 어느덧 산은 붉은 옷을 입었고 싱싱했던 가로수 잎사귀가 한잎 두잎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벌써”라는 단어를 몇번이나 되뇌어 봅니다. 인생도 “벌써”라는 생각이 드니 여러가지 생각으로 복잡해 지기도 합니다. 지난날도 귀하지만 앞으로 남은 날 보다 새롭게 되어 인생에 참된 승리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과거가 아름답고 앞날이 화려한 주인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어떤사람이 인생에 참된 승리자 이겠습니까? 돈을 많이 벌어서 쌓아 놓고 후손에게 물려준 사람이겠습니까? 고위권력자로 세상을 호령했다는 사람일까요? “사람이 한번 나서 죽는 것은 정한 것이요 그 후에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히9:27) 하셨으니 과연 하나님앞의 심판대에서 “잘했다”고 칭찬받고 예비하신 면류관 받아 쓸수 있는 사람이 누구이든지 그가 진정한 승리자 일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바울사도가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최후로 부탁하시면서 이제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라고 하는 당당한 말씀은 참으로 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연 지금 우리를 위한 면류관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면류관은 제사장(출29:6, 29:30)이나 왕(삼하1:10, 왕하11:12) 이 쓴 것이요 경기에 우승한 사람(고9:25, 딤후2:5)에게 씌워 주었습니다. 면류관은 대개가 금으로 만든 것으로 최고를 의미하고 있는데 예수님은 가시면류관을(요19:2, 마27:19, 막15:17) 쓰시고 우리의 허물과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면류관은 머리에 쓰는 것으로 누가 보아도 알아볼 수 있게 하셨으니 그리스도의 영광(계19:12, 히2:7-9)이나 성도의 상급(고후9:25) 또는 복음의 승리(계6:2, 12:1, 14:14)로 비유하기도 했으며 그 종류도 의의 면류관(본문7절), 기쁨의 면류관(살전2:19), 생명의 면류관(약1:12, 계2:10), 영광의 면류관(벧전5:4) 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 면류관 받도록 노력할 것이요 빼앗겨서는 안됩니다.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계3:11)고 합니다. 가롯유다의 면류관은 맛디아가 가졌고 사울의 면류관은 다윗이 받았으니 귀한 것 빼앗기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요 아직도 면류관 준비가 안됐다면 지금 우리는 해야 합니다. 언제 주님 앞에 서야할지 모르니 지금이 준비할 때입니다. 바울사도는 할일 다 했으니 이제 면류관 받아 쓸일만 남았다고 했는데 나를 위해 예비된 면류관은 과연 어떤 것일까 생각하니 두려우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생각하며 은혜 받고자 합니다.

1. 사명의식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1 2초, 5절)
하나님이 우리를 이땅에 보내실때에 아무렇게 살다가 오라고 보내신 것은 아닐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사43:7,21) 살라고 하셨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복음전파이니 이것을 “ 엄히 명하나니”라고 한것도 명령하는 것입니다. 그 명령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이요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고 하심이니 사명의식을 새롭게 함으로 내가 해야 할일이 무엇인가 알아야 힘도 쓰게 되고 할일 다하는 자에게 면류관 주실 것입니다. 명령은 내린분의 주관이지 명령 받은 사람이 임의로 하고 안할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것을 바로 인식하지 못하니 자기의 생각과 뜻을 따라 우왕좌왕 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내가 할일이 어떤 것인가를 다시한번 깨닫고 그 사명(마28:18-20, 막16:15-17, 행1:8, 딛1:3) 다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면류관을 예비해 놓으신 줄 믿습니다.

2. 소망을 갖고 인내해야 합니다. (2하-5, 8절)
“범사에 오래 참으라” 하심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올바른 가르침이나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경계시키고 권면할때에 사람들은 자기들 좋은대로 하려고 바른 교훈의 진리보다 개인적인 욕심을 따라 바른말을 잘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에 고난이 있다 해도 전도인의 일을 다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렵고 힘든일 계속할 수 있는 것은 확실한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사도도 선한싸움도 다 싸웠고 달려갈길도 마쳤고 믿음도 지킨 것, 다시 말해 그 모든 어려움을 이긴것도 하나님께서 내리는 상주심의 소망이 잇을때 였다고(7,8절) 했습니다. 이번 추수전진대회에 한달사이에 90여명이 등록하게 되었으니 힘들고 어려웠으나 큰 역사 이루었는데, 이는 소망을 갖고 끝까지 다하였기에 가능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바울사도가 그 숱한 고난(고후11:23-30절) 에서도 승리한 것은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른봄에 농부가 밭을 갈고 씨뿌림은 가을에 추수의 소망이 있기 때문이요, 산모가 옥동자를 낳는 소망이 있기에 힘들어도 즐거워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위한 면류관을 바라보며 끝까지 주의 역사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3. 최선 다해야 합니다. (6-8절)
죽을때가 되었음에(6)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한후의 자신을 말하고 있습니다. 최선이란 열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홉을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밖에 할 수 없는자가 하나를 다하는 것입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웠다 했는데 이는 생존 위한 혈투가 아니라 복음전파를 위한 믿음의 투쟁 입니다. 믿음의 선한 사움을 싸우라(딤전6:12)고 하시니 사단과 우리의 환경 또는 내적갈등 - 죄악된 생각, 교만, 욕심, 정욕- 과 타협하지 아니하는 삶이요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했으니 올림픽에 하이라이트인 마라톤 경주에서 우승했다기 보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렸다는 것이요 ƒ믿음을 지켰다 고 했으니 유혹과 핍박속에서도 넘어지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선을 다한 삶인것입니다. 성과가 좋고 나쁘고 많고 작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할 수 있는데까지 했느냐는 것이요 최선을 다 한자에게 면류관 주십니다.

말씀 마치겠습니다.
성도의 궁극적인 상급은 하늘나라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상급의 결정은 이땅의 삶에서 이루어집니다. 내가 해야할 것이 무엇인가 다시한번 새롭게 인식하고 사명 감당해야 하늘의 면류관 받을수 있고요, 뚜렷한 소망을 찾고 어려워도 끝까지 해내야 할 것이요 최선을 다해 내가 해야 할 일을 다 하는자에게 면류관 주십니다. 성도들이여! 지금 내가 하나님앞에 선다면 나를 위한 면류관 어떤 것일까요. 아직도라면 지금 준비하여 늘 승리하는 성도요, 좋은면류관 받아쓰는자 되시기 바랍니다

김조목사 설교자료 중에서(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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