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설교자료 18,185편 ◑/설교및자료 16,731편

삶을 극대화시켜라 (누가복음 16:1~13)

by 【고동엽】 2022. 9. 25.

삶을 극대화시켜라   (누가복음 16:1~13)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누가복음 16:1-13

   미국의 팜스프링스라는 곳은 사막 가운데 220개의 골프장으로 이루어진 도시입니다. 그곳을 방문했을 때 밤거리에 가로등이 없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시 의회가 사막의 아름다운 별빛을 원색적으로 잘 보기 위해 모든 가로등을 끄기로 결의했다는 것입니다. 가치가 낮은 것을 포기하고 높은 가치로 이동하는 가치이동의 예입니다.

   LA에 사는 우리 교민들은 주로 흑인과 멕시칸들을 상대로 돈을 벌고 있습니다. 흑인들이 구매력이 생기면 우리 교포들이 잘 살게 되고, 교포들에게 집을 판 백인들도 부자가 되는 선순환이 일어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을 어떻게, 어떤 일에 써야 극대화 된 삶을 살며 하나님 나라에 기여할 수 있는가 하는 부분에 대해 누가복음 16장의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1절). 주인이 청지기에게 가정의 모든 일을 맡겼습니다. 주인과 청지기와의 관계는 지금으로 말하자면 오너(owner)와 CEO와의 관계로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의사로서 암 환자를 치료하면서 무엇을 먹어야 암의 재발을 막을 수 있을지 고민하던 끝에 생식을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비즈니스가 활성화되어 수백 억대의 기업으로 크게 되었는데 제가 직접 경영하지 않고 CEO들을 두고 그들을 영적으로 지도하고 하나님의 기업으로 커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표를 세울 때는 정말 청명한 사람, 하나님 앞에 깨끗한 사람을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비즈니스를 운영하면서 개인이 남용하거나 개인의 영광을 위해서 쓰지 않겠는가 하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법인카드를 사용하면서 갈등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이 일에 과연 법인카드를 써도 되는가?’ 이런 일로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연약함을 실감합니다. 재물을 달라고 기도하지만 막상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셨을 때 감당할 수 있겠는가 하는 어려운 문제들이 있습니다.

   주인은 청지기가 자기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을 듣고 그를 해고시키고 몇 달 정도의 말미를 주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암 환자들을 치료하다 보면 암 선고 받은 환자들은 누구나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이제 마지막이 왔구나!’하고 생각합니다. 상상할 수 없는 당혹감을 느낍니다. 제가 많게는 하루에 100명의 환자를 봤는데 도중에 잠깐씩 침대에 누워 회복하지 않으면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건강한 사람들을 만나면 기분이 좋지만 죽어가는 암 환자들을 대하면 감정이 전염되기 때문입니다. 재발을 했다는 말을 할 때는 도저히 맨 정신으로 할 수가 없죠. 인생에서 아웃되었다, 다시는 기회가 없다는 이야기를 할 때 안타까움을 느끼곤 했습니다.

   갑자기 해고를 당한 청지기는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4절)하고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불렀습니다. 이 사람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아내는 집요한 특징을 가진 사람입니다. 송곳 같은 집중력으로 ‘어떻게 해야 이것을 회복시키고 살 길을 찾겠는가?’하며 지혜를 구하게 됩니다.

    크리스천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제가 주님을 알고 영적으로 회복되어 주님 안에서 풍성한 삶을 누린 이후의 가장 큰 변화는 지성(知性)의 변화입니다. 지적인 회복, 창조력의 회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이디어를 주시고 꿈을 주십니다. 저는 병원과 회사, 교회, 제사장봉사단, 꿈의 학교와 전 세계 선교지의 사역 등 많은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내가 다 해야 하는 줄 알고 했더니 하나님께서 좀 정리하라고 하셔서 올 한 해 안식년을 가지고 내년부터는 사역에만 전념하려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너무 많이 주시니까 이런 기도를 하지요. “수도꼭지 좀 잠거주세요. 제발 아이디어를 그만 주십시오.” 하나님을 알고, 주님 안에서의 풍성함을 경험하고, 창조주이신 주님을 알아 가면 창조적인 지혜들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창조력의 특징 중 하나는 ‘연결’입니다. 서로 다른 두 개를 연결시킴으로써 새로운 것을 이뤄낼 수 있는데, 이 청지기는 자기가 은혜를 베풀고 나서 그들이 자기에게 보상할 것이라는 두 가지 아이디어를 연결시켰습니다. 돈으로 친절을 사는 경우가 있고 돈으로 적개심을 유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쨌든 이 분은 그런 연계를 함으로써 자기 미래를 준비하게 된 것입니다. “말하되 기름 백말이니이다. 가로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졌느뇨. 가로되 밀 백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6,7절). 왜 기름은 반을 감해주고 밀은 20%만 감해주었을까요? 기름 백말은 1,000데나리온입니다. 반으로 감액해주었으니 500데나리온으로 탕감해준 것이죠. 밀 백석은 2,500데나리온으로 20%를 감해주면 500데나리온이 됩니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500데나리온씩 감해준 것입니다.

   주인이 돌아와 보니 동네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구두쇠로 알려졌던 주인에게 동네사람들이 모두 인사를 하고 감격해 합니다. 너무 너무 행복해 합니다. 왜 그랬어요? 주인의 재산을 감해준 청지기에게도 고마워했지만 주인에게도 고마워했던 것이죠. 전에는 물질이 있어도 그런 대접을 못 받았는데 이제는 물질을 통해서 수많은 친구가 생긴 것입니다. 비인격인 물질로 인격을 산 것입니다. 돈으로 사람을 사고 관계를 산 것입니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산 것입니다. 낮은 가치에서 높은 가치로 극대화 시키는 삶으로 전환된 것입니다. 여기에 감격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격이 치유되고 콤플렉스와 열등감과 상처와 고통이 치유된 사람은 에너지가 밖으로 향합니다. 나를 향하던 삶의 자세에서 밖으로 향하는 자세가 됩니다. 사랑을 주는 삶으로 전환됩니다.

    적은 투자이지만 꽃 한 송이로 아내의 마음을 살 수 있습니다. 책으로 자녀의 미래를 살 수 있어요. 저는 최근에 “꿈에도 전략이 필요하다”는 10대들을 위한 책을 냈는데 청소년 분야의 베스트셀러가 됐어요. 제가 아이들에게 투자를 한 것이지요. 책 한 권을 씀으로써, 작은 수고로 아이들의 삶을 바꾸고 꿈이 있는 아이들로 바꿀 수 있는 투자인 것입니다.

    제가 운영하는 크리스천 대안학교인 ‘꿈의 학교’를 보면 너무 감격스럽습니다. 아이들이 들어간 지 몇 달 후면 다 변화됩니다. 삶이 통째로 바뀌는 변혁이 일어납니다. 250명 전교생이 새벽기도를 합니다. 50명의 교사가 하나님의 사람을 키웁니다. 한 학급 12명의 학생들을 12제자 양육하듯이 날마다 중보하면서 키웁니다. 6개월은 미국에서, 6개월은 중국에서, 겨울방학에는 전 세계 오지를 다니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합니다. 책을 수백 권씩 읽습니다. 저는 설립자로서 “집을 팔아서 스승을 사라”고 말합니다. 어디에 투입할 것인가? 나에게 주어진 것을 어떻게 극대화시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가치를 창출할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

   예수님은 굉장히 혁신적인 영적 기업가입니다. 비효율적인 것을 용납하지 않으시지요. 예수님은 3년밖에 안 되는 시한부 인생을 사셨습니다. 이 3년 동안에 만 명을 놓고 목회하지 않았습니다. 12명을 키워 변화시킴으로써 세계를 변화시켰습니다. 예수님은 아셨습니다. 나의 전 삶을 어디에 투입할 때 세계가 변화되겠는가? 구속사의 완성을 이룰 것인가? 12제자와 70문도와 120제자가 있었지만 그들을 기초 삼아 폭발적인 초대교회 성장을 이루어가셨습니다. 대속의 죽음을 통해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셨습니다. 나 한 사람의 죽음으로, 내 전체를 쏟아 부음으로써 세상을 구원하는 가장 극대화된 삶을 사셨던 것입니다.

    이 원리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바로 작은 것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11,12절). 나에게 이미 맡겨진 것에 충성치 아니할 때에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예비하셨던 것을 주시겠느냐는 겁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나에게 이미 맡겨진 일에 빛을 발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지요. ‘나는 왜 돈이 없는가?’ ‘왜 나에게는 한계를 넘어서 내가 원하는 대로 주시지 않는가?’ 여기에 대해서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이미 맡긴 것을 극대화시키지 않고 사는데 더 주시겠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이라면 내 마음대로 쓰는 사람에게 맡기겠습니까? 제 큰 아들은 정확한 아이입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쓰는 법이 없어요. 진짜 필요한 일만 씁니다. 마음이 흐뭇하지요. 둘째 아이는 저하고 비슷해서 있으면 있는 대로 씁니다. 제가 돈을 맡길 때는 아무래도 큰 아들에게 마음이 갑니다. 불완전한 인간의 아비가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과연 나에게 맡기시겠는가? 이미 내게 주어진 것으로 극대화된 가치를 추구하지 않고 허비하는데 과연 맡기겠는가? 관리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는 도구로 훈련되어야 합니다. 마지막 시대에 은사의 기름 부음과 물질의 기름 부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부가 이동합니다. 여러분을 통해 엄청난 선교의 자본들이 활성화되는 일이 벌어집니다. 여러분이 축복의 창고가 되기를 빌 것이 아니라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한계’라는 것입니다. 축복은 내가 원하는 대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영역에 한계를 두셨습니다. 무제한의 자유, 무제한의 물질, 무제한의 재능은 없습니다. 미국 재즈계의 우상인 윈턴 마셀레스(Wynton Marsalis)는 “최고의 재즈는 사회적으로 용인된 한계 내에서만 창조될 수 있다. 한계가 없다면 재즈는 추락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재즈라는 음악의 형식이 있을 때 위대한 창조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한계 내에서 창조적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돈으로 아빠 노릇하는 것은 너무 쉬운 방법입니다. 돈이 없으면 아이들과 농구를 하든지 놀아줘야 됩니다. 돈이 없기 때문에 창조적인 아버지가 되고 진짜 자녀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가 있는 거예요.

    프로이드는 “성의 자유는 창조적인 문화의 원동력”이라고 했지만 26개 문명 집단을 연구한 결과는 그 반대였습니다. 가장 창조적이고 역동적인 문화는 일부일처제라는 구조를 유지하는 사회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부부라는 한계 내에서 성을 쓸 때 역동적이고 수준 높은 문화가 창조된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물질의 한계도 축복입니다. 바로 그 한계 때문에 우리는 기도하게 됩니다. 겸손하게 됩니다. 나의 물질을 관리하고 극대화시킵니다. 창조적인 역량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나에게 주신 것을 어떻게 극대화시켜 활용하는가? 이것이 중요합니다. 작은 것에 충성하려면 연구를 통해 속성을 파악하고 핵심을 붙잡아야 됩니다. 좋은 가족관계를 유지하려면 아내에 대해, 남편에 대해, 자녀에 대해 연구해야 됩니다.

    돈의 기능은 무엇입니까? 중세에는 ‘청빈사상’이었습니다. 가난한 것이 성경적인 미덕이었습니다. 나의 것을 모두 남에게 준 자발적인 가난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가난 자체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금욕주의는 이단적 사상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최고의 삶을 누리는 것이에요. 내가 누리지 못하는데 어떻게 남에게 줄 수 있습니까? 내가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종교개혁 이후에는 ‘근면사상’으로 바뀌었습니다. 막스 웨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보면 함정이 있는데, 청빈이 근면으로 단어만 바뀐 것입니다. 근면한 것은 좋은 것이나 근면 자체가 하나님 앞에 미덕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요즘은 “깨끗한 부자가 되자!”고 합니다. 깨끗하고 성경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자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물질의 가치를 알고 극대화시키는 것입니다. 즉 부가가치를 창출해 내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나를 통해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극대화시키며 수많은 사람을 회복시키고 행복하게 만들며 사랑과 복음을 전할 수 있는가? 이렇듯 축복의 통로가 되는 마음의 자세를 갖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 핵심을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13절). 하나님과 맞먹을 수 있는 것이 물질이라는 것입니다. 아람어 ‘맘몬’은 하나님과 라이벌이 되는 세력, 부와 물질을 뜻하는 말입니다. 물질은 인간으로 하여금 헌신하도록 영감을 불어넣습니다. 하나님과 똑같이 전적인 헌신을 요구합니다. 너무 막강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물질을 정복하는 자는 세계를 정복할 수 있습니다. 강력한 라이벌인 돈의 문제를 정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주는 것입니다. 주되 계속 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 6:38) 물질이 나를 거쳐 가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이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소유하는 것보다 나를 거쳐 가면서 얼마나 많이 주님을 위해, 다른 사람을 위해 쓰였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폴 마이어라는 분의 “베풂의 기술”이라는 책을 보고 굉장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분은 크리스천 기업가로서 선교 단체를 도우면서 “내가 기부하는 돈은 이러이러한 용도로 써라”하는 조건적 기부를 했습니다. 일종의 기금 모금(fundraising) 방법인데 그가 기부한 학교에서 2년 동안 이 방법으로 훈련을 받고 나오면 그 선교 단체의 기부금이 10배로 증가했어요. 텍사스의 어느 크리스천 대학에서도 기부 요청이 왔습니다. 그는 같은 방식으로 기부를 했습니다. “이 대학 출신들이 미국을 위해서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얼마나 쓰임 받고 있는지 기록영화를 만드는 데 이 돈을 사용하시오.” 완성된 영화를 상영하면서 기부금을 모집하니 10억 달러가 넘는, 미국 대학사상 최고의 기부금이 모였습니다. 돈도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영역을 어떻게 극대화시키며 가치를 전환시킬 수 있는가 하는 점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실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저는 영화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영화는 그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베스트셀러와 좋은 영화는 반드시 봐야 됩니다. 저는 ‘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를 DVD로 가끔 봅니다. 2차 세계대전 중에 오스카 쉰들러라는 사업가가 마치 삼국지의 조조처럼 놀라운 수완을 발휘합니다. 파산한 공장을 군용 식기공장으로 개조하고 임금을 거의 줄 필요가 없는 수용소의 유대인들을 고용했습니다. 유대인들 사이에 “쉰들러의 공장에 들어가는 것은 사는 길”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서로 들어오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쉰들러는 돈에 대한 가치에서 한 인간의 소중함에 대한 가치로의 가치전환을 하게 됩니다. 전쟁의 막바지에는 수백 만 마르크의 돈으로 독일 당국과 흥정을 하여 유대인 1,100명의 목숨을 구하게 됩니다. 7개월 후 독일이 항복하자, 유대인들은 자유인이 된 반면 쉰들러는 전쟁 범죄자로서 도망자 신세가 됩니다. 이별의 순간에 유대인들은 금니를 빼 반지를 만들어줍니다. 그 반지에는 유명한 구절이 쓰여 있습니다. “한 사람을 구하면 세상을 구원함이로다.”(Whoever saves one life saves the entire world.) 쉰들러는 그 글을 보면서 통곡합니다. “차를 팔았으면 열 명은 더 구했을 텐데…. 이 금 뱃지 하나면 두 명을 구했을 텐데 왜 팔지 않았나.”

    우리 인생의 마지막이 왔을 때 우리가 그런 통곡을 하지는 않겠습니까? “내가 무엇을 하고 살았는가? 한 영혼이라도 구할 수 있었는데….” 이런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된 재창조물입니다. 하나님의 도구로 빚어가시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그 정체성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창조할 때 성령께서 수면에 운행하셨습니다. 어미닭이 알을 품듯 품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이 시간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여러분을 위해 여러분 안에서 기도하십니다. 원래 의도하신 대로 여러분의 삶을 소모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극대화된 삶을 살도록 여러분을 빚어 가시고 품으십니다.

   한 번밖에 없는 생애, 나에게 주어진 이 준엄한 시간에 나의 삶, 나의 물질, 나의 시간, 나의 재능과 은사를 허망하게 보낼 것인가? 하나님께서 여러분 각자에게 답을 주실 줄 믿습니다. 정말 진지하게 기도해야 됩니다. 나의 전 생애를 어디에 투입할 것인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응답을 경험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라며, 여러분에게 주신 모든 달란트와 은혜가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100% 열매를 맺는 아름다운 생애, 쓰임 받는 생애, 귀한 생애가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황성주 목사 설교 중에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