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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일 (요 14:12-14)

by 【고동엽】 2022. 9. 24.

위대한 일  (요 14:12-1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 14:12-14)


위대한 주간
예수님의 생애를 위대한 생애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의 생애가 있지만 유독 예수님의 생애만을 위대한 생애라고 합니다. 그 삶의 실제를 따져보면 30년 동안은 어떻게 사셨는지 잘 모릅니다. 3년 동안의 생애를 위대한 생애라고 일컫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십자가를 지신 이 한 주간을 위대한 주간이라고 합니다. 오늘, 이 위대한 주간에 주께서 제자들에게 어떤 일을 약속하셨는가를 생각하면서 우리에게 주신 그 위대한 약속을 붙잡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자들을 떠나시는 주님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그리고 따로 제자들을 부르시고 친히 발을 씻기셨습니다. 주님께서 그 위에 성만찬을 행하신 후 새 계명을 주시면서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얼마 후 너희를 떠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남의 얘기니 쉽게 들리지만 나의 얘기라고 바꿔 생각해봅시다. 생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며 평생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는데 3년이 지나자 이제는 떠나신다는 말에 제자들은 큰 충격을 받습니다. 이 때 제자들의 나이는 20대 전후였습니다. 나이가 적은 사람은 18세부터 많은 사람은 29세정도 밖에 안 되는 아직 철부지의 어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떠나시겠다고 하자 시몬 베드로는 다른 사람은 다 버릴지라도 그는 절대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주께서는 그가 닭 울기 전에 세 번 주를 부인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떠나야 할 이유
-주께서 제자들을 향해 떠나셔야 할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1-3) 주께서 가심으로 놀라운 새 일이 벌어지고 영원한 아버지의 나라가 열린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하시며 주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떠나셔야 할 두 번째 이유를 설명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나보다 더 큰 일도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4:12) 주께서 이 땅에 계시면 더 큰 일을 이룰 수 없고, 그와 같은 일을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도대체 예수님께서 하신 일보다 더 큰 일이 무엇일까요?

주님이 하신 일보다 큰 일 - 기적?
더러 기적을 행하는 일이 예수님께서 하신 일보다 더 큰 일일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러나 그 말이 사실이 아닌 이유는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과 제자들이 행한 기적, 그리고 요즘 신유의 은사를 행하는 사람들의 기적의 종류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은 주권적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일어나라' 하시면, 실제로 그 사람에게는 나을 열망도 구원에 대한 갈망도 없었는데도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믿어야 낫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주께서 행하신 기적은 믿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매 빛이 생겼던 그 권능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라 하시면 일어났습니다. 눈을 만지시자 눈을 떴고, 문둥병도 그 분 앞에서 깨끗이 씻김을 받았습니다. 다분히 주권적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제자들이 행했던 기적은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해서 명령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라' 베드로도 요한도 아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입니다. 그 분을 의지해서 기적은 행사되었습니다. 또한 요즘의 기적은 어떻습니까? 그 대상이 믿어야 하고 게다가 기도의 응답으로 치료가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사도들이 행했던 기적이나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기적을 행하는 것에 관하여 우리는 예수님과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복음을 부탁하신 주님
우리가 주님과 같은 일을 어떻게 행할 수 있을까요? 주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부탁하셨습니다. 마태복음입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8-20)
마가복음입니다.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막 16:15) 어디에도 초대받지는 않았지만 어디든지 가라는 명령만은 확실하게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해 땅 끝까지 이르러야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반드시 결론을 낼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사업도 그 결론이 불분명하지만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확실히 성취될 것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주님께서 이 말씀을 요한음에서는 이렇게 바꾸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

주가 오심으로
주께서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구원은 없었을 것이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분은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구원을 완성했고 그것이 우리에게 복음이 되었습니다.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예수님 명령을 받들어 나가는 사람을 동일하게 비교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비교될 수 없는 일입니다마는 동등하게 비교해 주십니다. 나의 하는 일을 너도 하겠다는 뜻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주께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라고 명령을 하십니다. 이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어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파되리라고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성경구절을 예루살렘에 먼저 복음이 전파되고 그 후에 온 유대땅과 더 크게는 사마리아까지 전파되고, 그리고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본문을 보면 동시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입니다. 그래서 도마는 인도에서 안드레는 아일랜드에서, 베드로는 아직 복음이 차지 않은 유다땅과 로마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동시입니다. 이 성경구절처럼 오해되는 성경구절이 없습니다.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여기에 주님보다 더 큰 일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주님의 생애는 이스라엘 백성의 메시야인 것을 증명하는 생애로 끝났습니다. 이방인들이 주님께 나오는 기록이 두 번 있는데, 한번은 헬라의 수로보니게 여자가 귀신들린 자기 딸을 데리고 와서 치료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의 구원 여부가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두 번째 요한복음 12장을 보면 헬라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온 장면이 나옵니다. 빌립이 안드레와 함께 예수님 앞에 그 헬라 사람을 데리고 간 후 그 다음에 어떻게 해 주셨는지는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나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왔다고 하시며 약속된 메시야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가장 소중한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중임을 당하셨고, 그 죽임이 부활로 연결되면서 세상의 모든 죄를 지신 하나님의 어린양인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지 않으신 일, 유대 백성을 구원하신 일로 끝내셨지만 우리에게는 온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주께서 하신 일보다 더 큰 일을 맡기셨습니다.

복음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던 사람들
이 일에 교회는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은 열심히 세계로 나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 요한과 베드로는 곳곳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했는데 그 중 선교의 주역은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배가 닿는 지중해 연안의 모든 곳을 복음으로 편만히 채웠습니다. 사람들이 처음 예수 믿으며 좋아하고 기뻐하며 감격스러워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함께 모여서 떡을 떼고 마시며 즐거워하고 기뻐했습니다. 그들끼리 좋아하고 만족해하며 복음 증거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침략과 전쟁의 역사를 통해 전해진 복음
주후 4세기 경, 북쪽에서 게르마니아들이 무리를 지어 내려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킵니다. 그리고 그 지방 여자들과 결혼하면서 복음을 받은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간 후, 복음은 피레네 산맥을 넘어 중부유럽에 전파되기 시작합니다. 주후 8-9세기까지 복음으로 가득 찬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 믿는 것으로 만족하고 기뻐하며 복음을 전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삶에 만족하고 기뻐할 뿐이었습니다. 북쪽의 바이킹족이 발달된 선박으로 뱃길이 닿는 곳마다 침략하기 시작했습니다. 배가 닿는 곳에서 물품 뿐 아니라 여자들까지 납치해 왕족들부터 첩을 삼았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바이킹족의 역사를 보면 왕족부터 예수 믿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아내에게서 복음이 전해진 것입니다. 역사는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시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안주하려고 드는 것이 악한 교회의 특성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이상한 방법으로 심판을 하십니다. 우리가 나가서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우리의 사랑하는 아이들이 저 넓은 시베리아 벌목꾼으로 가서 복음 전하지 않는다고 어느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나가지 않으면 사랑하는 딸들이 중국사람의 아내 노릇하면서 복음 전하지 않는다고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중국은 산아제한정책으로 아이를 하나밖에 낳지 못합니다. 그 땅에서는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그냥 유기해 버리거나, 호적에 올리지 않고 키우기 때문에 중국의 인구가 13억인지 15억인지 17억인지 모른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여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입니다. 역사는 무수하게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져주지만 사람들은 이전의 역사를 통해 교훈 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선교의 역사 - 해안선 선교 시대
15세기, 종교개혁이 일어난 후 잃어버린 영지를 회복하기 위해 예수회(Jesuit)가 조직되었고, 프란시스 자비엘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아시아로 간 것이 최초의 자발적인 선교 기록입니다. 그리고 개신교가 복음을 전한 것은 그보다 훨씬 뒤의 일이었습니다. 개신교는 주의 복음을 받고 1790년경에 최초로 윌리암 캐리(William carey)가 인도에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분이 선교사로 나갈 때, 목사들이 얼마나 많은 반대를 했는지 모릅니다. 나중에는 하나님의 위대한 진리와 가장 귀한 교훈을 가지고 반대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그분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 없이 자신의 할 일을 하신다. 구원받을 백성을 하나님은 스스로 구원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나가지 않아도 그분이 구원하신다.' 이런 해괴망측한 논리를 대며 윌리암 캐리가 선교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기어코 인도에 나가 복음을 전했고, 1800년에 최초로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 때부터 연안시대의 선교가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연안시대의 선교라 함은 뱃길이 닿는 곳에서 선교하는 것을 말합니다. 당시에는 요즘처럼 비행기나 기차가 없었기 때문에 뱃길이 유일한 교통수단이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뱃길이 닿는 도시마다 복음을 전한 후, 정기적인 배편을 통해 정보 등을 보급 받고 본국과 의논해가며 선교를 했습니다. 그래서 인도의 경우 뱃길 닿는 곳부터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남쪽에서는 예수 믿는 사람이 약 15%나 됩니다. 그러나 북쪽으로 가면 거의 없습니다. 중국의 경우에도 복건성이나 광동성 또 상해 남쪽의 발달된 항구가 있는 곳에 먼저 복음이 들어갔습니다. 홍수전의 난을 봐도 남쪽에서 군대를 일으켜 북쪽으로 올라갔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륙 선교 시대
윌리엄 캐리가 선교사로 나간 약70년 후인 1860년에 허드슨 테일러(J. Hudson Taylor)가 '뱃길 닿는 곳에서만 선교해서는 안된다. 내지로 들어가자.'하며 중국 내지 선교회(China Inland Mission)를 만들어 내지로 들어갔습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파란 눈에 금발을 가진 외국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인처럼 머리를 묶고 그들의 모자를 쓰고 그들과 같은 복장을 하고 그들의 음식을 같이 먹으며 내지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들은 사천성과 귀주, 청해성, 하북성등 발길 닿는 곳마다 무리를 지어서 복음을 전하며 내지로 들어갔습니다. 중국 내지 선교회 이후 아프리카에도 아프리카 내지 선교회(Africa Inland Mission)가 조직되어 아프리카 내지 선교가 시작되었는데 그 중의 한 사람이 우리가 잘 아는 리빙스턴(Livingstone, David)입니다. 피터 스콧(Peter Scott)이라는 사람이 내지 선교회의 창설자입니다.

-종족 선교 시대
내지 선교가 어느 정도 정착된 지 70년 후 1930년경에-약 70년마다 변화가 있었습니다- 캐머룬 타운센드(Cameron Townsend)라는 젊은 청년이 미국 성서공회를 통해 외국에서 성서를 판매하는 일을 했습니다. 매서인으로 헌신하던 이 청년이 스페인어 성경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한 인디언이 와서 성경을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당신이 소개하고 있는 그 하나님이 그렇게 위대하다면 왜 우리말을 할 수 없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부족에게는 말은 있는데 언어가 없었습니다. 이 말에 큰 충격을 받은 타운센드는 그 길로 학교를 중단하고 그 부족과 함께 살기 시작했습니다. 단어를 정리하고 문자와 문법을 만들면서 그 사람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인디언들이 부족의 전설을 얘기하면 그가 만든 문자로 받아 적은 후, 다른 곳에 가서 그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사람들이 처음 녹음기가 발명되었을 때 똑같은 말을 틀리지 않고 반복하는 것을 신기해했듯 그 인디언들도 그가 문자를 보며 어디에서든 똑같은 얘기를 하는 것에 무척 신기해했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때까지 글자가 없어 여기저기서 얘기하는 내용이 달랐던 것입니다. 타운센드는 신기해하는 사람들에게 문자를 가르치기 시작했고, 바로 성경을 번역해서 읽을 줄 아는 사람에게 성경을 보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일로 위클리프 성경번역선교회(Wycliffe Bible Translators)가 창설되었습니다. 타운센드가 위클리프라는 이름을 쓴 것은 처음으로 성경을 영어로 번역한 사람이 위클리프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종족 선교입니다.

선교의 흐름
선교의 흐름을 보면 연안선교에서 내지선교 시대가 열렸습니다. 그러나 한 나라에서도 민족마다 다른 언어를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중국만 해도 56개의 소수민족이 있습니다. 내지 선교에 이어 한 국가뿐 아니라 그 종족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는 종족선교시대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약 70년이 지난 오늘의 2000년대에는 한 단계 변모된 선교가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전문인 선교입니다.

지금은 그리스도인들의 고난의 시기
민족주의가 다시 부활하면서 이방의 문화와 사상을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처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 당하는 시대가 없었다고 말합니다. 인도네시아에서, 동티모르에서, 그 밖의 해외 여러 지역에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밤낮 비참하게 죽어가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무수히 고난을 당하는 때입니다. 목사, 선교사의 직함으로 입국조차 거부되는 나라가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대문을 닫으시며 창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활짝 열린 전문인 선교 시대
많은 나라에서 전문인들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대부분 환영받습니다. 의사나 교수, 특히 공대교수나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사람이면 만세 부르면서 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공산주의 영향을 입었던 국가에선 경제학 교수를 환영합니다. 또한 전문인들이 본국의 중소기업체를 이전해 그 나라에서 사업을 하게되면 문을 활짝 열고 얼마든지 일하라고 하는 분위기입니다. 이제, 전문인 선교시대가 열렸습니다. 목사나 선교사라는 직함을 가지고는 도저히 갈 수 없는 그 길을 하나님께서 더 많은 사람이 갈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여셨습니다. 저는 이 일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전문인 선교사로 헌신하는 사람들
저희 교회의 한 장로님께서는 영어권 민족이 아닌 사람들이 가장 효과적으로 영어교육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미국에서 공부한 다음 신학을 마치고 태국에서 사역중입니다. 또 다른 장로님은 일본에서 선교하시고, 어떤 분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탈북자를 섬기기 위해 헌신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 선교하는 분도 있습니다. 목사와 선교사의 시대를 끝내시고, 주께서 하신 일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놀라운 부름으로 평신도를 부르십니다. 제 한 친구는 회사를 은퇴하자마자 자기 집을 전세로 놓고 개발도상국으로 나가 기업체의 자문을 해주며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특별한 사람이 선교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닙니다. 우리 교회에 열심히 나오는 분들 중 음식 만드는 일로 나가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문을 활짝 여셨습니다.

주께서 주신 말씀
주께서 이 시간에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 28:18-19) 예수 있는 사람은 예수 없는 사람을 제자로 삼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비밀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이 삼 년 동안 열 두 명의 제자를 키우셨는데 그 중 하나는 예수님을 팔아먹은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이 깡패도 의리가 있는 법인데 제자들은 예수님이 어려워지니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한 제자는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그냥 부인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모른다고 맹세하며 저주했습니다. 그런 제자 열 한 사람을 불러모아 놓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 28:18-19)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
어떻게 자신들을 지배하던 로마를, 그리스와 저 찬란한 중국을 제자삼을 수 있습니까? 만약 그분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분이 아니라면 이보더 더 큰 개그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졌기 때문에 믿음으로 나가면 그 민족은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놀라운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면서 오늘, 우리를 부르십니다.

부름 앞에 순종할 수 있도록
오늘 이 시간, 이 부름 앞에 우리 교회가 서기를 바랍니다. 불은 탈 때 불이고, 종은 칠 때 종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선교할 때 교회입니다. 남서울은혜교회가 선교의 불이 활활 타는 교회 되기를 열망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 교회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간, 선교의 부름을 주 앞에서 겸손하게 순종하고 고백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홍정길목사 설교 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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