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된 야곱 (창 30:25-43)
오늘 말씀은 야곱이 부자가 되는 장면입니다.
그는 밧단 아람에 와서 14년 되기까지는 자기 재산 한 푼도 모으지 못했습니다.
7년은 라헬을 사랑해서 공으로 일했고, 또 7년은 외삼촌 라반에게 속아서 공으로 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자기의 의무기간 14년을 다 채우고 ‘ 이제는 더 이상 이곳에 있어서는 안되겠다, 그러다간 외삼촌에게 당하기만 하겠다’고 생각이 되어서 그곳을 떠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외삼촌이 간곡히 그를 붙잡는 바람에 이번에는 품삯을 정하고 6년을 그곳에서 더 일하게 되었는데, 그 동안에 하나님이 그에게 축복하셔서 결국은 그가 큰 부자가 된 것입니다.
43절에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이에 그 사람이 심히 풍부하여 양떼와 노비와 약대와 나귀가 많았더라
원어에서는 이 말이 좀더 실감이 납니다.
여기 '심히 풍부해졌다'는 말의 원래의 뜻은 '심히 크게 터졌더라'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그가 얼마나 풍부해 졌는가 하면 크게 터질 만큼 풍부해 졌다는 말입니다.
또 31:1절을 보십시오. 라반의 아들들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야곱이 들은즉 라반의 아들들의 말이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인하여 이같이 거부가 되었다 하는지라
그 아들들이 시기하기까지, 아니 위협을 느끼기까지 야곱이 거부가 된 것입니다.
금년 초 TV에서 히트를 친 "여러분,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좀 유치한 것 같았지만 실제 사람들의 마음을 잘 나타낸 광고라서 광고의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실, 우리들 마음 속에는 다 부자 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방법에 있습니다.
무조건 부자 되었다고 다 좋은 것인가요?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부자가 되어도 어떤 방법으로 부자가 되느냐가 중요합니다.
잘못된 방법이나 나쁜 방법으로 부자가 된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그러나 정당한 방법으로 바른 방법으로 부자 되었다면 그것은 축복입니다.
그런데 여기 나오는 야곱의 부는 정당한 부였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얻은 부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도 다 이 야곱처럼 부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하는 그런 방법으로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야곱처럼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축복으로 얻는 부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야곱은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부자가 되었습니까?
오늘날의 우리들도 어떻게 하면 야곱처럼 부자가 될 수 있습니까?
오늘은 그것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아이러니한 말입니다만, 야곱은 그렇게 부자가 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부자 되려고 그렇게 애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부는 따라오는 것이지 내가 따라간다고 되는 것 아니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부자란 내가 되려고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자되게 해 주셔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덮어놓고 부자가 되려고 합니다.
남의 것을 훔치고 도적질하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라도 부자가 되려고 합니다.
그렇게 한다고 부자가 되던가요? 부자가 되기는커녕 감옥소에만 가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또 그렇게 해서 부자가 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평생 가시 방석에 앉아 늘 마음을 조리면서 사는데, 그것이 무슨 행복입니까?
그래서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부자란 내가 되려고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허락해 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무 부자 되려고 애쓰지 말아야 하고 잘못된 방법으로 부자 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부자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의 야곱을 보십시오.
그는 14년 동안 한 푼도 모으지 않고 외삼촌의 양들을 돌보기만 했습니다.
만일 그가 스스로 부자 되려고 애쓰기만 했다면 그런 대로 그 14년 동안 상당한 부를 쌓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동안 부자 되기를 포기했습니다.
그 동안은 남을 위해서 일하는 기간이므로 철저히 남을 위해서만 일하고 자기 재산을 모으지 않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청렴결백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외삼촌의 양을 한 마리도 축 내지 아니하고 또 빼돌리지 않고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 그였기 때문에 외삼촌 라반도 그를 믿었고 그가 돌아가려고 할 때에 그를 붙잡았으며 결국 하나님께서도 그런 그를 보시고 때가 되매 그를 축복해 주셔서 큰 부자가 되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 주위에 잘못된 방법으로 부자 되려다가 패가망신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번 우리 김대통령의 아들들도 생각해 보면 그런 Case가 아니겠습니까?
평생 가난하게 살다가 아버지가 대통령이 되고 보니 이때 좀 돈도 모아보고 쓰고 싶은 대로 써보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다가 보니 이 사람 저 사람으로부터 돈도 받고 또 이렇게 저렇게 쓰기도 했을 것입니다.
또 그에게 돈을 준 사람들도 그렇지요.
그렇게 해서 한 밑천 좀 잡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다가 다들 걸려든 것입니다.
참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이게 다 부자 되려고 하다가 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이 무어라고 했습니까? (딤전 6:6-10)
6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7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있는 것으로 자족하십시오.
너무 과도하게 부자 되려고 하지 마시고 잘못된 방법으로까지 부자 되려고 하지 마십시오.
결국은 그것이 시험과 올무가 되며 우리로 하여금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 됩니다.
야곱은 억지로 부자 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로, 야곱은 그러면서도 자기 맡은 일에 충성했습니다.
부자 되기를 포기한 사람들은 자기 맡은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잘못을 범하기 쉽습니다.
그냥 되는 대로 살고, 일을 해도 억지로 눈가림으로 하기 쉽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목회할 때 성도들이 일하는 사업처에 방문하는 경우 종종 있었습니다.
그럴 때 보니까, 사람들이 자기 사업을 할 때와 남의 일을 할 때의 자세가 다르더군요.
왜냐하면 일한 만큼 자기 것이 되니까 자신의 일을 하면 죽을둥 살둥 모르고 전심으로 일을 합니다.
그러나 남의 일을 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더군요.
왜냐하면 아무리 잘 해도 자기가 부자 되는 것이 아니고 주인을 좋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간만 때운다든지 눈가림으로만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주인 일을 하면서도 자기 일처럼 충성스럽게 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얼마 안 있어 자기도 주인이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치고 부자 안 되는 사람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여기 야곱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양을 쳐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한번도 나쁜 방법으로 부자가 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외삼촌의 일에 게으르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은 외삼촌도 인정하는 바였습니다.
여기 27절에 "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인하여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라고 고백합니다. 야곱이 그만큼 충실하게 일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유하라"고 하면서 그를 붙잡습니다.
그가 열심히 일하지 않았다면 왜 붙잡습니까?
그런데 그 약삭빠르고 계산에 밝은 라반이 야곱을 붙잡습니다.
또 창 31:40에도 보십시오.
그가 나중에 하란을 떠났다가 외삼촌의 추격을 받고 난 다음에 외삼촌에게 한 말입니다.
38 내가 이 이십 년에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 떼의 숫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39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낮에 도적을 맞았든지 밤에 도적을 맞았든지 내가 외삼촌에게 물어내었으며
40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
야곱은 이렇게 열심히 일했습니다.
자기 양이 아니라고 아무렇게나 하지 않았습니다.
외삼촌의 재산을 존중하면서도 그 일을 자기 일같이 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외삼촌도 그를 붙잡았고, 하나님도 그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우리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부자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습니까?
지극히 적은 일에 충성된 자는 큰 일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적은 일에 불의한 자는 큰 일에도 불의하다고 했습니다
또 남의 밑에서 일하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엡 6:5-8)
5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6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7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8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
그래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너무 과도하게 부자 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부자 되게 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나 그 때까지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항상 부지런해야 하고 맡은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축복해 주십니다. 그래서 정말 부자 되게 하십니다.
잠 22:29에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야곱은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야곱에게는 부자될 수 있는 아무 요건도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밑천도 없었고 주인으로부터 물려 받을 만한 것도 없었습니다.
그가 일하는 직장의 보스는 너무나도 이기적인 사람, 인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무언인가 기대할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믿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하나님이었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축복해 주시고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의 그런 믿음은 그가 라반과 임금에 대해서 계약하는 가운데 잘 나타나 있습니다.
라반이 그에게 품삯을 정하라고 하니까 무엇을 요구합니까?
앞으로 외삼촌의 양떼 가운데 아롱진 자와 점 있는 자와 검은 자, 그리고 염소 중에 점있는 자와 아롱진 자가 태어나면 자기 품삯으로 달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만, 그 당시 양떼들 중에 그런 것들은 희귀했습니다.
그러니까 계산 빠른 라반은 야곱의 요구에 순순히 응했습니다.
만일 야곱이 그것보다 더 유리한 것을 요구했으면 라반이 결코 들어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생각한 것보다 더 적은 것을 요구하니까 라반이 그렇게 하자고 계약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라반은 어떻게 했습니까?
즉시로 자기 아들들을 시켜 그의 양떼 중에 그런 것들을 다 골라냈습니다.
그리고는 야곱과의 거리를 사흘길이 되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야곱이 말한 그런 것들이 자기 떼에 섞여 더 이상 그런 류의 새끼들이 태어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철저히 대책을 세운 것입니다.
라반은 야곱에게 한푼이라도 더 주고 싶은 생각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주기는커녕 어떻게 해서든지 빼앗으려는 심보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외삼촌이 그런 사람인 것을 알았을 텐데 야곱은 왜 그렇게 불리한 조건을 말했을까요?
저는 그것이 야곱의 믿음이었다고 믿습니다.
야곱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외삼촌 라반이 제 아무리 수를 써도 하나님은 자기편이고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어떻게 하든지 결국 자기에게 복이 돌아온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적으로는 제일 가능성이 적은 것을 택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외삼촌으로 하여금 마음 놓고 수락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 속에는 외삼촌이 어떤 것을 선택하셔도 하나님은 어떤 방법을 쓰셔서라도 내게 축복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37절, 38절에 보면 야곱의 이상한 행동이 나옵니다.
야곱이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취하여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그 껍질 벗긴 가지를 양 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구유에 세워 양 떼에 향하게 함으로 그 떼가 물을 먹으러 올 때에 거기서 새끼를 배게 한 일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39절에 나타나 있듯이, 그 가지 앞에서 새끼를 밴 것들은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은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 여러 가지 설명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 방법이 그 당시 목자들 가운데 알려진 주술적인 방법으로서 야곱이 그 방법을 써서 짐승들이 자기가 원하는 새끼들을 배게 했다는 설명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야곱이 그런 방법까지 썼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또 하나는 이런 나무 가지의 모습이 실제로 짐승들의 잉태에 영향을 주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생리적인 작용이 있었을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아직까지 그런 생리적인 효과의 증거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야곱이 왜 그렇게 했고 또 어떻게 해서 그런 방법으로 그 짐승들이 그렇게 얼룩 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게 되었을까요?
거기에 대해서 요한 칼빈의 해석은 이렇습니다.
야곱이 자기 믿음의 상징으로써 그런 가지들을 썼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의 믿음의 행위를 보시고 그런 기적적인 결과를 허락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말하기를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께 범죄하여 불뱀에 물려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이 모세를 시켜 구리 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게 하시고 그것을 보는 자는 다 살리라 해서 정말 그 장대에 달린 구리뱀을 본 자들이 살았는데, 그것은 그 구리뱀 자체가 뱀에 물린 자들을 고치는 의학적인 효능이 있어서가 아니고 그런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한 그들의 믿음 때문에 고침을 받은 것처럼, 야곱이 그런 나무 가지를 물가에 단 것은 바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의 상징적인 표현으로 그렇게 한 것이고 그것을 보고 잉태한 짐승들이 그런 새끼들을 낳은 것은 특별한 하나님의 축복이었다는 해석입니다.
저는 이 세 번째에 해당하는 칼빈의 해석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야곱의 믿음이 그런 결과를 만들어 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가 나중에 그의 아내들에게 한 말을 들어보면 하나님께서는 이미 꿈에 양떼를 탄 수양이 다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 아롱진 것들인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31:11-12)
야곱이 바로 그런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믿고 그 믿음의 상징으로 그런 행동을 했고 하나님은 그런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에게 낳는 것마다 그런 짐승들이 나게 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야곱이 부자가 된 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그가 그런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은 하나님을 믿는 그의 믿음과 순종의 행위 때문이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부하게도 하시고 가난하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세상의 모든 부와 귀가 다 하나님께 속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부자로 만들어 주시겠습니까?
남의 부로 부자 되려는 욕심을 버린 자들입니다.
세상의 잘못된 방법으로 부자 되기를 포기한 사람들을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진정한 부자가 되게 하십니다.
두 번째로, 그러면서도 자기 맡은 일에 충성을 다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는 자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이런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한평생 이 세상을 살면서 야곱처럼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는 진정한 부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이 철 목사 설교 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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