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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이어의 표적 (요6:1-15)

by 【고동엽】 2022. 9. 23.

오병이어의 표적  (요6:1-15)

요한복음 6장은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장정만 오천명을 먹이고 12광주리가 남은 기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표적에서는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떡'이라는 사실을 집중적으로 교훈하고 있습니다.
본문 1,2절에 보면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갈릴리 바다 건너편의 한 산에 오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좇아 온 많은 무리들을 보시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또다시 그들을 배불리 먹이시는 표적을 행하셨습니다(마 14:13-21; 막 4:35-41; 눅 4:38; 5:12-16).
이 표적은 예수께서 행하신 수많은 표적들 중에서 부활 사건과 더불어 사복음서 모두에 나오는 유일한 표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 있어서 그 정점을 이룹니다. 이 표적은 한 마디로 '불가능한 가능성'(Impossible Possibility), 즉 안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불가능의 현장

예수님께서 많은 표적을 행하시는 소식을 전해들은 무리들은 예수님을 따르면서 말씀을 듣는 중이었기 때문에, 그들 중 대부분은 먹을 음식을 준비하지 못하였습니다. 이 때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 사람들을 먹여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요 6: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물론 여기서 무리들을 먹인다는 것은 육체적인 양식을 제공해 주는 것만을 의미할 뿐 아니라, 영적인 양식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는 것까지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동안 병도 고쳐주시고 천국복음도 증거하시면서 표적을 통해 당신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되심을 증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도 영적인 면에 있어서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함으로써 죽어 가는 많은 심령들을 구원해야 하며, 육적인 면에 있어서는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주님을 믿음으로 형통한 삶을 살아야 함을 가르쳐야 합니다.
한편, 군중들의 배고픔을 인식하신(5절) 예수님께서는 빌립을 시험할 목적으로 던진 질문을 통해 제자들의 마음을 들여다보시게 되었습니다(6절). 예수님의 질문에 대하여 빌립은 군중들이 먹을 최소한의 식사에 해당하는 금액을 계산함으로써 불가능성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요 6: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이렇게 많은 무리를 먹이는데, 이백 데나리온에 해당하는 돈이 필요했습니다. 이백 데나리온은 일반 노동자의 200일 품삯, 즉 한 주일에 엿새 동안 일을 한다고 계산하면 약 8개월 간의 임금에 해당하는 돈이 됩니다.
그런데 안드레는 보다 희망적인 자세를 보였습니다. 그는 한 아이의 도시락, 즉 일반 평민층의 주식이었던 작고 납작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 그리스도께 내드렸습니다(9절). 그러나 제자들이 보기에 그 적은 양의 음식으로 오천 명을 먹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임에 틀림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방법과 지시는 전혀 달랐습니다.
(요 6: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쯤 되더라
여기서 '오천 명의 수효'는 여자나 어린아이를 제외한 장정(壯丁)만의 수입니다. 동일한 사건을 기록하면서 마태는 이에 대하여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마 14:21)라고 기록하였고, 마가는 '떡을 먹은 남자가 오천 명이었더라'(막 6:44)고 하였습니다.
빌립은 예수님에게 현재 무일푼과 다름없는 상태에 있는 제자 자신들로서는 도저히 많은 무리들을 먹일 방도가 없다는 것을 확실히 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이처럼 빌립은 상당히 합리적이었지만, 이와 같은 사람은 대체로 신앙의 기적에 대해서는 쉽게 믿으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결코 돈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우리가 생명의 양식되시는 주님을 얼마나 신뢰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모든 만물의 주인으로서 인생의 방향을 좌우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계산법은 인간의 이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롬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B. 비렌슨은 "기적은 그것을 믿는 자에게 일어난다"고 했고,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만일 기적이 없었다면 나는 기독교인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 격언에 "기적은 기적을 믿는 이에게만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2. 예수님의 표적

(요 6: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축사하다'( )라는 단어는 '감사하다'는 뜻입니다. 본문의 기적은 예수님의 감사 기도로 시작되었으며, 그 결과로 떡과 고기는 모든 사람들이 풍성히 먹고도 남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무궁무진한 공급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계신 장소에 먹고도 남으며 또한 넘치는 큰 축복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12절).
(요 6:12)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예수님께서는 이미 예고했던 대로, 오병이어의 표적을 통해서 당신 자신이 장차 도래할 메시야 왕국에서 향연을 베풀 장본인임을 보여주셨습니다. 따라서 오병이어의 표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현세적인 해석임에도 불구하고, 종말에 도래할 메시야 향연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한편 구약 성경에서 광장에서의 잔치 내지 식사는 번영의 상징일 뿐 아니라(전 3:13, 5:18, 8:15), 장차 하나님의 백성들이 누릴 축복의 의미로도 해석하고 있습니다(신 8:9, 11:15, 느 9:36). 이에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비유를 종종 잔치에 비유했던 것입니다(눅 14:15-24). 이 축복은 미래에 올 천국의 삶이 오늘 우리의 삶에 투영된 것입니다. 이것은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라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제자들의 불가능성의 절망의 골이 깊으면 깊을수록 예수께서 보이신 가능성은 더욱 밝게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의 표적을 통해, 오천 명이 넘는 장정들이 배불리 먹었을 뿐 아니라, 먹다 남은 것이 열 두 광주리나 될 정도였습니다. 이렇듯 불가능의 정황 가운데서 예수님은 가능성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요 6: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에 찼더라
빌 브라이트 박사는 기도를 통해서 체험한 하나님의 기적을 간증했습니다. 첫째는 그가 전도를 시작할 초기에 485달러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 후, 자신에게 전도받은 스위스 인에게서 500달러의 수표가 보내져왔습니다. 두 번째로, 그가 1만 달러를 놓고 기도했는데,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와서 처음에는 1만 달러를 이자없이 빌려주겠다고 했고, 또 기도해본 후 하나님이 자신의 사업을 축복하면 빌려준 돈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 그를 축복하심으로 1만 불을 그냥 헌금하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로, 브라이트 박사는 110만 불을 놓고 기도했습니다. 큰 전도계획에 필요한 자금이었습니다. 하루는 버드밀러란 사람이 와서 '도움을 주고 싶은 데 무엇이 필요하냐'고 물었습니다. 자초지종을 듣고 난 후, 그는 마침 자신의 사업체를 정리한 돈이 있다고 하면서 그 돈을 기꺼이 내놓게 되었습니다.
본문은 요한복음의 7대 표적 중에서 네 번째 표적입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신적 권능을 다시 한번 확연히 드러내시면서, 자신이 영생을 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심을 밝히셨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신앙생활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이적들은 우리로 하여금 참 믿음을 갖게 합니다. 이런 놀라운 축복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축복은 우리로 하여금 생의 어떤 고난과 절망이 다가오더라도 이를 극복하는 신앙으로 성장케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그것 자체가 아주 큰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3. 표적의 결과

(요 6:14)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오병이어의 표적이 예수님의 메시야 되심에 대한 계시의 일환으로 행해졌지만, 군중들의 반응은 예수의 의도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그들은 오병이어의 표적을 광야에 내린 만나의 재현으로 여기고(출 16:13-15), 이 능력의 시행자인 예수님을 자신들의 왕으로 세우려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당시 로마의 학정과 수탈로 인해 경제적인 빈궁에 처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종교적 긍지조차도 로마의 문화적 침투로 인해 상당한 훼손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난국에서 자신들을 구원해 줄 정치적인 메시야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 때에 베푸신 예수님의 오병이어 표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러한 메시야에 대한 기대감에 부응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갖고 있던 메시아관은 '메시야는 곧 이스라엘의 국권 회복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인해 유대인들은 바벨론과 페르시아 그리고 그리스와 로마로 이어지는 외세 하에서 피지배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언젠가는 메시야가 나타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리라는 희망을 잃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민족주의적 메시야상을 단호히 거부하셨던 것입니다.
그들의 요구는 마치 누가복음 4장에 나타난 사단의 유혹과 흡사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치 수가성 여인이 물긷는 수고로움을 면하기 위해 예수님께 생수를 요청했듯이(4:15), 떡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 6:15)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근본 문제점을 알았기 때문에, 더 이상 그들과 함께 있지 않으시고 몸을 피하여 무리들로부터 떠나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오병이어의 이적 사건은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에 있어서 하나의 큰 분수령이 됩니다. 즉 예수님은 지금까지 고조되었던 예수님에 대한 정치적인 메시야적 기대를 거부하심으로 인하여(51절), 이 사건 후에 무리들로부터 본격적인 배척과 핍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핍박했던 이유는 예수님이 그들이 원하는 메시야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에 오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인생의 구원자로만 인식하고 따르며 그를 믿게 된다면, 대체로 우리는 교회에서도 물질적인 욕구만을 채우기 위하여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예수님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큰 믿음의 기적을 보여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무리를 떠났듯이 우리를 떠나시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무엇을 믿고, 왜 살며, 누구를 위하여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찰에 가보면 그들의 기도는 건강, 장수, 자녀, 부부해로 등 세상적인 것 밖에 없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의 기적이 이 정도의 차원에만 머문다면, 이방의 우상종교와 별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결 론
예수님께서 행하신 오병이어의 이적은 빌립 뿐 아니라 모든 제자들에게 커다란 교훈을 주었습니다. 예수님께 바쳐진 오병이어는 비록 그것이 많은 사람들의 수에 비할 때 터무니없이 적은 것이기는 했지만, 그 결과는 엄청난 축복이었습니다. 비록 우리가 보기에는 겨자씨 만한 믿음일지라도,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서도 역사하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빵 문제만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오시지 않았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현세적인 축복만을 구할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신앙을 갖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눈에 보이는 세상의 연락과 풍요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신만을 후원하여 억지로 임금삼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이 사건은 당시의 역사적인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장차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게 하는 영적 안목을 가지게 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이 영광스런 나라로 우리를 이끌어 올리실 것을 확신케 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신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시요,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우리는 믿습니다.

안재은목사 설교자료 중에서(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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