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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되라시니 종되어야지 (마 20;25-28)

by 【고동엽】 2022. 9. 23.

종되라시니 종되어야지   (마 20;25-28)

대조적인 두 명을 소개하며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먼저 구세군을 창설한 윌리암 부스입니다. 그의 만년에 어느 기자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장군님의 나이는 82세입니다. 이 때까지 오직 그리스도의 종으로 변함없이 일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이런 질문을 받은 부스가 대답하였습니다.
<비결은 없습니다. 나는 날마다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나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오니 오늘도 마음대로 써주옵소서’
이렇게 조용히 되풀이 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위하여 바울처럼 날마다 죽으려고 하는 것뿐입니다. 나는 예수님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평생 예수님의 종으로 살았습니다. 그가 죽었을 때 온 영국이 떠들썩하였습니다. 장례 행렬은 이 끝에서 저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른 한 사람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 유명한 모짜르트입니다.
모짜르트가 음악의 천재라는 사실은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8살에 왕앞에서 연주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어떤 음악이든지 한 번만 들으면 악보로 그려낼 정도였습니다. 유럽 전역을 돌며 연주할 때 사람들은 환호하였습니다. 교황에게 훈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35세에 요절하였습니다. 그 날은 진눈깨비가 내리는 나쁜 날이었습니다. 그의 장례에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유족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묘지에서 일하는 인부 한 명이 귀챦은 표정으로 시신을 혼자 묻었을 뿐입니다. 명성은 얻었으나 존경을 얻지 는 못 하였습니다. 도도하게 자기만을 위하여 거만하게 살아간 그를 좋아할 리가 없었습니다.
  
종에게는 세 가지가 있어야 종입니다. 이 세가지가 없으면 종이 아닙니다. 종이 되라는 말씀은 이 세 가지를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1. 주인이 있습니다.
종이라는 말은 주인이 있다는 말입니다. 주인이라고 할 때 헬라어로는 큐리오스라고 되어 있습니다. 큐리오스라는 말은 <왕초> <두목>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두목이 무슨 말을 하든지 종은 꼼짝 못 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종입니다. 나를 얽어 매고 있는 주인이 있는 사람이 종입니다. 자유인은 결코 종이 아닙니다.  
신하없는 왕은 없습니다.
교인없는 목사가 어디 있습니까?
양없는 목자가 어디 있습니까?
나무없는 숲이 어디 있습니까?
물없는 바다는 바다가 아닙니다.
엔진없는 자동차가 있을 수 없습니다.
물없는 강은 이미 강이 아닙니다.
잔디없는 잔디밭은 없습니다.
주인없는 종은 없습니다.

종은 섬길자가 있기에 종입니다.
부산에 살던 부자집 이야기입니다. 그 집에서는 영리한 개가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습니다. 주인이 바구니를 개 입에 물려 주고 고기 한 근 값을 넣어 줍니다. 그러면 정육점에 가서 고기를 사오곤 하였습니다. 주인 아주머니가 살코기만 사오라고 요청하면 살로만 사왔습니다. 정확하게 심부름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부자가 서울로 이사오게 되었습니다. 새로 이사온 집에서 가까운 곳에도 정육점이 있었습니다. 주인은 부산에서 그랬던 것처럼 고기를 사오라고 장바구니를 개 입에 물려서 보냈습니다.
그러나 30분이 지나도 오지 않았습니다. 한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여기 저기 찾아 보았습니다.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3일이 지났습니다. 개는 돌아 오지 않았습니다. 서울에는 개 도둑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누가 개를 잡아 갔을 것으로 여기고 개 찾기를 포기하였습니다.
3일이 지난 후 저녁 주인 아주머니가 시장을 보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에 개가 입에 바구니를 물고 절뚝 거리며 힘없이 오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개에게 달려 갔습니다. 그리고 반가워서 개를 끼어 안으며 말했습니다.
<그 동안 어디 깄었니?> 그 개는 주인을 본 후 그 자리에 푹 쓰러지더니 죽어 버렸습니다. 알고보니 부산까지 가서 고기를 사 가지고 오는 길이었습니다. 그 개는 지쳐서 쓰러져 죽은 것입니다.
바구니 안에는 다 썩은 고기 한 근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이것이 종의 자세입니다. 종은 주인이 있습니다. 개는 충성스러운 종노릇을 톡톡히 한 것입니다.
종에게는 주인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묻습니다.

돈이 여러분의 주인은 아닙니까?
명예가 주인노릇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무엇을 따라 다니나요? 당신은 무엇의 종인가요?

  어떤 선교사가 자기가 선교할 선교지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여자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하여 비명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보았습니다.
어떤 남자가 노예 시장에서 종을 사서 데리고 가려는 중이었습니다. 그 종 어머니가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주인님! 나 아들과 떨어져 살 수 없습니다. 나도 같이 사주세요. 아들과 같이 살게 하여 주세요. 주인님에게 충성하겠습니다.>
그러나 아들을 종으로 산 주인은 냉정하였습니다.
<넌 필요없어.>
어머니는 생명을 걸고 애원하였습니다.
어머니도 울고, 아들도 울고 있었습니다.
선교사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선교사는 돈을 모두 모아 보니 두 종을 살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아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났습니다.
모자는 선교사 집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선교사가 풀밭에서 비명을 지르고 넘어졌습니다. 독사가 와서 선교사 발뒷굼치를 물었던 것입니다.
기절하고 쓰러졌던 선교사가 정신을 차리고 깨어났습니다. 선교사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 지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 종이 뱀에 물린 자기 발에 입을 대고 얼굴이 퉁퉁 부은 채 죽어 있었습니다. 뱀에 물린 자리를 입으로 계속 빨아 독을 제거시지고 죽은 것입니다.
자기를 살려준 주인을 위하여 죽기까지 충성한 종의 모습니다.
종에게는 주인이 있어야 종입니다.
내게 생명을 주신 예수님을 위하여 죽을 수 있는 종이 바로 우리입니다. 주인이 있어야 종입니다. 종되라니 종되어야 합니다.
  
  2. 맹종이 있습니다.
종은 주인에게 맹종만 있을 뿐입니다. 순종과 복종과 맹종이 있습니다. 순종은 기쁨으로 그 사람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복종은 하기 싫지만 그래도 억지로라도 그 사람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맹종은 무조건 그 사람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봅니다.
조금 안 좋은 말이니 용서하고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남자들이 여자들 옷 벋기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순종적인 방법과 복종적인 방법과 맹종적인 방법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면 아내는 기뻐하며 옷을 벗습니다. 그러나 아내가 의사에게 병을 치료하러 갔는 데 의사가 말합니다.
<옷을 벗어야 치료하겠네요.>
그러면 남의 남자 앞이지만 병 치료를 위하여 억지로 옷을 벗습니다. 하기 싫지만 억지로 하는 것은 복종입니다. 그러나 강도가 총을 들이 대로 외칩니다.
<옷을 안 벗으면 죽인다.> 그러면 옷을 벗습니다. 맹종입니다. 무조건입니다.
종은 주인에게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맹종하는 것입니다.

무디 설교집을 읽다가 감명을 받은 것이 있습니다.
어느 날 3 층에서 설교하던 무디는 갑자기 말했습니다.
<나는 예수님의 종입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지금 당장 3층에서 뛰어 내리라고 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뛰어 내릴 것입니다.>
이것이 맹종이요, 이것이 종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젊은이가 지혜롭다고 소문난 왕을 찾아 와서는 물었습니다.
<왕이시여!  죄의 유혹을 물리치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비결을 가르쳐 주십시오.>
왕은 소리를 버럭질렀습니다.
<건방진 놈! 감히 내게 와서 그런 질문을 하냐? 너는 사형이다.>
젊은이는 겁에 질려서 왕에게 빌었습니다.
<왕이시여! 저의 무례함을 한번만 용서하여 주옵소서!>
왕이 말했습니다.
<너를 살려주는 데 한가지 조건이 있다.> 그리고 컾에 물을 가득 따라 부었습니다. 한 방울도 더 들어 갈 수 없도록 부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이 잔을 들고 마을 한 바퀴를 돌아 오거라. 네 뒤에는 내 신하가 칼을 들고 따라갈 것입니다. 만일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너는 그 자리에서 목이 사라질 것이다.>
젊은이는 벌벌 떨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물이 찰랑이는 컾을 쳐들고 마을을 돌기 시작하였습니다.
젊은이는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동네를 돌았습니다. 그리고 왕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돌아 왔습니다.>
왕이 물었습니다.
<그래 동네 우물가에서 여자들 몇 명이 빨래를 하더냐?>
<모릅니다.>
<술집에는 술마시는 이들이 얼마나 되더냐?>
<모릅니다.>
<나무 그늘에서는 노인들이 무엇을 하더냐?>
<모릅니다.> <이 놈아! 안 다녀 왔구나!>
<다녀 왔습니다.> <그런데 왜 모르냐?>
<왕이시여! 내 생명은 물 한 방울에 달려 있었기에 물컾만 보았나이다.>
이런 말을 듣고 왕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습니다.
<그렇다. 그것이 바로 비결이다. 네가 오직 물컾만 보고 동네를 돈 것처럼 오직 진리만 보거라. 다른 것은 일체 보지 말거라. 이것이 세상 유혹을 이기는 비결이다.>
우리는 이 것 저 것 볼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주인만 바라보고 맹종하면 종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어느 청년 간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기도하는 데 예수님이 마음에 깊은 감동을 주셨습니다.
<가지고 있는 전 재산을 내게 바쳐서 영혼구원에 사용하거라.>
그 청년은 무조건 맹종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위하여서는 아낌없이 드리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가지고 있는 전 재산을 선교비로 바쳐서 영혼구원에 사용하였습니다. 그 해 가뭄이 들었습니다. 앞에 있는 저수지가 말랐습니다. 그 곳에 채소를 심었습니다. 가뭄속에서 그래도 습기가 남아 있는 땅이라 채소가 잘 자랐습니다. 다른 밭에 심은 채소는 다 타죽었습니다. 그 곳에 심은 채소가 금값이 되었습니다.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 돈으로 돼지 새끼 사서 길렀습니다. 돼지들이 잘 자라서 팔아서 13마리 소를 샀습니다. 큰 농장이 되었습니다. 하는 일마다 하나님이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맹종하는 종을 축복하십니다. 맹종이 없는 종은 종이 아닙니다. 자유인입니다. 우리는 주님에게 맹종하는 주님의 종입니다.

3. 일감이 있습니다.
종에게는 늘 일감이 있습니다. 번둥번둥 놀게 하려고 종을 두는 주인은 이 세상에 한 명도 없습니다. 종에는 무슨 일을 하여야 할 지 분명한 사명이 주어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일을 하지 않는 성도는 예수님의 종이 아닙니다.
묻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위하여 분명한 일을 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당장 대답할 수 있는 말이 나와야 예수님의 종입니다. 예수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분명하고도 확실한 일을 하여야 예수님의 종입니다.

우리는 다윗에게서 그런 사실을 명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새는 아들만 8명을 낳았습니다. 어느 날 사무엘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 아들 중에서 한 왕을 예선하였음이니라>(삼상16;1)

그래서 사무엘은 기름을 가지고 이새의 집으로 갔습니다. 왕을 뽑기 위하여서였습니다. 이새는 막내 아들 다윗은 혼자 양을 치라고 들판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7명의 아들들을 사무엘 앞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들중에 한 명이 왕이 될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큰 아들 엘리압, 둘째 아들 아비나답, 셋째 아들 삼마를 차례로 사무엘 앞에 세웠습니다. 하나님은 아니라고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7명이 다 그랬습니다. 사무엘은 아들이 다냐고 물었습니다. 이새가 말했습니다.

<아직 말째가 남았는데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삼상16;11)

다윗은 종같이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형들의 종노릇을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종노릇을 하였습니다. 좋은 자리에는 다른 사람을 보내고 양을 치는 일에 혼자 종노릇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왕으로 임명하라고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종노릇하는 다윗이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분명한 일감이 있었습니다. 형들은 왕 자리에 관심을 가지고 모두 양을 치다가 양을 버리고 갔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양을 치다가 양만 쳤습니다.

미드라쉬는 이런 이야기를 전하여 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양을 칠 때 남다른 데가 있었습니다. 양을 세 종류로 분류하였습니다. 병든 양, 어린 양 그리고 건강한 양입니다. 풀을 보고 갓 피어난 연한 풀이면 병든 양을 끌어다 먹였습니다. 그리고 보통 풀은 연약한 양들에게 뜯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억센 풀은 건강한 양들이 먹게 하였습니다. 이런 모습을 하나님이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아! 네가 네 아버지 양을 그렇게 잘 기르는 것을 보니 너에게 내 양 이스라엘 백서을 맡기면 잘 돌볼 것같구나! 네가 왕이 되거라>
다윗은 분명한 일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왕이 된다고 하는 데에도 가지 않고 양을 쳤습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은 크게 들어 사용하십니다. 분명한 하나님의 일감이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종입니다.

미국의 여자 배우중에 오드레 헵번(Audrey Hupburn)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기적인 연기자입니다. 그가 유명하게 된 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습니다. 세계 제2차 대전 때였습니다. 그 소녀는 굶주리고 가난한 고아였습니다. 길거리에서 굶어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길거리에 쓰러져 죽어 가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이 발견하여 겨우 살아 났습니다. 그 후 불쌍한 그 소녀는 국제연합아동보호 기금인 유니세프(UNICEF)가 제공하는 빵을 먹으며 살았습니다. 나중에 오드리 헵번은 유니세프를 자기 생명처럼 여겼습니다. 자기를 살린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일생 유니세프와 함께 살면서 수많은 굶주린 아이들을 도우며 살았습니다. 오드리 헵번은 늘 말했습니다.
<절망의 늪에서 나를 구해준 분들을 위하여 이제 내가 봉사할 차례다.>
그는 늘 굶주린 어린아이들을 섬기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배우로서 소문난 인격의 사람으로 존경받으며 살았습니다. 영화배우이면서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높은 인격자요 세계인이 존경하는 배우로 높여 주셨습니다.
종은 일감이 있어야 합니다. 일감이 없는 종은 종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종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종이 되라고 하시는 말씀이 무엇일가요? 종은 세 가지가 있어야 종입니다.
1. 주인이 있습니다.
2. 맹종이 있습니다.
3. 일감이 있습니다.

출처/강문호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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