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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별 설교〓◐/6월달 설교

죄와 싸우지 않고 타협하는 사람들. (히 12:1 - 8)

by 고동엽. 2022. 9. 23.

죄와 싸우지 않고 타협하는 사람들.   (히 12:1 - 8)

저는 거의 20년 정도 된 당뇨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당뇨병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는 별로 자각 증세가 많지를 않습니다. 20년 가까이를 앓은 저도 혈당을 체크하지 않으면 아직 몸으로는 몸의 어떤 면도 그것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때문에 정기적으로 당을 체크하지 않으면 자신의 심각성을 잘 못 느끼게 되어 자연 긴장이 풀어지게 되는데 이것이 당뇨 환자에게는 가장 위험한 일 중에 하나입니다. 몸의 자각 증세가 심하지 않으니까 조심을 잘 못하게 되고,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다가 심각한 지경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혈당 체크 기계가 오래 되어 거기에 맞는 체크 용지를 구할 수가 없어서 꽤 오래 동안 체크를 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새로운 기계로 바꾸게 된 후 체크해 보니 깜짝 놀랄 만큼 수치가 높아져 있었습니다. 한 달 반마다 병원에 가서 의사를 만나기 때문에 그리 오랜 기간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새 수치가 많이 높아져서 도저히 의사를 만날 용기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운동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당뇨 20년을 앓는 동안 제일 열심히 그리고 꾸준하게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한 두 달 정도 되어 옵니다. 많이 좋아졌습니다. 의사에게 칭찬도 듣고 실제로 얼마 전부터는 약도 줄였습니다. 덕분에 당뇨 뿐만 아니라 좋지 않던 몸의 모든 기능과 수치가 좋아졌습니다.

그냥 하루에 한 시간 어떤 때는 그것보다 조금 더 아주 열심히 걷는 것 뿐입니다. 아주 많이는 아니고 조금은 고통스러우리만큼 빠르게 걷는 것 뿐입니다. 아침에 출근할 때 동국대학 앞에서 내려서 국립극장을 거쳐 남산 길을 약 50분 정도 걸어서 옵니다. 동국대에서 남산 길까지 약 13정도가 아주 운동하기 좋은 경사입니다. 그 13분 정도를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 다리는 좀 당기고 땀도 좀 납니다. 아침에 그것을 놓치게 되면 점심시간에 한 70분 정도 남산 길을 걷습니다. 매일 당뇨 수치를 체크하고 날마다 긴장을 늦추지 않고 조심하고 있습니다.

운동하는 것은 참 쉽지 않습니다. 다리도 아프고 땀도 나고 그래서 귀찮을 때가 많습니다. 운동은 한 마디로 불편합니다. 그런데 그 불편함이 우리를 건강하게 합니다. 우리는 편한 것을 좋아하는데 우리가 좋아하는 편안함이 우리의 건강을 점점 나쁘게 만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사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넓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쉽게 말해서 좁은 길은 불편한 길이고 넓은 길은 편한 길입니다. 그 예수님의 말씀은 요즘 제법 열심히 하고 있는 걷기 운동을 통해서도 아주 여실히 증명이 됩니다. 불편하지만 열심히 운동을 하는 것은 좁은 길로 가는 것입니다. 운동하는 것이 불편하고 힘들고 조금 귀찮다고 그냥 편히 누워 쉬는 것은 넓은 길로 가는 것입니다. 불편하고 조금은 고통스럽지만 운동이라고 하는 좁은 길을 선택하면 점점 건강해 집니다. 그러나 그것이 힘들다고 게으름을 피우며 딩굴거리면 점점 건강에 문제가 생겨 나중에는 아주 위험해 집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회의 이름은 높은 뜻 숭의교회입니다. 높은 뜻은 하나님의 뜻을 의미하고 그것은 하나님의 식과 법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숭의학원의 강당을 빌겨서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교회 이름을 숭의라고 한 것입니다. 숭의학원의 숭의는 崇義 입니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우리 교회의 숭의는 崇義가 아니라 崇意입니다. 그러나 義가 하나님의 뜻(意)이기 때문에 숭의는 어떻게 써도 높은 뜻으로 풀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높은 뜻은 하나님의 뜻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의 캐치프레이즈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신 교회,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는 교회가 우리 교회의 케치프레이즈이고 목회철학 입니다. 그와 같은 목회철학을을 이루기 위하여 구체적인 비전으로 제시한 것이 여섯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하나님의 식과 법을 고집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는 교회’입니다. 저는 그 표현이 개인적으로 좋습니다. ‘하나님의 식과 법 그리고 뜻’이라는 말도 좋지만 ‘고집 한다’는 말과 표현이 좋습니다. 저는 정말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들에게 정말 그와 같은 고집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시겠지만 그 고집은 우리를 세상에서 힘들게 할 겁니다. 불편하게 할 겁니다. 좁은 길로 가게 할 겁니다. 좁은 길로 간다는 것은 길이 열리는 것이 아니라 자꾸 길이 막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불편함이, 그 길 막힘이 두려워서 섣불리 하나님의 식과 법을 고집하지 못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실존입니다.

세상에는 세상 식이 있습니다. 세상의 법이 있습니다. 다 잘 알고 계시겠지만 세상에서는 세상 식과 법대로 사는 것이 제일 편합니다. 세상 식과 법을 따라 살면 길이 열립니다. 길이 넓어집니다. 삶이 편해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러나 그렇게 편하게 살면 영적인 당뇨 수치가 높아져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건강을 점점 잃게 되다가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빠지게 되어 소중한 생명을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 식과 법을 더 정확한 말로 표현하면 죄입니다. 세상 식과 법은 하나님의 식과 법에 반대되는 의미에서 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식과 법에 반대되는 것을 우리는 죄라고 말합니다.

죄에는 하나님의 징계와 채찍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에는 하나님의 징계와 채찍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징계와 채찍에도 불구하고 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결국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심판은 사망입니다. 영원한 사망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사망입니다.

그러므로 죄와 싸워야만 합니다. 제가 당뇨와 싸우듯 우리 모두는 죄와 싸워야만 합니다. 죄가 주는 편안함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식과 법이 열어 주는 넓은 길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차에서 내려서 걸어야만 합니다. 좋은 차를 타고 편히 갈 수 있는 것을 스스로 포기하고 운동화를 갈아 신고 비탈길을 땀 흘리며 올라가야만 합니다. 차를 타고 십 분이면 갈 수 있는 길을 한 시간을 걸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건강해 질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차는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을 수 있습니다. 차에만 의존하다가 건강을 잃게 된 후 차까지 잃게 된다면 그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그리고 스스로 차를 포기하고 10분이면 갈 수 있는 길을 한 시간이나 걸어 늘 자신의 건강을 지켜 온 사람은 혹시 차를 잃는다고 하여도 큰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힘을 스스로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차와 같은 세상에만 의존하게 하다가 그것이 심해져서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가 되었을 때 그 세상을 치울 작정입니다. 그 때 우리는 참 비참하게 될 것입니다. 꼼짝없이 사탄에게 당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문제는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마치 골리앗과 같고 그것을 대적해야만 하는 우리는 다윗처럼 작고 어리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세상은 마치 가나안 땅의 거인들과 같고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 메뚜기처럼 작고 초라해 보인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 때 필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다윗이 가졌던 믿음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졌던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도저히 대적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세상과 정면 승부를 벌이는 것입니다. 속된 말로 맞짱을 뜨는 것입니다. 믿음 없이 세상과 세상적인 현실만 보는 10 정탐꾼과 같이 된다면 우리는 평생을 광야에서 방황해야 할 것이며 하나님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축복을 받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온 삶의 관심은 경제와 그 경제의 성장에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제가 보기에 이제 우리나라도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해 졌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의 온 관심은 경제 성장에 가 있습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경제성장을 가져 왔으니 보다 공평한 분배에 관심을 가지고 노력할 만도 한데 공정한 분배에 신경을 쓰다보면 경제성장이 되지 않는다고 성장의 논리에 분배의 논리는 아주 위험한 빨갱이 취급을 받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여전히 우리는 잘 사는 것과 부자로 사는 것을 착각하며 마치 부자로 사는 것이 곧 잘 사는 것처럼 오로지 경제와 돈에만 매달려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적이 아닌 세상적인 가치관에만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도 부자로 사는 것이 좋습니다. 아시겠지만 저는 부에 대하여 긍정적입니다. 그래서 깨끗한 부자라는 책을 썼고 청부론과 청빈론이라는 논쟁을 새삼스럽게 불러 일으키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아직도 한 쪽에서 부자 편을 들어주고 부자들을 합리화시켜주는 사람으로 제 입장에서 보면 매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부에 대한 저의 생각을 바꿀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부자로 사는 것보다 잘 사는 것이 좋습니다. 때문에 저는 무조건 부를 부정하거나 정죄하는 것에 대하여 동의하지 않고, 때로는 그것과 싸우지만 반대로 부에 목숨 걸고 그것으로 인생의 목표로 삼고 살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습니다. 반복하지만 저는 부자로 사는 것 보다 잘 사는 것이 좋습니다. 제가 지금 건강을 위하여 스스로 차에서 내려서 차를 두고 비탈진 산 길을 땀흘리며 올라가듯 필요하다면 부에서도 얼마든지 내려서 용기가 저에게는 있습니다. 더 솔직히 말씀드리면 있는 것이 아니라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경제적인 성장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평안한 삶이 아닙니다. 편안한 삶입니다. 우리는 점점 부요해지면서 점점 더 편안한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길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지나친 편안함이 우리를 아주 나약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거기서 뒤처지게 되면 마치 못살게 될 것처럼 착각하며 심각한 영적 정신병을 앓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난한 사람을 못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말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무슨 일을 할 때마다 그것이 하나님 식인가 세상 식인가를 생각해 보십시다. 대체적으로 볼 때 세상 식은 10분 하나님 식은 한 시간 입니다. 세상 식은 넓은 길이어서 가기가 쉽고 편합니다. 모든 일을 10분이면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식은 좁고 험해서 가기가 어렵고 불편합니다. 세상 사람들 10분이면 가는 길을 한 시간이나 걸려야만 가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무조건 빠른 것이, 편한 것이, 쉬운 것이 좋은 것인 줄 압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다. 건강을 위하여 천천히 가야할 때가 있습니다. 불편을 감수하고 걸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건강을 위하여 힘들게 땀을 흘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아프리카에는 스프링 폭스라고 하는 산양이 있답니다. 수 천 마리씩 떼를 지어 사는데 이 떼들이 갑자기 달리기를 시작하면 멈추지를 못하고 벼랑까지 내달아 그 수천 마리의 산양들이 떨어져 죽는 일들을 한다고 합니다. 학자들이 그 이유를 찾아냈습니다.

수천 마리의 양이 풀을 뜯어 먹으면서 이동을 하기 때문에 뒤에 있는 양은 먹을 풀이 적답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자기들도 앞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앞으로 나가기 위하여 앞의 양을 밀게 된답니다. 뒤의 양이 자꾸 밀다보니 자연스럽게 앞의 양의 걸음이 빨라지게 되고 나중에는 뛰게 된답니다. 그러면 뒤의 양이 풀을 뜯어 먹고 천천히 따라가면 되는데, 양에게는 집단에서 이탈하지 않으려는 본능이 있어서 풀을 뜯어 먹으려는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앞의 양을 따라 뒤의 양도 뛰게 된답니다.

앞의 양은 뒤의 양이 밀어서 뛰고, 뒤의 양은 앞의 양이 뛰니까 따라 뛰게 되는 것이지만 양들은 그것을 모릅니다. 때문에 그 달리기를 멈 출수가 없어서 결국 벼랑까지 치달아 다 떨어져 죽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하곤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아프리카의 그 산양들과 같이 그냥 무리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세상에서 낙오하지 않겠다는 생각만으로 생각 없이 인생의 벼랑을 향하여 질주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생명은 세상에 달려 있지 않고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을 믿고 살면 세상과 함께 멸망하게 될 겁니다. 하나님을 믿어야만 살 수 있습니다.

사업을 하든, 직장 생활을 하든, 사람을 사귀든 무슨 일을 할 때마다 그것이 세상 식인가 하나님 식인가를 점검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말고, 하나님의 식과 법을 고집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기 위하여, 먼저 자신의 삶에 이루기 위하여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우며 살아가는 지혜로운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김동호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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