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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별 낮설교〓◐/6월달 설교

삶을 변화시키는 사람 (사도행전2:1-13)

by 고동엽. 2022. 9. 23.

삶을 변화시키는 사람  (사도행전2:1-13)

신학대학4학년 2학기 때였습니다. 졸업을 앞둔 저의 마음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두 가지 문제가 특별히 저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개인의 신앙적인 문제였습니다. 내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과연 나의 죄를 사하시고 속죄의 은총을 주셨는가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이 문제의 해답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나에게 꿈을 통해서 양의 죽음을 통해서 내 죄를 대속하시는 은총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졸업 후의 담임목회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어리고 철없는 나이에 담임목회를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은 마음을 무겁게 하였습니다. 이 때, 내 삶의 큰 도전을 주신 분이 김선도 목사님이었습니다. 졸업을 앞둔 우리에게 ‘목회임상학’을 가르치셨습니다. 목사님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 있는 놀라운 가능성을 일깨워주고 확신하게 하셨습니다.
그 때 내 마음속에 깊이 박힌 두 구절의 말씀은 지금까지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그 때 목사님으로부터 한 분을 소개받았습니다. 미국 오렌지카운티에서 목회하시는 로버트슐러 목사님이었습니다. 그 분은 긍정적인 사고와 가능성의 사고를 통해서 세상에 큰 영향력을 주신 목사님입니다. 최근에 목사님께서 목회 50주년을 맞이하면서 78세의 연세에 또 한 권의 책을 내셨습니다. “미래를 여는 힘”인데, 원제는  “내일을 내던지지 말라”입니다. 그 책의 한 부분을 소개합니다.
“‘어떤 내일이 펼쳐질지는 모르나 누가 내일을 잡을 지는 안다.’ 내 마음에서 이 문구가 지워지지 않는 한 언제나 미래를 믿으리라. 그렇다. 내가 어제에 관해 아는 것보다 하나님은 내일에 관해 아시는 게 더 많다. 그래서 나는 과거는 과거의 자리에 잘 모셔놓았다. ‘나는 과거의 문을 닫고, 열쇠를 던져버렸다. 오늘을 잘 살았으니, 내일에 대한 두려움은 추호도 없다.’ 흘러가는 인생에 변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내일이 어제나 똑같으리라는 법은 없다. 변화의 틈에서 나타날 기회를 보고 전진할지 아니면 웅크리고 있을지는 내 선택에 달려있다. 나는 세상 전체를 바꾸지는 못했지만 ‘내’ 세상을 바꾸었다. 나는 하나의 커다란 ‘힘’을 알기에 미래를 믿는다. 장애물을 기회로, 비극을 승리로 바꾸는 무한한 인간 정신을 믿는다.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시기에 내일을 믿는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에게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꿈을 가지고 내일을 향하여 소망 중에 기쁨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사야35:4-10은 하나님께서 유다백성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너는 굳세게 하라. 두려워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수하시며, 보복하여 주실 것이라. 그가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그 때에 ...광야에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에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시랑이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거기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바 되리니.....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

이 말씀이 이사야선지자를 통해서 선포될 때 유다나라의 형편은 암담했습니다. 정치는 부패하고, 백성들의 정신적인 가치관은 흐트러지고, 주변국들의 침략이 계속되는 가운데 나라의 미래는 도무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희망이라고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이사야선지자를 통해서 백성들이 살 수 있는 숨통을 열어주십니다. 나라 회복에 대한 꿈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고난의 밤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희망의 새 아침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1.오늘은 오순절, 성령강림절입니다.
오순절은 이 땅에 교회를 탄생시킨 날입니다. 그러니까 교회생일이라고 할까요. 교회가 태어난 정황을 장황하게 설명할 수 있지만 단 한 가지 제자들의 상황을 잠간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처음 예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들은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았습니다. 3년 동안 예수님은 그들에게 충분한 소망이었고, 기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힘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은 충격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들의 기대를 다 저버린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이대로 계속 제자의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먹고 살 길을 찾아야 할 것인가?’제자들의 선택은 머뭇거릴 것이 없었습니다. 요한복음21:3말씀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하는지라.”
제자라는 간판을 내리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이런 제자들을 마지막 송별하는 자리에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승천 직전에 말씀하셨습니다.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1:4,5)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 되리라”(행1:8)
제자들은 이 마지막 분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하신 대로 예루살렘다락방에 모여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행1:14)  
여기서 우리는 제자들의 결단을 봅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고 제자로 살 것인가? 아니면 각자 자기의 길로 갈 것인가?’
제자들은 성령을 기다렸습니다. 3년 동안 함께 했던 삶을 접기 전에 마지막으로 결단한 기회였습니다. 바로 이들에게 성령님이 강림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제자들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버렸습니다. 나가서 외쳤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서 그리스도가 되셨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 중에 하루에 3천명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를 따르기로 작정하는 사람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습니다. 이 일이 성령의 강림으로 제자들과 세상을 바꾸어놓은 놀라운 역사입니다.
성령님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시는 분입니다. 이 성령의 역사는 교회를 통해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난지도 쓰레기장을 혹시 기억하십니까?
서울시내 모든 쓰레기들을 쏟아 붓던 곳, 파리들이 들끓고, 악취와 오염의 원천, 그 곳은 절망과 죽음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곳에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이 만들어졌고, 난지 생태공원으로 탈바꿈하였습니다. 하늘공원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서울의 명소가 되었습니다. 죽음과 절망의 땅에 생명과 희망의 새 역사가 펼쳐진 것입니다.
교회는 이 역사와 인류에게 생명과 희망의 난지운동입니다.

2.성령의 생명운동은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오늘 읽은 성경을 보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교회의 확산에 대단한 박해가 일어났습니다. 박해에 앞장선 사울이라는 청년은 제일 먼저 이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스데반집사를 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그리고 계속 교회를 잔멸할 쌔, 각 집에 들어가서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겼습니다.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은 부득불 사도들만 제외하고는 다 뿔뿔이 흩어져 나갔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가 저렇게 끝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박해 때문에 흩어진 제자들 중에 빌립집사를 중심하여 복음전파는 흩어져 나간 그 곳에서 활발히 계속되었습니다. 사도들을 통해서만 일어날 줄 알았던 기적들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에서 동일하게 일어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붙였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행8:7,8)
나는 로버트슐러 목사님의 말이 귀하다고 여겨집니다.
“나는 세상 전체를 바꾸지는 못했지만 ‘내’ 세상을 바꾸었다.”
성령충만한 사람들에게 세상에 변화를 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3.성령의 역사는 단순한 인간의 힘을 초월하는 놀라운 역사입니다.  
지난 5월24일은 감리교회를 이 땅 위에 세운 요한웨슬리 목사 회심, 269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는 목회자의 집안에서 태어나, 경건한 가정교육을 받아 성장했습니다. 경건 서적을 읽기를 즐겨했고, 옥스퍼드대학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공부했고, 26세에 성직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해 옥스퍼드대학에 돌아와 ‘튜터’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학교 내의 신성클럽의 지도자가 되었고, 자기 생활을 철저히 관리함으로 메도디스트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33세 때에 미국 조지아 주 선교사로 출발하였습니다. 이때까지 그의 삶에는 거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조지아 선교사 생활에서 만2년여 만에 모든 꿈은 접어야만 했습니다. 실패였습니다. 도망하듯 미국을 떠나 다시 영국으로 복귀하였던 36세의 젊은 웨슬리의 마음은 완전히 바닥이었습니다. 그의 비전도, 열정도, 실력도 다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는 이제 믿음과 신분의 근본을 고민하였습니다.
1738년 1월 29일 일기에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내가 기독교의 본질을 조지아의 인디언들에게 가르치기 위하여 고국을 떠난 지 무려 2년 4개월 만에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그 동안에 내 자신이 배운 것은 무엇인가? 도대체 다른 사람들을 회개시켜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고 아메리카에 갔던 내가 자신은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서지를 못하였는가?”
3월 4일 토요일에 쓴 일기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 안에서 우리가 신앙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우리를 구원받게 해 줄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하였다. 즉시 이런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쳤다. ‘설교를 그만 두어라. 너 자신이 믿음이 없으면서 누구에게 설교를 할 수 있느냐?’”
그리고 5월 19일, 24일에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나는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내내 마음이 무겁고 우울하였다.”
“(수요일)저녁에는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은 채 올드스게이트 가(Aldersgate  Street) 에 있는 어느 회에 갔는데 거기서 한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주석의 서문을 읽고 있었다. 9시 15분 전쯤 되어서 그가 계속하여 그리스도를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시는 역사를 하신다고 설명을 하고 있었는데,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짐을 느꼈다.
나는 구원을 받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오로지 그리스도만을 믿는다고 나는 느꼈다. 뿐만 아니라, 주께서 내 모든 죄를 씻으시고, 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하셨다는 확신이 생겼다”

이 때부터 웨슬리의 삶에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강력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세상을 바꾸는 힘, 곧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하였습니다. 그의 삶에는 사도행전1:8이 실현되고 있었습니다. 예수의 증인으로 살았습니다. 성령의 충만한 웨슬리의 삶에 결정적인 변화가 경험된 것은 1739년 4월이었습니다. 런던을 떠나 브리스톨을 갔습니다. 교회가 아닌 야외에서 설교를 하게 된 것입니다. 1739년 4월2일 예배당 밖에서 설교를 해야한다는 것 때문에 기분이 언짢았으나, 어쩔 수 없이 노상에서 구원의 기쁨 소식을 선포하였습니다. 이 때 약3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4월 8일에는 브리스톨에서 약 1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였고, 킹스우드에서 약 1천 5백 명에게 설교를 했습니다. 그리고 로즈그린에서는 약 5천명에게 설교를 하였습니다.
예배당 밖에서 설교하는 웨슬리의 사역을 영국성공회에서는 묵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웨슬리에게 교구 안에서는 설교를 할 수 없도록 제한하였습니다. 그 때 그는 말합니다.
“나는 온 세계를 나의 교구로 생각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내가 세계 어느 곳에 가서 있을지라도, 구원의 기쁜 소식을 기꺼이 들으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이 온당하며, 나에게 허락된 의무라고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성공회에서 나와 감리교회를 세우게 된 동기가 되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는 오직 예수의 신앙으로 개인의 삶에 엄청난 변화를 경험하게 하십니다. 개인의 삶에 이보다 더 큰 변화는 없습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었던 삶에서 예수가 내 인생의 모든 것 되시는 주님이심을 믿고 그 분의 뜻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입니다. 성령은 이 사실을 바로 알게 하셨습니다.
사도행전5:42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사도행전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언을 얻을 만한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사도행전16:31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요한웨슬리 목사에게서 거듭남의 체험은 오직 주님의 신앙으로의 회복이었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의 회복이 있어야 합니다. 회개가 무엇입니까? 세상으로 향하던 우리의 마음이 오직 하나님께로 향하여야 합니다. 탕자가 돌아오는 것이 회개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 복음을 전함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입니다. 나를 변화시킨 예수! 그 예수를 전하지 아니하고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사람이 변하고 가정이 변하고, 일터가 변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기 때문에 부정이 없어졌습니다. 진실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복음을 전한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삶의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거룩한 세상으로 바뀌어갔습니다. 바른 진리위에 세워진 가치관으로 일을 하였습니다. 바르고 정직한 하나님나라세우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성령의 비전을 따라 세상의 변화를 꿈꾸게 됩니다.
인간의 세상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꿈꿉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비전은 성령의 능력으로 나아갑니다. 우리가 세상을 통째로 변화시킬 수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믿음은 겨자씨처럼, 누룩처럼 자라고 번져 마침내 세상을 바꾸고야 말 것입니다.

여기 교회가 있다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이 교회에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고 한 가족이 된 우리는 이런 성령의 비전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땅에 하나님나라의 완성을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비전입니다.    

우리는 교회의 강북의 시대가 다시 오리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중심의 비전을 갖습니다. 온 세상과 하나님을 잇는 다리의 비전을 가지고 기도합니다. 처음예루살렘교회처럼 성장하고, 온 세상의 변화를 위하여 선교를 계속할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사랑, 처음 열정을 회복하여 세상에 소망을 주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소망을 주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이 비전을 온 교우들이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교역자들과, 장로님들만의 일이 될 수도 없습니다. 우리 온 교우들이 함께 꿈꾸어야 하고 함께 기도해야하고, 함께 힘을 모아 가야하는 주님의 비전이고 사명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교회는 6월 3일 주일 오후 교회의 미래를 바라보는 포럼을 개최합니다. 이 포럼에 여러분 모두가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이 시대 속에 우리 종교교회가 분명히 자리매김을 하여 세상을 밝히는 빛으로, 세상에 소망을 주는 소금으로, 제 역할을 분명히 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가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세상은 변화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님과 함께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어둡다고 불평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빛이 되어 세상을 밝힐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에게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성령충만 하십시오. 할 수 있습니다. 주의 성령의 충만하심이 여러분 한 사람한 사람에게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출처/최이우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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