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δεδομένα 18,185편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여러분의 마음 속에 성령님이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4:16-20)

by 【고동엽】 2022. 9. 22.

여러분의 마음 속에 성령님이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4:16-20)


여러분의 마음에 성령님이 오셨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성령이 오셔야하고 또한 성령께서는 우리 마음에 늘 거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세상에 가장 귀한 것은 우리 인간에게 성령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함께하는 곳에 능력이 있고 축복이 있으며 또한 아름다움과 거룩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이 세상을 살 때 성령의 도우심을 따라 성령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고 성령의 인도하심과 감동하심에 따라 내 모든 인격과 삶이 순종하며, 성령의 지시를 따라 움직이는 삶을 살아갑니다.

    영국의 버비언 목사님은 국왕의 명을 거역한 죄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의 인격과 신앙을 존경하는 감옥 안에 있는 많은 분들이 늘 은혜를 받고 또한 간수들과 그 안에 있는 옥사장, 소장도 항상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루는 간수장이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오늘 저녁은 제가 지키겠습니다. 집에 가서 가족들을 만나고 오시지요. 다녀오세요. 제가 모든 일은 수습을 하겠습니다.’ 그때 버비언은 ‘아닙니다. 저는 가지 않겠습니다. 여기가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원치 않습니다. 성령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나라의 국왕은 이 버비언을 눈의 가시와 같이 생각하고 그를 미워했습니다. 감옥에 갔지만 그 미움과 분노를 삭 힐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몇 시간 지나서 국왕이 직접 감옥에 와서 이 버비언이 있는지 확인을 했습니다. 너무 놀란 것은 간수장입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국왕이 간 다음에 목사님에게 말했습니다. ‘목사님은 목사님만 산 것이 아니라 저도 살렸습니다. 목사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다 살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하셨습니까? 앞으로는 목사님 마음대로 하세요. 제가 말하지 않겠습니다. 가고 싶으면 나가시고 오고 싶으면 오십시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후회하지 않고 실패하지 않습니까? 잘못 살지 않고 우리가 잘 살 수 있는 길은 성령님이 우리를 도와주시고 감동하게 하시고 인도하여 주시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30년, 40년, 50년, 60년, 70년, 한평생을 살면서 내 지혜로, 이 세상의 지식으로, 확실한 이 세상의 어떤 통계를 가지고 ‘이것은 분명하다. 이건 잘 될 일이다. 이건 좋은 사람이다. 확실하다.’ 이러한 결정들이 나중에 한평생 후회하고 속으며, 그것 때문에 얼마나 피해보고 눈물을 흘렸습니까? 사람의 결정은 확실하지 못합니다. 우리 인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지혜는 모든 우주를 알고 계시는 하나님의 지혜, 성령의 지혜와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지식은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전능자의 지식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위의 지혜, 위의 지식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이번에 신문에 보니까 어떤 아가씨가 돈 3억을 사기해서 성형수술을 완전히 하고는 지방의 어느 아파트에 가서 살았습니다. 아무도 못 찾았습니다. 그래서 한 1억을 투자하고도 2억이 남았습니다. 열심히 잘 살았는데 경찰이 추적을 했습니다. 그 아파트에 있는 것까지 다 알고 갔는데 경찰이 못 찾아냅니다.  사진하고 맞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요사이 경찰은 보통이 아닙니다. 그래서 다시 그 성씨와 관계되는 분들을 다 찾아서 지문을 다 찍게 했는데 그분이 잡힙니다. 이 분은 굉장히 지혜로운 분입니다. 머리가 대단히 총명한 분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지혜는 성령이 주시는 지혜가 아닌 인간의 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살기 위한 반짝 수단 어떤 술수이지, 자기가 사는 지혜가 아닌 일회적인 지혜 일회적인 술수로 인하여 자기가 함정에 걸리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오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일이 많습니까? 이걸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영원히 후회함이 없는, 성령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길은 영원히 후회되지 아니하는 진리의 길로, 생명의 길로, 구원의 길로, 영생의 길로, 안전한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님이 우리의 스승이 되고 성령님이 우리의 부모가 되며, 성령님이 우리를 늘 도와주시는 친구가 되고 나와 함께하시는 목자가 되십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10절에는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 하시느니라.” 이 세상에 비밀이 한없이 많고 인간이 알 수 없는 일들이 억 천 만가지 무한하지만 성령이 모르시는 것은 없습니다. 하늘이든 땅이든 인생이든 어떤 자연 우주에 있는 어느 세계이든 하나님이 모르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성령은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의 인도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4장에 보면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13절, 14절을 보면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별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육의 지혜와 육의 지식은 영적인 세계를 모릅니다. 육적인 모든 인간의 총명함과 인간이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는 우리가 구원을 얻는 신령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아는 것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지식, 성령이 주시는 지식으로는 영의 세계도 알 뿐만 아니라 육의 세계도 압니다. 영의 세계도 잘 살 뿐만 아니라 육적인 삶도 평생에 무엇을 하든지 그의 길에는 아픔이 없고 불행이 없으며, 실패가 없는 삶을 살도록 모든 것을 아는, 영육을 다 잘되게 하시는 길이 성령의 도움을 받아 살아가는 길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야 합니까? 성령의 도우심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성령이여! 나를 인도해 주시고 감동하시며, 말씀해 주시고 늘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가정을 도우시옵소서. 내 자녀의 교육을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자녀의 마음에 감동을 주옵소서. 인도해 주옵소서.’ 늘 우리는 성령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삶이며 사도행전의 삶입니다. 사도들의 삶의 배경은 무엇입니까? 늘 성령을 의지합니다. 성령이 가라 하는 곳으로 가고 하라고 하는 말을 증거 하는 것이 사도의 삶입니다. 어떤 분은 그렇게 말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됐지 성령은 또 뭐냐?’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성령이 함께 하지 아니하면 그 믿음은 헛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도 성령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면 그건 자기가 믿는다고 할런지 몰라도 그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믿음이 아니며, 그 믿음은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마치 수표에 금액이 다 있어도 한국은행장의 또한 지점장의 도장이 없으면 그 수표의 금액은 아무 가치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결혼식에 신부가 아무리 아름답게 준비하고 있어도 신랑이 오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듯이, 성령이 내게 오시지 아니하면 우리는 내가 믿는 믿음 그건 참 믿음이 아니고 구원 받을 수가 없습니다. 성령이 반드시 같이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 성령이 있고 예수님을 믿는 곳에 성령이 계셔야 합니다. 성령이 함께하지 않아도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예배는 하나님 앞에 상달되는 예배가 아닙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내시가 예루살렘에 와서 예배드리고 갔지만 성령의 감동을 못 받았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빌립을 통해 ‘너 저 사람에게 가서 성경을 가르쳐주고 도와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가르쳐주는데 눈이 열리고 감동을 받아서 그 자리에서 세례를 받고 구원함을 받으며, 에티오피아로 돌아간 것을 사도행전 8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많은 분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그분들이 성령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믿는데 성령을 받았느냐?’ 하니까 ‘우리는 성령을 못 받았다.’고 할 때,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해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이 또한 사도행전 8장에 나옵니다. 성령 받지 않고도 봉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상달되는 봉사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이 오시게 되어 있고 함께하게 되어 있으며, 반드시 나와 함께 하셔야 합니다.

    우리의 기쁨은 성령이 오심으로 우리의 능력은 성령이 함께함으로 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그분들보다 더 잘 믿은 사람이 없었지만, 그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구원하러 오신 분을 못 박았습니다. 그 안에 그의 심령 속에 성령이 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뜻대로 성령의 함께하심으로 살 때 우리는 이런 죄를 짓지 않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죄를 짓습니다. 밖에서 마귀에게 늘 이용을 당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의 도우심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서 봉사하는 많은 자녀들은 성령의 감동하심이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오십니다. 밖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역사하십니다. 내 안에서 어떤 때는 생수같이 역사하고 샘물같이 역사합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어려운 중에도 아무리 주변 환경이 어려워도 늘 기쁨이 솟아납니다. ♬샘솟듯 하는 피 권세 한없이 있도다.♬(찬송가 190장) 기쁨이, 사랑이, 감사가 샘처럼 늘 솟아나고 내 모든 삶에 더러움과 추함과 악함을 솟아나는 성령이 우리를 씻어주셔서 정결한 마음을 얻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성령은 불과 같습니다. 우리 몸은 37도라고 하는 온도를 늘 유지하듯이 성령은 영적으로 살아있는 내 영혼에 온도를 늘 유지해줍니다. 주님을 변함없는 일정한 37도의 온도로 섬기며 사랑하게 하고, 유혹 많고 시험 많으며 때때로 넘어지고 낙심하는 일이 많지만 성령은 늘 일으켜 주시고 감화 감동하셔서 내 영적인 생명의 체온을 늘 이끌어 주십니다. 죽은 자는 생명이 없기 때문에 차갑습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하나님의 자녀는 늘 가슴이 뜨거워져야 합니다. 찬송할 때 불이 타오릅니다. 기도할 때 성령의 불이 타오릅니다. 활활 타오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불과 같습니다. 어디에 있든지 우리의 마음속에는 한 사람도 남김없이 하나님의 영이 오셔야 합니다. 우리 교인들이 서울 시내에 없는 곳이 별로 없습니다. 어디 가도 거의 다 있습니다. 특별히 호텔에 가보면 거의 다 있습니다. 저가 감사한 것은 호텔에 갔을 때 차를 세우기 어려운데 ‘아유~ 목사님 오셨습니까?’ 그러면 얼마나 반가운지 모릅니다. ‘집사님! 이 자동차 부탁해요.’ 워커힐호텔에 우리 교인들이 많습니다. 신라호텔, 힐튼호텔에도 다 있습니다. 워커힐은 우리 교인들이 제일 많습니다. 특별히 워커힐 유명한 쇼 거기도 우리 교인들이 많습니다. 쇼 단장이 우리 집사님입니다. 저보고 오라고 하는데 아직 안 갔습니다. 식당에도 많습니다. 그래서 워커힐 식당 중국집이나 일식집에 가면 지배인도 교인이고 주방장도 교인입니다. 그래서 공짜는 아니지만 얼마나 잘 먹고 오는지 모릅니다. 제가 가면 주문하지 않은 것도 막 주고 그래서 다른 분이 저하고 같이 너무 잘 먹었으나 자기가 가보니까 너무 낙심이 되었다고 합니다. 저를 꼭 데리고 가서 같이, 그러면 잘 먹을 수 있습니다. 시내 강남의 큰 호텔의 귀한 자리에 있는 우리 집사님은 한번은 저보고 그럽니다. 자기가 간부들하고 회의를 하는데 자꾸 뭔가 입이 막 열리더랍니다. 이상한 말이 막 나오는데 ‘아~ 내가 왜 이러지.’ 하는데 안 하려고 그래서 화장실에 가서 막 한참을 말하고 들어왔답니다. ‘내가 왜이래 이상한데 ~’하고 지하철을 타는데 지하철에서 또 막 말이 이상해서 ‘아~ 왜 이러지.’ 앉으면 막 이상한 말이 나온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제가 ‘집사님! 하나님이 집사님을 사랑하십니다. 호텔에서 모두 손님맞이하고 바쁘게 살지만 성령이 같이 하는 그게 방언입니다. 방언.’ 이 분은 방언 받을 기도를 한 번 안했는데도 막 열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은 누구에게나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성령 충만함으로 이 세상을 사도행전 같은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오직 성령이 함께 할 때만이 가능합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기름과 같습니다. 부으시는 기름, 타오르는 기름과 같습니다. 존 맥스웰이 지은 책 가운데 ‘등대지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등대지기는 국가로부터 기름을 공급받아서 한 달 동안 등대에 불을 켜는데 하루는 동네에 있는 아줌마가 오셔서 ‘등유가 없는데 조금만 빌려주세요.’ 해서 거기 한 말을 빌려 주었습니다. 또 아저씨가 오시더니만 ‘우리 연료가 없는데 좀 빌려주세요.’ 해서 또 주었습니다. 계속 빌려 주었습니다. 처남이 와서 ‘아유~ 자형 기름 좀 주세요.’ 해서 나중에는 켜야 할 등대에 불이 없습니다. 그래서 불 꺼진 등대, 불이 없는 곳에서 캄캄한 곳에서 자기만 어두운 것이 아니라 바다를 환하게 비추어야 할 이 불이 꺼져서 수많은 배들이 와가지고 부딪히며 길을 잃어버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이 세상에 좋은 일 하고 모든 사람을 좋게 하고 물론 좋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여러분과 함께해 여러분 안에 성령의 불이 타올라서 불을 환하게 켜야, 여러분도 살고 수많은 그 지역에 있는 큰 사명을 감당해서 수많은 배들의 길까지 열어줄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교회며 성도입니다. 남을 도우는 것 이것은 누구나 배우는 일입니다. 위에서 돕는 것, 위에 그보다 더 귀한 일, 더 영광스러운 일이 무엇입니까? 성령의 충만함으로 이 세상을 살 때 내 가정도, 우리의 마음도 등대로 인하여 밝아지고 내 안에 주의 빛으로 환하게 비춰져야 우리가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기름을 채우세 내 맘속에 성령의 기름을 채워 주께서 베푸신 그 사랑을 이 세상에 널리 펼치리 호산나를 소리 높여 주께 찬양 노래 부르세 호산나를 소리 높여 찬양 주께 드리세. 사랑을 채우세 내 맘속에 성령의 사랑을 채워♬ 나를 채우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모님이 자녀에게 돈을 많이 주고 훌륭하게 자녀를 뒷받침 해준다고 할지라도 그 부모가 등대가 되어야지 물질적이 도움만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저는 우리 교인들 중에 그런 분을 많이 봅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자녀에게 등록금 하나 못해줘도 3남매 4남매가 다 교수가 되고 박사가 되며, 의사가 됩니다. 어제도 제가 어느 성도님에게 ‘아이가 몇입니까?’ 하니까 ‘5남매입니다. 4남매입니다.’ 제가 보면 그 아버지는 많이 배운 것도 아니고 직장도 형편없는데 아이들이 훌륭하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물질로 대해주는 도움만 도움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등대의 역할을 합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을 우리 아버지가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귀한 것이 뭔가 하는 것을 아버지가 보여주니, 자녀들은 아버지에 대해서 전혀 불만하지 않고 훌륭한 사람이 됩니다. 오늘 교회가 이 시대 앞에 교인이 많고 교회가 부흥하고 대단한 것도 보여주어야 하지만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는 우리의 삶을, 생활을, 인격도 보여줄 때 우리는 민족의 등대가 되고 나라의 등대가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많은 사람이 길을 잃고 헤매고 있습니다. 김활란 박사님이 지은 찬송대로 정말 캄캄한 밤 어두운 밤입니다. 빛을 찾아 헤매는 이가 이렇게 많은 이때에 우리는 오늘 이 시대가 돈이 없어 정말 방황하는 것이 아니고 지식이 없어 방황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 이 시대의 방황은 하나님이 없는 사람이, 성령이 없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길을 잃고 헤매는 수많은 영혼들을 치료하고 살리는 길은 성령이 함께 할 때만이 가능합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십니다. 우리 안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생명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피가 아들에게 있습니다. 아버지와 같이 흐릅니다. 다 같습니다. 저는 우리 아들하고 앉아보면 딱 손을 펴면 손모양도 똑같고 발가락 모양도 똑같고 손톱도 다 같습니다. 제가 보면 너무 닮았습니다. 걷는 것도 같고 먹는 것도 같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 얘가 다 좋아합니다. 너무너무 같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은 같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 인간을 낳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 있습니다. 거룩한 땅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궁궐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귀합니다. 인간이 왜 귀합니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피조물이기 때문에 인간은 귀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인간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1972년 아폴로호가 달나라에 갔다 와서 우주인이 가지고 온 그 월석을 미국 대통령이 75개국에다 기념으로 다 주었습니다. 크기는 가로 7㎜ 세로 12㎜ 높이 6㎜입니다. 얼마 안 됩니다. 그런데 얼마나 비싸냐하면 500만불에 팔렸습니다. 어떤 나라는 1000만불에도 팔렸습니다. 다이아몬드보다 훨씬 비쌉니다. 우리나라도 앞으로 달나라 다녀올 때 그걸 좀 많이 갖고 오십시오. 여러분! 우리 인간의 속에는 달나라를 다 주어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영혼이 있는 걸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귀한 것입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내가 영적 피조물, 영적 생명, 영적 궁궐이 내 안에 있기 때문에 내가 귀한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 인간이 범죄 하므로 말미암아 아담 이브가 죄를 지으므로 하나님이 떠나갔습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원수가 되 버렸습니다. 그래서 빈 집입니다. 하나님이 떠나간 삶입니다. 우리의 머리가, 우리의 생각이 비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에게 제일 불행한 것은 허무주의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 잘 사나 못 사나 인간은 허무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버지가 가버렸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땅만 바라보고 살아갑니다. 빈 집입니다. 마태복음 12장 45절에 보면 인간은 빈집입니다. 빈 집만 있으면 괜찮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많습니다. 저는 시골에서 학교를 멀리 통학을 하고 교회도 멀리 다니고 또한 도시에서 공부를 할 때도 멀리 걸어갈 때 물도 건너고 무서운 곳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제일 무서운 것이 무엇이냐 하면 산도 안 무섭습니다. 제일 무서운 것은 빈 집입니다. 이건 안 겪어본 사람은 모릅니다. 사람 사는 집에 사람이 있어야지 사람 없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이건 낮에도 무섭습니다. 밤에도 무섭습니다. 전설의 고향도 전부 빈집입니다. 밤에 산을 넘다가도 산 중턱에 불 있는 집을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밑에 평지라도 빈 집은 무섭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떠나므로 인간은 빈 집입니다. 이 빈 집만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빈 집에 사탄이 들어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일곱 귀신을 데리고 들어왔다고 하셨습니다. 온갖 정욕의 귀신, 음란의 귀신, 미움의 귀신, 원망 불평하고 온갖 원수 맺는 이 나쁜 악하고 더러운 귀신들을 다 몰고 들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지옥입니다. 오늘 동물의 세계는 얼마나 아름답고 평화로우며 질서가 있습니까? 이 세상에 모든 것은 다 질서가 있는데 사람 사는 곳이 엉망입니다. 오늘 서울만 하더라도 모두 배운 사람들 다 문화인들이 살고 다 지성인들이 사는데 서울이 지옥입니다.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는 일, 말 할 수 없는 가정이 파괴되고 무너지며, 자살하고 온갖 음탕과 온갖 죄악들이 한없이 들끓고 있는 곳이 서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빈 집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빈 집에 있는 모든 어두움의 세력을 몰아내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누가 오셨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의 자녀의 영을 살리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할렐루야!  그 가치 있는 영광스러운 집이 폐허가 되어서 잡초가 우거지고 밤마다 귀신이 때가 되면 이글이글거립니다. 사람이 별것 아닙니다. 내 안에 있는 이 마음이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성경에 있는 대로 마음에 원하는 길로 가서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만 골라서 합니다. 그래서 잘 살아봐야 별것 없습니다. 좋은 집에 가봐야 별것 없습니다. 더 싸웁니다. 제가 해외에서 여행을 하다보면 한국 사람들을 많이 만납니다. 아주 멋진 관광지에 가서 ‘야~ 좋다.’하고 보면 한국 사람은 와서 뭐하느냐, 거기서 화투를 칩니다. 내리자마자 그 좋은 곳에 와서 좋게 보고 감동 받고 그러는 게 아닙니다. 그 좋은 곳에 와서 술 취해 가지고 비틀거리며, 그 좋은 곳에 와서 엉뚱한 걸 골라서 합니다. 너무 입에 담을 수 없는 이런 추한 일들을 합니다. 좋은 곳에 가면 뭐 합니까? 좋은 집에 가면, 좋은 옷 입으면 뭐하느냐 말입니까? 사람은 그 속에 있는 대로 갑니다. 하루를 살아도 우리는 행복하게 살 수 없습니다. 걱정하고 1년 365일 12달 항상 걱정하던지, 밤마다 어느 날 밤은 미움이 나를 지배합니다. 그래서 한 잠도 못 잡니다. 그 다음 날은 또 미움이 아니라 질투입니다. ‘야~ 그거 못 보겠다니까’하며 잠을 못 잡니다. 그 다음날은 걱정이 많아서 또 잠을 못 잡니다. ‘이거 어떻게 하지.’ 걱정이 많습니다. 그 다음날은 의심이 옵니다. ‘남편이 왜 안 오지? 뭔 일이 있다니까 오늘 아침에 나갈 때 보니깐 화장을 특별하게 하잖아 뭐가 있어.’ 계속 의심을 염려를 합니다. 그래서 중국 기나라에 어떤 사람은 너무 걱정이 많아 하늘을 보면 하늘이 무너질까봐 겁이 나서 못 걷고, 땅을 걸어가면 땅이 꺼질까봐 겁나서 못 가고 걱정이 많습니다. 제가 목욕탕에 가보니까 그 깔고 앉는 것도 비누로 씻어서 앉습니다. 그걸 비누로 씻을 게 뭐가 있습니까? 그냥 앉으면 돼지. 걱정이 많습니다. 너무 염려가 많습니다. 불만이 왜 이렇게 많은지 모릅니다. 잠을 못자고 밥을 못 먹습니다. 친구를 만나도 남의 이야기 하다가 끝납니다. 인류, 세계, 구원, 미래, 비전, 봉사 이런 생각을 못 합니다. 사랑과 감사 노래 부르고 ‘너 피아노 한번 쳐봐.’ 노래 부르고 ‘소녀의 기도’ 얼마나 좋습니까? 그걸 못 합니다. 결혼해가지고 신혼여행 가서 막 싸웁니다. 치고받고 막 싸웁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이 안이 빈 집입니다. 마귀가 점령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나온 여러분! 이 빈 집에 주님이 임재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함께하는 심령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귀가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물러갑니다. 쫓겨 갑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오십니다. 어떤 분은 ‘예수님 믿으면 되지 성령?’하는데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얼마나 오랜 수 천 년의 세월을 여기에 맞추어서 나를 찾으려고 내 안에 오시려고, 헌신하시고 희생하시며 기다리셨습니다. 구약성경의 문제가 하나님이 우리 안에 오실 수가 없는 것이 구약의 약점입니다. 딱 하나입니다. 그래서 성전에서 ‘너 나 가까이 하지 마라.’ 제사장보고 가까이 오면 죽입니다. 모세보고 ‘너 나 보지 마라. 가까이 오지 마라. 모든 것을 너는 가까이 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게 구약성경입니다. 너와 나 사이에는 큰 죄악의 구렁텅이가 있어서 못 만납니다. 하나님과 우리와 만남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구약입니다. 제사를 지내도 하나님한테 갈 수는 없습니다. 내가 네 안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 남쪽에 나환자들 섬이 있습니다. 한센병인데 제가 가서 주욱 들러보고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지금은 다 모두 개발되고 좋아졌습니다. 그전에 몇 십 년 전에는 특별히 일제시대에는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는지, 거기에는 학교도 많고 교회도 많습니다. 양 쪽에 학교가 있는데 한센병이 거의 전염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녀를 낳으면 당장에 분리를 합니다. 학교를 다녀도 부모와 같이 못 지냅니다. 같이 못 만납니다. 한 달에 한 번씩 면회를 하는데 어떻게 하느냐하면 신작로 대로에 아이들을 이쪽으로 주욱 세우고 양 부모들은 이쪽에 세워가지고 한 5미터 거리를 두고 만납니다. 한 달에 한번 만납니다. ‘잘 있었냐? 괜찮냐?’ 거리를 둡니다. 그런데 바람이 이쪽으로 불 때는 학생을 이쪽에 세우고 부모쪽으로 바람이 가서 혹시 몸에 붙은 균도 있으니까 부모에게 가도록 자녀는 어쨌든 이 한센병에 걸리지 않도록 합니다. 이쪽으로 불면 애들은 어디에 서겠습니까? 이쪽에 섭니다. 부모들은 저쪽으로 갑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악으로 인해서 거리가 생겼습니다. 내 안에 오실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 죄를 해결하려고 어떻게 하십니까?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한센병 같은 나를 위해서 이 아들이 죽으십니다.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시고 십자가에 흘리신 죽음의 피로 우리를 죄에서 건지십니다. 그래서 우리한테 오는 길이 열려서 그 다음에 성령이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가서 성령을 너희에게 보내리라.” 할렐루야!

    여러분!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여러분 안에 주인을 바꿔야 합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이 어두움의 세력을 몰아내고 성령이 여러분과 함께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성령이 없는 여러분의 삶은 조금 좋아질런지 몰라도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인간의 가장 소중한 생명은 내 안에 있습니다. 주님이 내 안에 오셔야 합니다. 안은 성령에 의해서 새로워 질수 있고 성령이 오심으로 새 생명으로 지음 받습니다.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옛것은 지나고 새 사람이로다 그 생명 내 맘에 강같이 흐르고 그 사랑 내게서 해같이 빛난다 영생을 맛보며 주안에 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주함께 살리라♬(찬송가 493장) 오늘 현대인들의 문제는 현대인들의 모든 불행은 안을 무시하는데서 옵니다. 겉만 보고 좋아합니다. 겉만 보고 따라갑니다. 문제는 안에 있습니다. 안은 우리 인간이 부모도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제일 많이 한 말이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내가 겉을 낳았지 안을 낳았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부모가 낳는 것은 겉만 낳지 속을 못 낳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가 앞으로 뭐가 될지 여러분은 마음대로 못합니다. 오늘 많은 아이들이 부모를 죽이고 온갖 불효를 저지르는 것은 안에 이미 다른 주인이 온 것입니다. 빈 집에 들어온 어두움의 세력, 다른 세력이 들어왔습니다. 이야기를 해보면 벌써 안 맞습니다. 나하고 이미 천리만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 안에 있는 어두움의 세력을 몰아낼 수 있는 길은 부모도 안 되고 본인도 안 됩니다. 중이 제 머리를 못 깎지 않습니까? 누가 오셔야 되느냐? 성령님이 오셔야 새로워질 줄로 믿습니다.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은 부모와도 함께하고 이웃과도 함께하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도 큰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성령이 올 때 새 사람이 될 때 참 좋은 사람이 되고 멋진 사람이 되며, 능력 있는 사람이 되고 거룩한 사람이 되며 승리의 삶이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안이 성전입니다. 그래서 교회라고 하는 원래의 뜻은 ‘모인 자리’를 말합니다. 성전은 어디가 성전이냐하면 구약 성전은 돌로 지은 성전이지만 신약의 성전은 여기가 성전입니다. 내 안이 성전입니다. 고린도서에 있는 대로 주님은 이 안에 거하십니다. 그래서 교회가 귀하냐 내 안이 귀하냐, 교회는 여러분을 위해 있습니다. 이걸 잘 알아야 합니다. 이게 잘못되어 교인을 교회에 맞추어 가지고 하면 그 시대는 잘못됩니다. 교회는 어떻게 하더라도 여러분이 잘되도록 하는데 교회가 쓰임 받아야지 교인을 희생시키고 교회를 부흥시키려고 하면 그 교회는 죽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이 귀하지 교회가 귀한 게 아닙니다. 주님께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게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성전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여러분과 함께 하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이 시대는 위기이고 앞으로도 미래학자들은 위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위기는 첫째, 인간관계가 파괴되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아주 이기주의입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시대이기 때문에 모든 인간관계가 파괴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질병이 증가되었다고 합니다. 너무 많은 질병, 동물의 병까지 사람에게로 건너왔다고 합니다. 우리 인류는 적어도 천지만물이 창조된 때로부터 개는 개병, 소는 소병, 닭은 닭병인데 지금 조류병이 인간에게로 왔습니다. 광우병은 이미 몇 년 전에 사람에게로 왔습니다. 수많은 동물의 병까지 와서 사람은 병들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사람은 너무 많은 걱정, 근심, 시기, 질투, 원망, 이런 것으로 인해서 고혈압이 되고 당뇨가 생기고 모두 혈액순환이 안 되며, 정신적으로 병들고 여기에서 오는 모든 것으로 인하여 우리는 병을 전부 다 종합병원같이 짊어지고 삽니다. 여러분 ! 성령으로 충만하면 건강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성령으로 충만하여 무슨 좋은 약 찾아 헤매지 말고 어디 가서 헬스한다 그러지 마시고 성령 충만하여 능력 있는 건강한 성도되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는 향락주의입니다. 먹고 마시며 놀고 아주 쾌락주의, 온갖 음란, 방탕, 술 취하는 이 허무한 삶이 가정의 파괴를 가져오고 우리 인간성을 다 파괴했습니다. 오늘 이 3가지 위기 앞에 서 있는 우리들이 우리의 자녀를 빈 집에서 건져내고 여러분의 가정도 빈 집이 아닌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집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정도 성령이 함께하지 아니하면 집이 무섭습니다. 다 사람 무섭습니다. 빈 집은 무섭습니다. 그 집이 무서운 게 아니고 사람이 제일 무서운 것이 빈 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아니하는 사탄이 있는 집이 빈 집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요즘 무섭습니다. 보통이 아닙니다. 이러한 시대에 나라와 민족을 구원하는 진리의 등대가 되시고 성령이 등대가 되시며, 여러분 안에 가정에 심령에 천국이 이루어져서 성령이 함께 하는 삶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김삼환 목사 설교 중에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