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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자료실 종합모음

하나님을 섬기는 공동체

by 【고동엽】 2022. 9. 22.
 
 

 

수24:14~18, 요13:14~15,

베드로전서4:10


한해의 삶의 언저리를 돌이켜 보며 하나님의 은총을 감사하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한해를 맞이한다. 본 교회는 2007년 교회의 주제를 “하나님을 섬기는 공동체”로 설정 한다. 기장총회 제91회 주제가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임을 알게 하고 거기에 맞추어 서울교회는 한 해의 삶을 두기로 한 것이다. 나, 나의 집, 이 교회와 사회를 중심한 삶의 기준을 ‘섬김’의 신앙에 그 중심을 두어 공동체를 이루어 보려고 하는 것이다. 섬김은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감격 없이는 그 영성은 불가능함을 안다. 사망의 권세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생명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신앙 없이는 섬김의 은사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섬김은 신앙 공동체가 건강 한가 아니 한가를 겨루는 시금석인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 공동체에 있어 섬김은 절대적인 활력소가 된다는 사실을 먼저 삶으로 고백하는 생활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 나부터 나의 집에서부터 하나님 섬김의 실행을 행사하게 되는 것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구약 시대의 옛 조상들이 유프라테스 강 유역 하란문명의 가족주의 수호신, 이집트의 풍요로움에서 경험했던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정치적인 지배적 권위의식, 그리고 가나안족의 물량적인 번영을 보장한다는 바알 신을 버리고 야훼 하나님만을 섬기는 순수한 신앙을 강조하는 여호수아를 보는 것이다. 또한 예수께서 고난당하시기 전 최후의 만찬을 앞두고 성만찬 제정의 행위언어 대신에 제자의 발 씻기는 행위를 넣어 예수의 삶의 모델로 교훈삼아 예수의 전체적인 삶의 모형을 주는 메시지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이 비의(秘義)가 세상 만천하에 행위언어로 곧 십자가 사건임을 비추어 준 것이다. 오늘의 기독교는 혼란과 정체성위기와 공동체의 붕괴 그리고 궁극적인 관심이 회의(懷疑)하는 세상에 우리 주님의 마지막 부탁의 말씀인 섬김의 본(本)을 알아 차려야 한다. 기독교의 섬김의 원리는 지배하고 으뜸이 되려는 것이 아니라 낮아지고 섬김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섬김은 우리에게 생명의 충만함과 다양성 그리고 통일성 사이의 긴장 속에서 새로운 삶의 형태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 예수, 성령과의 관계 속에서 사는 자들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랑으로 예수를 섬기셨고 또한 인간을 섬기시는 것이다. 예수는 자기를 비우는 순종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생명을 내주기까지 인간을 섬기셨다. 성령은 하나님과 예수로부터 섬김을 받고 또한 그들을 섬기며 탄식과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인간과 피조물 전체를 돌보고 그들을 새롭게 창조하는 데 까지 섬기시는 유기적인 관계를 알아야 한 점에 유의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공동체’의 이유가 되는 것이다. 지금의 세기는 세계화, 우주 공동체, 지구 공동체를 말한다. 현대 교회가 가부장(家父長)적인 구조 자체를 넘어서 비 가부장적(非 家父長的)인 모성적 세계관을 역설해야 한다.

   가정 공동체의 모형의 성격으로 모성적 원리인 관계성, 유연성, 상보성(相補性), 순환성, 음악적 영성, 연대성, 감수성으로 훈훈한 가정을 바라보게 한다. 2005년 10월호 기장 여신도회 회보에서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아이들의 손을 잡은 부부가 교회에 들어가 다소곳이 앉아 부모와 함께 찬양예배를 드리는 모습이고 엄마 품에 안겨 젖을 물고 평안이 잠들어 있는 아기의 모습이다’라는 글을 보면서 이러한 모습들이 하나의 공동체로 나타나는 곳이 바로 가정이며 집임을 알게 한다. 섬김의 교육이 나와 내 집에서 생활로 익혀 지지 않으면 성장과정을 이루는 사회의 현장에서 실현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자연적인 섬김의 사실은 사회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인간이 태어남도, 인간이 성장하는 곳도 어머니의 생명을 나누는 곳도 가정임을 아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세상은 상호협력, 서로 사랑, 다정한 존경으로 어우러진 가족공동체가 아쉬운 세상이 되었다. 그러므로 오직 나와 내 집은  하나님을 섬기노라고 하는 것이다. 과거 영국에서 청교도주의가 소개한 삶에 대한 개념을 말한 것 중에 1847년 에머슨이 쓴 글에 의하면 ‘가정생활은 영국 민족으로 하여금 넓게 그리고 높이 가지를 뻗을 수 있게 해주는 주근(主根)이다’고 한 점을 감안(勘案)해 본다.

   그들이 무역과 식민통치의 동기와 목적은 그들의 가정의 독립성과 프라이버시를 수호하려는 것이다. 라고 꼬집기도 했음도 알아야 한다. 이러한 면들이 로마사회가 가부장의 권력에 대한 개념을 지나치게 과장한 단점을 알기 때문임을 아는 것이다. 이런 것을 말한 이유는 가족주의는 야만성을 들어내기에 주의(注意) 하는 것이다. 총회 주제처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는 가정의 신성성과 존엄성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준수 할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다양한 관계들을 가진 기독교적 삶의 뿌리이자 근거가 되는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는 것이다. 사람들은 21세기를 기술, 과학, 정보의 시대로 정의한다.

   이 시대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은 하나님의 은혜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그 섬기는 것은 마음과 행위가 일치하여 성령의 인도함에 따라 수행해 가야 한다. 가정적 사랑은 삶의 모든 관계에서 본(本)의 행위이다. 그 본의 실행은 내려가는 사랑의 모형이 겸손의 섬김이다. 그러므로 가정공동체는 넓은 의미에서 형제적 사랑을 배우는 학교로서의 역할을 한다. 여호수아가 주님이 너와 너의 가족이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하심이 여기에 있다고 신앙한다. 교회의 공동체가 초기부터 가정집에서 모였기 때문에 교부들의 편지들과 성서 외에 있는 문서들을 보면 주로 가족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한국의 교회는 유교 문화권에서 가족이 사회의 기둥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오늘의 가족상황의 위기가 한국 교회와 사회의 문제로 제기되고 있음을 본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가 가족을 주요 주제로 삼는 것은 오늘의 관심사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주5일 근무제가 실시되고 있기에 여기에 따르는 제반 문제들이 파생되리라  생각한다. 그 시대의 변화 발전과 주어진 상황은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하심에 대한 새 이해가 기대되고 다원화된 사회 다양한 삶의 구조에도 신앙의 형태가 그 모습을 달리하게 되는 것을 파악할 때 예수의 모범적 제자의 발을 씻음은 현실적 설득에 권유(勸誘)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교회와 사회에서 섬김의 활동을 하려는 근거는 예수가 이 땅에 오셔서 섬기는 삶을 보여 주심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총체적 사역은 바로 인간을 위한 섬김 자체이다. 그의 섬김은 인간되심, 세례 받으심, 시험받으심, 그의 사역생활, 그리고 십자기와 부활의 삶으로 이어진다. 예수의 성육신은 높은 자리를 버리고 낮은 곳으로 내려오신 자기 비움의 섬김이다. 이 섬김은 생명을 살리는 길임을 예수는 그의 사역을 통해 구체화 시켰으며 그의 십자가의 길을 통한 부활에서 그 정점을 이룬다. 교회의 섬김의 활동은 교회 내에서의 범위를 넘어 사회, 정치적 영역에서의 섬김의 활동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이유는 분명하다. 교회는 세상 한 복판에서 빛과 소금으로서 문제들을 해결하는 역할을 하도록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섬김은 개인구원 만이 아니라 인간 전체를 섬기는 봉사자가 되어야 한다. 나와 나의 집이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은 겸손하게 봉사하는 마음인 것이다. 겸손은 자기 부족을 알고 자기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은혜는 항상 자기 자신을 작게 보는 데서 나온다. 은혜는 사는 것 전체가 하나님 은혜로 믿는 데서 섬김으로 이어져 나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나는 작아지고 또 내 것은 적어지고 모든 것이 다 주의 것으로 드릴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므로 이 은혜를 깨달으면 나는 일생동안 하나님께 빚진 자 임을 알고 섬기게 된다. 이러한 공동의 은혜를 나누는 곳이 오직 나와 내 집은 하나님만을 섬기는 이치를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이 공동체가 살면 ‘하나님을 섬기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교회의 방향은 양적 성장을 위해 만들어진 방향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한국 사회의 변화와 무관한 방향이다. 한국사회의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추구해온 물량주의와 경제 성장주의를 위하여 가는 방향은 강자지배의 논리에 의한 수직 관계의 구조였다. 여기에 한국교회도 교회안의 물량주의와 성공주의를 달성하기 위한 경쟁의 수단이 되고 말았다.

   이제 한국교회도 지배구조 수직구조가 아닌 소수의 이익을 위하는 함께 더불어 사는 평등구조로 가야 한다. 이 평등구조는 섬김 속에서 함께 사는 공동체의 구조이다. 교회의 주제 ‘하나님을 섬기는 공동체’는 섬기는 삶의 원리를 위한 금년 한 해에 기초로 다져가야 한다.

출처/배성산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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