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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받는 자의 자세! (시1:1-6)

by 【고동엽】 2022. 9. 21.

복 받는 자의 자세!  (시1:1-6)


시편은 찬양, 감사, 간구, 기쁨, 신뢰의 노래, 헌신의 찬가, 예배시로 기록된 150편의 시편은 구약성경에서 가장 귀한 책으로 사랑 받는 책입니다.
칼빈은 시편은 '우리 영혼의 해부학'이라고 했고, 루터는 '성경의 축소판'이라고 했습니다. 신약에 구약 성경을 인용한 성구가 283번 나오는데, 그 중 116번을 시편에서 인용했습니다.
■시편 안에는 '5대 신학사상'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①신관입니다. 온 우주만물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②구원관입니다. 죄를 철저히 회개하는 길만이 구원받는 통로임을 경고하고 있으며, ③메시야관입니다. 오실 예수를 예표하고 있으며, ④심판관입니다. 시편의 특성 가운데 하나가 악인은 멸망하고 의인은 축복을 받는다는 내용입니다. ⑤부활관입니다. 시편의 기자들은 자신의 영혼이 음부에 버려지지 아니하고, 육체가 썩지 않을 것을 믿는 부활신앙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또 '5대 중심 사상'이 있는데, ①하나님만을 믿어라! ②하나님만 높이고 찬양하라! ③하나님의 백성(자녀)된 것을 기뻐하라! ④예배다운 예배를 들이라! ⑤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라!
오늘 제목이 ◀복 받는 자의 자세!▶입니다.

세상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이 있고 복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참 복이 있게 삽니다. 그래서 매일 즐겁고 기쁘게 살아갑니다. 그런가 하면 복도 지지리도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보면 혼자서 세상 고생 다 짊어지고 사는 것처럼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는 복 받은 잡니다. 성도란 복 그 자체입니다. 성도가 복 그 자체인 것은 하나님이 복된 사람으로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믿기에 복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십니다. 이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믿으니 그 자체가 복 덩어리인 것입니다.
▶예수 안에 들어오셨기에 큰복을 받은 셈입니다. 즉 내 힘으로, 능으로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죄의 문제! 죄로 인하여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우리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이 복보다 더 큰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요1: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 사실이 최고의 축복입니다.

1. 복 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1절)?

①악인의 꾀를 쫓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 '악인'이란 '시끄러운 소리를 낸다' 혹은 '소란을 피운다'라는 말에서 온 것으로 악을 계획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자를 말합니다.
이들은 의인과는 달리 이 세상의 어두움의 일에 민첩하고 행동이 빠르고 간사하여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혼란을 가져오는 익숙한 사람을 말합니다. 여기서 악인이란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자'를 의미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고 하나님에게서 떠난 일반적인 사람 전체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성경에는 이러한 악인들에 대해 여러 가지로 표현하고 있는데 죄인, 오만한 자, 거만한 자, 행악자, 강포한 자, 간사한 자, 살인자,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 불의한 자, 횡포한 자, 모해하는 자, 교만한 자, 대적자 등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철저한 무신론자(無神論者)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없다'(시14:1)고 떠들어대기도 합니다. 저들은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지 아니하며, 하나님을 거역하고, 반역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합니다.
그런데 악인은 아주 꾀를 잘 부립니다. 하와가 왜 넘어졌습니까? 바로 이 꾀에 넘어진 것입니다. 아주 그럴듯하게, 공감이 가게, 이해가 가게, 말이 그럴 듯 합니다.
꾀란 '충고하다', '상담하다'라는 동사에서 나온 말인데 사람들을 해롭게 하기 위하여 꾸미는 악한 음모, 악한 계획을 말합니다.
여기 '좇지 아니하며'에서 '좇는다'는 것은 '걸어간다'라는 뜻으로 결국 이 말은 악인과 의논을 같이 하거나, 그의 말을 듣거나, 그와 같이 걸어감을 말하는데 우리는 절대로 좇지 말아야 합니다.
잠4:14-15절 "사특한 자의 첩경에 들어가지 말며 악인의 길로 다니지 말지어다 그 길을 피하고 지나가지 말며 돌이켜 떠날지어다"
그러니깐 이 꾀에 열이면 열, 백이면 백 그냥 다 넘어집니다.
●넘어가지 않으려면, ▶인정에 끌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번번히 잘못인줄 알면서도 안다고 하는 이유 때문에(친하다고) 그만 이래서는 안 되는데, 안 되는데 하면서도 그냥 끌려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합니다. 롯은 삼촌의 은혜도 망각하고, 하나님의 동산처럼 보이는 소돔과 고모라 땅을 그만 택하고 말았는데 그 결과는 참으로 비참했습니다.
감옥에 간 사람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보았더니, 자발적으로 죄를 지은 사람은 아주 적었고 대부분은 누군가와 함께 죄를 지은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혼자서는 죄를 짓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죄에는 공범이 있게 마련입니다. 모두 악한 사람의 꾀를 좇다가 죄를 짓게 된 것입니다.

②죄인의 길에 서지 말아야 합니다.
죄인이란 하나님께 반역한 자요, 불법한 자요, 과녁을 맞추지 못하는 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방향과 목적이 없이 사는 사람, 행동과 생각으로 나쁜 짓을 하는 사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헬라 사람들은 교만을 가장 큰 죄라고 했습니다. 불교에서는 탐욕을 가장 큰 죄라고 했고, 유교에서는 불효를 가장 큰 죄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살인을 가장 큰 죄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을 모르는 것,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을 가장 큰 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모르면 죄인의 길에 설 수밖에 없습니다. 롬14:23절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참 생명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이 길은 좁은 길이요, 십자가의 길이요, 부활을 얻는 길이요, 영생의 길입니다.
그러나 죄인의 길이란 악인의 행로, 범죄자의 행로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길은 넓은 길이요, 멸망의 길입니다.
본문이 가르치는 복 받는 자의 자세는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 것' 즉 '죄를 이기는 것'이 축복의 통로입니다.
사실 죄를 정복하지 않고는 세상에 축복도, 평화도 없습니다. 죄는 인간을 망하게 하고, 병들게 하고, 죄는 우리를 좌절케 합니다. 죄가 들어온 이 세상은 탄식의 소리로 메아리쳐 오고 있습니다. 미움과 질투, 살인과 전쟁! 이 모든 것은 죄로 말미암아 찾아온 불행한 선물들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죄와 깨끗이 결별하고 죄인의 길에서 돌이켜 생명의 길로 걷는 자입니다.
③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말아야 합니다.
'오만한 자'란 '업신여기다'는 뜻에서 온 것으로서 계속적으로, 습관적으로 말씀을 이탈하므로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의인은, 복 있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만을 절대화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그러나 오만한 자는 하나님을 향하여 악한 말로 조롱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강퍅한 자를 말합니다. 진리와 양심과 도덕을 다 포기하고 자기를 세우려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경고에도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는 자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단호히 '아니다'라고 강하게 부정하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5:37절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나느니라" ■요셉을 보십시오! 그는 청년으로서 날마다 다가오는 정욕의 시험을 '내가 어찌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라고 하며 '아니요'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서 뛰쳐나왔습니다.
복 받는 자의 통로는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해야 합니다.

2. 적극적으로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2절),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 읽기를, 듣기를, 실천하기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자요, 늘 하루종일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말씀만 생각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여기 '율법을 즐거워한다'는 말은 율법을 좋아한다, 관심을 갖는다, 소원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이 좋아지고 관심거리가 되어지고 그의 소원이 되어진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복 있는 사람에게는 삶의 희열이 되고 기쁨의 원천이 되어집니다. 시112:1절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인생의 즐거움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안에 있습니다. 진정 복 있는 성도는 성경 안에서 즐거움을 맛보는 자입니다.
■묵상은 말 그대로 깊이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이는 묵상을 소가 되새김질을 하는 것에 비교하기도 했습니다. 소는 거친 짚과 풀을 먹습니다. 그러나 1차는 대강 먹고 2차는 되새김질을 통하여 거친 짚과 풀을 고운 가루와 같이 만들어 소화를 합니다.
묵상을 통하여 내 영혼의 양식으로 소화를 해야 합니다. 이런 말이 있다. "생각을 심으면 행동을 거두고, 행동을 심으면 습관을 거두고, 습관을 심으면 인격을 거두고, 인격을 심으면 운명을 거둔다"는 말을 성도인 우리가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축복된 삶을 살도록 이 말씀 속에 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은 우리 나라 강원도와 경기도를 합친 땅만 합니다. 인구는 본토에 600만, 타국에 1000만명, 합하면 1600만명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귀한 상인 노벨상의 24%가 유대인들이 받을 만큼 세계 모든 민족 중에 뛰어난 민족입니다. 그리고 세계의 경제의 실권은 지금도 유대인들이 지고 있을 만큼 부요합니다.
어떻게 이 작은 나라, 작은 인구에서 세계 뛰어난 민족이 되었을까요?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따라 철저히 살았기 때문입니다.
신28:1절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계1:3절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수1:8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정말 부럽지 않습니까? 그러니 여러분과 저도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그 말씀을 묵상하며 말씀대로 살면 지금도 복 받은 사람으로 살지만 더 큰복을 받아 누리며 살게 될 줄 믿습니다.
미국은 어떻습니까? 지금 이 세계에는 약 240여 개국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240여 개국 중에 가장 잘 사는 나라는 미국입니다. 더군다나 미국은 해가 갈수록 더 부강해지는 나라가 되어 갑니다. 왜 미국이 이렇게 잘 사는 나라, 복 받은 나라가 되었을까요? 그들은 하나님의 제일 주의, 하나님의 중심주의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조상이 이 나라를 건국할 때에 그들은 제일먼저 교회를 지어 하나님 앞에서 살았고, 그리고 학교를 지어 교육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집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이 지금도 그들에게 있습니다. 대통령 취임을 할 때 보십시오. 그들은 정말 경외하는 심정으로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제일 주의 신앙으로 살았으니 하나님이 보란 듯이 축복을 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도 부러워만 하지 말고 하나님 제일 주의로 살아갈 때에 이런 복을 받아 누릴줄 믿습니다.
우리나와 북한을 비교해 보세요. 우리 나라가 훨씬 더 잘삽니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묵상하여서 복위에 복을 누리며 살게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

3. 율법을 즐거워하고 묵상하는 자에게 어떤 축복이 있습니까(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습니다.
우리는 시냇가의 심은 나무라는 말이 큰 감동을 느껴지지 않지만 광야와 사막이 펼쳐져 있는 팔레스틴 지방에서의 시냇가의 심은 나무란 그야말로 행복에 대한 가장 적절하고 완벽한 시적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 시냇가는 문자적으로 애굽이나 바벨론 등의 황무지에 수원지로부터 물을 공급하는 하천을 말합니다. 시냇가란 근원으로부터 신선함을 운반하는 통로를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시냇가'란 곧 생명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뿌리를 내린 성도는 복된 자입니다.
여기 '심은 나무'는 '옮겨진 나무', '이식된 나무'를 말합니다. 이 나무는 본문에서 의인이요(5,6절), 복 있는 자(1절)입니다. 이식된 나무는 바로 신약시대에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얻은 성도들을 가리킵니다(엡1:7).
성도는 죄와 사망의 황무지에서 생명의 시냇가로 이식되어진 나무입니다. 이러한 성도에게는 결코 목마름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생명수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7:37-38)고 하였고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4)고 말씀하셨습니다.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습니다.
렘17:8절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니라"
시92:12-15절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발육하리로다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리로다 늙어도 결실하여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여호와의 정직하심을 나타내리로다"
■잎사귀가 마르지 않습니다.
성경 여러 곳에서 '잎사귀'는 신앙 생활을 표시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도의 외적인 생활, 자손의 번성, 사업의 형통 등을 뜻합니다.
가뭄이 와도 청청한 빛을 내는 잎사귀, 환난과 핍박과 그 어떤 어려움에 부딪혀도 신앙의 색깔이 변함없는 성도, 이것은 복 있는 사람의 아름다움을 나타내주는 화려한 축복입니다.
■형통한 삶을 살게 됩니다. "...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여기 "그 행사가"라는 뜻은 "그가 행하는 모든 일들이"라는 뜻입니다.
형통의 반대는 불통입니다. 즉 막혀서 할 수도, 갈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되지도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형통은 문이 열렸다는 말입니다. 일이 잘 된다는 말입니다. 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특별히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들이 형통의 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통해야 할 것이 잘 통해지는 것을 형통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과 관계에서 잘 이루어지는 것을 영통이라 하며, 사람과의 관계에서 잘 이루어지는 것이 인통이며, 대소사의 일이 잘 이루어지는 것을 물통'이라고 합니다.
모든 것은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통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안 됩니다. 그래서 안 통하는 것을 일컬어 불통, 즉 잘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안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통한다'는 말을 자주 씁니다,
■나와 다른 사람과의 마음이나 생각이 같을 때 서로 통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관계가 좋아집니다. 부부간에 통하지 않으니까 싸움이 벌어집니다. 서로간의 미움이 일어나는 것도 통하지 않아서입니다. 통하지 않으면 정말 답답합니다
■전기도 마이너스 풀라스가 통할 때에 큰 힘을 발휘합니다.
아무리 좋은 기계, 좋은 전기시설이 있다고 해도 전기가 통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일단 통하기만 하면 아무리 큰 기게일지라도 움직이고, 환하게 됩니다.
이렇듯 통해서 잘되는 것, 무엇이든지 잘 나가는 것을 '형통하다'라고 합니다.
부부간에 형통하고, 자녀간에 형통하고, 이웃간에 형통하고, 성도간에 형통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있어서 진짜 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잘 통해야 합니다. 이 말을 신통(神通), 혹은 영통(靈通)이라고 합니다. 왜 영통해야 하는가? 모든 것에는 근원이 있습니다. 수도물도 저수지, 전기는 발전소가 있듯이, 만들어진 것도 근원이 있습니다. 이 근원과 연결될 때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근원, 즉 생명의 뿌리입니다.
●생명의 근원이 되시고, 축복의 근원이 되십니다. 약1:17에서는 각양 좋은 것들이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온다고 했고, 그래서 시73:28에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통해 있는 사람은 몇만 볼트의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소보다 더 큰 에너지원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창2장에서 아담이 하나님과 통했을 때에 모습을 보십시요! 그곳이 곧 천국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하나님과 통하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능력이고, 생명이고, 힘이라고 해도 통하지 않으면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사람으로서는 그 하나님과 통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에게 통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하나님과 통하는 통로가 됩니다(요14:6).
통하기만 하면 죄 사함, 자녀, 영생, 하늘나라의 기업을 상속받습니다.
■말씀은 하나님과 통하는 길입니다. 이 통로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만나고, 보화를 발견하게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통하는 통로입니다. 무한한 에너지를 공급받습니다. 낙심했다가 기도하면 힘이 통로를 통하여 엄청난 것을 공급받지만, 즉 형통케 되지만 그러나 통하지 않으면 답답해집니다.
●신통하면, ■인통(人通)합니다. 사람과 사람관계가 원망하고 좋습니다. 행, 불행의 모든 것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하나님과 영통해서 충만해지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잘 됩니다.
■물통(物通)합니다. 물질과 물질이 들어 있는 환경을 정복, 다스립니다. 영통하면 형통합니다. 하나님과 통하면 사람과 통하고, 물질과, 환경을 통합니다. <영권, 인권, 물권>
●'그 행사가 다 형통'하다는 말은,
①하나님과의 관계가 형통하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과 관계가 형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오직 우리 사람만이 그분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말은? 우리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이 진정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형통하면, 생명이 내게로, 복이 내게로, 각양 좋은 것들이 내게로 올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하나님과의 관계가 형통한 사람들을 보십시오. 이것을 성경은 '주 안에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이 있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 롬8:28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할/
②물질적인 형통이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형통하면 물질적인 형통은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입니다. 예수 믿는 나라 치고 못 사는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세계 지도를 놓고 잘 사는 나라에 동그라미를 그려보면 99%이 이상이 기독교 국가가 우세한 국가입니다.
반대로 못사는 나라를 동그라미로 그려보면 대부분이 기독교와 거리가 먼, 기독교를 탄압하는 나라들입니다.
복음이 들어가면 사람이 바뀌고 역사가 바뀝니다.
이스라엘에서 시작한 복음은 바울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유럽에 전해졌습니다. 그 당시 복음을 받아들인 로마는 복음을 인하여 강국이 되었습니다.
로마에서도 기독교 탄압이 심해지자 나중에는 이 복음이 영국으로 전해집니다. 복음이 영국의 해적(海賊)떼를 어부로 바꾸어 놓았고 해적선을 어선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무기를 삽이나 연장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영국에는 유래 없는 부가 찾아왔고 급기야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세계의 주목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영국에서도 기독교에 대한 박해는 행하여졌고 종교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은 인디안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미국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그로부터 400년이 안되어 미국은 어마어마한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 나라의 선교사들이 우리 나라에 복음을 전해 주어서 우리 나라는 눈부신 발전을 가지고 왔습니다. 하나님과 형통하면 모든 것이 형통합니다.
③육체적인 건강 면에서도 형통합니다.
병든 자가 치료함을 받습니다. 연약한 자가 더 건강함을 입습니다. 하나님은 치료의 능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4. 이제 잠깐 악인에 대하여 알아봅시다! (4-6)

①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4).
여기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라는 말은 악인의 삶과 그 결국은 1절에서 3절까지 말한 의인의 복된 삶과 그들의 축복에 결코 참여하지 못한다는 것을 강하게 대조시키는 말씀입니다.
악인은 겨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겨는 그 안에 생명이 없습니다. 뿌리도 내릴 수가 없습니다. 열매도 없습니다. 껍질이요, 쭉정이입니다. 그러므로 바람과 함께 이리 저리 날아다닙니다. 결국 불에 태움을 받게 됩니다.
마3:12절에 의인을 알곡에 비유하고 악인을 쭉정이에다 비유하면서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람에 나는 겨! 그것은, ①무가치한 인생, 쓸모 없는 인생을 의미합니다. 이들의 모습은 마치 맛을 잃은 소금과 같습니다(마5:13). ②불안정한 삶을 의미합니다. 바람이 부는 데로 이리 저리 날릴 뿐 안정이 없습니다.
③타작(심판) 마당에 버림을 당하여 태움을 받을 인생을 의미합니다.
마3:12절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②심판을 견디지 못합니다(5).
여기 '심판'은 마지막 때에 있을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공의로우신 판결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부분적인 심판이 아니라 전체적인 심판 곧 세상 종말과 함께 이어질 백보좌 심판을 의미합니다(계20:11).
여기 '견디지 못한다'는 말은 심판 앞에 서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 심판의 자리에 자신의 죄악이 너무 커 그 결과가 너무 무서워 일어서지 못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거나 거절할 수 없음을 뜻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심판하심에 대하여 어느 누구도 항거할 수 없음을 뜻합니다. 시5:5절 "오만한 자가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③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합니다(5).
'회중'은 거룩한 장소 곧 하나님의 언약궤가 모셔져 있는 성소나 성전을 가리킵니다. 즉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을 지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의인의 회중'이란 하나님의 심판, 또는 판단 앞에서도 부끄러움 없이 설 수 있는 자들의 총회를 말하는데 신구약 시대를 망라한 하나님의 공회를 뜻하고 있으며, 신령한 의미로서 교회를 의미하고, 장차 우리에게 다가오는 미래적 천국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를 통하여 택한 백성을 구별시켜 의인의 회중으로 모으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회중에 들지 못하는 악인들은 시대 시대마다 있었습니다.
구약시대에 가인이 의인 아벨과 함께 하지 못하였습니다(창4:1-16).
구약시대의 광야 교회에서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무리들이 하나님의 회중에 들지 못하도록 땅이 입을 벌려 그들을 삼켜버렸습니다(민16:1-35).
신약시대에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열 두 제자의 회중에 들지 못하였습니다(행1:16-19).
의인의 회중에 들려고 성령을 속였던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행5:1-11).

●결론입니다(6).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신 답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노아를 인정하셨고, 욥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사탄에게까지도 내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고 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을 인정하셨고, 다윗을 인정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여기서 의인은 누구를 가리킵니까? 바로 믿음으로 사는 자가 의인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2:4)
(2003년 11월 9일 대예배 설교)

송수천목사 설교자료 중에서(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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