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4대 증거 (베드로전서 1장 8-12절)
미국에 데이빗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베트남 전쟁에서 해군 특수부대원으로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야간 공격 중에 적이 기관총으로 집중사격을 하자 그는 허리에 있는 백린(white phosphorus) 수류탄을 빼서 던지려고 일어섰습니다. 백린 가루는 공기와 접촉하면 급격히 연소해 밝은 빛과 고열을 내서 연막탄으로도 사용됩니다.
그 수류탄을 던지려고 팔을 뒤로 젖혔을 때 총알이 날아와 수류탄에 맞아 수류탄은 그의 귀 바로 옆에서 폭발했습니다. 강둑에 쓰러진 그는 그의 얼굴 가죽 일부분이 떠다니는 것을 보았고, 백린 가루가 몸에 박히며 몸에 불이 붙고 얼굴과 어깨에 연기가 났습니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살아 그는 동료 군인에 의해 옮겨져 하와이로 후송되었습니다.
병원에서 처음 수술할 때, 수술 팀이 그의 탄 피부를 잘라내자 피부 속에 박혀 있던 백린 가루가 공기와 접촉해 다시 연소했습니다. 그러자 수술 팀원들은 수술 중에 사용하는 산소통이 폭발할까봐 그만 놔둔 채 수술실 밖으로 도망쳤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살아나 얼마 후 그는 중환자 병동으로 옮겨졌습니다. 그의 머리는 농구공처럼 부었고 얼굴은 흉측하게 변했습니다. 그런 자신의 모습에 그는 깊은 고독감과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그 당시 그 옆에는 부상당한 한 동료 병사가 있었는데 그는 팔과 다리를 하나씩 잃었고, 얼굴도 심하게 훼손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 병사의 아내가 미국 본토에서 도착해 병실로 들어왔습니다. 그녀는 남편을 보고 혐오스런 표정을 하며 곧 결혼반지를 손에서 빼 옆 탁자에 올려놓고 말했습니다. “죄송해요. 당신과 살 자신이 없어요.”
곧 그녀는 병실을 나갔고, 그 병사는 찢어진 목과 입으로 아무 소리도 못 내고 몇 시간 동안 서럽게 울었습니다. 그 아내의 행동은 그 병사에게 어떤 상처보다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며 마지막 희망을 짓밟았습니다. 결국 그는 이틀 후에 죽었습니다.
그 병사가 죽고 3일 후, 데이빗의 아내가 도착했습니다. 동료 병사의 일을 목격했던 그는 아내가 자기에게 어떤 반응을 보일지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신실한 크리스천이었던 아내는 그를 보자마자 그의 얼굴에서 붕대를 매지 않은 유일한 곳에 키스하며 조용히 말했습니다. “여보! 당신을 사랑해요. 그리고 항상 사랑할 거예요. 우리가 마음을 함께 하면 이 어려운 상황을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어요. 용기를 내세요.”
그는 아내의 말에 큰 용기를 얻었고, 아내를 통해 신앙심도 깊어졌으며, 또한 12번의 수술을 거쳐 기적적으로 보고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희망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TV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품으로 이끌도록 저의 고통을 사용하셨습니다. 저는 고통으로 많은 유익을 얻고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고통의 경험을 어떤 것과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 구원의 4대 증거 >
믿음은 시련에 의해 강해집니다. 구원받아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가 된 성도에게는 고난도 승리의 표식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원은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구원받고 천국백성이 된 것을 어떻게 압니까? 본문을 통해 구원받은 사람에게 있는 4가지 증거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1. 예수님을 사랑하는 고백
본문 8절 전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 도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생각할 때마다 예수님을 생각하고,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려고 하고, 교회를 주님의 몸처럼 섬기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마음이 구원받은 증거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을 입술과 행동으로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드러내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9-10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초대교회 때는 극심한 핍박으로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려면 생명을 걸어야 했기 때문에 믿음의 고백은 가장 뚜렷한 구원의 증표였습니다.
반면에 오늘날에는 공개적으로 믿음을 고백해도 핍박하거나 죽이지 않기 때문에 그 고백의 진실성이 떨어집니다. 일부 교인들 중에는 일단 구원은 받고 보자는 식으로 “예수님을 믿는다!”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믿는다는 사실을 감춥니다. 그러나 생활의 불편이 예상되어도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공개적으로 자신이 믿는 사람임을 고백하고, 식사 때는 주위 눈치를 보지 않고 식사 기도를 해야 합니다.
또한 믿음의 고백을 했으면 믿음대로 실천하며 살려고 애써야 합니다. 일전에 브라질 리우에서 환경회의가 열렸을 때 회의장에 쓰레기가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그 쓰레기를 보고 청소원들이 각국 대표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들은 환경을 사랑한다고 말은 잘한다. 그러나 실제 행동은 돼지처럼 한다.”
성도도 “믿습니다!”라고 하면서 믿음대로 살지 않으면 불신자들이 말할 것입니다. “저들은 믿는다고 하면서 행동은 탐욕에 가득 찬 돼지 같다.” 그처럼 입으로만 “주님! 믿습니다!”라고 하고 말씀대로 살지 않고 고난이 있으면 쉽게 흔들리고, 쉽게 낙심하고, 쉽게 불평하고, 불안에 떠는 것은 구원의 믿음이 아닙니다. 구원의 믿음은 “죽으면 죽으리라!”고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선한 섭리를 믿고 나가는 것입니다.
비행기를 타면 기장에게 모든 것을 철저히 맡깁니다. 비행기가 흔들린다고 기장에게 “기장님! 비키세요! 내가 조종하겠습니다.”라고 하면 죽는 길입니다. 그처럼 인생의 비행기를 목적지까지 무사히 안착시킬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그러므로 기장에게 철저히 맡기듯이 자신의 삶을 주님께 작은 부분까지 철저히 맡겨야 합니다.
이제 초대교회 당시처럼 긴박하고 절실한 마음을 가지고 “죽으면 죽으리라! 망하면 망하리라!”는 믿음의 고백으로 사십시오. 또한 믿음의 고백을 했으면 일상적인 삶 중에서도 믿음의 말만 나오도록 해야 합니다. 저는 어려울 때마다 혼자 입으로 시인하는 말과 생각을 더 하려고 합니다. “나는 결국 승리한다! 나는 반드시 꿈을 이룰 수 있다. 더욱 준비하자! 조금 더 기다리자! 하나님은 반드시 기회를 주신다!”
어려워도 그런 말을 하면 영혼에 소생하는 힘이 생깁니다. 반면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부정적으로 말하고 생각하면 되던 일도 안 되고, 불행한 것처럼 느껴지고, 낙심이 틈탑니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은 우리의 입을 주목하십니다. 행복과 축복은 거의 입에서 주어집니다. 입에서 불평이 나오는 순간 행복의 기운도 빠져나갑니다. 반면에 감사와 믿음의 고백은 행복을 부르기도 하지만 구원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2. 믿음에서 생기는 기쁨
본문 8절 하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이 구절을 보면 구원의 믿음은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을 생각하며 기뻐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힘든 고난이 있어도 구원이 크게 보이면 고난은 작게 느껴지고 마음의 기쁨과 평안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처럼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기쁨이 있는 것은 구원받은 좋은 증거입니다.
코리 텐 붐(Corrie Ten Boom)은 ‘피난처(The Hiding Place)’란 책에서 이런 글을 썼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 코리 가족은 유대인을 숨겨준 죄로 수용소로 붙들려갔습니다. 코리와 언니 벳시가 처음 수용소 막사에 들어갔을 때 막사는 사람과 벼룩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날 아침 그들이 읽은 성경 구절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나오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인데, 그 말씀을 기억하며 벳시는 코리에게 하나님께 세세한 부분까지 감사하자고 했습니다. 그때 코리는 다른 모든 문제는 다 감사할 수 있어도 벼룩에 대해서만은 감사하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언니는 그녀에게 벼룩 문제도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마침내 코리는 간신히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벼룩을 주셔서 감사해요.” 그 후, 몇 달 동안 그들은 막사에서 독일군의 감시 없이 자유롭게 성경공부도 하고 기도회도 열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독일 군이 벼룩 때문에 감시하러 막사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알고 코리는 벼룩을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며 기뻐했습니다.
문제 중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그분의 선한 목적을 따라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고난과 실패 중에도 기쁨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삶에는 성공도 있고 실패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실패할 때 어떤 자세를 가지느냐 하는 것입니다. 실패해도 기쁨을 잃지 않고 의연히 대처하면 삶은 감동이 되고, 축복의 열매는 맺게 됩니다.
왜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오래 삽니까?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몸과 마음이 약합니다. 특히 출산 후에는 몸의 기가 많이 빠지고, 몸의 곳곳이 아프다고 호소하는 여자들이 많습니다. 그래도 오래 사는 이유는 황수관 박사의 말에 의하면 여자들이 잘 웃고 잘 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작은 일에 감동하고 고난 중에도 기뻐할 줄 아는 것은 건강의 비결이기도 하고 구원의 실질적인 증거이기도 합니다.
3. 구원을 끊임없이 추구함
본문 9절 말씀을 보십시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이 구절은 믿음의 결론이 ‘영혼의 구원’이라고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가끔 누가 “왜 교회에 다니세요?”라고 물으면 조금 유치한 것 같아도 “천국 가려고 믿는다.”고 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인격수양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인격수양도 약간은 있지만 그것이 신앙의 결론은 아닙니다. 또한 신앙생활은 축복을 위한 것도 아닙니다. 축복을 목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축복이 없을 때 금방 시험에 빠지고 신앙을 잃습니다. 물론 신앙에는 축복도 있지만 구원이 없는 세상 축복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결국 신앙생활의 결론은 구원받아 천국에 가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것에 있습니다.
그처럼 구원을 가치 있게 보는 태도도 구원받은 또 하나의 증거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선진들은 구원을 무엇보다 가치 있게 보고 끊임없이 구원의 문제를 연구하고 추구했습니다. 본문 10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그처럼 선지자들이 구원의 은혜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내린 결론이 무엇이었습니까? 본문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선지자들은 구원의 문제에 대해 깊이 연구한 후에 주님이 십자가를 지고 구원의 길을 여실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깨닫고 어느 때 그런 일이 있을까를 부지런히 연구했었습니다. 그만큼 많은 선지자들이 구원의 문제를 중시했습니다. 그처럼 구원을 중시하라는 말은 결국 주님의 십자가를 중시하고 무엇보다 주님과의 관계를 중시하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돈이 많으면 “잘 산다!”고 표현하지만 가난해도 잘 사는 사람이 있고, 부자도 잘못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 잘 살고 잘못 사는지는 최종적으로 인생을 마감하고 하나님 앞에 가봐야 압니다. 돈이 많다고 가정이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돈 때문에 형제들끼리 싸우고 원수처럼 지내는 경우도 많습니다. 돈이 많다고 부부가 행복하게 사는 것도 아닙니다. 돈 때문에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서 이혼하는 가정도 많습니다.
결국 잘 살고 못 살고 하는 것은 돈으로 결정되지 않고 관계로 결정됩니다. 진정한 축복은 관계에서 좌우됩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형제와 이웃과의 관계를 망치며 사는 사람은 잘 사는 사람이 아니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사람은 결코 잘 사는 사람이 아니라 못 사는 사람입니다.
진정 잘 사는 사람이 되려면 기본적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 죄의 문제를 주님이 십자가를 통해 해결해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고 구원의 은혜에 항상 감격하면서 주님과 깊은 관계를 이루어가며 사는 사람이 진정으로 구원받은 사람이고 잘 사는 사람입니다.
4. 복음을 전하는 삶
본문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당시에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성령을 힘입어서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복음을 전해주었습니다. 그처럼 구원받은 사람들은 구원받은 것에서 끝나지 말고 그 구원의 은혜를 불신자에게 전해야 합니다.
또한 이 구절을 보면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는 삶은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전도는 천사들도 흠모하는 삶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만약 하늘 문이 열리면 우리는 하늘의 신비를 들여다보려고 애쓸 것입니다. 그러나 천사들은 이 땅을 내려다보면서 구원의 복음과 전도하는 모습을 살펴보려고 애씁니다.
그 말은 하늘에서 보기에 가장 위대한 것은 구원의 복음과 전도라는 말입니다. 복음을 전파하고 그것을 받아들일 때 영원히 죽을 사람이 영원한 천국백성이 되니까 전도가 얼마나 신기하고 놀랍고 매력적인 것입니까? 하나님은 전도를 천사들을 통해 하도록 맡기지 않았고 성도들을 통해 하도록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천사들이 가장 부러워하면서 쳐다보는 것이 바로 성도의 전도하는 모습입니다.
천사들은 구원받을 필요가 없는 존재들인데도 구원의 신비를 살피고 전도하는 모습을 흠모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활용해 구원의 복음 전파에 힘써야 합니다. 왜 하나님이 어떤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까? 그것을 가지고 영혼 구원에 사용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영혼 구원을 위해 잘 사용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축복 받은 사람이고 앞으로도 대대손손 축복 받을 사람입니다.
미국의 록펠러는 석유로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52세에 6개월밖에 살수 없다는 진단을 받고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한 후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저의 과거의 인색했던 삶을 회개합니다. 이제 나머지 인생 동안 저의 모든 것을 교회와 이웃을 위해 쓰겠습니다.”
그때부터 록펠러는 나누는 삶을 실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마음에 지극한 평안이 임했습니다. 그 뒤 6개월이 지났지만 죽지 않았습니다. 60세가 되어도 죽지 않고, 결국 98세에 죽었습니다. 인색하게 살면 몸도 마음도 죽고 영혼도 다 죽지만 주님의 사랑을 가지고 나누며 살면 영혼도 살고, 마음도 살고, 몸도 살게 됩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자기만을 위해 쓰고 자랑하면 오래 살지 못합니다. 손에 큰 다이아 반지를 끼고 다니면 누가 그 손가락을 잘라갈지 모릅니다. 자랑하는 사람은 죽고 사랑하는 사람은 삽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가지고 자랑하며 살지 말고 영혼 구원을 위해 사용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제는 “어떻게 돈을 잘 벌까?”도 고민해야 하지만 사실 “어떻게 돈을 잘 쓸까?”를 더 고민해야 합니다.
미국의 철강 왕 앤드류 카네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부자로 만들지 않는 사람은 부자가 될 수 없다.” 실제로 카네기와 함께 일했던 사람 중에 43명의 백만장자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처럼 자신의 좋은 것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 진짜 좋은 것을 가진 사람이고, 자신의 축복을 이웃과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더 축복받습니다.
지금 미션퍼블릭에서 3번째로 발간할 저의 책 ‘40일 간의 성령님 묵상’이 탈고되어 출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책을 7월 초에 출판하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한꺼번에 몇몇 분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인도의 이상기 선교사님이 찾아와 캘커타에 선교센터를 짓는 비전을 얘기했고, 케냐로 선교를 떠나는 한상희 선교사님이 찾아와 기도제목을 나누었고, 필리핀에서 김일로 선교사님의 선교메일을 받았고, 마지막으로 한 후배 목사가 찾아와 섬기던 교회를 사임하고 집도 없이 어렵게 사는 얘기를 전해주었습니다.
그때 미션퍼블릭 통장에 남은 재정을 놓고 고민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이런 때에 한꺼번에 그런 기도제목을 듣게 하십니까? 3번째 책 출판을 조금 미루어야 합니까?” 잠간 고민을 했지만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결론을 내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4분에게 급히 재정이 필요한 분에게는 많이, 별로 급하지 않게 느껴지는 분에게는 적게 배분해서 미션퍼블릭에 남은 모든 재정을 인터넷 뱅킹으로 다 송금시켜버렸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면 어리석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사업을 하면 다 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차피 미션퍼블릭의 존재하는 제일 목적은 선교입니다. 그 목적에 충실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면 출판도 하게 하시고, 또한 우리의 소중한 문서선교의 비전도 무너지지 않게 하시고 오히려 더 귀한 동역자와 후원자를 붙여주셔서 우리의 비전을 견고하게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이제 혼자만 잘 살려고 하지 마십시오. 함께 잘 살려고 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시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을 기꺼이 나눠주려고 하십시오. 특별히 우리가 나눠주어야 할 최상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구원의 복음입니다. 자신에게 임한 구원의 은혜가 정말 소중하다고 믿는다면 그 구원의 복음을 나누는 일에 가장 최우선적인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구원받은 성도에게 전도는 무엇보다 중요한 과업입니다.
< 영혼 구원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
요즘 전도가 아주 힘듭니다. 자기 것을 다 빼어주어야 합니다. 그래도 진심을 몰라주고 오해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시골에 한 믿음이 좋은 며느리는 믿지 않는 시어머니의 핍박 속에서도 늘 눈물로 시어머니의 구원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힘들 때마다 찬송가 395장을 잘 불렀습니다. “너 시험을 당해 범죄치 말고 너 용기를 다해 곧 물리쳐라/ 너 시험을 이겨 새 힘을 얻고 주 예수를 믿어 늘 승리하라.”
어느 날, 며느리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이 그 시어머니에게 전도했습니다. “할머니! 이제 교회 다니세요. 며느리가 할머니를 위해 얼마나 눈물로 기도하는지 몰라요.” 그때 시어머니가 화를 벌컥 내며 말했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요? 제가 숨어서 며느리가 노래하는 것을 듣고 너무 기가 막혀서 가사를 다 적어 두었어요. 이거 보세요.”
할머니가 보여준 쪽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너 시어밀 당해 범죄치 말고 너 용기를 다해 늘 물리쳐라/ 너 시어밀 이겨 새 힘을 얻고 주 예수를 믿어 늘 승리하라.” 그 쪽지를 보여주며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목사님! 이것 봐요. 걔는요. 시어밀 물리치고 시어밀 이겨먹는 게 최대 소원이에요. 그런 모습을 보고 제가 교회에 나갈 맘이 생기겠어요?”
전도하다보면 진심을 몰라주고 그런 오해가 참 많습니다. 그래도 전도를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천사가 흠모하는 전도를 포기하면 우리는 결코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구원받는 자라면 당연히 전도할 것이고, 전도해야 합니다. 내가 구원하지 않으면 내 사랑하는 사람은 지옥 불에 떨어져 영원히 고통에 처하게 됩니다. 그런 엄연한 현실을 가볍게 여기고 전도를 외면한다면 너무 냉정한 사람입니다.
어느 날, 춘천에 사는 사업가 김씨가 부산으로 출장 가며 아내에게 이틀 후에 부산에 내려와 함께 휴가를 보내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부산이 너무 더워서 다음날 아내에게 이메일을 보냈는데, 주소를 잘못 쳐서 엉뚱하게 메일이 얼마 전 사고로 세상을 떠난 목사 사모님에게 발송되었습니다. 사모님은 그 이메일을 받고 그만 기절했습니다. 그 메일에는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여보! 이 아래는 무척 뜨겁소! 너무 고통스럽소! 당신은 이곳에 오지 마시오!”
그 유머가 진짜 현실이 되지 않도록 우리는 우리 주변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불신자들이 지옥 불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그냥 보고 있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에게 구원의 길을 알려주지 않은 채 나만 열심히 기도하고 찬송하면 그 모습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겠습니까? 이제 불신자를 외면하고 나만 혼자 예배드리면서 좋아하는 비정한 예배자의 모습이 우리에게는 없도록 해야 합니다.
물론 전도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전도를 천사에게 맡기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전도를 통해 놀라운 상급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전도를 천사들도 흠모하고 부러워하는 것입니다. 특히 전도하는 삶이 소중한 이유는 전도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내가 구원받은 결정적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구원받은 사람의 4가지의 증거를 살펴보았는데, 이 증거들이 오늘 이후부터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출처/이한규 목사 설교 중에서
'◑ 자료 18,185편 ◑ > 자료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 (딤전1:9-11) (0) | 2022.09.21 |
---|---|
들으라! (마가복음 4:1-9) (0) | 2022.09.21 |
요셉과 헌신 (창41:46~57) (0) | 2022.09.21 |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요한복음 12:27-50) (0) | 2022.09.21 |
세례요한의 믿음 (막1:1~8) (0) | 2022.09.2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