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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자료실 종합모음

인생의 광풍이 닥쳐올 때 (막4:35~41)

by 【고동엽】 2022. 9. 21.

  인생의 광풍이 닥쳐올 때   (막4:35~41)

흔히 우리 인생을 가리켜 배를 타고 항해하는 것으로 비유합니다. 기왕이면 잔잔한 호수를 유유히 항해하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인생은 거친 광풍(狂風)이 부는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언제 어떻게 인생의 광풍이 휘몰아칠지 모릅니다. 늘 불안합니다. 그래서 혹시 광풍을 아예 없앨 수는 없을까 궁리를 해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망상에 불과합니다. 인생 자체를 포기한다면 모를까, 인생의 바다를 지나가면서 광풍을 없애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괜히 가당치 않게 광풍을 피할 궁리를 할 게 아니라, 광풍이 닥쳐올 때 어떻게 잘 헤쳐 나갈 것인지 궁리하는 게 지혜로운 일입니다. 그게 바로 승리하는 인생의 모습입니다.
  이 시간 말씀의 주제가 바로 그겁니다. “인생의 광풍이 닥쳐올 때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 아무쪼록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을 찾으심으로 인생의 바다에서 늘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갈릴리 바다의 광풍 : 인생에 닥치는 고난
  오늘 본문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바다는 항해하는 사건이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갈릴리 바다’(Sea of Galilee)라고 부르지만 본래는 큰 호수입니다.
갈릴리 바다는 긴네렛, 게네사렛, 디베랴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팔레스타인 지도를 보면, 예루살렘 북쪽 96km 지점에 큰 호수가 있는데 그게 바로 갈릴리 바다입니다. 얼마나 큰가 하면, 남북으로  약 21 km, 동서로 긴 데가 약 13km나 됩니다. 게다가 거친 파도가 있습니다. 민물일 뿐, 바다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흔히 ‘바다’라고 부르는 겁니다.
  갈릴리 바다는 그 지형이 특이합니다. 수면이 지중해보다 200m 이상 낮고, 주위에는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낮에는 뜨거운 태양으로 물이 증발되면 수면의 온도가 올라가고 공기가 희박해집니다. 그러다가 밤이 되면 산 위의 공기가 차가워지면서 아직 온기가 있는 수면과 온도 차, 기압 차가 납니다. 이때 산 위의 차가운 공기가 협곡을 통해 수면 위로 내리치면서 돌풍을 일으킵니다. 이 돌풍은 매우 변덕스럽고 불규칙적입니다. 그래서 갈릴리 바다를 항해하는 배들이 애를 먹곤 합니다. 본문의 상황이 바로 그런 겁니다. 그날도 전혀 예상치 못하는 가운데 갑자기 돌풍이 불어 닥쳤던 것입니다.
  37절(상) 보면, “큰 광풍(a great storm of wind - KJV)이 일어나며 ...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큰’이란 단어는 헬라어로 ‘메가스’(με?γα?)에서 변화된 ‘메가레’(μεγα?λη)입니다. 이것은 엄청 크다는 뜻(영어로 great)입니다. 여기서 영어의 ‘메가’(mega-)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메가는 ‘대’(大 great) 혹은 ‘100만’(10의 6승)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그날 갈릴리 바다에 휘몰아친 광풍은 아주 강력한 것이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메가톤급(級) 광풍’이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인생이 그렇습니다. 미리 알면 좋으련만, 맥을 놓고 있는데 갑자기 이런 저런 고난과 시련의 광풍이 불청객처럼 불쑥 불쑥 닥쳐옵니다. 때로는 아주 큰 광풍, 메가톤급 광풍이 닥쳐옵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과 시련입니다. 우리는 그때마다 당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이 짓눌리고, 걱정, 근심, 불안 속에 전전긍긍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인생 현실입니다.  
[2] 제자들이 탄 배에 휘몰아친 광풍 : 크리스천에게 닥치는 고난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날 그 배에는 누가 타고 있었습니까? 36절.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 ” 예수님이 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의 아들! 전지전능하신 분! 그렇다면 적어도 예수님이 타신 배에는 광풍이 닥치지 않아야 정상이 아닐까요?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오해하고 실족하는 수가 많습니다. “아니,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고난이 없어야 되는 거 아냐?” 흔히 이런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전적인 오해입니다. 크리스천이라고 고난이 면제되는 게 아닙니다. 때때로 고난을 당하면, 그것도 메가톤 급으로 당하면 많은 크리스천들이 낙심하기 쉬운 게 바로 그런 오해 때문입니다.  
  여러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크리스천도 고난을 당합니다. 다 당합니다. 심지어 신앙 때문에 더 크게 당할 수도 있습니다. 환란과 핍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분명 예수님이 그 배에 타셨음에도 불구하고 광풍이 사정없이 닥쳐왔습니다. 37절.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한 가지 희한한 것은 38절에 기록된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38절(상).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 ” 예수님이 주무시는 것도 그렇고, 그 난리가 났는데도 태평하게 계속 주무시는 게 참 이상합니다.
  그건 이렇게 정리하시면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말하자면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을 동시에 갖고 계신 분입니다. 그래서 육신적으로 먹는 것도 필요하고, 피곤하면 잠도 자야 됩니다. 그 날도 해가 저물도록 많은 무리들에게 말씀을 전하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많이 피곤하셨을 겁니다. 그래서 배 뒤편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셨습니다.
  그럼 그건 그렇다 치고, 광풍이 불고 배에 물이 들어와 난리가 났으면 그때는 일어나서 제자들을 도와줘야 하는 게 아닙니까? 그것은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에게 광풍은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제자들은 비록 어부 출신도 많았지만 당황하고 두려워할 정도였지만, 예수님은 전혀 동요가 없습니다. 또 하나는, 소란한 가운데 잠에서 깨어나셨지만 얼마동안 제자들이 어떻게 대처하나 지켜보시고 시험하셨을지 모릅니다. 결코 예수님이 제자들이 당하는 고난에 무관심했던 게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미 그들을 도와주시려고 작정하고 계셨을 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크리스천에게도 고난은 있다, 그러나 분명히 예수님이 도와주신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모신 배도 광풍을 만났지만, 광풍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크리스천은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크리스천의 사전에는 절망이 없습니다!” 이 사실을 꼭 기억하시고, 어떤 광풍이 닥쳐와도 당황하지 말고 절망하지 말고 마음을 가다듬고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3] 광풍을 이기는 방법 : 기도, 믿음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광풍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두 가지입니다. 기도와 믿음!
  ① 기도 :
  흔히 많은 사람들이 고난을 당하면 으레 인간적인 방법에 호소합니다. 이해는 되지만,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본문에 명시되지 않았지만 상상해 봅니다. 제자들 중에는 갈릴리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어부 출신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들을 중심으로 아마 야단법석을 벌이며 나름대로 비상조치를 취했을 겁니다. “야! 물을 좀 퍼내! 빨리 빨리!” “야! 배가 기운다. 너는 왜 그러고 있어! 저쪽으로 좀 가!” 서로 소리를 지르면서 허둥댔을 겁니다. 그러나 모든 게 헛일이었습니다. 물은 계속 불어나고 배는 기울어갑니다. 이제 침몰 위기입니다. 죽음의 공포가 엄습해 옵니다. 제자들은 지식과 경험을 다 동원해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던 겁니다. 거친 광풍 앞에 그들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이 그렇습니다. 평소에는 근사해 보입니다. 그러나 일단 인생의 광풍이 닥쳐오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재력이 있고, 권력이 있고, 여러 가지 능력이 있어도 별 게 아닙니다. 작은 일들은 인간적인 능력으로 커버가 되지만, 결국은 한계에 부딪치고 맙니다. 결국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은 인간적인 절망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역설적인 말이지만 절망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마지막은 하나님의 시작입니다.”(스펄젼) 보통 때는 인간이 자기 힘만 믿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제자들도 인간적으로 생각해서 처음에는 단순히 자기들 전공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예수님 전공은 목수니까 별 도움이 안 될 줄로 착각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다 도저히 안 되니까, 죽게 생기니까 그제서 예수님을 흔들어 깨웁니다. 38절(하). “ ...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 하시나이까 하니”
  물론 이때 제자들의 모습은 정상적인 기도가 아니었을지 모릅니다. 원망조로 울부짖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예수님이 도와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기도는 어떻게 해도 하나님이 좋게 여기신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성숙한 기도를 하면 좋겠지만 철없는 어린아이처럼 외마디로 부르짖어도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하는 만큼 이익입니다. 그리고 기도는 어떤 경우에도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제자들의 부르짖음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즉시 깨어나셔서 응답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십시오! 39절.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there was a great calm - KJV)”  여기서 ‘아주 잔잔하여지더라’는 말은 원문을 직역하면 ‘큰 고요함’입니다. 영어 성경(KJV)을 보면, ‘a great calm’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메가톤 급 광풍을 잠재우시고 ‘메가톤 급 고요함’을 주신 것입니다.  
  요즘 자주 사용하는 ‘기가’ ‘나노’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가(giga-)는 10억(10의 9승), 무수(無數) 등의 뜻입니다. 나노(nano-)는 10억분의 1(10의 9승 분의 1), 미소(微小) 등의 뜻입니다. 예수님은 그 이상이신 분입니다. 때로는 ‘기가’보다 더 큰 것도 척척 해주시는 위대하신 분입니다. 때로는 ‘나노’보다 더 복잡하고 작은 것까지 챙겨주시는 세심하신 분입니다. 그 분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기도가 상책입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언제 어디서 어떤 광풍을 만나든지 결코 낙심하지 마시고, 절망하지 마시고 예수님을 깨운 제자들처럼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이 메가톤급 능력으로, 아니 기가톤급 그 이상의 능력으로 도와주실 줄로 믿습니다! 시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렘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② 믿음 :
  그런데 본문을 보면, 제자들의 모습에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광풍의 와중에 그들은 당황하고 죽는다고 난리를 피웠습니다. 한 마디로 스타일을 구긴 겁니다. 그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얼마나 많은 것을 보고 들었습니까? 좋은 말씀들 ... 여러 기적들 ... 그런데 그 모양이었으니 ... !
  예수님이 바다를 잔잔케 하신 후에 일침을 가합니다. 40절. “ ...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 ” 그동안 무엇을 보고 들었느냐? 이겁니다. 아직도 그 수준이냐? 이겁니다. 하지만 제자들이 아무리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전혀 없었겠습니까? 믿음이 작았다는 말이죠. 마8:26 (병행 구절)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여러분에게 한번 질문하겠습니다. 믿음에도 크기가 있습니까? 있습니다! 큰 믿음도 있고 작은 믿음도 있습니다. 이 말을 이해하려면 믿음의 요소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온전한 믿음은 3가지 요소를 갖고 있습니다. “믿음(Faith) = 지식(Knowledge) + 동의(Assent) + 신뢰(Trust)”입니다. 말씀을 아무리 잘 알고(지식) 받아들여도(동의), 신뢰하지 않으면 순종하지도 못하고 기도에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말씀에 대한 지식과 동의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우리 삶의 현장에서 ‘신뢰의 크기’가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성경에 하나님의 능력에 관한 말씀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롬8:31~32 “31 ...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이런 말씀들에 대한 지식이 많을수록, 마음에 동의할수록 우리의 믿음이 자랍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신뢰하지 않으면 믿음이 아직은 작은 겁니다.
  나이아가라 폭포 이야기입니다. 잘 아시는 대로 그 폭포는 미국과 캐나다 양쪽에 걸쳐 있습니다. 저는 캐나다 쪽에서 구경한 적이 있는데 폭포 자체도 대단하지만, 그곳에 있는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자료들이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폭포를 둘러싸고 별의 별 일화들이 있는데, 폭포 위에 로프를 걸어놓은 채 왔다 갔다 했던 사람들의 기록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바퀴달린 수레를 로프에 올려놓고 그 위에서 프라이팬으로 요리까지 하면서 왔다 갔다 한 사람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런데 나이아가라 폭포에 이런 유명한 일화가 전해져 옵니다. 어떤 곡예사가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는 가운데 긴 장대를 들고 균형을 잡으면서 로프 위로 건너갔다 왔습니다. 모두 박수갈채를 보냅니다. 곡예사는 청중들에게 질문합니다. “제가 이번에는 한 사람을 등에 업고 갔다 올 텐데 가능할 줄로 믿습니까?” 모두 박수를 치며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곡예사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누구든지 지원하시기 바랍니다.” 그랬더니 모두 잠잠합니다. 그런데 뒤에 앉아 있던 소녀가 손을 듭니다. 바로 곡예사의 어린 딸이었습니다. 소녀는 자기 아버지 곡예사에 대해 절대 신뢰했던 겁니다. 다른 사람들은 지식적으로 동의했는지 모르지만 신뢰의 믿음은 없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성령으로 늘 함께 해 주십니다. 그 사실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인생의 광풍이 닥쳐와도 낙심 말고, 주님께 엎드려 기도하십시오! 믿음을 갖고 말씀대로 순종하십시오. 그러면 주님이 우리에게 승리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4] 광풍의 유익 : 단련, 축복의 기회
  오늘 본문을 보면 광풍이 유익입니까? 해가 됐습니까? 유익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잠시 당황했지만 좋은 경험을 하고 여러모로 유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광풍을 허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① 단련(鍛鍊) :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과 능력으로 광풍이 잦아들고 바다가 잔잔해지자 어떤 반응은 보입니까? 41절.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they feared exceedingly - KJV)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여기서 ‘심히 두려워하여’(φο?βον με?γαν)라는 표현은 직역하면 ‘큰 경외심’(a great fear)입니다. 이것은 공포로서의 두려움이 아니라 믿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큰 믿음(a great faith)이 생겼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이제 예수님이 온 우주만물에 대한 절대적인 권세와 능력을 갖고 계시다는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즉 예수님에 대한 메가톤급의 경외심, 큰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예수님이 광풍이 부는데도 한참 동안 깨어나지 않고 계셨던 이유를 아시겠죠? 그들에게 믿음의 훈련, 단련을 위해 그렇게 하신 겁니다. 이런 저런 어려운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믿음으로 기도하고 승리한 경험을 갖도록 하신 겁니다. 그런 가운데 그들로 하여금 더 큰 믿음을 갖게 하고, 앞으로 인생 가운데 더 큰 광풍이 불어와도 당황치 않고 담대히 대처할 수 있도록,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겁니다.
  운전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운전면허 시험문제집 열심히 풀면 됩니까? 무조건 큰 길로 자동차를 끌고 나가서 경험해봐야 합니다. 운전하다가 접촉 사고도 내보고, 딱지도 떼보고, 지나가는 운전자들에게 욕도 먹어보고 그래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어려운 곳에서도 잘 운전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체험적 신앙이 필요합니다. 고난 가운데 때로는 패배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승리하게 만드시고 그 승리의 체험으로 다음의 인생 과정에서 승리하게 하시는 겁니다.
  아무쪼록 이런 원리를 기억하시고, 인생의 광풍이 닥쳐와도 긍정적으로 생각하시고 믿음의 단련을 잘 받으시고, 더 훌륭한 크리스천이 되시기 바랍니다.
  ② 축복의 기회 :
  본문에는 직접 명시되지 않았지만, 또 한 가지 중요한 성경적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해 믿음을 단련하시면서 커진 믿음의 그릇에 하나님의 더 큰 축복을 부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흔히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까? 위기는 위험하지만, 기회이다!  ‘위기’(危機)는 ‘위험’(危險)와 ‘기회’(機會)의 합성어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십시오! 어떤 인물이 인생의 광풍을 없이 놀라운 축복을 경험해 보았는지! 그들은 예외 없이 광풍이 닥쳐올 때 기도로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감으로 크게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그 광풍 때문에 더 빨리 간 셈입니다. 다니엘의 경우를 보십시오! 그는 간신들의 모함으로 사자굴에 던져졌지만, 기도로 믿음으로 나아갔습니다.
단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그럴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났습니까? 단6:22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 ”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니엘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자들의 입이 봉해짐으로 ‘사자굴’이 변하여 ‘천사굴’이 되었고, 하나님의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었습니다.  
  또 많은 크리스천들이 우리에게 그런 승리의 모델을 제시해주었습니다. 『메시아』를 작곡한 헨델(George Frederic Handel 1685∼1759)은 감동적입니다. 그가 그 위대한 오라토리오를 작곡한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절망 중에 처해 있을 때였습니다. 인생의 광풍 한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께 나아감으로 그 놀라운 음악이 태어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는 예기치 않은 광풍(狂風)이 반드시 닥쳐옵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있을 수 없는 무풍(無風)을 기대하지 마시고, 늘 깨어 기도하며 믿음으로 광풍을 맞이하고 돌파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큰 승리와 축복을 맛보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다 언젠가 우리 주님이 부르시면 승리의 개선가를 부르며 천국에 당당히 들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홍문수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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