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의 믿음 (렘1:4-10)
저는 여러분의 사랑과 기도가운데 미국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제가 미국에 가면 꼭 찾는 햄버거 집, '인앤 아웃' 이라는 곳입니다. 미국을 여행하시는 분을 아시겠지만 미국은 햄버거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것만 해도 맥도날드, 버거킹 등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햄버거 가게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크고 작은 햄버거 가게가 많습니다. 그 중에 인앤 아웃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캘리포니아에서는 제법 유명한 햄버거 가게입니다. 이곳은 다른 곳과 달리 줄을 서야 먹는 곳입니다.
이곳이 유명하게 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맛이 좋다는 것입니다. 또한 창업주의 기업정신에 투철하다는 것입니다. 이곳은 처음부터 대기업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다른 곳처럼 문어발 식으로 확장을 하지 않습니다. 다른 곳처럼 아르바이트생들을 쓰지도 않습니다. 이들은 고객들에게 친절과 청결과 맛을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바로 이런 오너의 기업정신에서 인앤 아웃이 미국에서는 조용하지만 신선한 도전을 주고 있는 기업입니다.
무엇보다도 이곳이 잘 되는 이유는 믿음의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오너와 사장을 비롯한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크리스천입니다. 믿음의 기업이 추구하는 가장 큰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이들은 기업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힘씁니다. 그러나 이들은 떠들썩하게 전도하지 않습니다. 보통 전도하려면 사람이 보이는 모든 곳에 전도지와 말씀을 새겨 넣는 것이 상식인데, 여기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음료수 컵 밑바닥에 아주 작은 글씨로 요한복음 3장 16절이라고만 쓰여 있습니다. 그것도 유심히 보아야 겨우 보입니다. 이렇게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세상의 변화와 친근함과 복음을 전하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기업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왜 이름이 인앤 아웃인지 잘 모르지만, 아마도 신명기 28장의 말씀에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다는 말씀을 근거로 이런 이름을 정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이름을 그렇게 믿고 싶을 정도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믿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이 기업을 통해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세상에서 사는 자들입니다. 성전건축을 진행하는 우리 교회는 무엇보다도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런 때에 계속해서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사람들을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이사야에 이어서 오늘은 예레미야입니다. 그는 어떤 믿음을 사람일까요?
첫째, 은혜를 아는 믿음입니다. 예레미야는 이사야와 같이 남쪽 유다가 멸망하기 직전에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이미 북쪽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멸망을 당하고, 이제 남쪽도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멸망하는 위기의 때에 그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특히 그는 눈물의 선지자로도 널리 알려진 사람입니다. 많은 눈물과 통곡으로 백성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기도했지만, 사람들은 그의 외침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남쪽 유다도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하였고, 예레미야는 더 간절한 눈물과 통곡으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예레미야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을 이방 땅에서 회복시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택한 백성의 삶에 강같이 흐르고 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본문은 바로 이런 눈물의 선지자 예례미야가 처음 성경의 무대에 등장하는 부름 받는 장면입니다. 여기에서 우선적으로 눈에 뜨는 것이 4-5절입니다. 성경은 그의 부름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이것이 예레미야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이 예레미야가 하나님을 알면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마음에 새긴 말씀입니다. 여기 말씀에서 강조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은혜입니다. 예레미야 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아셨고, 구별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 그를 하나님의 선지자로 부르셨다고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그를 알고, 구별하고, 세웠다는 것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은혜가 그에게 임한 것이고, 예레미야는 그가 부름을 받고 믿음생활을 하면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습니다. 믿음이 알게 한 것입니다.
은혜와 믿음, 이것은 언제나 우리 삶에 함께 가는 것입니다. 너무도 중요한 신앙의 요소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하면서 믿음과 은혜의 이런 상관관계를 잘 알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한마디로 은혜와 믿음입니다. 이 두 가지가 전부입니다.
은혜는 하나님께 속하여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고, 믿음은 인간에게 속하여 위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영역이고, 믿음은 사람의 영역입니다. 구원에 있어서 우리는 오직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숙한 사람이 되는 길에 있어서는 은혜가 믿음과 함께 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하고, 나의 믿음의 수고와 노력과 열정이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게 합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일어나고, 믿음은 인간의 열정적인 헌신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 삶에 은혜와 믿음은 이처럼 깊은 연관을 맺고 함께 갑니다. 이것을 알고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믿음으로 살기를 다짐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지만 은혜만은 주지 않습니다. 은혜는 오직 하나님만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분이 나에게, 가정에, 교회에, 나라에 은혜를 주셔야 합니다. 오직 은혜가 나를 살리고, 가정을 새롭게 하고, 교회를 부흥케 하고, 나라를 바르게 합니다. 그래서 은혜를 사모하고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받은 은혜가 너무도 큽니다. 우리 개인에게는 구원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가정적으로도 평안과 번영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교회적으로 성전건축이라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국가적으로 이렇게 교회가 번성하고, 경제적으로 부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지금까지 받은 은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앞으로도 받을 은혜가 더 넘치도록 풍성합니다. 오늘도 예배의 자리에 나온 것은 바로 그 은혜를 받기 위함입니다. 큰 은혜를 주셔서 한 주간도 승리하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은혜를 아는 자들이 되어야 하고, 은혜를 잊지 않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우리를 은혜로 이끄시는 하나님 앞에 헌신과 결단으로 믿음을 견고히 세워야 합니다. 시편 저자의 고백처럼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무엇으로 보답할꼬..' 라고 고백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바로 그런 자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그렇게 은혜와 믿음을 따라 사는 자가 세상에서 승리합니다. 이처럼 은혜를 알고 믿음으로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겸손한 믿음입니다. 계속되는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 앞에 믿음으로 고백하는 예레미야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가 무엇이라고 고백합니까?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이것이 예레미야의 믿음의 고백이요, 인격이요, 삶의 모습입니다. 그는 자기를 가리켜 슬프다, 나는 아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에 대한 해석이 다양하지만 무엇보다도 이것은 그의 겸손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이사야도 그랬지만 예레미야도 당대에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매일매일 하나님을 만나고 살던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새삼스럽게 부르시는 하나님께 슬프다고 고백합니다. 겸손함의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왕들이 타락하여 엉망이었을 때 백성들은 선지자를 바라보았습니다. 그 가운데 백성들에게 인정받은 사람이 바로 예레미야입니다. 이런 예레미야는 결코 아이가 아닙니다. 그는 성숙한 사람 중에 성숙한 사람이고, 어른 중에 어른입니다. 그런데 그가 자신을 이렇게 아이라고 말합니다. 자기를 낮추는 겸손함에서 나오는 고백입니다. 이것이 그의 믿음입니다. 몸에 배어 있는 겸손함의 인격과 삶입니다.
겸손이 무엇입니까? 겸손은 자기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보여주셨던 모습입니다. 주님은 자기를 낮추신 분이십니다. 한없이 낮추셔서 하늘에서 이 땅으로, 이 땅에서 십자가로, 자기를 한없이 밑바닥까지 낮추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신을 낮추기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을 높여 주셨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주님 곁에 많은 사람들, 특히 사회에서 버림받고 소외당한 사람들이 모여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주님은 그들을 알아주셨고, 인정해 주었고, 사람대접을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시대의 바리새인들은 교만한 자의 표징이었습니다. 그들이 교만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들은 주님의 모습을 반대로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기를 높였습니다.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를 내세우고, 조금 업적이 있으면 크게 나팔을 불면서 자기를 내세웁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를 높이고 남은 짓밟습니다. 사람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사랑하지도 않으며, 사람으로 대접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교만입니다. 결국 그들은 성경의 말씀처럼 교만하여 망한 것입니다.
이제 자기를 낮추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교만이 끼를 발동할 때마다 믿음으로 자기를 다스려 낮추어야 합니다. 주님처럼 조용히, 말없이,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심정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남을 높여야 합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세워주어야 합니다. 자기만 낮추고 남을 높이지 않으면 온전한 겸손이 아닙니다. 우리는 나만을 위해 사는 자가 아닙니다. 나만 낮추었다고 다 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인정하고 높여야 합니다. 바로 주님처럼 이렇게 겸손하게 살아야 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은혜가 믿음과 관계가 있다고 이미 언급했습니다. 은혜가 중요한데 은혜는 어떻게 받는 것입니까? 다른 길이 없습니다. 은혜를 받는 길은 오직 겸손에 있습니다. 겸손이 믿음이요, 겸손이 주님을 닮아가는 길입니다. 예레미야처럼, 시대에 쓰임 받은 믿음의 사람들처럼, 우리의 앞서간 선진들처럼, 예수님처럼 겸손한 사람, 겸손한 믿음으로 오늘도 내일도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말의 힘이 있는 믿음입니다. 계속되는 말씀을 보면, 예레미야의 부름을 받는 장면에서 성경이 유독 강조하는 것이 말, 입, 말씀인 것을 발견합니다. 6절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부름 앞에 가장 큰 겸손함의 행동을 말할 줄을 못하는 것으로 고백합니다. 이런 예레미야를 향해 하나님이 선포하신 것이 무엇인지 보십시오. 7절에도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보내시며 말하라고 하십니다. 8절에도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9절에 하나님은 능력의 손을 내밀어 예레미야의 입에 대시며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고 하십니다. 모두가 말과 관련된 말씀들이고, 행동입니다. 이처럼 말이 중요합니다. 결국 예레미야는 말의 힘을 얻습니다. 얼마나 말의 힘이 그에게 있었는지 10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
예레미야가 뽑고 파괴하고 파멸하고 넘어뜨리고 건설합니다. 이것이 예레미야의 사역이요, 업적입니다. 그가 이런 일을 위해 칼을 들고 전쟁을 한 것이 아닙니다. 무기를 앞세우고 싸운 것이 아닙니다. 오직 그의 입에 나오는 말로서 이 모든 능력이 나온다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레미야의 능력이요, 믿음입니다. 말의 힘이 놀라운 사람입니다.
구약시대 선지자들은 그 역할이 입, 말에 있었습니다. 그들이 말하면 하나님의 대언이 되었고, 그 말에 따라 방향이 바뀌고, 길이 달라졌습니다. 모든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은 이런 놀라운 말의 힘을 주신 것입니다. 그 가운데 예레미야는 말의 힘이 더욱 강했던 사람입니다. 누구보다도 말의 능력이 뛰어났던 사람입니다. 그가 말하면 사람들이 듣습니다. 그가 말하면 왕도 벌벌 떱니다. 그가 입을 열면 자연도 듣습니다. 그가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됩니다. 이 놀라운 말의 힘이 예레미야에게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가진 믿음의 힘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이 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가진 강력한 힘이 말씀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말씀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임하는 가장 큰 은혜가 말씀인 것을 압니다. 놀라운 힘이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어떤 기적을 행하지 않아도, 어떤 변화가 일어나지 않아도, 우리는 압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내 심령과 골수에 사무치는지를 압니다. 이것이 하나님말씀의 힘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가는 우리에게도 가장 힘이 바로 말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입에 축복과 저주의 말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축복하면 축복이 임합니다. 우리가 말로서 위로하면 큰 힘을 얻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입을 열어 저주하면, 저주가 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어 이처럼 놀라운 축복과 저주의 말을 권세와 능력으로 주셨습니다.
우리 속담에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속담에 대한 유래가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내용을 잘 몰라도 우리 삶에 너무도 많이 경험하는 일입니다. 말을 잘하면 빚도 갚고, 힘도 얻습니다.
그러나 이런 속담도 있습니다. 말이 주는 상처가 가장 오래간다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가 보이는 상처보다 큽니다. 사람이 죽어 가는 것은 육체의 질병보다 마음의 질병, 상처가 크게 때문입니다. 마음에 가장 큰 상처는 바로 말이라는 것입니다. 이것도 우리가 너무도 많이 경험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면서 받은 어떤 상처보다도 말의 상처가 가장 크지 않습니까? 친구사이에, 부부사이에, 사람과 사람사이에 말로서 주고받은 상처가 있습니다. 그것이 세월이 지나도 좀처럼 낫지 않습니다.
또한 이런 속담도 있습니다. ‘침묵은 금이다’는 말입니다. 말로 많은 상처를 주기에 때론 말하지 않고 침묵하면 될 것 같지만,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믿는 자에게 큰 힘은 말에 있기에 우리는 입을 열어야 합니다. 침묵하는 것이 금이라면, 말하는 것은 다이아몬드와 같은 것입니다. 말하지 않는 게 대수가 아닙니다. 말하는 것이 우리 믿는 자의 삶입니다.
‘할 어반’이란 사람이 쓴 책 중에 ‘긍정적인 말의 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말을 많이 하는 현대인들에게 그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신선한 도전과 충격을 주는 책입니다. 그는 말의 힘에 대하여 이렇게 강조합니다. “인간은 말을 만들고 말은 인간을 만든다, 한마디의 말 그것이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당신이 하는 말이 당신을 드러낸다, 당신이 선택한 말이 당신의 인생을 만든다..” 결국 말이 곧 성품이고, 성품은 말에서 잘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말이 곧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을 잘 해야 합니다. 말을 잘 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잘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말하지 않고 기도하는 방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이고, 기도하면서 내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결국 사람을 살리고 큰 힘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성경의 교훈을 새겨야 합니다. 시편 저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숫군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시141:3) 바울은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 되는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4:29)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예레미야의 믿음을 생각했습니다. 그의 믿음은 은혜를 아는 믿음, 겸손한 믿음, 그리고 말의 힘이 있는 믿음입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승리의 길을 향해 힘있게 출발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서해원목사 설교 중에서
'◑ 자료 18,185편 ◑ > 자료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생의 광풍이 닥쳐올 때 (막4:35~41) (0) | 2022.09.21 |
---|---|
믿음, 고자질, 그리고 음모 (요한복음 11:44-57) (0) | 2022.09.21 |
이사야의 믿음 (사6:1-8) (0) | 2022.09.21 |
사무엘의 믿음 (삼상12:1-5) (0) | 2022.09.21 |
믿음이 적은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마14:22-33) (0) | 2022.09.21 |
댓글